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소퍼즐
직소퍼즐을 맞출 때 마다 하는 생각들이다.
이 작은 조각들이 모여서 큰 그림을 이루는구나. 하나 하나의 조각은 전혀 그림의 일부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한 조각만 떼 놓고 보면 과연 어느 부분의 그림인지 추측이 불가능하다. 막상 제 자리에 넣기 직전까지도 이게 맞는 건지 아닌 건지 모를 때도 있다. 정확히 딱 맞물려 들어가서야 아, 이게 맞구나 싶다. 1000피스 퍼즐을 맞출 때 마다 드는 생각인데, 가장 마지막 조각을 손에 들고 있으면서도 이게 그 자리가 맞나? 몇 번이나 들여다보고 확인해보는데도 아닌 것만 같다. 그건 마치 수능 공부를 하는 학생들 같다. 수능이 475일쯤 남은 어느 날, 문제 풀이를 하며 이 하나의 문제가 수능이라는 퍼즐의 한 조각이라는 걸 이해할 수 있을까. 오답노트에 충실하지 못한 그 한 문제가 수능 시험지 14번 문제에 다시 등장했고 그 한 문제의 오답으로 수능배치도에서 한 줄 아래 대학에 줄을 그어야 한다. 그리고 그런 일은 인생에서 반복해서 일어난다.
오늘 읽은 한 줄의 글이, 하나의 장면과 한 줄의 대사가, 무심코 했던 한 경험이 몇 달 몇 년이 지난 뒤 나의 모습의 한 조각이 된다. 그 순간의 어떤 작은 깨달음이 작은 균열을 일으키고 그 틈에 새살이 올라 나를 성장하게 만든다. 또는, 나를 망가뜨린다. 그 조각은 시간이 더해져 나를 키운다.
<플랜더스의 개>의 [플랑드르의 여름] 퍼즐을 맞출 때였다. 그림의 분위기에 반해서 충동구매한 것이었는데, 1000피스 따위라며 얕잡아 본 게 화근이었다. 아주 추웠던 겨울날의 일주일을 몰두해야 했다. 직소퍼즐은 일단 시작하고 나면 멈출 수가 없다.
먼저 그림을 천천히 분석해야 한다. 어떤 색이 사용되었고 어떤 특정한 선이 있는지, 글자가 그려진 곳은 있는지 천천히 하나하나 유심히 봐야한다. 유심히 보다 보면 전체에서 찾지 못했던 디테일이 눈에 들어온다. 이 순간이 아주 즐겁다. 그림을 더 사랑하게 된다.
그래, 그런 순간이 있었다. 그것은 오래 된 너의 사진이었다. 그때는 잘나왔네, 라며 무심코 넘겼다. 이제 더이상 새로운 사진을 찍을 수 없게 되어서야 그 사진이 눈에 들어왔다. 이리저리 확대를 해가며 사진을 관찰했다. 장소도 그날의 햇살도 시간도 기억이 나는 것만 같았다. 너에게 이런 주름이 있었구나, 이 옷은 이런 무늬가 있었구나, 아름다운 표정과 따사로운 햇살은 지나간 뒤에나 소중해지는 걸까.
자 다시 퍼즐을 맞추자. 조각들을 색깔과 패턴에 맞춰서 분류한다. 노란색은 노란색 데로, 빨간색은 빨간색 데로, 끝부분은 끝부분 데로. 끝부분부터 하나 하나 맞춰 나간다. 순조로운 가운데 벽을 만나게 된다. 쉬운 조각은 모두 제자리를 찾았다. 이제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는 어느 순간. 나는 길을 잃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길을 잃는 순간은 반복해서 나타난다. 한 번 길을 잃었다가 다시금 길을 찾았다고 해도, 또 방향을 잃고 마는 순간이 오는 것이다. 그것은 삶의 기본 속성이다. 모든 것이 순조롭고 나를 괴롭히는 것 하나 없는 순간에는, 불안해지고 마는 것이다. 이 길 끝에는 죽음만이 나를 기다리고 있고, 나는 그곳을 향해 엑셀을 밟고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죽을 힘을 다해 브레이크를 밟고 멈춘 곳에서 처음 보는 풍경에 낯설음을 느끼고, 지난 번 멈추었을 때보다 이만큼이나 멀리 온 것을 떠올리곤, 또 한 번 좌절하게 된다. 멈추었다고 시간도 멈추진 않는다. 나는 또 길을 찾아야 하는 모순된 감각을 느낀다. 엑셀을 밟고 브레이크를 밟고, 다시 엑셀. 나의 불안은 꽤 깊고 반복된다.
시간이 늦었다. 시계는 새벽 2시를 가리키고 있다. 내일을 위해 자야하는데…… 일단 왼쪽 위 조그만 바다 그림부터 맞추어 보자. 여기만 맞추고 자야지. 파란색을 훑어 하나씩 대조해본다. 감이 전혀 오지 않을 땐 포스터의 그림과 직접 맞추어 보고, 퍼즐판 위에 조각을 올려둔다. 그렇게 퍼즐 위 섬처럼 떨어져 있던 조각들이 마침내 다른 조각들과 이어질 때엔 조그만 전율이 돋는다. 우연 일리 없는 우연이다.
너를 만난 것은 우연이었다. 그날 그곳에 가지 않았다면, 그 시간에 다른 것을 했다면, 그날도 용기가 없어서 말을 걸지 못했다면, 너를 만날 수 있었을까. 너라는 바다를 그려볼 수 있었을까. 그렇게 생각해 본다면 모든 것은 필연 같다. 그날 그곳에 갔고 너를 보았고 용기를 내어 말을 건냈다. 우린 인사를 하고 같이 밥을 먹고 키스를 하고 사랑을 하고 웃고 울다가 이별을 했다. 이 모든 게 운명이라면 우리는 이제 끝난 것일까, 다음 편을 기다리고 있는 것일까. 이것이 운명이라면 나는 기다리면 되는 것일까, 손가락이라도 움직여 봐야 할까.
눈이 빠질 것 같고, 허리도 아파온다. 아, 이게 뭐라고 이 지경이 되도록 하고 있는 거지? 커다란 그림을 누굴 조롱하 듯이 제각각 조각 내놓고는 다시 원래대로 맞추는 놀이라니. 누가 만들어낸 건지는 몰라도 참 바보 같다. 근데 눈을 감아도 퍼즐이 떠오른다. 아직 못 맞춘 부분이 마치 나의 허울 같다. 얼른 감춰버리고 싶다.
.
.
.
어느샌가 퍼즐은 커다란 그림으로 완성되어 가고 있다. 군데군데 빈 공간이 많지만, 그럭저럭 그림을 알아볼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최종 단계에까지 못 맞춰진 퍼즐들은 사실 별다른 방법이 없다. 이젠 조각의 모양에 따라 분류하고 일대일로 대조해가며 맞춘다. 조각의 다리가 4개인 놈, 3개인 놈, 2개인 놈, 특징적으로 머리가 작은 놈, 큰 놈, 구별해서 그런 빈 자리가 있는 지 찾는다. 큰 그림 중 작은 부분에 단 한자리만 비어 있는데도 그곳에 맞는 조각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마지막 단계는 쉬울 것 같은데도 어렵다.
관계의 마지막인 이별도 그렇게 어렵다. 과연 아름다운 이별, 좋은 이별이라는게 가능한 것일까? 더욱이 한 쪽의 마음은 여전히 사랑이 존재하는데, 다른 한 쪽의 마음이 변해서 다가오는 이별은 언제나 급작스러운 이별 통보를 동반한다. 갑작스러운 이별은 그 갑작스러움보다 더 이겨내기 어려울 것이다. 나는 이별을 말하는 쪽이었다. 다시는 이런 이별 따위 못하겠으니 사랑도 못하겠다고 생각했다. 상대의 찢어지는 가슴을 반에 반도 이해하지 못하면서 힘들다고 투정 부렸다. 몇 일 몇 달, 얼마간의 시간이 흐르고 서로의 마음을 완전히 확인하고 나면 새살이 조금 올라오는 것이다. 깊은 흉터가 남아있겠지만 새옷으로 가릴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완성한 퍼즐을 유심히 들여다 본다. 시간을 들여 천천히 그리고 꼼꼼히 본다. 그리고 아무런 망설임 없이 쓰레기통에 집어넣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