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29일 오늘의 성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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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니체아(Nicaeas)
성 바오로(Paulus)
축일 8월 29일
성 니케아(또는 니체아)와
성 바오로(Paulus)는 로마 제국의
그리스도교에 대한 박해 중에 시리아의
안티오키아(Antiochia)에서 순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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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레포시토(Repositus)
성 비탈리스(Vitalis)
성 사토르(Sator)
축일 8월 29일
성 호노라투스(Honoratus)와 아론티우스(Arontius),
포르투나투스(Fortunatus),
사비니아누스(Sabinianus), 펠릭스(Felix),
야누아리우스(Januarius), 셉티미누스(Septiminus),
레포시투스(또는 레포시토), 사토르(Sator),
비탈리스(Vitalis), 도나투스(Donatus) 그리고
또 다른 펠릭스(Felix)는 아프리카의
하드럼멘툼 출신인데, 비록 형제지간은 아닐지라도
‘12명의 거룩한 형제들’로 알려졌다.
그들은 모두 막시미아누스 황제의 그리스도교
박해 때에 체포되어, 카르타고(Carthago)에서
고문을 받고 이탈리아로 호송되었다.
처음 네 사람은 8월 27일에 포텐차(Potenza)에서,
펠릭스와 야누아리우스 그리고 셉티무스는
베노사(Venossa)에서 그리고 다른 이들은
센티아나(Sentiana)에서 각각 참수당하여
순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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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리카르도 헤르스트(Richard Herst)
축일 8월 29일
리카르두스(Richardus, 또는 리카르도)
헤르스트는 영국 잉글랜드(England) 랭커셔
(Lancashire)의 프레스턴(Preston) 근교에서
태어났으며 소지주의 아들이었다. 그는
국교도(영국 성공회)를 공식적으로 반대하던
사람이었으므로, 1628년 어느 날 체스터(Chester)의
성공회 주교가 사람들을 보내어 그를 체포케 했는데,
체포하는 도중에 큰 싸움이 일어났다. 그 결과
그를 체포하러 왔던 무사 한 사람이 죽는 사건이
일어났던 것이다. 이 때문에 헤르스트는 살인자로
기소되어 사형을 언도받았다.
그는 형장에서 이런 말로 신앙을 고백하였다.
“나는 거룩한 가톨릭 교회의 가르침을 믿습니다.”
그 뒤 그는 교수형을 받고 순교하였다.
그는 1929년 교황 비오 11세(Pius XI)에 의해
복자품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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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메데리코(Medericus)
축일 8월 29일
프랑스 오툉에서 태어난 성 메데리쿠스
(또는 메데리코)는 어린 나이로 그곳의
수도원에 들어가서 오직 그 수도원에서만
54년을 살았던 유명한 인물이다.
메데리쿠스의 덕행이 그 어느 수도자보다 뛰어나서
원장으로까지 피선되었지만, 조금도 자만하지 않고
오로지 인내로써 참 진리의 오솔길을 형제들에게
가르치며 자신도 함께 걸어 나갔다. 그는 다른
형제들보다 앞서서 임무를 수행하였고,
원장직이 종료되었을 때에는 오툉에서 4마일
떨어진 숲 속에서 은거하였다. 그는 손수
노동하며 생필품을 구하였고, 그의 은둔소에
수많은 사람이 몰려들게 될 만큼 유명해지자
수도원으로 돌아와 버렸다. 그는 2년 9개월 정도
병으로 고생하다가 평안히 영면하였다.
메리(Merry)로도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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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 바실라(Basilla)
축일 8월 29일
로마 순교록에 의하면 성녀 바실라는
스미르나(오늘날 터키의 이즈미르, Izmir)에서
사망하였다. 다른 순교록들은 그녀의
사망 장소를 판노니아(Pannonia, 도나우 강 중류
우안(右岸)의 헝가리 분지 지역)의
시르미움(Sirmium, 오늘날의 미트로비카, Mitrovica)
으로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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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 사비나(Sabina)
축일 8월 29일
성녀 사비나는 이탈리아 움브리아(Umbria)
출신의 부유한 과부였는데, 시리아 출신인
그녀의 여종 성녀 세라피아(Seraphia)로부터
그리스도교 신앙을 배우고 개종하였다.
성녀 세라피아는 하드리아누스 황제의
그리스도교 박해 때에 순교하였고(7월 29일),
성녀 사비나 역시 그 다음 달에 순교의
월계관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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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 사비나(Sabina)
축일 8월 29일
성 사비니아누스(Sabinianus, 1월 29일)의
여자 형제로 추정되는 성녀 사비나는
프랑스의 트루아에서 그녀의 잃어버린
형제를 찾았다. 그러나 그녀가 사비니아누스를
찾았을 때 그는 이미 순교하여 성인으로서
존경을 받고 있었다. 얼마 후 그녀 역시
사망했는데, 트루아와 상스(Sens) 그리고
그 지방 전역에서 그녀의 중재기도를 통한
많은 기적이 일어나 높은 공경을 받게 되었다.
성녀 사비나는 일반적으로 교회미술에서
성 사비니아누스와 함께 그려진다. 그녀는
트루아에서 공경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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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세보(Sebbus)
축일 8월 29일
성 세부스(또는 세보)는 영국의 7왕국
(Kent, Sussex, Wessex, Essex, Northumbria,
East Anglia, Mercia) 시대 에식스의 왕으로
성녀 오시트(Osyth, 10월 7일)와 결혼한
시그히어(Sighere) 왕의 삼촌이었다.
그는 시그히어 왕의 배교 이후 그의 백성들의
복음화를 위해 머시아(Mercia)의
자루먼(Jaruman) 주교를 지원하였다.
30년간의 통치 후에 성 세부스는 은퇴하여
런던(London)에서 은수자로서 살았다. 그는
기도와 참회 그리고 자선으로 잘 알려져 있다.
성 베다(Beda, 5월 25일)는 그의 위엄 있는
죽음에 대해 기록하였다. 성 세부스는 런던의
옛 성 바오로(Paulus) 성당에 묻혔다. 그는
웨스트민스터(Westminster)에 첫 번째
수도원을 건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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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아델포(Adelphus)
축일 8월 29일
프랑스 메스의 주교 성 아델푸스(또는 아델포)에
대해 알려진 것은 거의 없다. 그러나
그 지방에서 그에 대한 공경은 초기부터
분명히 있어왔다. 그의 유해는 826년 프랑스
북동부 알자스(Alsace) 지방의 스트라스부르
(Strasbourg)로 환호 속에 이장되었다.
교회미술에서 그는 용 위에 서 있는
주교로서 그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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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히파시오(Hypatius)
성 안드레아(Andrew)
축일 8월 29일
성 히파티우스(Hypatius) 주교와
성 안드레아(Andreas) 신부는 리디아(Lydia)
태생으로 이사우리아 왕조의 레오 황제 때
성상 공경을 옹호한 이유로 콘스탄티노플
(Constantinople)에서 순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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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에우티미오(Euthymius)
축일 8월 29일
로마(Rome)에서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박해가 한창일 때 성 에우티미우스
(또는 에우티미오)는 그의 아내와 아들인
성 크레스켄티우스(Crescentius, 9월 14일)와
함께 로마를 탈출해서 결국 페루자에 도착했다.
성 에우티미우스는 페루자에서 공경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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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 요안나 유간(Joanna Jugan, 잔 주강)
축일 8월 29일
프랑스 북서부 브르타뉴(Bretagne)의
브티트 크로와에서 1792년 10월 25일 태어난
요안나 유간(Joanna Jugan, 잔 주강)은
어린 나이에 바다로 고기잡이를 떠난 아버지가
실종된 후 다른 세 명의 형제들과 함께
일찍 가난과 고된 노동을 알게 되었다.
집 근처에 위치한 저택의 부엌일을 돕는
하녀로 시작하여 생-세르방의 로제 병원에서
간호사로, 가정부로 때로는 간병인으로 일을
하였다. 한 젊은 어부의 구혼을 받았을 때
그녀는 “하느님께서 저를 원하십니다. 아직
시작되지 않은 어떤 사업, 알려지지 않은 그
사업을 위해 저를 쓰시고자 하십니다.” 하며
그 청혼을 거절하였다. 그 후 그녀는 오직
하느님과 이웃, 특히 가장 불쌍하고 헐벗은
이들을 섬기고자 결심하였다. 그래서 25세에
탄복하올 어머니 3회에 입회하였다.
1839년 겨울 어느 날 갑자기 혼자가 된
수족을 못 쓰는 반신불수의 장님 할머니를
집에 모셔와 보살핀 것이 계기가 되어,
1843년 그녀를 중심으로 세 명의 젊은
동반자와 합세하여 40여명의 노인들을
보살피게 되었다. 그리고 이 세 젊은이들은
수도회의 기틀이 잡혀가는 이 작은 모임의
원장으로 잔 주강을 추대하였다. 그러나
얼마 안가서 그녀는 부당하게 원장 자리에서
밀러났지만, 오로지 침묵과 온순함 그리고
하느님께 대한 신뢰로써 이 모든 일들을
받아들였다.
세월이 흐르면서 차차 그녀는 잊혀졌고,
그녀가 세상을 떠날 무렵 그녀가 수도회의
창립자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수녀는
거의 없었다. 1879년 8월 29일 그녀가
사망한 후, 1902년에 이르러 그 동안
잊혀졌던 잔 주강 십자가의 마리아 수녀가
‘가난한 이들의 작은 자매회’
(경로 수녀회)의 창립자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리고 1982년 10월 2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Joannes Paulus II)에 의하여 시복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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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요한 세자의 수난
축일;8월 29일
천박한 명예심을 가진 왕의 술취한 맹세,
유혹적인 춤,왕비의 중오에 가득 찬 마음이
한데 어울려 요한 세자의 순교를 불렀다.
이 위대한 예언자는 그를 앞서간 수 많은
구약 시대 예언자들의 죽음을 슬퍼했다.
거부와 순교,'광야에서 외치는 소리'는
잘못을 나무라는 데 주저하지 않았고 진실을
이야기하는데 망설이지 않았다. 그런데 왜?
자신의 생명을 우리에게 주고 그가 가진 것은
무엇인가?
이 위대한 예언자는 구세주를 맞이하기 위해
하느님께서 예비하신 사람이었다. 그가
주장했던 유일한 권능은 야훼의 성령이었다.
"나는 너희를 회개시키려고 물로 세례를
베풀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분은 성령과 불로
세례를 베푸실 것이다. 그분은 나보다
훌륭한 분이어서 나는 그분의 신발을 들고 다닐
자격조차 없는사람이다."(마태 3,11)
성서는 많은 사람들이 요한을 따랐으며
그에게서 위대한 힘을 기대하고 있었다고
우리에게 말해 주고 있다. 그러나 요한은 결코
자신의 영광을 위해 사람들을 받아들이지는 않았다.
그는 그의부르심이 준비를 위한 것임을 알았다.
때가 왔을 때, 그는 그의 제자들을 예수께
보내었다. "다음날 요한이 자기 제자 두 사람과
함께 다시 그곳에 서 있다가 마침 예수께서
걸어가시는 것을 보고 '하느님의 어린양이
저기 가신다."하고 말하였다. 그 두 제자는 요한의
말을 듣고 예수를 따라갔다."(요한 1,35-37)
그리스도가 가는 길을 가리켰던 사람은
세례자 요한이다. 그의 삶과 죽음은 하느님과
인간을 위해 자신을 바치는 것이었다.
그의 단순한 생활양식은 지상의 소유로부터
완전한 초월이었다.
그의 마음은 성령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듣는
부르심과 하느님께 집중되어 있었다.
하느님의 은총을 확신하는 그는 심판,회개,
구원의 말씀을 전하는 용기를 가졌다.
설명 ; 모든 사람에게는 저마다 귀를 기울여야
할 부르심이 있다. 아무도 요한의 사명을
되풀이하지는 않을 것이다.그러나 아지까지
우리는 그 같은 사명의 부르심을 받고 있다.
예수를 증거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소임이다.
이 세상에서 우리의 지위가 무엇이든 간에
우리는 그리스도의 제자로 부르심을 받은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말과 행위를 통해 다른 이들이,
예수님이 하느님이심을 아는 기쁨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깨닫도록 해야 한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유한한 힘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고
그리스도 구원의 무한한 은총에서 힘을 얻어야 한다.
인용 ; "그 제자들은 요한을 찾아가
'선생님, 선생님과 함께 요르단강 건너편에
계시던 분이 세례를 베풀고 있습니다.
선생님께서 증언하신 바로 그분인데 모든 사람이
그분에게 몰려가고 있습니다'하고 말하였다.
요한은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사람은 하늘이 주시지 않으면 아무것도
받을 수 없다.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 그분 앞에
사명을 띠고 온 사람이라고 말하였는데 너희는
그것을 직접 들은 증인들이다. 신부를 맞을 사람은
신랑이다. 신랑의 친구도 옆에 서 있다가
신랑의 목소리가 들리면 기쁨에 넘친다.
내 마음도 이런 기쁨으로 가득 차 있다.
그분은 더욱 커지셔야 하고 나는 작아져야 한다.'"
(요한3,2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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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 칸디다(Candida)
축일 8월 29일
로마 순교록에 의하면 이탈리아의 로마에서
오랫동안 공경을 받아온 성녀 칸디다의
유품들이 9세기부터 성 파스칼 1세(Paschalis I)
교황에 의하여 성 프락세데스(Praxedes)
성당에 안치되어 전해온다고 한다. 그녀는
로마 성문 밖 오스티아노(Ostiano) 가도에서
순교한 일단의 신자들 가운데 한 사람이다.
성녀 칸디다는 9월 4일에 축일을 기념하는
사도 베드로의 여제자로 동정 순교자인
성녀 칸디다와 동일인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