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비는 도깨비였다.
유옹 송창재
구부러진 골목 어귀에서 깜박이던 도깨비 불이
칼같은 칠흑을 걸어 나오고 있다.
살 에이듯 살 트도록 추운
새벽 네시 이 시간에
가로등마저 얼어 터져버린
오밤중 꼭두새벽에
붉은 빛은 흔들거리며
골목을 빠져나간다.
건너편 언덕위에
조개 쓰레기 무덤이 있었다.
늘 있던 무덤에는
누런 잘 깎인 잔디 대신
밥으로 까 먹고 버린
아사리 조개
생합 조개 백합 조개
붉은 홍합 맛 조개
개 조개 껍질들이
누구의 시체 위를 덮어주고 있었다.
어느 비 오는 밤 거기서
불덩이 하나가
빗줄기를 따라 흔들거리며 내려 나왔다.
형들은 도깨비 불이라고 했고
나는 낮에도
항상 다니던 그길을 돌아서 다녔다.
오늘은
돌아 갈 필요도 없이
그냥 앉아서
군청거리며 걸어가는
도깨비를 보기만 하면 된다.
이제는
구시렁거리기도 한다.
이 꼭두새벽에
야반 도주하는 빚쟁이인가
찢어지게 추운 이 시간에
인력시장에
제 몸뚱이를
싸구려로 팔러 나갈까
술 마시고 돌아오던
이 시간에
인력시장은
드럼통 잘라진 화덕에
헌 집 부수고 주워 온
불담도 없이 부스러져가는 모닥불을 펴고
서넛이 모여
콜록 훌쩍이며
말없이 졸고들 있었는데.
동병상련
저하고 똑같은
다른 애비를 만나려
못 가방 둘러메고
독한 담배 뻐끔거리며
도깨비 불처럼 건들건들
골목길을 빠져 나간다.
먹을 것도 없는
헌 묘지위를 찾아
건들거리며 나를 놀리는
저 도깨비는
뿔도 없고
방망이도 없는
바보 도깨비 임에 틀림없다.
곤하게 잠든
마누라 새끼들 미안해
드럼통 화덕의 곁불이라도 쬐려고 나선 그는
그는
바보 도깨비이다.
첫댓글 덕분에 좋은 글, 좋은 자료 감사하게 잘 보고 갑니다.
항상 기쁜 일 가득 하십시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