길었던 연휴를 감사하며 난생 처음 200자 원고지에 250매 분량의 글을 써 보았네요. 차분하게 읽어보니 참 가관도 아닙니다. 이것도 글이라고 참내, 발로 써도 이렇게 졸렬한 글은 안 나올 것 같습니다. 그래도 한 가지 안도한 것이라면 250매를 첨으로 넘겨보았다는 것입니다. 물속에서도 자맥질을 하면서 한 호흡을 넘겨야 숨이 길어집니다. 예전에 나는 애니메이션 작가였습니다. 작가래야 기껏 외국작품 하청일이 전부였습니다. 즉 진정한 창작은 아니란 것입니다. 애니메이터(Animater) 중에서도 원화맨(Key Animater) 으로 불렸지만, 나의 창작은 한편도 없이 그 나라에서 지시하는 대로 그려줄 뿐입니다. 사실 만화영화는 우리나라가 세계제일의 하청국가였습니다. 하청일이 무엇인지는 잘 알고 계시리라 믿고 설명은 안합니다. 하청일 시절은 피트(feet)가 밥벌이의 중요한 수단이었습니다. 피트는 길이의 단위를 나타내는 말입니다. 즉 옛날에는 사람의 발로 길이를 측정했는데 재는 사람의 발 크기에 따라 길이가 달라졌답니다. 대충 25~34cm로(한국사람 기준 아닙니다요) 다양하게 사용하던 것을 지금은 30.48cm로 통일을 했다고 백과사전에 나와 있네요. 비행기는 고도1만 피트 상공에서 날고 있네요. 1피트는 14콤마. 1초는 24콤마. 즉 일초에 우리 눈에 들어오는 동작의 수단을 말합니다.
한 달에 몇 피트를 그리느냐에 페이가 결정 되었으니까요. 처음엔 50피트 소화하기도 벅찹니다.(신인 시절) 그러다 그 고비를 넘기면, 100피트, 200피트, 300피트까지는 합니다. 그런데 500피트를 넘기는 데는 사실은 좀 무리죠. 보조(assistant) 작가를 둬서 그림의 흐름만 정해주고 정서를 하면 가능합니다. 근데요, 한국 사람들 손 더럽게 빠릅니다. 그게 작업스케줄용으로는 최고이지만 작품성은 별로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월트디즈니 장편은 한국에 오지도 않지만, 사실은 그러한 작품은 소화도 못 시킵니다. 동서양의 정서가 다르니까요. TV용이야 일정한 룰을 적용시키면 그런대로 봐 줄만 합니다. 제가 한창 일하던 시절에는, 밤에는 다른 회사 알바까지 하면 1,000피트까지도 했답니다. 1피트에 최하 단가가 (7,000원~10,000원)까지이니, 10피트면 (70,000원~100,000원), 100피트면 700,000원~1,000,000원). 7*5=35*2=월 700만원~1000만원까지도 그려봤답니다. 사실 1,000피트를 그린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엉터리 작품을 유발시키는 일입니다. 그래도 넘어갑니다. 어차피 텔레비전용이니까요. 그나마 외국작품은 볼만합니다. 국내용은 예산절감으로 3콤마용으로 거슬림이 눈에 마구 들어옵니다. 그것도 1초에 24콤마를 적용시켜 페이는 턱없이 낮아 턱턱 관절 꺾이는 소리가 들립니다. 제작비를 줄이자니 할 수 없습니다. 엉터리로 만들어도 20분물이 한 5,000만원 듭니다.
그 시절에 최단시간에 100만원을 번 적이 있답니다. 최단시간이라는 게 2시간 만에100만원입니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할까요. 자. 곰 한마리가 자고 있어요. 드르렁, 쿨. 시트(seet)는 그냥 홀드(hold)로 쭉 몇 장이 넘어갑니다. 1피트가 7,000원인데 100피트면 700,000원입니다. 한 시퀀스가 무려 150피트입니다. 시트에 아무런 지시도 없이 쭉 선(line)만 길게 그어져 있습니다. 그러다 중간에 곰이 딱 한번 눈을 뜹니다. 그리곤 다시 잡니다. 그러면 자고 있는 곰 한 마리 그리는데, 공을 들여도 한 시간이면 떡을 칩니다. 눈은 sep시킵니다. 감은 눈 1장. 반감은 눈 1장. 뜬 눈1장. 도합 4장의 그림을 그리면 끝입니다. 이런 행운은 제가 애니메이션 작가 하면서 딱 한 번 경험한 것입니다. 이런 행운보다는 힘든 일이 더 많이 생깁니다. 그런데요. 반대의 경우가 더 허다합니다. 삼국지 그릴 땐, A4용지 가로로 5장 붙여서 적벽대전 전투신입니다. 겨우 3피트인데, 말 300마리와 그 위에 갑옷 입은 장수 300명, 서로 싸웁니다. 환장합니다.3*7=21,000원 받자고 일주일도 더 걸렸습니다. 2만원 벌자고 일주일을 밤을 지새우고 내 돈으로 밥 사 먹으면 밥값도 안 나옵니다. 일이란 게 그런 겁니다. 그나마, 지금은 그 애니메이션도 이미 사양길입니다. 컴퓨터의 보급으로 TV에선 만화영화는 자취를 감추고 게임에 빠진 동심은 더 이상 애니메이션에 어린 눈을 돌리지 않습니다. 수요자가 없는 공급은 무의미합니다. 설 곳을 잃은 늙은 애니메이터는 갈 곳이 없어졌습니다.
잘 나가던 시절의 미국의 Mtv社는 1년 내내 애니메이션만 방영하던 채널이었습니다. 년 5,000편이 넘게 방영되었습니다. 심슨가족만 10년을 넘게 그렸습니다. 10년을 안방을 주름잡다가 마지막엔 극장용 한편 남기고 사라졌습니다. 극장용 장편엔 나의 이름이 올라간 작품도 꽤나 됩니다. 하긴 겨우 3편정도입니다. 지금은 그 일도 없습니다. 지나간 시절의 슬픈 추억일 뿐입니다. 일이 없으니 나도 덩달아 사라졌습니다. 세월이 흐르니 나도 흐릅니다. 호구는 먹고 살아야 호구신세 면합니다. 그러지 못하면 만년 호구입니다. 그림쟁이에서 글쟁이로 변신을 합니다. 변신, 쉽지 않아요. 풀칠을 면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공단을 다닙니다. 열악합니다. 이 더운 여름에 에어컨 안 틀어 줍니다. 늙은 선풍기만 몇대 탈탈 거리며 더운 김을 품어 냅니다. 열 받아서 차가운 공기는 삼키고 더운 김만 내뿜나 봅니다.
시를 배운답시고 갈겨 써 봅니다. 시는 함축과 절재의 결정체라고 배웠습니다. 아무리 줄여도 불어터진 내 몸뚱아리만큼이나 길게 늘어진 산문이 됩니다. 말이 많은 나는 시를 써 보지만 말도 안 되는 이상한 글만 나열됩니다. 이것도 시라고. 그래서 나는 시를 못 씁니다. 수필은 정직한 나의 내면의 기록입니다. 정직한 글은 감동을 줄 수 있지만, 이내 짜증을 냅니다. 왜냐 구요. 지나치게 감정을 자극하니까요. 나를 드러내는 것도 몇 편 써 보니 바닥이 보입니다. 극한 직업이나 내 신체가 떨어져 나가야 독자들을 아주 미미하게 자극을 합니다. 내가 읽어봐도 감동은 고사하고 재미 하나도 없습니다. 내가 봐도 재미없는 글 누가 읽기나 할까요. 그렇다고 독서를 많이 했다고 남의 글을 흉내를 낼 수는 없는 일입니다. 이래저래 글재주가 안 보입니다. 참 큰일입니다. 소설은 엄두도 못 냅니다. 공장 다니느라 퇴근하면 파김치 되어 늘어집니다.
평범한 글은 독자를 화나게 합니다. 아무나 쓸 수 있는글 쓰면서 작가라고 하면 쪽 팔립니다. 독자의 시선을 빼앗은 죄, 중죄인입니다. 바쁜 사람들이 다른 할일도 얼마나 많은데 말입니다. 요즘 사람들 책 별로 안 봅니다. 작가가 책을 읽는 시절입니다. 서로의 작가가 서로의 독자이자 독자가 작가인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작가보다 수준 높은 독자가 넘칩니다. 독자보다 수준 낮은 작가가 허다합니다. 사업을 하려해도 종자돈이 필요합니다. 작가에게는 종자 글이 필요합니다. 무작정 써 보고 있지만 마음에 드는 글은 하나도 없습니다. 나의 글쓰기는 어느 정도인지를, 지피지기면 백전불패라. 글이라는 것이 그렇습니다. 그냥 단박에ㅡ 절대로 그냥 떠오르질 않습니다. 어디 허접한 출판사에 책값내고 책 내면 작가 시켜주는 곳도 있다고 합니다. 나는 돈이 없습니다. 먹고 죽을 돈도 없습니다. 그러고도 잠정작가라고 허접을 부립니다. 쪽 팔립니다. 본인이야 어차피 포장을 결심하였으니 괜찮을지 모르지만 눈을 버린 독자의 화를 유발합니다. 잘 쓰는 작가가 그리운 시절입니다. 나의 아둔함을 한탄합니다. 참 글쓰기 어렵습니다. 이러다 머리만 쥐어뜯다가 인생을 보낼지도 모를 일입니다.
대체로 우리나라 사람들은 텔레비전을 엄청 사랑합니다. 그래서 드라마나 영화작가, 즉 시나리오 작가는 희망이 있다는 겁니다. 약간 모자라는 연출은 배우의 얼굴이나 연기력이 커브를 한다지만 문제는 가슴을 울렁거리는 작가의 글이 먼저입니다. 작가가 먼저 울지 않으면, 독자는 절대로 울지 않는 법입니다. 내 마음을 적시는 감동의 글을 먼저 쓰고 그 다음은 독자의 눈에 닭똥 같은 눈물이 뚝뚝 떨어지게 해야 합니다. 그래서인지, 나는 남자이면서도 드라마를 즐겨 봅니다. 명분은 드라마를 쓰려면 드라마를 알아야 한다는 얄팍한 변명이 전부입니다. 월화 드라마, 수목 드라마, 주말 연속극을 빠짐없이 봅니다. 매일을 10시전에는 집에 도착해야만 합니다. 왜냐구요, 드라마 봐야 하니까요. 눈을 집중시키는 내용이 있는가 하면 시선을 버리는 작품들도 더러 있습니다. 가끔 드라마를 보다가, 내 눈에서 떨어지는 눈물을 훔칩니다. 메마른 내 가슴에 눈물이라니. 글이 좋아서 눈물이 날까, 아니면 연기자의 연기가 뛰어나서일까. 그것도 아니면 여배우가 예뻐서. 나야 모를 일입니다.
그렇습니다. 내 가슴도 못 열면서 어찌 망부석 같은 독자들의 가슴을 훔칠 것입니까? 당장에 은행을 털면 은행털이범으로 감옥행입니다. 그러나 작가들의 가슴이 열려 시청자의 눈물을 털면, 진정한 작가로 거듭납니다. 은행털이범이 될 것인가. 독자의 가슴털이범이 될 것인가. 오늘도 부단히 머리를 뜯으며 단어조합장과 씨름을 하지만 늘 나가떨어지기 일쑤입니다. 문장의 치졸함이여. 언어의 전도사가 되려면 길거리에 수많은 불신독자들을 차곡차곡 집안으로 끌어 드릴일입니다. 근데, 내 작품도 없이 집안으로 끌어 들이기만 하면 뭘 합니까.
“방황하는 이들이여. 드라마가 시작되는 밤10시입니다. 어서 집으로 들어가 즐거운 월화드라마, 수목 드라마, 주말연속극을 시청할 시간입니다. 여러분 책 읽기는 죽어도 싫고 TV나 눈이 빠지게 봅시다요.” "에라 TV나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