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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렐루야 네 오늘은 2024년도를 마지막 송년 주일로 보내고 있습니다. 한 해 동안 여러모로 수고하고 고생을 참 많이 했습니다. 여기까지 이끌어주신 에베네세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올려드립니다. 우리 한번 하나님 밖에 박수 한번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아마 이 자리에 오신 여러분들은 크게 두 가지 복은 받은 것 같아요. 첫 번째는 믿음의 복을 받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믿음이 있기에 오늘 이 마지막 송년 주일까지 이렇게 예배를 드릴 수 있어서 얼마나 감사가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또 한 가지는 여러분은 그렇죠. 건강의 복을 받았기 때문에 오고 싶어도 건강이 좋지 아니하면 올 수도 없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여러분들은 두 발을 걸을 수 있어서 너무나 또 감사가 됩니다. 2025년도에도 여러분의 믿음이 더욱더 성장하고 또 육신의 강건함도 더하셔서 더 하나님을 영화롭게 충성된 좋은 그리스도인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오늘 말씀의 제목은 위로의 하나님을 경험하라는 말씀의 제목입니다. 우리 인생은 누구나 다 사람은 위로가 필요합니다. 나는 위로가 필요 없다는 사람은 세상에 한 사람도 없습니다. 우리 인생은 누구나 다 하나님 앞에 위로가 필요합니다.
여러분 신앙생활을 하면서 하나님으로부터 위로를 받은 경험이 있습니까? 아마 이 자리에 오신 여러분들은 다 위로를 받은 경험이 있다고 봅니다. 그렇다면 언제 하나님의 위로가 찾아 오던가요? 제가 여러분에게 묻기를 언제 하나님의 위로가 찾아오느냐라고 물었습니다. 그냥 가만히 있는데 아무 일도 하지 않았는데 하나님의 위로가 찾아오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위로는 아무 생각 없는데 위로가 찾아올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위로는 그렇게 찾아오는 것 아닙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하나님의 위로를 경험할 때에는 주님의 일을 하다가 마음의 깊은 상처를 받았을 때 또 서러울 정도로 마음이 아프거나 삶이 고단할 때 그때 하나님의 위로를 경험하게 됩니다. 그때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을 편안하게 하고 세상을 다 가진 자처럼 기쁨을 우리에게 주시는 것입니다. 참된 위로는 바로 하늘로부터 온다는 사실을 여러분 믿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오늘 본문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맹인으로 태어난 사람이 예수님을 만나서 눈을 뜨게 되었고, 그가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 당시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정말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당시에 이 바리새인들은 안식일에 눈을 뜨게 해 주었다는 이 예수를 하나님으로부터 온 자가 아니고 죄인이라고 단정을 지어버린 것입니다. 예수님이 하루아침에 죄인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리고 눈을 뜬 이 사람에게도 나의 눈을 뜨게 해준 사람은 죄인이라고 인정하기를 강요를 했던 것입니다.
참으로 어이가 없는 일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눈을 뜬 사람은 그런 협박에도 그런 강요에도 꿈쩍도 하지 않습니다. 우리 32절 33절 말씀을 한번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32절 33절 시작
이 사람이 하는 이도 없지 않았으며, 아무 일도 할 수 없으니까.
아멘 맹인의 고백이 이렇습니다. 창세 이후로 맹인으로 난 자의 눈을 뜨게 하였다 함을 듣지 못하였으니 이 사람이 하나님께로부터 오지 아니하였으면 아무 일도 할 수 없으리다. 이 맹인이 당당하게 예수님에 대해서 그들에게 고백을 하는 것입니다. 나는 전에 맹인이었다가 이분이 예수라는 분이 나의 눈을 뜨게 해 주셨습니다.
그분이 죄인이라면 저분이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신 분이 아니라면 어찌 내가 눈을 뜰 수 있겠습니까? 창세 이후로 죄인이 태어날 때부터 맹인이 사람의 눈을 뜨게 하였다는 말을 저는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분은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나의 구원자이십니다. 이런 고백을 들은 이 바리새인들이 화가 끝까지 치밀어 오는 겁니다. 그래서 이 사람을 당장의 회당에서 쫓아내 버렸습니다. 출교를 시켰다는 겁니다.
여러분 출교가 그냥 출교가 아닙니다. 당시 유대 사회로부터 출교를 당했다는 것은 우리로 말하면 주민등록증을 빼앗긴 것과 같은 것이죠. 우리의 어떤 공동체 생활을 자격을 박탈시켜버린 겁니다. 직장을 구하지도 못하게 만들어버립니다. 싸움이 나더라도 공동체를 공적으로 보호받지를 못하는 겁니다. 완전히 버림을 받는 것입니다. 그게 바로 출교입니다.
저도 과거에 이런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습니다. 출교는 아니더라도 제가 어릴 때 교회를 간다고 하니까 열심히 다니니까 집 안에서 난리가 난 것입니다. 어디 한 집에 두 종교를 믿느냐고 두 종교를 믿으면 부모가 죽어가고 가정이 파탄이 일어나고 막 그렇게 하면서 교회 다니라고 하면 앞으로 너 호적을 빼버리겠다 그런 험악한 말도 들었습니다.
그때 정말 서럽더라고요. 예수 믿으면서 이렇게 서러울 때 처음이었어요. 정말 눈물이 펑펑 나는데 그러면서도 교회를 갔습니다. 그때 저는 큰 위로를 받았습니다. 주님께서 저를 완전하게 눈물을 다 닦아주시더라고요. 아마 그 순간에 하나님이 저에게 주의 길로 가라는 그런 메시지를 주신 것이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듭니다.
아마 이 자리에 앉아 있는 분들 중에도 비슷한 경험을 하신 분들도 있을 줄 압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사람은 출교를 당했는데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을 부인하지 않고 자신의 신앙을 포기하지를 않습니다. 예수님은 이 믿음을, 이 사람의 믿음을 정말 귀하게 여기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사람이 출교를 당했다는 그 소식을 듣고 예수님은 이 사람을 찾아온 겁니다. 이 사람 입장에서 보면 얼마나 예수님이 참 고마울까요? 물론 자신의 질병이 눈을 보게 되었다는 것에 대해서 너무나 감사가 되었지만 그렇게 정말 힘들고 어려울 때에 예수님이 찾아오셔서 위로해 주셨다는 사실이 얼마나 큰 힘이 되었는 줄 모릅니다. 그 예수님을 만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도 예수님을 잘 믿으려고 하면 잘 믿으려고 하면 정말 잘 믿으려고 하면 어려움이 또 찾아오고요.
또 희생을 당할 때도 있습니다. 비싼 대가를 치료야 될 때도 있고 또 때로는 물질의 손해를 볼 수도 있고요. 또 사람들에게 비웃음거리를 당할 수 있고 조롱거리를 당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정말 제대로 믿게 되면 불편한 것들이 생길 수도 있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때로는 직장 생활하다 보면 회식이나 모임 자리에 가야 되는데 피했다는 이유로 불이익을 당할 수도 있지 않습니까? 또 가족 모임이나 친지 모임을 있을 때 예수 믿는다는 이유로 친지들로부터 왕따를 당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교회 안에는 없을까요? 여러분 교회 안에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사람들은 교회 안에는 다 천사가 사는 것 같지만 아닙니다. 우리 달성 교회 안에도 별별 사람이 다 있습니다. 어쩌면 교회 안에 더 아픔, 상처가 많은지도 모르겠습니다. 정말 나름 내가 신앙생활을 한번 제대로 잘 해보겠다라고 하면서 했는데 주변의 사람들이 나를 도와주지를 않습니다. 때로는 거친 말로 쏟아 쏘아붙이기도 하고 또 이상한 눈치를 주고 해서 마음이 불편할 때도 있을 겁니다.
그러다 보면 어떤 마음이 듭니까? 굉장히 마음이 상하게 되고 그러다 보면 다른 교회 한번 가볼까 교회 나오지 말까 이런 생각을 여러분 안 합니까?
여러분 대단한 믿음입니다. 저 같으면 그렇게 막 공격을 당하면 어떻게 도망갈 생각을 할 텐데 이 자리까지 나온 거 보면 참 여러분들의 믿음이 대단합니다. 그럴 때 우리 마음 그때 마음 자세 중심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봅니다. 한번 따라 해볼까요?
그럴 수 있지
그럴 수 있지
이 말은 제가 여러 번 말한 적이 있는데 오늘 송년 주일을 보내면서 이 말을 꼭 한번 한번 했으면 좋겠다 하는 마음이 있어서 여러분에게 말씀을 드립니다. 그럴 수 있지 나도 죄인인데 나도 허물이 많은데 그럴 수 있지 만일에 여러분의 믿음이 이까지 간다면 회복이 됩니다. 그 상처가 치유가 되더라고요. 그런데 어떻게 그럴 수 있나 사람이 어떻게 그럴 수 있나 이렇게 반응하다 보면 모든 것이 다 미워지는 거죠. 그렇게 되다 보면은 정말 다른 마음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정말 주님 앞에서 내가 죄인임을 알고 내가 허물이 많음을 깨닫게 되면 그럴 수 있지 한번 따라 갑시다. 그럴 수 있지 그럴 수 있지 이런 마음을 품게 되면 주님의 위로가 찾아옵니다. 우리의 연약한 마음, 빈 마음 속에 예수님이 찾아오셔서 우리 예수님으로 가득 채워 주시는 것입니다. 오늘 죽고 당했던 이 사람에게 예수님이 찾아오셔서 위로해 주셨던 것처럼, 우리 예수님께서 저와 여러분을 위로해 주실 줄 믿습니다.
여러분 고린도후서 1장 3절, 4절 말씀을 한번 볼까요? 고린도후서 1장 3절, 4절 시작
찬송하는 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가해 주시고 자기 아버지시고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 주시며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두려워함에도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서 모든 환란 중에 있는 자들을 위로하게 하시는 것이로다.
아멘, 찬송하리로다. 그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시오, 자비의 아버지시오. 모든 무슨 하나님 위로의 하나님이시며 우리의 모든 환란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로 받는 위로로서 모든 환란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뭐 하게 하시는도다. 위로하게 하시는도다. 할렐루야
여러분 우리가 사람에게 받는 위로보다 괜찮다 힘내라 이런 위로보다도 하나님 아버지께서 한 번 나를 위로하면 여러분 그것으로 조카인 줄 믿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를 위로한다면 뭐가 걱정이 되고 염려가 되겠습니까? 하나님은 바로 위로의 하나님, 모든 환란 가운데 있는 우리 성도들을 위로하시는 하나님이심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옛날 전기 모터가 일반화되기 전에 시골에는 손으로 펌프질을 해서 물을 퍼 올리는 물 펌프가 있었습니다. 그 펌프로 물을 퍼 올리려면 먼저 물 한 바가지를 펌프에다 부어야 물이 펑펑 쏟아져 나옵니다. 이 물을 뭐라고 말합니까? 마중물이라고 합니다. 지금이야 우리가 사용한 양수기도 마찬가지라고 봅니다. 처음에 양수기 물을 조금 부어주어야 깊은 곳에서 물을 끌어올릴 수가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믿음의 삶, 헌신의 삶이 왜 중요할까요? 그것은 바로 마중물과 같은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은혜 받는 비결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먼저 헌신하지 아니하고 편안하게 예수 믿으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을 거야. 나는 그냥 그냥 교회만 왔다 갔다 할 거야 그런 가운데서 위로는 별로 찾아오지 않을 겁니다.
오늘날 많은 성도들이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님을 너무 편하게 믿으려고 하는 분들도 굉장히 많습니다.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그냥 조용히 왔다가 조용히 가는 분들이 많습니다. 예수 안 믿으면 구원을 받을 수 없으니 겨우 교회는 옵니다.
하지만 더 이상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여러분 이런 믿음은 결코 좋은 믿음이 아닙니다. 우리 예수님을 따르는 길은 바로 십자가의 길, 고난의 길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십자가 없는 부활은 있을 수가 없습니다. 십자가 없는 영광은 있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 예수님께서도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쫓을 것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그러니 우리가 예수님을 제대로 한번 믿어보려고 하면 봉사에 길도 가야 되고 또 자기 헌신의 길도 가야 합니다.
뿐만 아닙니다. 주의 일을 열심히 하다 보면 때로는 듣지 말아야 될 소리도 듣게 되고 또 마음의 상처도 받을 수도 있습니다. 그것이 나를 힘들게 할지라도 절대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그 아픔, 그 상처를 잘 극복하게 되면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에게 더 큰 믿음을 주시는 것입니다. 더 큰 믿음을 주신다는 것은 더 큰 복을 내려주시겠다는 말씀이 아니겠습니까?
이제 말씀의 결론입니다. 오늘은 2024년 마지막 송년 주일을 맞이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인생은 특별한 인생은 아무도 없다고 봅니다. 그냥 평탄한 삶만이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그런 말씀입니다. 역사학자 토인비는 우리 인생을 향해서 도전과 응전이라고 했습니다. 맞습니다. 우리 에서 수많은 도전의 연속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 도전을 어떻게 맞설 것인가 하는 응전에 달려 있다라고 봅니다. 그냥 뒤로 물러가면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또 다른 문제가 우리 앞에 나타나서 우리를 괴롭게 할 것입니다. 이 문제를 우리는 믿음 안에서 해결을 반드시 해야 됩니다.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를 받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가 가진 작은 믿음의 헌신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으로부터 건짐받은 이 사람이 주변에 많은 고난과 아픔이 있었지만 끝까지 주를 포기하지 아니하고 믿을 수 있었던 것도 그 고난을 통해서 이 사람의 믿음이 더욱더 강건해져 갔습니다.
우리가 그저 편안하고 아무 일도 없고 그저 교회만 왔다 갔다 한다고 해서 믿음이 생기는 것.
여러분 아닙니다. 때로는 주일하다 보면 힘들고 어려울 때 고통이 찾아올 때 힘들지만 그것을 잘 극복하게 되면 위로의 하나님께서 더욱더 큰 위로를 여러분에게 주실 줄을 믿습니다. 그 고통과 아픔을 사람에게 이야기하지 말고 하나님 아버지께 올려드리면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 되셔서 우리의 모든 눈물과 상처를 치료해 주실 줄 믿습니다. 그 하나님의 위로가 여러분의 심령 가운데 더 더욱더 충만하게 임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 Messenger’s Note:
“In his heart, a man plans his course, but the LORD determines his steps.” (Proverbs 16:9)
“Nevertheless, not my will but yours, be done.” (Luke 22:42)
“And when the angel stretched out his hand toward Jerusalem to destroy it, the LORD relented from the calamity and said to the angel who was working destruction among the people, ”It is enough; now stay your hand.“ And the angel of the LORD was by the threshing floor of Araunah the Jebusite.
And David built there an altar to the LORD and offered burnt offerings and peace offerings. So the LORD responded to the plea for the land, and the plague was averted from Israel.” (2 Samuel 24:16,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