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자헌 기념일(동방교회 : 지극히 거룩하신 하느님의 어머니 입당 축일)은 로마가톨릭교회와 동방정교회 등 기독교에서 매년 11월 21일마다 기념하는 축일로, 특히 동방정교회에서는 전통적으로 이날을 ‘마리아와 데스포니아’(‘여주인’이라는 그리스어)라는 세례명을 가진 여성들의 영명 축일로 기념하고 있습니다. 이 축일은 매우 오래된 기념일로 ‘야고보의 원복음’으로 알려진 외경 복음서에서 이야기하는 신심 깊은 전통에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그러나 시대를 거쳐오면서 이 축일은 생겼다 없어지기를 반복하다가 16세기 말에 와서야 정착이 되면서 현재에 이르게 되었던 것입니다.
서기 200년경에 쓰인 것으로 밝혀진 외경인 ‘야고보 원복음서’에 나오는 내용에 따르면, 마리아의 아버지인 ‘요아킴’과 어머니인 ‘안나’는 오랫동안 자식이 없어서 걱정이 많았는데, 어느 날 천사를 통해 아이를 갖게 될 것이라는 계시를 받게 되고, 그렇게 마리아를 낳게 된 부부는 매우 기뻐하며 전에 약속한 대로 하느님께 딸을 봉헌하기 위해 아직 세 살밖에 되지 않은 마리아를 예루살렘 성전으로 데리고 가게 됩니다. 그렇게 성전 도착하여 마리아를 셋째 계단에 내려놓자, 아기는 두 발로 춤을 추듯 부모를 뒤돌아보지도 않은 채 성전으로 걸어 들어가는 것이었습니다. 교회에서는 이렇게 마리아가 스스로 자신을 하느님께 봉헌했다고 하여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자헌 기념일'로 기념하게 된 것입니다.
모세의 율법에 따르면 이스라엘의 부모들은 아이를 낳으면 사내아이는 40일 후에, 여자아이는 80일 후 성전에 가서 하느님에게 봉헌하게 되어 있다는데, 그렇게 스스로 성전을 찾은 마리아는 육신과 영혼을 모두 하느님에게 바치기로 결심하며 종신 동정을 서약하였으며, 12세가 될 때까지 다른 소녀들과 함께 성전에서 봉사하고 교육을 받으며 자신에게 부여된 역할의 준비를 위한 여러 가지 종교 교육을 받게 됩니다. 콥트교(고대 이집트의 기독교회에 뿌리를 둔 오리엔트 정교회의 한 교파)의 전승에 따르면, 마리아의 아버지는 그녀가 여섯 살 되던 해에, 어머니는 여덟 살 되던 해에 세상을 떠났다고 하는데, 역사적으로 증명되지 않은 이야기이긴 하나 중요한 것은 마리아가 유년 시절부터 하느님에게 전적으로 봉헌되었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동정녀 마리아의 자헌 축일’에 대한 기원은 543년 동로마 제국의 ‘유스티니아누스 1세’ 황제의 명령으로 과거 예루살렘 성전이 있던 곳 근처에 비잔티움 양식으로 건축된 ‘성 마리아 대성당’의 축성식에서 유래하고 있는데, 그러나 이 성당은 614년 예루살렘 포위전 이후 ‘호스로 2세’의 지시로 ‘사산제국’의 페르시아인들에 의해 파괴되고 말았습니다. 이후 전례에서 마리아의 자헌 기념을 처음으로 기록한 것은, 11세기 동로마 제국의 ‘바실리우스 2세’ 황제의 성인 축일표에 나오는 ‘지극히 거룩하신 하느님의 어머니 입당 축일’입니다. 이렇듯 동방교회에서 오랫동안 기념되었던 이 축일은 9세기경에 이르러 이탈리아 남부에 있는 수도원들에서도 처음으로 기념하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1372년 교황 ‘그레고리오 11세(제201대 교황이자 아비뇽 교황 시대의 일곱 번째 교황이자 마지막 교황)’는 아비뇽에 있던 교황 전용 경당에서 처음으로 이 축일을 기념하게 되었고, 1472년 로마 미사 경본에 처음으로 이 축일이 기재되었으나, 1568년 교황 ‘비오 5세’는 다시 이를 기념하는 것을 금지하게 됩니다. 그 결과, 서방교회의 전례력에서 이 축일은 사라지게 되었는데, 하지만 얼마 뒤 1585년에는 교황 ‘식스토 5세’가 이 축일을 다시 기념하는 것을 허용하였고, 1597년 교황 ‘클레멘스 8세’는 이 축일을 2등급 축일로 지정하게 됩니다.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자헌 기념일’은 1969년 개정된 로마 전례력에서도 그대로 남아 현재에 이르고 있으며, 이 기념일의 주제는 ‘마리아를 통해 그리스도께 온전히 봉헌함’입니다.
※ 상기 내용은 가톨릭 사전과 위키백과의 내용을 참조하여 정리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