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명나는 일이 줄어든다는 건 슬픈 현상이다. 폭죽처럼 이산 저산으로 진달래 꽃불이 터지고 춘흥에 겨워 간들대는 산새들의 재잘거림도 물이 올랐다. 이런 날엔 우리네 너덜해진 삶에도 콧노래가 절로 나는 흥취가 찾아와 주었으면 싶다. 우쭐우쭐 어깨가 들썩거릴 신바람이 일었으면 좋겠다.
아무래도 내 속에 수많은 ‘나’들이 반란을 일으키는 것 같다. 난데없는 속 기운이 느껴진다. 무엇에 대한 울분으로 피가 거꾸로 치솟는 혈기가 아니라 애먼 소화 물질이 몸을 거스르며 식도를 오르내린다. 목에 이물감이 느껴지기도 하고 목소리가 쉬 피로해지는 기미쯤은 모른 척해 온 터다. 버티다 찾아간 내과에서 위 식도 역류 질환이란 병명을 얻었다. 대관절 나는 몸에다 무슨 짓을 저질렀단 말인가.
병원에서 받아 온 작은 책자를 들춰 보는데 지하철역에서 익숙한 눈길을 보내던 광고 문구들이 떠오른다.
‘위장이 편해야 만사가 편안하다.’ (oo한의원)
‘인생이 술~ 술~’ (oo치질클리닉)
‘관절, 척추 단단히 고쳐야죠!’ (관절 척추 중심 병원, oo병원)
쿡쿡 웃음이 나오더니 비릿한 슬픔의 가시가 목에 걸린다. 왠지 감정도 명료하지가 않다. 걸림돌이 지천인 세상고개에 한 생의 무게를 지탱하는 인체 조직인들 어찌 오류 없이 술술 잘 돌아가기만 할까. 혹여 나는 잊고 있었나. 청춘을 아삭아삭 베어 먹고 달아난 세월만치나 이어 온 내 몸의 곡진한 시간들을. 마구 부려 먹은 내 몸에 대한 수많은 횡포를. 산길 물길 비바람 마다 않고 몸 도장을 찍으며 신열이 오르내렸지. 더러는 꺽꺽 숨이 끊기던 속울음과 자지러지던 웃음과 내 감정의 고저장단을 다 담아 대신 걸어 주었지. 세상살이에 정신을 빼앗긴 내가 고단한 몸에다 저질렀던 일들을 이제야 조금 알 것 같다.
내 속에서 반기를 든 수많은 ‘나’들을 어떻게 다독거려야 할까. 책자 속엔 주의 사항이 빼곡하다. 온통 ‘피하고, 금지하라’ 일색이다. 웃을 일도 줄어든 판국에 피하고 금지할 것 다 빼고 나면 무얼 해야 하나. 잠시 막막해진다. ‘생활 습관 개선책’을 읽어 보니 근엄한 조언뿐이다. ‘규칙적인 식사와 충분한 수면을, 취한다. / 적당한 운동으로 위장 기능을 활성화한다. / 폭넓은 취미 활동으로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제 때에 풀어 주어야 한다….’ 제 몸 하나 간수 하기도 호락호락하지 않다.
어느 TV 방송에서 한 노인이 통통 튀는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세상에 이런 일이’라는 프로그램에서다. 꼬불꼬불한 파마머리에 헐렁한 스웨터 차림의 영락없는 시골 노인인데, 거리에서 만난 외국인에게 스스럼없이 다가가 말을 건넨다. 영어로 이야기하는 것이 매일 즐겁다는 그는 놀랍게도 무학의 70대 할머니다. 독학으로 익힌 영어 회화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할 때면, 생기 넘친 기운이 노랫가락을 타는 듯 신이 난다. 혼자 사는 집에서는 날마다 TV로 외국 영화를 보신다. 그 모습이 흡사 만화영화에 푹 빠진 꼬마 아이 같다. ‘나는 영어가 너무 좋아!’라며 눈빛을 반짝이는 할머니에겐 무심한 세월도 움찔, 물러서는 듯하다.
‘남북통일 물방울 아저씨’도 등장했었다. 본업인 사진관 운영보다 물방울 수집에 더 열심인 패기 찬 60대였다. 통일을 염원하는 마음으로 틈만 나면 거리에 나가 사람들로부터 한 방울씩의 물을 모은다. 그것도 꼭 운동복 차림으로 인증 샷을 찍어가며 하신다. 훗날 역사적인 자료가 될 거라는 생각에서다. 사방에서 날아오는 시선쯤이야 태연히 받아넘기며 바쁘고 활기찬 모습인 그는 분명, 흥겨운 자유인이다.
대체 그 기이한 힘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일반적인 통례를 벗어난 기인(奇人)들의 속내가 궁금해진다. 무슨 음식이든 마요네즈에 찍어 먹는 사람. 겨울에도 달랑 팬티 한 장 걸친 채 바다에서 수영하고 모래사장에선 물구나무서기 운동을 사는 사람, 수천 개의 촛대로 온 집 안을 장식해 놓고, 밤이면 촛불로 불야성을 이루는 사랑의 촛대 부부, 연유는 알 수 없어도 지금의 행위는 그들을 살게 하는 버팀목이 되어 주고 있다. 그러기에 군중 밖에서도 홀로 넉넉한 예외자 들인가 싶다.
문화심리학자 김정운 교수도 50세의 나이에 사직서를 냈다. ‘자유와 같이 철없는 단어는 내게 어울리지 않는다. 내 나이에는 안정 품위 경륜 뭐 이런 걸 생각해야 한다’던 그다. 그 안정된 것들을 벗어 버렸다. 더 자유롭게 글을 쓰고 보다 창의적인 일을 찾아 나갈 테지만, 놀랍고 아슬아슬하며 충격적이기도 한 기행들이다. 그렇더라도 일방통행이 횡행하는 세상에 반기를 든 엇놀이를 보는 것 같아 유쾌하기도 했다. 스스로 옭매인 후유증이 만만찮은 세상인데 맞서 빛나는 용기 하나쯤 그립지 않으리.
한철 오기로 뻣뻣했던 내 마음 줄에도 욱신대는 세월이 배어드나 보다. 어떤 신명에라도 흠씬 한번 빠져 봤으면 싶다. 그 신명으로 자신을 닦달하지도 누군가를 탓하지도 않으며 당찮은 욕심도 버린다면 편안하고 화평하지 않을까
생각해 보니 온갖 스트레스로 혹사시킨 내게 반기를 드는 몸의 소리는 경고음일 테다. 언제부터인지 몰라도 내 안에서 서로 다른, 소리 없는 아우성이 있어 왔다. 몸의 골짜기를 휘돌아 나오는 음험한 역(逆)기운과 은비늘처럼 반짝이며 한사코 허리를 세우려는 역(力). 엎치락뒤치락, 발칙하고 애잔한 그 역(逆)과 역(力)의 엇놀이에서 자신을 일으키려는 마음이, 어쩌면 살게 해 주는지도 모른다. 그러니 호들갑을 떨 일은 아닌게다.
처방 전대로 내 속을 순조롭게 다스릴지 걱정이다. 뜻대로 되지 않는다, 하여 다그치진 말자고 마음부터 다독인다. 조금쯤은 기인(奇人)들의 자유로움을 닮아 보면 좋겠다. 그리하여 몸속에 엔도르핀이 팡팡 솟아나기라도 한다면, 나도 내일은 타이트한 레깅스에 쿨 한 미니스커트라도 입고 한들한들 상춘객이나 되어 볼까. 햇살조차 파릇한 들녘에서 풀꽃들을 관객 삼아 덩더꿍 춤판이라도, 벌려 볼까. 그도 아니면 반바지 운동복에 머리띠를 동여매고 불원만리 달려나 볼까. 당신, 꽃띠가, 아니잖아! 누가 굳이 따져 든다 한들 어쩌겠는가. 누리끼리한 생의 현장이 아려서라도 한 번쯤은 신명난 엇놀이를 즐겨야 할 터인데…….
봄빛 담은 먼 산을 바라고 서 보는 저녁, 살랑대는 춘풍이 성큼 내게로 들어선다. 아득한 산등성이를 넘고 들판을 지나 어느 실개천을 막 건너왔을까. 등짐 하나 없이 사뿐한 바람에 무작정 가슴이 설렌다. 저만치 걸어 둔 시간 들이 너울춤을 추는 건, 이 무렵이다.
첫댓글 염 작가님 멋지고 맛갈스런 단어들로 채워진 '엇놀이' 잘 읽었습니다. 고급스러우면서도 이해하기 에 편한 작품입니다. 항상 건강하시어 좋은 글 많이 쓰시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