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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도 별명이 있어요! [사9:6-7]19.12.8 주일 2부-3부설교
사람들은 이름 외에 두 가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는 별명이고 다른 하나는 호입니다.
호는 고상하게 붙이는 것이고 별명은 재미있게 붙이는 이름입니다. 호는 소망이 담겨 있고 별명은 특징을 나타냅니다.
호는 자기가 붙이는 것이고 별명은 남이 붙여 주는 것입니다. 호를 들으면 존경하게 되고 별명을 들으면 웃게 됩니다.
[예]
포은(圃隱)-정몽주, 매죽헌(梅竹軒)-성삼문, 매월당(梅月堂)-김시습, 우암(尤庵)-송시열, 다산(茶山)-정약용,
수운(水雲)-최제우, 녹두(祿斗)전봉준, 송제(松濟)-서재필, 일성(一醒)-이준, 만해(萬海)-한용운, 백범(白凡)-김구,
도산(島山)-안창호, 해공(海公)-신익희, 매헌(梅軒)-윤봉길, 고당(古堂)-조만식, 충무공 –이순신,
천원짜리 화폐주인공 퇴계- 이황, 오천원짜리 화폐주인공 율곡-이이, 만원짜리의 주인공 세종대왕-충녕, 이도,
오만원 화폐의 주인공 신사임당-신인선(申仁善)입니다.
*현대 정치인들의 아호는 이렇습니다.
중수(中樹)-박정희, 후광(後廣)-김대중, 운정(雲廷)-김종필, 경사(俓史)-이회창, 소천(小泉)-조순, 우당(尤堂)-박찬종,
일민(一民)-이기택, 만초(萬初)-정대철, 후농(後農)-김상현,
전(全)목사도 별명이 있습니다.
제 이름을 들으면 처음 연상되는 한자입니다. 계수나무 계(桂)와 말 두(斗)인데 사람들은 제 이름을 들으면 제일 먼저 연상되는 것이 닭계(鷄)와 머리 두(頭)를 생각합니다. 그래서 제 별명은 ‘닭 머리’ 속칭 ‘닭대가리’라고 합니다.
그 사람의 얼굴도 변하고 삶의 문화적 배경도 변합니다. 그러나 별명으로 인식된 그 이미지는 변하지 않습니다.
아마 죽을 때까지 계속될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도 별명이 있습니다.
1. 예수님의 별명은 생령입니다.
즉 예수님은 살리는 영이십니다.
요한복음6장 63절에
“살리는 것이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살리는 영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만드실 때 흙으로 만드시고 영을 부어 넣어 주셨습니다.
그러나 죄로 말미암아 영이 죽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모시면 영이 살게 됩니다. 예수님에게 접촉하면 영이 살아납니다.
[예화]
나는 사람이 태어나는 것도 많이 보고 죽는 것도 많이 봅니다. 목사이기 때문입니다.
1년 동안 장례에만도 10번 이상 참석합니다. 30년 참석하였다고 하더라도 약 300명 장례를 보았습니다.
얼마전 모친 이정화 권사님의 장례를 치뤘습니다. 얼마나 마음으로 울었는지~
그때도 나는 죽음을 극복할 분이 예수님이라는 사실에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모릅니다.
<죽음을 해결할 방법은 없는가?> <죽은 자를 다시 살릴 사람은 없을까?>
[예화]
지금 세계적으로 하루에 25만명이 죽고 있습니다. 한 시간에 약 1만명이 죽습니다.
우리가 예배드리는 동안에도 1만명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일분에 170명이 죽습니다. 1초에 3명이 죽습니다.
숨 한번 쉴 때마다 10명 가량이 죽는 셈입니다.
모두 얼마나 슬퍼할까요? 이때마다 나는 물어 봅니다.
<죽음을 해결할 방법은 없는가?> <죽은 자를 다시 살릴 사람은 없을가?>
[예화]
재벌 한 분이 몇 년 전에 세상을 떠날 때 자기가 만들어 놓은 병원 의사 30명을 불러 놓고 말했습니다.
<내 생명을 10년만 연장시켜 준다면 1000억을 내놓겠다.> 그러나 의사들도 할 수 없었습니다.
이 이야기를 듣고 나는 물어 봅니다.
<죽음을 해결할 방법은 없는가?> <죽은 자를 다시 살릴 사람은 없을가?>
[예화]
아는 분이 암으로 투병하다가 돌아가셨습니다. 우리 온 몸 중에 머리칼에만 암이 없고 온통 모든 분야에 암이 생깁니다.
그런데 암중에서 가장 못 된 암이 췌장암과 담낭암입니다. 그분은 담낭암에 걸려 고생하다가 돌아가셨습니다.
4개월 생명을 연장시키는 데 2억원이 들어갔습니다. 한 달 더 살게 하는 데 5000만원이 들었습니다.
여러분은 지금 수억 원의 축복을 받으며 사는 셈입니다. 옆에 계신 분에게 이렇게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대는 지금 수억 원을 벌고 계신 것입니다> <하나님께 감사하시지요!>
그런데 죽음을 해결할 분이 있다면 그가 바로 메시야입니다. 죽음을 해결자가 이 세상에 꼭 한 명 있습니다.
바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모든 사람은 죽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과 접하게 되면 영생을 얻게 됩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11장 25절-26절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예수님은 힘있게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죽음을 해결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별명은 생령입니다. 예수님은 살리는 분입니다.
[예화]
알프스 산에서 직업적으로 산 길을 안내하는 안내원 호세 이야기입니다. 그는 길 안내로 늙었습니다.
미국 청년이 알프스 산을 올라갈 때에 호세의 안내를 받았습니다.
청년이 산을 오르다가 미끄러져 바위 끝에 매달려 있었습니다. 호세는 손을 내밀며 말했습니다.
<내 손을 붙잡으세요.>
그 청년은 약하게 생긴 호세의 팔을 보면서 말했습니다.
<나를 끌어 올리기에는 너무 약해요. 다른 사람을 불러 주세요.> 그때 호세가 말했습니다.
<젊은이. 내 팔은 20년 동안 한 번도 실수한 적이 없다네.>
예수님은 오늘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죽을 모든 사람들아! 내 팔을 잡아라. 내 팔은 한 번도 실수한 적이 없단다.>
여러분! 예수님이 손을 잡아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누구든지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습니다.
예수님과 접하기만 하면 영원한 생명을 얻습니다. 죽은 사람을 살릴 수 있는 분은 오직 예수님 한분 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의 별명은 살리는 영입니다. 생령입니다.
2. 예수님의 별명은 새순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예수님에 대하여 이렇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이사야 53장 2절-5절에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의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그는 멸시를 받아서 사람에게 싫어 버린바 되었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에게 얼굴을 가리우고 보지 않음을 받는 자 같아서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연한 순은 곧 예수님이십니다.
스가랴는 말했습니다.
스가랴 6장 12절에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보라 순이라 이름하는 사람이 자기 곳에서 돋아나서 여호와의 전을 건축하리라”
순이라 이름하는 사람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의 별명은 순입니다.
순은 작습니다. 그러나 시간만 지나면 가지가 됩니다. 뻗어 나갑니다.
큰 나무가 됩니다. 수십 미터 자라게 될 것입니다. 갈수록 창대하여 지는 것이 순입니다.
[예화]
대나무 순이 성장하는 이야기를 들어 보셨습니까?
대나무는 죽순이 나온 후 일정 기간 성장하지 않고 그대로 멈춰 있다고 합니다. 그런 후 다시 자라기 시작하면 45일 정도의 빠른 성장으로 큰 대나무가 됩니다. 그 멈춰 있는 시기에 뿌리를 내리며 성장할 준비를 하는 것입니다.
중국의 극동 지역에서만 자라는 희귀종 ‘모소 대나무’라는 것이 있다. 이 모소 대나무는 싹을 틔운 후 4년 동안 3㎝로 거의 자라지 않고 있다가 5년 차부터 하루에 30㎝가 넘는 폭풍 성장을 하여 약 5주 만에 울창한 대나무 숲을 이룬다고 합니다. 성장이 멈춘 그 4년 동안 땅속 깊고 넓게 뿌리를 뻗어놓았기에 그런 성장이 가능한 것이고, 그래서 이 모소 대나무는 아주 튼튼하고 좋은 대나무가 된다고 합니다.
우리는 무엇을 하든지 남들에 비해 늦거나 안 된다고 낙망할 필요가 없습니다.
내가 부족하고 남들보다 못한 것이 아니라 더 큰 성장을 위해 뿌리를 내리는 기간이 긴 것일 뿐입니다.
그것이 길면 길수록 그 이후 더 큰 성장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꾸준히 노력해 가면 어느 순간 자기도 모르게 크게 성장한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때가 올 때까지 쉬지 않고 단련하며 실력을 키워가는 것만이 필요한 것입니다. 결국, 포기하지만 않으면 됩니다.
2019년 지금 대한민국의 계절은 겨울입니다. 여러분의 인생도 가정도 겨울이 다가왔습니다.
그러나 힘든 일을 당해도 결코 비관하거나 낙심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 고난과 위기를 넘기면 반드시 더 큰 보람과 성과를 달성하게 되는 것입니다. 실패와 고난의 경험 없이 성공을 이루어낸 사람은 없습니다.
자신에게 닥친 고난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무엇을 하든지 때를 기다리며 꾸준히 노력해 나가는 것이 성공의 지혜입니다.
예수님이 여러분과 함께 하십니다.
봄이 되면 추운 겨울에 얼어붙었던 가지에서 새순이 돋기 시작합니다.
우리는 아스팔트를 들추고 나와서 아스팔트를 벌어지게 하는 풀을 가끔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생명력입니다.
하와이 하나우만 근처에 가면 산더미 같은 바위가 두 쪽 나 있는 것을 볼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가운데 나무 뿌리가 삐죽 나와 있습니다. 나무뿌리가 바위틈으로 들어가서 서서히 자라더니 바위가 벌어진 모습니다.
이렇게 생명력은 위대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순이십니다. 예수님과 접하면 새순과 같이 힘이 솟아나게 되어 있습니다.
새순 되시는 예수님과 접하여 새순의 능력이 생겨서 바위도 쪼갤 수 있습니다.
[예화]
나는 이런 이야기를 읽었습니다.
어느 전쟁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전략상 도저히 양보할 수 없는 기지를 232명의 군사들이 지키고 있는데 적군 3,000 여명이 쳐들어 오고 있었습니다. 10:1의 전쟁이었습니다. 이는 이미 이길 수 없는 전쟁이라는 의미였습니다. 절대로 포기할 수 없는 전략기지였습니다. 적장은 기세등등하게 외쳤습니다.
‘싸우지 말자. 싸우면 우리도 많은 군사들이 죽겠지만 너희들은 몰살이다. 차라리 항복하라. 그러면 포로로 생명만은 구할 수 있다’
이런 외침을 들으면 지휘관은 잠시 심각하게 생각하다가 비장한 각오를 하고 군사들 앞에 섰습니다.
그리고 땅에 금을 그었습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죽음을 각오하고 싸울 사람은 이 선을 넘어 나에게 와라. 그러나 전쟁이 두려운 사람은 지금 이 자리를 떠나도 좋다. 적은 우리의 10배다. 잘 생각하라. 비장한 각오로 싸울 사람과만 이 동지가 되는 것이 전쟁에 유리하라’
조금 있더니 231명이 생명을 걸고 싸우겠다고 그 선을 넘어 지휘관 쪽으로 갔습니다. 그러나 한 병사만이 그 선을 넘지 않고 있었습니다. 모두 들 한 명 남은 병사에게 시선을 모았습니다. 그때 그 병사가 말했습니다.
‘지휘관님! 저는 부상으로 걸을 수가 없습니다. 죄송하지만 선을 내 뒤에 그려 줄 수는 없겠습니까?’
232명은 그 병사 때문에 용기를 얻었습니다. 모두가 하나가 되었습니다.
232명은 3,000명을 대항하여 그날 밤 밤새도록 전쟁이 벌어졌습니다. 232명이 이겼습니다.
생명력이 철철 넘치는 군사들로 구성된 군대였기 때문입니다.
생명력이 있는 순은 기어코 승리하게 되어 있습니다. 성장하게 되어 있습니다. 결실을 맺게 되어 있습니다.
생명력 없는 3000명보다 생명력이 넘치는 232명이 더 큰 군대였습니다. 수가 문제가 아니라 순이 문제입니다.
우리 교인들 한 명이 다른 교인들 1당 100의 일을 하여야 합니다. 새순 되시는 예수님과 접하면 같이 자라게 됩니다.
새순은 능력입니다.
다같이 찬양 – 인생길 험하고 마음 지쳐(미가엘 886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