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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45] 다음 글을 읽고 물음에 답하시오.
그 이전에 진 공이 병부에서 벼슬을 살던 때였다. 엄숭의 가자(假子) 조문화는 진 소저가 아름답다는 말을 듣고 제 자식을 위해 진 공에게 혼인을 청한 적이 있었다. 그때 진 공이 엄한 말로 거절하자, 조문화는 매우 노하여 엄숭에게 사주해 공을 노안부 제독으로 내쫓게 했다. 그 무렵에 다시 양석을 시켜 ‘진공이 사사로이 태원의 돈 삼십만 냥을 훔쳤다.’고 무고하게 했다. 그리고 금위옥에 가둔 뒤 온갖 방법으로 죄를 조작하게 했다. 조문화는 오 부인과 진 소저가 옛집으로 올라왔다는 말을 듣고는 부인의 종형 오 낭중이라는 자를 불러 놓고 말했다.
[A][“진형수는 죽어 마땅한 죄를 지었지. 그렇지만 내가 진실로 한번 입을 연다면 족히 목숨은 구할 수 있을 것이니라. 지난날에 형수가 나를 지나치게 무시하여 혼인을 박절하게 거절한 적이 있었다. 이제 와서 내가 그 원한을 묻어 둔 채로 덕을 베풀어 주지는 못하겠다. 들으니 그대는 형수와 인척이 된다 하더군. 만일 형수가 살아서 옥문을 나서게 하고 싶다면 시험 삼아 나를 위해 형수의 딸에게 내가 한 말을 전해 주어 보거라. 그녀가 만일 효녀라면 스스로 거취할 방도를 필시 깨우치게 될 것이니라.”]
오 낭중은 본시 권세를 두려워하여 예예 하고 대답만 할 줄 아는 위인이었다. 그는 공손하게 손을 모은 채 명을 받은 뒤 오 부인을 찾아가 조문화가 한 말을 그대로 전했다.
㉠오 부인은 크게 노했다.
“조가 도적놈이 감히 우리 딸에게 욕을 보이려 한다고?”
그러자 진 소저가 분연히 고했다.
“옛날 효녀 중에는 스스로 관비가 되기를 청하여 제 아비의 죽음을 면하게 한 자가 있었으며, 또한 자신을 팔아 제 부모의 장사를 치르게 한 자도 있었습니다. 소녀의 신체발부는 모두 부모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이제 부친께서 중죄를 받을 형편에 놓이신 마당에 자식된 자로서 ㉡어느 겨를에 일신의 욕과 불욕을 논할 수 있겠습니까?”
오 부인은 평소 소저의 빙옥 상설 같은 지조를 잘 알고 있었다. 따라서 그 말을 듣고는 깜짝 놀라 말도 하지 못한 채 한동안 눈물만 흘리다가 마침내 탄성을 발했다.
[B][“슬프다! 총계정에서 학을 읊은 시가 족히 너의 성안(成案)이 되고 말겠구나. 내가 어찌 네 마음을 의심할 리 있겠느냐? 그러나 딸을 죽여서 그 아비를 구한다면, 산 사람의 마음이 오죽이나 하겠느냐? 옛 사람이 이르기를, ‘황금을 걸어 놓고 도박을 벌이면 그 지혜가 더욱 어두워진다.’고 했지. 지금 내 마음은 황금을 건 것에 비할 바가 아니로구나. 네 스스로 잘 생각해서 현명하게 처신하거라.”]
진 소저는 ㉢추호도 망설이는 기색이 없이 친히 오 낭중을 향해 혼인을 허락했다. 오 낭중은 몹시 기뻐하며 조문화에게 돌아가 그녀의 말을 전했다. 조문화는 미칠 듯이 기뻐하더니 그 이튿날 다시 엄숭을 사주해 진 공의 옥사를 천자에게 아뢰게 했다. 이윽고 천자는 진 공의 사형을 감하는 대신 운남으로 귀양을 보내게 했다.
(중략)
마침내 진 공은 오 부인과 함께 길을 떠났다. 그 뒤 진 소저는 침실로 돌아가 자리에 누운 채 밤낮없이 엉엉 울고 있었다. 그때 조문화의 가인(家人)들이 속속 찾아와 진 소저에게 혼인 을 재촉했다. 진 소저는 유모로 하여금 말을 전하게 했다.
“방금 부모님을 작별했으므로 정회가 망극하기 그지없습니다. 앞으로 수십 일 정도를 보내면서 마음을 조금 진정시킨 연후에 성례하면 좋을 듯합니다.”
조문화의 가인이 돌아가 진 소저의 말을 전했다. 그러나 조문화의 아들은 다급하게 서둘러 마지않았다. 조문화가 말했다.
“인정상 본디 그럴 것이니 그 말대로 따르도록 하거라. 또한 저 아이는 이미 주머니 속에 든 물건이나 다름이 없게 되었다. 서두르지 않는다고 달아날 곳이 있겠느냐?”
사오일 뒤 조문화는 시비로 하여금 진 소저를 찾아가 살펴 보게 했다. 진 소저는 머리를 풀어 얼굴을 가린 채 이불을 덮고 신음하고 있다가 희미한 목소리로 유모를 불러 놓고 일렀다.
“슬픔으로 심란하던 차에 다시 감기에 걸리고 말았네. 이제는 마음도 추스르고 병도 조섭하여 속히 쾌차한 후에 부모님을 살려 주신 ㉣큰 은혜를 보답하려 하네. 그런데 지금 바깥 사람들이 자주 왔다 갔다 하니 내 마음이 편하질 않구려.”
그 사람이 돌아가 진 소저의 말을 조문화에게 그대로 전했다. 그러자 조문화는 몹시 기뻐했다.
“진실로 뛰어난 효녀로서 은혜를 갚을 줄 아는 사람이로구나. 이제 그 뜻에 순종하여 화를 돋우게 하지 마라. 앞으로도 모름지기 매일 문밖에서 동정을 살피되 집 안에는 다시 함부로 들어가지 말거라.”
다시 10여 일이 지난 뒤 진 소저는 공의 행차가 이미 멀리까지 갔으리라 짐작하고 유모 및 시녀 운섬 등과 함께 야밤에 간단하게 행장을 꾸렸다. 그리고 모두 남장을 한 뒤 나귀 한 필을 끌고 회남을 향해 떠나갔다.
그 이튿날에도 조문화의 가인이 소저를 찾아갔더니 ㉤ 빈집만 황량할 뿐 다시는 인적을 찾아볼 수 없었다. 그 사람은 몹시 놀랍고도 의아하여 마을 사람에게 물어보았다.
“저 집 소저가 어디로 갔습니까?”
마을 사람은 쌀쌀하게 대답했다.
“소저고 대저고 나는 모릅니다.”
그 사람은 무안만 당하고 돌아가 조문화에게 고했다.
-작자 미상, 창선감의록 -
42. 윗글의 내용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① 진 소저가 부모님과 이별한 뒤 집 안에 머문 것은 혼인 여부를 결정하기 위한 것이었다.
② 조문화의 아들은 진 소저와의 혼인이 늦어지는 것에 대해 조급해하며 혼인을 서두르고 싶어 했다.
③ 조문화는 진 소저의 부모가 떠났다고 하여 아들과 진 소저의 혼사가 무산될 것이라고는 여기지 않았다.
④ 운섬은 진 소저와 함께 밤중에 행장을 꾸려 길을 떠났다.
⑤ 마을 사람은 진 소저의 행방에 대해 조문화의 가인이 원하는 답을 주지 않았다.
43. [A]와 [B]에 대한 이해로 가장 적절한 것은?
① [A]는 청자와의 동등한 관계를 전제로, [B]는 청자와의 상하 관계를 이용하여 자신의 목적을 이루고자 한다.
② [A]는 지난 일을 들어 청자에 대한 원한을 드러내고, [B]는 이전에 쓰인 글을 떠올려 청자에 대한 원망을 표출한다.
③ [A]는 청자에게 선택 가능한 여러 방안을 제시하여, [B]는 선택 가능성을 제한하여 청자의 문제를 해결해 주고자 한다.
④ [A]는 가정할 수 있는 상황을 들어 자신의 의중을 청자에게 전하고, [B]는 비교할 만한 상황을 들어 자신의 의중을 청자에게 드러낸다.
⑤ [A], [B] 모두 이상적 가치를 내세워 자신의 결정을 청자가 따르도록 유도하고 있다.
44. <보기>를 바탕으로 윗글을 감상할 때 적절하지 않은 것은?[3점]
<보기>
조선 후기에 들어 가문을 둘러싼 갈등과 정치적 대립이 서사화되는 양상이 두드러진다. 임금과 신하의 권력 관계가 역전된 정치적 구조에서 권세 있는 신하가 정치를 좌우하는 현실이 소설에 반영된다. 이러한 정치적 문제는 가문의 문제에 연결되면서 가족 구성원이 고난을 겪는 서사 구성으로 드러난다. 이때 자신의 판단과 지략으로 해결책을 모색하는 적극적 인물들이 나타난다. 이들은 사리 판별을 돕는 인물이나 주변 인물의 도움을 받기도 한다.
① 오 낭중이 가문 사이를 매개하는 것을 보니, 사리 판별을 하여 가족 구성원이 위기 상황을 극복하게 하는 모습을 알 수 있군.
② 진 공이 옥에 갇히고 귀양을 가게 되는 과정을 보니, 권력을 가진 신하가 정치를 좌우하는 현실의 문제를 추측할 수 있군.
③ 진 소저가 길을 떠나기까지의 과정을 보니, 자신의 판단에 따라 지혜롭게 문제 상황을 해결해 가는 적극적 인물의 면모를 알 수 있군.
④ 조문화가 성사시키려 한 혼인 문제로 진 공의 가족이 고난 을 겪게 되는 과정을 보니, 정치적 문제와 가문의 문제가 연결될 수 있음을 알 수 있군.
⑤ 유모가 조문화의 가인과 시비에게 말을 전하고 진 소저와 함께 남장을 하는 정황을 보니, 주변 인물이 적극적 인물에게 도움이 되고 있음을 알 수 있군.
45. 문맥을 고려할 때 ㉠~㉤을 표현하기에 가장 적절한 것은?
① ㉠ : 나중에 보자는 사람 무섭지 않다.
② ㉡ : 없는 자가 찬밥 더운밥을 가리랴.
③ ㉢ : 만사가 욕심대로라면 하늘에다 집도 짓겠다.
④ ㉣ : 산이 높아야 옥이 난다.
⑤ ㉤ : 빈대 잡으려고 초가삼간 태운다.
42. ① 43. ④ 44. ① 45. ②
[42~45] 고전소설 – 작자 미상, ‘창선감의록’
지문해설 : 이 작품은 그 내용의 상당 부분이 조정을 중심으로 한 권력의 쟁탈이나 외부 적과의 전쟁으로 채워져 있지만, 내용의 중심은 화진의 가문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따라서 가문 내부의 질서 확립이 작품의 중심이 되며, 부차적으로 ‘형제간의 우애’와 ‘국가에 대한 충성’이 강조되고 있다. 이 작품은 역사적 배경을 차용하면서도 기존의 역사 사실에 구애받지 않고 인간사회의 문제를 자유롭게 그리면서 실존인물까지 적절히 배치해 허구적 내용에 실감을 주는 효과를 거두고 있다. 또한 내용에 반영된 주제가 전통적 관념을 고수하여 참신성이 약하지만 구성이 치밀하고 전개가 매끄 러워 우리나라 고소설 가운데 우수한 작품 중의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
[주제] 가문의 화목과 국가의 안정
42. 작품의 내용 파악
정답해설 : ‘진 소저는 추호도 망설이는 기색이 없이 친히 오 낭중을 향해 혼인을 허락했다.’가 ‘마침내 진 공은 오 부인과 함께 길을 떠났다.’보다 시간적으로 앞서 제시 된 것으로 볼 때, 진 소저의 혼인 여부는 진 공과 오 부인이 함께 길을 떠나기 전에 이미 결정이 된 상황이다. 정답 ①
[오답피하기] ② 부모가 떠난 후 진 소저가 수십 일 정도 마음을 진정시킨 후에 성례를 하고 싶다는 의사를 표시했음에도 조문화의 아들은 결혼을 다급하게 서두르고 있다. ③ ‘또한 저 아이는 이미 주머니 속에 든 물건이나 다름이 없게 되었다. 서두르지 않는다고 달아날 곳이 있겠느냐?’에서 확인할 수 있다. ④ ‘다시 10여 일이 지난 뒤 진 소저는 공의 행차가 이미 멀리까지 갔으리라 짐작하고 유모 및 시녀 운섬 등과 함께 야밤에 간단하게 행장을 꾸렸다. 그리고 모두 남장을 한 뒤 나귀 한 필을 끌고 회 남을 향해 떠나갔다.’에서 확인할 수 있다. ⑤ 조문화의 가인이 소저의 행방을 묻자 마을 사람은 쌀쌀하게 모른다고 대답했다.
43. 대화의 특징 파악
정답해설 : 조문화는 [A]에서 ‘내가 진실로 한번 입을 연다면 족히 목숨은 구할 수 있을 것이니라.’ ‘만일 형수가 살아서 옥문을 나서게 하고 싶다면 시험 삼아 나를 위해 형수의 딸에게 내가 한 말을 전해 주어 보거라.’ 등 가정할 수 있는 상황을 들어 자신의 의중을 청자인 오 낭중에게 전하고 있다. 오 부인은 [B]에서 ‘지금 내 마음은 황 금을 건 것에 비할 바가 아니로구나.’라는 비교할 만한 상황을 들어 자신의 의중을 청자에게 드러내고 있다. 정답 ④
[오답피하기] ① [A]에서 조문화는 자신의 권세에 의거하여 오 낭중에게 명령을 내리 고 있고, [B]에서 오 부인은 딸(진 소저)의 현명한 처신을 바라고 있다. [A]에서 동등한 관계를 전제로 [B]에서 상하 관계를 이용하여 목적을 이루려는 것은 아니다. ②[A]에서 조문화는 지난 일을 들어 진형수에 대한 원한을 드러내는 것이지 청자인 오 낭중에 대한 원한을 드러내는 것은 아니다. [B]에서 오 부인은 청자인 딸에 대해 원망을 표출하고 있지 않다. ③ [A]에서 조문화는 오 낭중에게 선택 가능한 여러 방안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진형수를 구하기 위해서는 진 소저가 자기 아들과 결혼해야 한 다는 하나의 방안만 제시하고 있다. [B]에서 오 부인은 딸의 선택 가능성을 제한하는 것이 아니라 딸에게 선택을 맡기고 있다. ⑤ [A]와 [B]에서 화자가 이상적 가치를 내세우는 것은 아니다.
44. 외적 준거에 의한 작품 감상
정답해설 : 이 글에서 오 낭중은 권세를 두려워하여 권력자인 조문화의 지시에 순응 하고 그의 말을 그대로 전달하는 사람이다. 그가 올바른 사리 판별을 하여 위기 상황을 극복하게 하는 모습은 나타나지 않는다. 정답 ①
[오답피하기] ② 조문화는 자신의 청혼을 진형수가 거절하자 그를 무고하여 옥에 가둔 후 나중에 귀양을 보내고 있는데, 이는 권력을 가진 신하가 정치를 농단하는 모습으로 이해할 수 있다. ③ 진 소저는 마음을 진정시킨다는 핑계로 성례를 미룬 후 병을 가장해 조문화를 안심시키고 있다. 그런 후에 부모가 멀리 이동했을 시점에 행장을 꾸리고 남장을 하여 회남으로 떠나고 있으므로, 지혜롭게 문제 상황을 해결하는 적극적 인물로 평가할 수 있다. ④ 청혼을 거절한 것이 진형수 가문에 위기로 닥치는 상황을 통해 권세 있는 신하가 정치를 좌우하는 현실에서 정치적 문제와 가문의 문제가 연결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⑤ 이 글을 통해 주변 인물인 유모가 적극적 인물인 진 소저의 문제 해결에 도움을 주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45. 구절의 의미 파악
정답해설 : ㉡은 부친이 중죄를 받을 상황에서 딸인 자신이 욕됨과 그렇지 않음을 가릴 여유가 없다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다. ②가 어려운 형편에 이것저것 따질 수가 없다는 것이므로 적절하다. 정답 ②
[오답피하기] ① ‘나중에 보자는 사람 무섭지 않다.’는 당장에 화풀이를 하지 못하고 두고 보자는 사람은 두려울 것이 없다는 말인데, ㉠과는 관련이 없다. ③ 진 소저가 혼인을 허락한 것은 아버지를 위기에서 구하려는 의도이지, 자신의 욕심을 충족하기 위함이 아니다. ④ ‘산이 높아야 옥이 난다.’는 훌륭한 인물에게서 훌륭한 자손이 난다는 말로, ㉡과는 관련이 없다. ⑤ ‘빈대 잡으려고 초가삼간 태운다.’는 손해를 크게 볼 것을 생각지 아니하고 자기에게 마땅치 아니한 것을 없애려고 그저 덤비기만 하는 경우를 비유적으로 말하는 것인데, ㉤은 진 소저가 떠난 후 집이 텅 빈 상황을 가리키는 것이므로 적절한 표현이 아니다.

첫댓글 소중한 자료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