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욱대는 까마귀 울음소리를 들으며 대마도의 아침이 밝아온다. 임진왜란으로 우리에게도 익숙한 겐소(玄蘇)가 건립한 세이잔지(西山寺)는 우리나라 암자크기 정도로 단촐 하고 절 안에는 주민들이 모셔놓은 조상들 위패가 가득하다. 이즈하라 항에서 10분 정도 걸으면 언덕배기에 위치해 있는 서산사는 항구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이곳은 조선과의 외교를 담당한 장소인 이떼이안(以酊庵)이 있던 곳으로 유명하다. 조선통신사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옛 조선 외교기관으로 쓰였던 건물 정면의 지붕 끝이 산 모양으로 생긴 구조물로 일본 고유 건축 양식인 당파풍이 담겨져 있다. 이떼이안은 조선통신사가 왔을 때 숙소로 사용되고 외교실무를 담당하던 관저였으며 조선과의 중요한 외교창구 였다. 서산사 경내에 학봉 김성일의 비석이 세워져있다.
선조는 왜의 움직임을 확인하기 위해 통신사를 파견하는데 서인인 정사 황윤길과 동인인 부사 김성일을 왜로 보내 그 동태를 살펴보도록 한 후 귀국한 이들로 부터 의견을 구한다. 그러나 둘은 각각 다른 의견을 내놓아 나중에 김성일에 대한 역사의 평가는 많이 엇갈리고 김성일이 거의 역적처럼 평가하는데 김성일은 임진왜란동안 각지에서 의병을 일으켜 관군을 조직하여 매우 혁혁한 공을 세우고 종군하다가 진주에서 병사했다.
통신사 일행들이 머물었던 서산사 경내에 잘 꾸며진 정원이 눈에 들어온다. 조선과 일본의 양쪽 틈바구니 속에서 파란 만장한 생을 보낸 현소의 목상이 있다. 대마도의 외교 승으로 초빙되어 일본 사자로 조선에 온 적이 있다. 하카다에서 승려생활을 하던 중 대륙 침략의 야심을 품은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부름을 받아 그 수하로 들어갔다.
황윤길, 김성일 등의 통신사 일행이 일본의 실정과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저의를 살피기 위하여 일본으로 갈 때 동행하였다. 조선어에도 능통한 겐소(玄蘇)는 대마도에서 국서를 위조하는 일에 가담하여 양쪽의 비위를 맞춘 것은 대마도가 강대한 나라사이에서 살아남기 위한 외교적 몸부림인지도 모른다.
조선통신사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옛 조선 외교기관으로 쓰였던 건물 정면의 지붕 끝이 산 모양으로
생긴 구조물로 일본 고유 건축 양식인 당파풍이 담겨져 있다.
조선통신사가 왔을 때 숙소로 사용되고 외교실무를 담당하던 관저였던 서산사를 측면에서 바라봤다.
조선과의 중요한 외교창구로 활용하였다.
빨간 마후라를 두른 지장보살이 보이고 주황색 개나리꽃에 호랑나비가 앉았다 날아간다.
경내에는 영남의 대 유학자 김성일의 비, 통신사로 대마도에 들려 현소의 영접을 받고 객관인 서산사에
체류하는 동안 서로 시를 주고받았는데 그 중 서산사와 사연이 깊은 시 한 수를 골라 비석 뒤에 새겼다.
一堂簪蓋兩邦臣 한 마루에 의관 갖춘 두 나라 신하
區域雖殊義則均 구역은 달라도 의리와 법식은 고르다네.
尊俎雍容歡意足 술자리에 조용한 용모 환영의 뜻 만족하니
傍人莫問主兼賓 옆 사람들이여 주인과 손님을 묻지 마시오.
가레산스이(枯山水) 일본식 정원, 흰모래와 돌로 정원을 표현하는데 흰모래는 물이요 바위는 산이요, 모래선은 물결이다.
일본식 정원은 물이 있는 곳에 조성했으나 물대신 모래로 물을 표현하는 이 양식은 독립된 정원 양식으로 발전되었다.
서산사 올라가는 언덕길에 옛 무가의 이끼 낀 돌담이 남아있어 지금도 담장으로 사용하고 있다.
첫댓글 내가 봤던 대마도는 겉핧기
왜 대마도 구석구석 많이 답사했는데...
희미한 기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