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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내 산악회 계획에 따라 '덕치 치안센터 → 홍성문 대사 옛집 터 → 빨치산 교통호 → 깃대봉 → 천마봉 → 삼연봉 → 회문산 정상(큰 지붕) → 작은 지붕 → 시루봉 → 돌곶봉 → 회문산자연휴양림 → 화이트밸리 주변 공터'의 11km 코스를 5시간 30분 동안 탐방할 예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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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문산[回文山]
높이: 837m
위치: 전북 순창군 구림면
전북 임실군과 순창군 경계에 웅크리고 있는 회문산은 가족 단위 산행지로 적격이다. 숲이 무성하지만, 해발이 830m로 그다지 높지 않고 호젓한 분위기와 광활한 전망이 일품이다. 북으로는 섬진강, 동으로 오원천, 남으로 구림천이 싸고돈다. 날씨가 좋은 날에는 지리산까지 보여 예로부터 천혜의 요새로 알려진 산이다.
지리적 환경 때문에 구한말에 임병찬 최익현 양윤숙 선생이 의병을 일으켜 일제에 항거했고 6·25 때는 북한의 남부군 총사령부가 있었던 곳이다. 그러나 지금은 빨치산훈련장에 체력단련장이 들어서고 빨치산의 은신처와 밥 짓던 터는 통나무집과 물놀이터로 모습이 완전히 바뀌었다.
짙은 숲속에선 온종일 꾀꼬리 산비둘기가 울고 까투리와 장끼가 사랑을 속삭인다. 자연휴양림으로 탈바꿈한 회문산은 얼룩진 과거사를 묻어둔 채 가족 단위 자연공원으로 주목받고 있다. - 한국의 산하
매월 4주 차 토요일은 등산방 정기산행 일이고, 그중 짝수 달은 87 산악회와 연합산행을 하기로 했다. 그런데 지난 칼봉산 연합산행 때[산행기], 10월 산행을, 통영 사량도 지리산으로 가기 위해 11월 연기하기로 했으나, 11월 말 섬 산행은 겨울 바다의 낭만을 추위가 압도한다는 주변의 의견에 따라, 내년 봄으로 연기했다. 따라서 10월 연합산행을 11월로 연기할 이유가 사라져, 예정대로 10월 4주 차에, 서울 근교의 단풍이 좋은 산 중 하나를 골라 단풍산행을 하기로 했다. 서울 부근의 단풍 하면, 소요산 아니면, 북한산인데, 소요산은 근교이기는 하나, 대중교통으로 가는 과정이 복잡하고, 시간이 오래 걸려 많은 인원이 쉽게 참석할 수 있는 북한산을 택했다.
연합 산행은 다양한 체력의 각 학번 동문 산악회의 연합이라는 성격 때문에 거의 모든 산행은 A, B 코스로 나누어 진행한다. 물론 양 코스가 비슷한 시각에 산행을 끝낼 수 있는 코스다. 해서 대략 4시간 내외, 거리로는 10km 내외다. 이번 북한산 연합 단풍산행의 A 코스 또한 의상능선~삼천사계곡 구간으로 8.4km, 4시간 코스다. 고로 매주 15~20km의 구간을 달리는 인간에게는 아주 부족한 산행이다. 그리고 그다음 주 토요 무박으로 일요일 새벽에 달리는 속리산 종주와는 일주일 이상의 날짜가 비어 화, 수 중에 속리산 종주에 대비해 가볍게 다녀올 만한 산이 없나, 평일에도 많게는 10여 대, 적게는 너덧 대의 버스가 출발하는 안내산악회의 게시판을 뒤져봤다.
화, 수 합쳐 총 19개 산행 중 초행은 화요일에 출발하는 순창 회문산이 유일하다. 까만 소가 100+로 선택한 산이나, 처음 들어보는 산이기도 하다. 해서 한국의 산하를 비롯해 여기저기 이 산에 관해 찾아봤다. 그 결과, 6·25 때는 남부군 총사령부가 있었다는데, 내가 왜 이제야 이 산을 알았는지 궁금할 정도다. 다만, 산 소개에 보면 가족 산행지로 적격이라는 내용이 있어, 암릉의 재미를 느끼기는 힘들지 않을까 생각된다. 하지만, 날씨가 좋은 날은 지리산까지 조망된다고 하고, 일기예보는 산행 당일 화창할 예정이라니, 지리산을 볼 수 있지 않을까 기대 중이다.
산악회 계획에 따르면 11km 코스에 소요 시간은 5시간 30분으로 들머리 도착이 10시 30분이다. 그럼 마감 시각은 16시 즉 4시다. 그런데, 국제신문의 회문산 지도를 보면, 산행 코스에 700m가 넘는 봉우리 두 개에 600m 봉우리도 있다. 국제신문처럼 자연휴양림 주차장을 들머리로 한 환 종주는 가족 단위의 산행지일 수 있으나, 산악회가 계획한 코스는 그렇지 못해 보인다. 어쨌든 목표는 4시간 이내에 산행을 마감하고, 날머리에 있다는 식당에서 하산주를 마실 예정이다. 그 밖의 준비는 평소와 같다. 그나마 따뜻한 남쪽 나라라, 무거운 컵라면 세트보다는 김밥을 들고 갈까 생각 중이나, 당일 일기 예보를 보고 결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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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 당일 확인한 일기예보도 사흘 전 일기예보와 대동소이해, 김밥을 가져가도 문제 될 건 없을 거 같으나, 그래도 몰라, 컵라면과 사과를 준비했다. 물론 늘 배낭에 들어 있는 비상식은 별도다. 다른 때와 다른 게 없는 배낭을 둘러메고 5시 45분경 집을 나섰다. 그런데, 문밖으로 나오자마자 일기예보를 너무 광신하고 있는 게 아닌가 후회했다. 봄, 가을용 등산복 윗도리에 여름 바람막이다. 바지에 땀이 차는 걸 싫어해 바지는 여름용! 가장 먼저 머리가 시려 배낭에 매단 모자를 꺼내 썼지만, 추위 벌벌 떨어야 했다. 다시 돌아가 복장을 바꿀까도 생각해봤으나, 그러기에는 너무 늦었다. 해서 일단 마을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를 타고 불광역으로 가 6시 정각 오금행 열차를 탔다.
양재역에 6시 40분에 도착했으니, 7시 버스 출발을 고려하면 너무 이른 시간이다. 그것도 추운 날씨에 해서 추운 겨울철에는 양재역에 일찍 도착할 때 앉아서 기다리는 곳으로 가 10분 정도 책을 보다가, 개찰구로 올라갔다. 그런데 위는 더 춥다. 이대로 밖으로 나갔다가는 동사할 거 같아, 비상용으로 넣어 다니는 두꺼운 조끼를 꺼내 입고, 12번 출구로 나갔다. 역에서 나와 국립외교원 앞으로 가자, 평일임에도 생각보다 많은 등산객이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7대의 버스가 각지로 떠나니 당연한 건가? 그런데 다들 복장이 한겨울 등산이다. 추위에 떨고 있는 건 내가 유일한 듯하다.
추운 겨울에 돌 위에 앉는 건 자살 행위라, 한동안 의자로 잘 사용했던 석축 앞에서 속속 도착하는 등산객을 구경하며, 버스를 기다리는데, 경남 거창 비계산으로 향하는 차를 선두로 버스가 들어온다. 뭐가 씌었는지, 내가 탈 차는 늘 제일 뒤다. 아니면, 아예 늦던가. 해서 매번 차를 찾아 헤맸는데, 평일인 오늘도 예외가 아니다. 역시 다른 차보다 3분 늦은 7시 4분에 도착했다. 비록 늦었으나, 왔다는 것에 만족하고, 초면의 여성 인솔 대장과 인사한 후, 배낭을 짐칸에 싣고, 파우치를 들고 내 자리로 갔다. 자리에 앉자, 예정보다 5분 늦게 버스가 출발했는데 고속도로가 심하게 막힌다. 그런데 옆자리 승객이 커튼을 완벽하게 치지 않아 커튼 사이로 햇살이 쏟아져, 책을 볼 수 없다. 그렇다고 잠을 잘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해서 죽전에서 승객을 태우기 위해 정차하는 동안, 자는 승객에게 방해되지 않게 커튼을 손봤는데, 마찬가지다. 아주 죽을 맛이다. 자는 승객을 깨울까 고민했을 정도다.
마지막으로 신갈에서 승객을 태우고 차가 출발하는데, 28인승 버스에서 최고의 자리로 꼽히는 내 앞자리에 승객이 없다. 사당에서 타기로 한 자리가 비어 양재에서 타면서 고개를 갸웃했으나, 다른 곳에서 타는 승객도 자주 있어 뭐, 그러려니 했는데, 마지막 승차장인 신갈에서도 안 탄다. 버스가 사당에서 늦은 이유가 이 승객을 기다리다가 그런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상황이다. 그 승객 사정은 내가 알 바 아니고, 내게는 구세주다. 커튼의 방비가 불완전해 얼굴로 햇살이 쏟아지는 내 자리에서 앞자리로 자리를 옮기자, 불지옥에서 천국으로 승격한 기분이다. 책을 보며 가끔 창밖으로 고속도로 상황을 보니, 막힌 이유가 사고 때문이었다. 그런데, 휴일이면 늘 막히는 논산천안고속도로는 뻥 뚫려 잘 달린다. 이 도로는 행락용인가? 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그렇게 달린 버스는 8시 32분에 오랜만에 정안 알밤휴게소로 들어섰다.
버스에서 내려 차가우나 신선한 공기를 마음껏 들이켠 후, 볼일을 보고, 오랜만의 정안휴게소라 뭐가 있나 주변을 둘러봤다. 분수대다. 과거에도 있었는데, 못 봤나? 해서 그 분수대를 구경하다가, 출발 시간에 맞춰 버스로 돌아가 이제는 내 자리가 된 빈자리에 앉았다. 추워서 다들 일찍 돌아왔으나, 한 승객이 늦는 바람에 예정보다 1분 늦게 버스는 임실을 향해 출발했다. 버스가 출발하자, 인솔 대장이 마이크를 잡고, 이번 산행의 코스와 주의 사항에 관해 설명을 시작했다. 이정표가 잘 되어 있어 길을 잃을 염려는 없는데, '작은지붕'에서 시루봉으로 갈 때 길을 혼동할 수 있으니 조심하라고 했다. 그리고 날머리에 식당이 있으나, 영업 중인지는 모르겠다고 하는데, 사실 그게 나를 포함 몇 사람에게는 제일 중요하다. 나는 일단 영업하는 거로 믿고 움직이기로 했다.
계속 책을 보자, 눈이 아프고 피곤해, 애초 내 자리인 뒷자리가 지금 비어 최대한 의자를 뒤로 눕혀 28인승 버스에서 자강 편한 자세로 잠을 청했다. 그리고 깨어보니, 전주다. 임실이 멀지 않았다. 해서, 뒷자리에 두었던, 장비를 앞자리로 가져와 슬리퍼를 등산화로 다시 갈아 신고, 스패츠도 착용하는 등 산행 준비를 마쳤다. 버스가 얼마나 빠르게 달렸는지 초반 경부고속도로가 막혔음에도 불구하고 날머리인 덕치면 치안센터 앞에 계획인 10시 30분보다 13분 이른 10시 17분에 도착했다. 해서 마감도 계획보다 13분이 빠른 게 아닌, 10분 빠른 3시 50분이 됐다. 10분이라도 빨리 서울로 향하면 좋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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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치 치안센터, 옛 지서 옆 마을로 올라가는 길목 입구의 회문산 이정표는 회문산이 아니라 깃대봉까지의 거리만 알려주고 있었는데, 3.1km다. 지도에서 본 기억으로 해발 700m가 넘는 봉우리다. 해서 표고차가 얼마나 되나, 산행을 시작하고 5분 여가 지나, 등산 앱으로 현재의 고도를 확인했다. 166m다! 요즘 핸드폰이 문제인지, 등산 앱이 문제인지, 고도의 편차가 많을 때는 50m가 넘어 정확하지는 않으나, 주어진 정보에 의하면 3.1km를 가는 동안, 600m를 넘게 고도를 올려야 한다. 쉽지 않은 산이라는 얘기다. 마을 내의 길이라, 당연히 마을을 관통하고 있어, 포장된 길을 따라 올라가 10시 31분에 본격적인 등산로에 들어설 수 있었다. 그래봐야 비포장의 과거에 임도로 사용한 거로 보이는 길이지만.
계속 올라가자 지금도 임도로 사용하는지 토양 유실에 대비해 자갈을 깔아, 걷기가 불편했다. 그 자갈길을 따라 올라가, 10시 44분에 깃대봉에서 1.6km 거리의 이정표에 도착했으니, 1.5km를 27분이 걸려 올라왔다는 얘기로, 속도는 양호하다. 물론 깔딱은 아직이다. 그리고 길은 좌회전하고 있다. 전형적인 급경사에서의 갈지자를 그리는 모습으로 이제부터 쉽지 않을 거라는 경고다. 예상대로 급경사를 만나, 가쁘게 숨을 몰아쉬며 16분 동안 땅만 보고 전진해, 11시 정각에 능선에 올라섰다. 조금은 완만한 능선이라 한숨 돌릴 여유가 생겨 좌우를 둘러보며, 전진했는데, 오른쪽으로 앙상하나 시야를 가리는 나뭇가지 사이로 봉우리가 보인다. 지금까지 온 거리와 나뭇가지 사이로 보이는 봉우리까지의 대략적인 거리를 계산해 보면, 깃대봉이다. 그런데, 올라가야 할 높이가 만만치 않다.
깃대봉을 향해 능선을 따라 오르자, 등산로를 조금 벗어난 곳 왼쪽에 바위 전망대가 있다. 이번 산행 첫 전망대라,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등산로를 벗어나, 전망대로 올라갔다. 관목에 가려 전경을 볼 수는 없으나, 그나마 남서쪽 멀리 산세를 감상할 수 있었다. 저 중에는 이미 올라갔거나, 올라야 할 산이 있을 거다. 관목 덕에 제대로 조망하지 못해 조금은 실망하고 전망대를 떠나, 위로 올라가며 보니, 왼쪽으로 널찍한 쉼터가 보인다. 그런데 부러진 안내문이 보이는 게, 단순한 쉼터가 아니다. 정체가 궁금해 쉼터로 내려가 쓰러진 안내문을 대충 보니, 이정표에도 있고, 회문산 소개에도 있는 홍성문 대사 집터란다. 이 글을 쓰며 전 내용을 읽었는데, 과거에 현재의 대한민국을 쥐락펴락하는 누구와 비슷했던 거 같다. 결과적인 얘기나, 산행 중 묘가 많은 게 궁금했는데, 안내문 읽으니 이해가 된다.
비록 정사에는 언급이 없는 인물이나, 임실에서 내세우는 인물이라면, 집터 관리는 제대로 해야 하는데, 안내문이 쓰러진 상태로 방치하는 관리 소홀이다. 임실군이 알아서 할 문제고! 집이 있었다면, 당연히 물이 있어야 한다. 해서 집터 주변을 둘러보니, 우물처럼 생긴 게 있어 그쪽으로 가서 확인했다. 마른 우물이다. 과연 옛날에는 역할을 했을까? 쉼터를 떠나자 급경사에 나무를 땅에 박은 계단이 나온다. 계단 정상은 일중마을 갈림길이다. 깃대봉까지 남은 거리는 480m! 일중마을에서 올라오는 등산로는 우리가 올라온 등산로보다 더 넓고 좋아 보인다. 물론 합류하는 등산로로 두세 명이 나란히 서서 올라갈 수 있을 정도로 넓고 완만한 능선이다. 그 길을 따라 유유자적 올라가자 저 앞에 또 안내문이 서 있다. 빨치산 교통로 소개문으로 '낮에는 국군토벌대가 진입하여, 빨치산에게 협조한 주민을 처형하고, 밤에는 빨치산이 내려가, 국군에게 협조한 주민을 처형해 민간이 피해가 2,300명에 이르렀다'라는 내용이 끝에 있는데, 누가 더 많이 죽였을까? 당시 2,300명을 학살할 정도라면 주변에 인구가 꽤 많았다는 얘긴데, 아니 몰살시킨 건가?
교통호라고 해서 자세히 살펴봤는데, 내가 아는 그리고 기대한 교통로가 아니다. 뭐 대단한 걸 기대한 건 아니나, 그래도 교통로라기보다는 수로에 가까운 걸 기대한 건 아니다. 하긴 누가 관리하는 게 아니니, 그나마 흔적이라도 있는 걸 보면 당시에는 대단했을 듯도 하고. 교통로를 지나 깃대봉으로 향하는데, 등산 앱이 정상에 도착했음을 알린다. 깃대봉 반경 50m 내다. 그런데, 마침 '국가지점번호' 표지가 옆에 있어 등산 앱의 고도와 표지판의 고도를 비교해봤다. 749m 대 742m다! 오차가 7m에 불과하다. 그럼, GPS가 정상으로 돌아왔다는 건데. 등산 앱에 문제가 있었나? 3년 넘게 쓰고 있는 핸드폰이 좋아지지는 않았을 거고! GPS가 정상이라 신이 나서, 정상으로 향하는데, 왼쪽으로 두 번째 전망대가 있다. 당연히 전망대에 올라섰다. 첫 번째보다는 아니나 그래도 관목이 방해하는 가운데 동쪽에서부터 서쪽으로 쭉 훑었다. 너무 멀어 정확한 건 아니나, 저 멀리 동남쪽으로 보이는 쌍둥이 봉이 지리산 천왕봉과 중봉 같다.
정확한 건 아니나, 지리산을 조망할 수 있어 기분이 최고인 상태로 전망대를 떠나, 11시 31분에 깃대봉 정상 바로 밑에 도착했다. 정상에는 내가 전망대에서 노닥거릴 때 지나간 등산객 서너 명이 인증을 찍고 있거나 찍고 막 떠나고 있었다. 그리고 내가 정상에 도착했을 때는 인증을 부탁할 아무도 없어, 먼저 정상석을 사진으로 남기고 삼각대를 이용해 인증을 찍고 있는데, 등산객 한 명이 올라온다. 그리고 '기다리면 올 건데, 힘들게 뭐하냐?'고 뭐라고 한다. 해서 내가 제일 후미인 줄 알았다고 얘기하고 서로 인증을 찍어주는 훈훈한 장면을 연출했다. 그런데 사진의 결과물을 보면, 낮은 삼각대를 이용해 찍은 게 더 좋아 보인다. 인증을 찍은 후 깃대봉을 떠나기 전 정상석 옆에 검은 비석이 있어 큰 글만 읽고, 나머지는 한가할 때 읽어 보려고 사진만 찍었다. 그리고 이 글을 쓰며 읽어 보니, '운학 조평(趙平)'이라는 인물의 공적을 기록한 건데, 내용이 심상치 않다. 사실일까? 해서 찾아봤다[기사]. 사실이다!
헬기장인 깃대봉 정상을 떠나며 가는 방향을 보자 앞으로 산줄기가 보인다. 정황상 그중 가장 높은 게 회문산 정상으로 보인다. 깃대봉과 회문산 정상 사이에 봉우리가 있는데, 산세 상 깃대봉에서 하산해 바로 앞에 있는 봉우리로 올라가야 할 거 같은데, 만만치 않아 보인다. 그저 깃대봉에서 내려가는 구간이 짧기만 바랄 뿐이다. 회문산으로 생각되는 산세와 그 앞의 봉우리를 사진 찍고, 그 아래 낮은 산세도 사진으로 남겼다. 그리고 뒤가 시끄러워 힐끗 돌아보니, 내 인증을 찍어준 등산객이 인솔 대장의 인증을 찍어 주고 있다. 시끄러운 이유는 역광이라 사진이 잘 나오지 않는다는 걸 가지고, 서로 주고받는 농담이었다. 그들을 뒤로하고 깃대봉에서 하산하며 보니, 비록 관목이 시야를 방해하나, 회문산세가 더 정확히 보인다. 그 모습도 사진을 남기고 내려가는데, 하산길이 장난이 아니다.
키를 넘는 조리대 숲을 통과하면, 낙엽 쌓인 급경사다. 깃대봉 정상에서 고도가 많이 내려가지 않기를 빌었는데, 아니다. 험난한 길로 저점을 찍은 후 다시 등산이다. 그 길목에서 야생화를 사진으로 남기며 올라가는데, 등산 앱이 고지에 도착했음을 알린다. 천마봉이란다. 깃대봉 정상에서 본 회문산과 깃대봉 사이에 있던 봉우리다. 고도를 많이 내린 거 같은데, 생각보다 쉽다. 정상 직전 뒤를 돌아보니, 방금 내려온 깃대봉이 보인다. 깃대봉의 전경은 처음 보는 거라, 그걸 사진으로 남기고 정상에 오르자, 역시 정상석이 있는데, 음각으로 '學生草溪卞公昌玉之墓'라 새겨 있다. 정상에 무덤이다! 이게 다 '홍성목 대사' 덕이다. 그래도 다른 정상석이나 표지가 있나 찾아봤으나, 산악회의 리본밖에 안 보인다. 고로 등산 앱이 알려주지 않으면, 초행자는 여기가 천마봉이라는 사실을 알 수 없다. 천마봉 정상석을 사진으로 남기고, 회문산을 향해 다시 하산했다.
이 하산길 조리대는 앞선 깃대봉 하산길 조리대보다 더하다. 산행이 끝나고, 인솔 대장이 잘 표현했는데, '조리대 숲을 통과하는 동안 싸대기를 엄청나게 맞았다!'라고. 그 조리대 숲을 통과하는 동안 날카로운 잎사귀에 베이지 않도록 걷었던 옷소매도 끌어내려 팔을 보호했다. 물론 귀싸대기 맞지 않게, 옷으로 보호하고 있는 팔로 얼굴을 방어했으나, 다 막지는 못했다. 조리대 터널을 지난 후 그나마 상처 없이 무사통과를 축하하는 기념사진을 남기고 허기져 시계를 보니, 11시 51분으로 점심시간이다. 이제부터는 식당을 찾는 게 중요하다. 그런데 회문산 산세가 식탁 찾기가 쉽지 않은 모양새라, 일단 흙바닥에 주저앉지만 않으면 만족이라는 심정으로 주위를 둘러보며 갔다. 그리고 등산로에서 10m가량 벗어난 곳에 너럭바위는 아니나, 그나마 흙바닥보다는 양호해 보이는 바위가 있어, 조리대와 관목을 뚫고 거기로 갔다.
먼저 배낭을 내려놓고 경사진 바위에 걸터앉은 후 그나마 좀 넓적한 곳에 컵라면을 두고, 아침에 끓여 보온병에 넣어 가져온 뜨거운 물을 부었다. 물론 뜨거운 물이 남은 보온병에는 말린 우엉을 넣어 차를 만들었다. 그리고 등산로를 지나가는 등산객의 회문산에 관한 평가를 들으며, 컵라면으로 점심을 해결했다. 그들의 얘기는 공룡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생각보다 힘들다는 거다. 그런데 공룡을 들먹인다는 거, 자체가 쉽지 않은 산이라는 방증이다. 그렇게 대략 10분간 점심을 먹은 후 모든 흔적을 깨끗이 정리하고 12시 15분경 그 자리를 떠나, 다시 회문산을 향해 갔다. 길을 가며 앞을 보니, 가까운 곳에 봉우리가 보인다. 정황상 회문산 정상이나, 너무 가까워 의심이 든다. '가 보면 알겠지!'라고 속으로 생각하며 능선에는 있는 낮은 기복을 몇 개 지나, 조금 길다 싶은 오르막을 중간 정도 오르자, 등산 앱이 고지에 도착했음을 알린다. "응? 봉우리가 또?" 해서 앱을 확인해보니, '삼연봉'이란다.
이름으로 봐서는 깃대봉, 천마봉 연봉의 세 번째라 삼연봉(三連奉)이라는 이름을 붙인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어디까지나 내 추측이나, 이 세 봉우리가 가장 잘 보이는 돌곶봉 직전의 전망대에 올라가서 보고 확신했다. 마지막 삼연봉이라 이름 붙인 봉우리는 앞의 두 봉우리와 비교하면 어딘가 부족해 보이기는 하지만. 정상은 삼거리로, 좌회전하면 '큰 문턱바위'로 향한다. 그리고 정상 한쪽 바위에 등산객이 혼밥하고 있다. 그나마 천마봉에는 없던, 봉우리 명패가 이정표에 붙어 있어, 여기가 삼연봉이라는 걸 알 수 있다. 정상목이자 이정표를 사진으로 남기고, 12시 25분에 삼연봉을 떠나, 회문산 방향으로 600여 미터를 가자, 저 밑으로 임도와 건설기계 같은 게 보인다. 그 임도로 내려가는 길은 만든 지 얼마되지 않아 보이는 돌계단이다. 지금 한참 공사 중인 듯.
임도에 도착해 보니, 이정표에는 좌로 300m를 가면 '회문산 역사관'이 있다는데, 남부군 관련 자료를 모아놓았을 확률이 높아 보이나, 굳이 가서 보고 싶지 않아, 바로 회문산 방향으로 임도를 건넜다. 그런데, 삼연봉에서 내려오는 길은 돌계단으로 잘 만들어 놓고, 이정표도 확실한데, 회문산 방향은 길이 보이지 않는다. 그저 부서져 미끄러질 같은 암릉 위 나뭇가지에 매달린 산악회 리본을 보고 저 위로 올라가야 한다는 걸 알 수 있다. 아무리 그래도 길다운 게 있을 거라는 생각에 옆으로 돌아가니, 돌계단을 만들기 위해 암벽을 파 놓은 조잡한 계단이 있다. 그 계단으로 위로 올라가자 능선이다. 고로 임도는 삼연봉과 회문산을 이어주는 능선을 자른 거다. 그 능선을 따라 다시 등산을 시작해 위로 올라가자 등산객이 하나, 둘 돌을 주워 쌓은 돌탑이 있어, 나도 무사 산행을 빌며, 작은 돌 하나를 올려놓았다.
무사 산행을 기원하고, 약간의 경사가 있는 길을 1km가량 올라가자, 이정표가 보인다. 서어나무 갈림길이란다. 정상까지 남은 거리는 700m다. 내 기억에 정상 높이가 800m가 넘고, 임도에서 확인한 해발이 500m가 조금 안 되는 높이였으니, 최소 300m 이상 위로 올라가야 한다. 말인즉 마지막 깔딱이라는 얘기다. 이 갈림길까지 심한 경사는 없었으니, 남은 700m에서 치고 올라갈 확률이 높아 정신을 바짝 차리고 정상으로 향했다. 예상대로 급경사로 가쁘게 숨을 헐떡이며, 대여섯 명의 등산객을 추월하고 위로 오르자 다시 갈림길이 나타났다. 장군봉 갈림길이다. 정상까지 남은 거리는 400m다. 서어나무 갈림길에서 고작 300m 왔는데, 1km 이상 온 기분이다. 갈림길을 떠나, 다시 가쁜 숨을 몰아쉬며 정상을 향해 7분가량 가자, 앱이 고지에 도착했음을 알린다. 회문산 반경 50m 내다. 현재 해발은 858m, 아직 더 올라가야 하는 회문산 정상은 해발 837m다. 뭐, 20~30m 오차야!
절대 배신하지 않는 한국 산의 마지막 깔딱을 숨이 넘어갈 듯이 힘겹게 올라, 1시 10분에 정상에 도착했다. 멀리서는 잘 보이지 않으나, 정상에 도착해 보니, 회문산 자체가 바위 봉우리로, 정상은 널찍했다. 깃대봉과 같은 규모의 정상석이 서 있고, 그 뒤에는 쉴 수 있는 평상이 놓여있는데, 따가운 햇살을 가릴 게 전혀 없어, 먼저 온 등산객은 나무 또는 바위 그늘에서 두세 명씩 모여 점심을 먹고 있다. 그리고 정상석 앞면에는 한글로 '회문산'이라 음각으로 새겼고, 뒤는 한자로 '回文山'이라 새겼다. 回文처럼 어디서 봐도 똑같은 산이라는 뜻인가? 먼저 정상석을 기록으로 남기고, 도와줄 사람을 기다리고 있던 등산객과 서로 인증을 찍어줬다. 그리고 암봉답게 탁 트인 주변의 절경을 감상하고 기록으로 남겼다. 물론 지리산도 찾아보고. 깃대봉에서 올라오는 능선의 모습과 현재도 앞으로도 갈 기회가 있을 지 모를 장군봉도 사진으로 남겼다.
분위기로 보니, 정상 전에 점심을 먹은 등산객은 나를 포함 소수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다 바위를 찾아 여기까지 굶주린 배를 움켜쥐고 올라온 거 같다. 다들 정상 여기저기에 자리를 잡고 앉아 배낭을 풀고 있다. 정상에서 해야 할 일을 다 했으니, 저 아래로 보이는 휴양림으로 내려가면 된다. 해서 1시 18분에 막 정상에서 하산길로 들어서는데, 바짝 마른 풀을 밟고 미끄러져 그대로 넘어졌다. 배낭이 충격을 막아주고, 따뜻한 햇볕 아래, 따뜻한 마른 풀에 누워 있으니, 눈이 저절로 감기고 잠이 온다. 한잠 잘까 하다가, 밑에서 하산주가 기다린다는 생각에 정신이 번쩍 들어, 벌떡 일어나, 능선을 따라 본격적인 하산을 시작했다. 그런데 정상에서 300m가량 내려가자, '임병창 의병장 묘'라는 이정표가 있다. 당연히 그냥 갈 수 없어, 묘가 있는 곳으로 갔다.
의병장의 묘를 둘러보고 나와 다시 하산을 시작하는데, '천근월굴(天根月窟)'을 소개하는 안내문이 서 있는 곳에 도착했다. '하늘의 뿌리, 달의 굴?' 무언가 남녀상열지사에 관한 얘기인 거 같은데, 무슨 뜻인지 모르나, 일단, 안내문이 지시하는 곳으로 갔다. 마애불이 있어야 할 자리에 전서체로 "天根月窟"을 음각해 놓은 것뿐이다. 바위의 갈라진 곳은 여성의 성을, 글을 새긴 바위는 남성의 성을 상징하는 거로 보고 글을 새긴 거 같다. 홍성문 대사부터 여기까지 무속의 냄새가 너무 나는 산이다. 어쨌든 그것도 사진으로 남기고 다시 내려가기 시작해 1시 34분에 작은지붕에 도착했다. 상봉, 중봉 개념에서 상봉을 '큰지붕', 중봉을 '작은지붕'이라 부르는 거 같은데, 높아서 지붕일까? 생김새가 초가의 지붕과 비슷해서 그렇게 불렀을까? 내가 본 봉우리의 모습은 후자다
작은지붕에서 큰지붕 오른쪽에 있는 장군봉의 모습을 다시 사진으로 남기고, 날머리인 휴양림을 향해 100여 미터를 내려가자 안내문이 또 서 있다. 이번에는 여근목(女根木)이다. 여성의 성기를 닮은 나무라는 얘기다. 6.25 전후 온산이 불이 났을 때도 살아남은 나무라니, 영험하기는 하다. 해서 안내문의 사진을 유심히 봤는데, 왜 여근목이라 부르는지 도저히 이해가 안 된다. 뭐 음기가 강해서 불도 안 붙는 건 알겠는데, 성기와 무슨 상관? 실물을 보고 안내문에 있는 사진과 같게 사진도 찍어 보고 앞뒤 좌우 다 둘러봐도, 모르겠다. 그러다가 가까이 다가가 사진을 찍다가, 양쪽으로 같은 굵기로 벌어진 가지를 다리로 보고 밑동을 몸통으로 보면, 하늘을 향해 다리를 쫙 벌린 자세라, 음, 그럼, 말이 되네 하다가, 그 가운데를 보고 깜짝 놀랐다. 도대체 어떤 음란 마귀가 이걸 발견했을까? 그리고 이걸 찾아낸 나는?
나도 음란 마귀가 씌었나 고민하며 등산로를 따라 내려가는데, 저 앞에 임도가 나타났다. 이정표는 임도 쪽을 향해 시루봉이라 알려주고 있다. 아무래도 이상해 등산 앱의 지도를 확인했다. 그리고 인솔 대장이 조심해야 할 구간으로 임도를 언급했던 게 기억났다. 그런데, 임도 건너는 묘지다. 그래도 봉우리로 올라가려면 묘지로 가야 할 거 같아 그 방향을 유심히 살펴보니, 나뭇가지에 산악회 리본이 매달려 있다. 해서 그 묘지로 가, 옆으로 난 길을 따라 50여 미터를 가자 이정표가 나타났다. 제대로 왔다. 계속 길을 가 1시 47분에 억새가 우거진 헬기장에 도착했다. 억새를 보고 그냥 갈 수 없어, 큰지붕 즉 회문산 정상을 배경으로 바람에 나부끼는 억새의 모습을 동영상으로 남기고, 다시 길을 재촉해 1시 55분에 시루바위에 도착했다. 등산 앱이나, 지도에는 시루봉이라 표기하고 있으나, 이정표의 명패는 시루바위다. 해서 바위를 찾아보니, 이정표 바로 옆에 있는데, 떡시루같이 바위가 포개있어 붙은 이름이다.
시루봉, 시루바위에서 60m 거리에는 문바위가 있다. 당연히 문을 닮아 붙인 이름일 테니, 문을 찾았다. 이정표 옆에 바위가 있기는 하나, 아무리 째려봐도 문이 아니다. 해서 혹시 다른 바위가 있나, 그 위에 올라서서 주위를 둘러보니, 저 앞에 거대한 바위가 있고, 유심히 살펴보니, 정상에서 내려온 밧줄도 있다. 해서 그 바위로 갈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니, 지금 올라선 바위를 따라 내려가야 했다. 당연히 배낭을 벗어 두고 핸드폰만 들고, 바위를 내려가니, 그 바위로 가기 위해서는 협곡을 건너야 하는데, 언제 부러질지 모를 마른 나무 밑동에 밧줄이 걸려있다. 확인차 몇 번 강하게 당겨도 멀쩡한 게 내 몸무게는 버틸 수 있을 거 같아 그 줄을 잡고 아래로 내려가, 협곡을 건넜다. 그리고 거대한 바위로 올라가며 보니, 굳이 밧줄이 없어도 올라갈 수 있으나, 시간 절약 차원에서 밧줄을 이용해 정상에 올랐다.
정상에서 문을 찾았으나, 없다. 물론 이 바위 자체가 문일 수도 있으나, 여기서는 확인할 방법이 없다. 아니면 내려온 바위를 여기서 보면 문으로 보일 수도 있어 뒤로 돌아봤으나, 아니다. 문이야 어쨌든, 올라선 암봉이 다른 봉우리보다 낮아 뒤로는 조망이 막혀있으나, 앞으로는 뻥 뚫려있어, 주변 경치를 감상하고, 이번 코스의 마지막 봉우리인 돌곶봉을 사진으로 남겼다. 그리고 바위에서 내려와, 정규 등산로로 돌아갈 때는 아예 밧줄을 사용하지 않고 암벽을 기어올라가, 기다리고 있던 배낭을 둘러메고, 마지막 봉우리를 향해 달렸다. 문바위 이정표에서 600m에 불과한데, 역시 한국의 산은 마지막까지 안심할 수 없다는 진리다! 마지막 깔딱이 지옥이다. 등산 앱이 고지에 도착했음을 음성이 알리는 걸 듣고서도 3분을 더 가서야 정상에 도착했다. 멀어서가 아니라, 급경사의 암릉이라 올라가는 게 쉽지 않았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정상에 도착한 시각이 2시 19분이다.
정상은 울창한 숲에 둘러싸인 헬기장으로 아무것도 보이는 게 없다. 오면서 분명 왼쪽으로 깃대봉부터 작은지붕에 이르는 능선을 봤는데, 안 보인다. 그때 돌곶봉 직전에서 본 전망대가 떠올랐다. 정상에서 다시 전망대로 돌아가, 먼저, 바위 앞에서 조망이 어떤가 봤으나, 아니다. 해서 바위를 기어올라갔다. 역시 예상대로다. 당연히 핸드폰의 카메라를 파노라마로 설정하고, 오늘 코스인 능선을 한 장의 사진에 담았다. 아쉬운 게 있다면 위치상 시루봉과 지금 서 있는 전망대와 붙어 있는 돌곶봉은 담지 못했다는 거. 기록을 다 남기고 다시 돌곶봉으로 돌아와 휴양림을 향해 진정한 하산을 시작해 내려가는데, 2시 32분에 문자가 도착했다는 알람이 울렸다. 해서 확인해보니, 10월 30일 엄청난 기대를 하고 있던, 무박 속리산 종주를 신청이 저조해 2023년 1월로 연기한다는 안내산악회 문자다. 보자마자 쌍욕을 뱉고, 핸드폰은 바로 집어넣었는데, 이 글 쓰며 위의 문자를 다시 보니, 10월 동대산도 취소한 전과가 있다!
이번 산행이 속리산 종주를 위한 몸만들기 성격이 강한데, 연기라니! 분명 아침에 신청자를 확인했을 때 성원을 넘었는데, 이상하다. 해서 바로 사이트로 들어가 신청자를 확인했다. 2시 34분 현재 반수가 넘은 16명이다. 문자를 받고 취소한 산꾼도 있을 거니, 문자 이전에는 그보다 많았을 거고. 10월 백두대간 동대산 구간 또한 신청이 저조하다는 이유로 취소했는데, 당시도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성원을 초과한 상태였다. 뭔가 다른 이유가 있다. 해서 곰곰이 생각해보니, 버스가 없다! 지난 낙무가도(가무낙도) 산행 때, 은퇴한 기사를 모셔온 버스 덕분에 산에서가 아니라 도로에서 죽을 뻔했는데[산행기], 그 연장선으로 보인다. 전국적인 행락 인파로 버스와 기사가 모자란다고 하더니, 확보한 버스를 돈이 되는 산행에 배정하고, 돈이 안 되는 산행은 취소하거나 연기한 거다. 욕이 안 나올 수 없는 상황이다. 와중에 하산길은 역시 한국산은 마지막까지 안심할 수 없다는 진리를 다시 깨우쳐준다. 급경사에 낙엽 쌓인 너덜에 가깝다. 어쨌든 휴양림에 도착하는 거로 사실상의 산행이 끝났다. 오후 2시 41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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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 마감 시각이 15시 50분, 비록 버스가 기다리는 날머리까지는 1km 이상 거리나, 마감까지 남은 시각은 1시간 10분 정도다. 많으면 1시간 정도, 적으면 40분가량의 하산주 시간이 주어졌다는 거다. 애초 과한 하산주가 아니라, 점심으로 컵라면을 먹었음에도 평소와 달리 배가 고파, 이전의 다른 산행과 달리 간단한 술과 함께 배를 채우는 정도가 목적이라, 남은 시간은 과히 중요하지 않았다. 고로 기록이 될만한 걸 사진으로 남기며, 유유자적 버스가 기다리는 화이트밸리를 목표로 내려갔다. 목표에 맞게 그 길목에서 당연히 휴양림에서 관리하는 시뻘건 단풍과 누가 쌓은 건지 의심스러운 돌탑 군락을 사진으로 남겼다. 물론 평소 좋아하는 길이나 모습은 아니나, 선택의 여지가 없다.
2시 44분경 휴양림 매표소를 지나, 핸드폰으로 연기된 속리산 종주 대안을 찾으며 내려가다가 고개를 들었는데, 바로 앞에 빨간 버스가 주차해 있는 게 보인다. 앞선 산꾼의 산행기에서 보거나, 안내산악회도 계획한 주차장이 아니다. 하지만 1km 가까이 아스팔트 포장도로를 따라 급경사를 내려가지 않아도 된다는 건 대단히 고마운 일로, 기대도 안 했는데, 평소 가지고 싶었던 걸 선물로 받은 기분이다. 산신이 준 선물이라 생각하며 버스로 향해 가는데, 주차장 입구에서 기사가 서성이고 있다. 과거 산행에서 몇 번 같이 했던 기사라 안면이 있어 서로 목례 후, 기사에게 '식당은?'이라고 물었다. 식당까지 거리와 영업 중이냐는 중의의 질문이다. '아래에 식당이 있기는 한데, 문을 안 열었다. 아예 문을 닫은 거 같다!!!'라는 실망스러운 답이 돌아왔다.
왠지 오늘따라 배는 고픈데, 식당은 없다. 이런 때를 대비해 비상식과 과일을 들고 다닌다. 해서 배낭을 들고 버스에 타서, 원래 내 자리 바닥에 배낭을 두고, 사과를 꺼냈다. 이후 옮긴 자리에서 양말까지 벗고 슬리퍼로 갈아 신었다. 그리고 사과, 칼, 핸드폰 등을 들고 버스에서 내려 휴양림 화장실로 향했다. 내가 아니라, 사과를 씻기 위해서. 그런데, 겉보기와는 달리 주차장 휴양림 화장실은 변기와 세면대가 하나다. 고로 선임자가 나와야 들어갈 수 있다. 그걸 모르고 문을 열고 들어갔다가, 미안하다고 사과하고 나왔다. 이제는 화장실 세면대의 대안을 찾아야 한다. 당연히 비록 가물어 물은 졸졸 흐르나, 저 앞에 보이는 내안골이다. 휴양림에서 계곡 출입 금지라는 경고문을 금줄에 매달았지만, 당장 죽게 생겼는데, 어쩌겠나? 계곡으로 내려가 사과와 발을 씻고 그 자리에 앉아서 사과를 먹었다.
위가 작아서인지, 사과 반쪽도 제대로 못 먹고, 계곡에서 나와 버스가 있는 주차장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주차장에 도착해 보니, 인솔 대장을 비롯해 대부분 등산객이 도착했는데, 인솔 대장은 미련이 남았는지 주변 식당에 계속 전화 중이다. 그 주인장의 답은 현재 병원이라는 거고. 데자뷔다. 얼마 전에 본 모습이다. 해서 내가 대장에게 식당을 찾기보다는 일찍 출발하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라고 했더니, 대장 왈 "그런데, 그게 쉽지 않습니다. 정말 발이 늦은 사람이 도착하려면 아직 멀었습니다!" 한다. 뭐 그렇다는 데야. 해서 좀 일찍 출발할 거라는 기대는 접고, 주차장을 빙 둘러 만든 바위 쉼터에 주저앉아, 남은 사과 반쪽을 먹었다. 물론, 다 못 먹고 나머지는 휴양림 음식물 쓰레기 통에 투척했지만.
사과를 먹은 후유증으로 손이 끈적거리는 걸 견디지 못해 화장실로 가 순서를 기다린 후 손과 목에 두르고 다니는 수건을 씻고 버스에 탔다. 그리고 가장 편한 자세로 자는 둥 마는 둥 하고 있는데. 인솔 대장이 바쁘게 움직이는 거 같더니, 버스가 출발한다. 와중에 정작 늦을 거라고 예상했던 등산객은 예상보다 일찍 도착해 버스에서 출발을 기다리고 있는데, 먼저 도착한 등산객이 사라지는 바람에 출발이 늦어지는 촌극이 있었으나, 공식 마감보다 10분가량 빨리 휴양림 주차장을 떠나 서울로 출발했다. 그렇게 출발한 산악회 버스는 5시 20분에 하행 때 들렸던, 정안 알밤휴게소에서 10분간 휴식했다. 딱히 볼일이 보고 싶은 건 아니나, 버스에서 내려 신선한 공기를 들이마시고, 화장실에 들른 후 바로 버스에 탔다. 다들 비슷한 심정이었는지, 모두 일찍 버스에 탑승해 휴식 시간 10분도 못 채우고 휴게소를 떠나, 7시 8분에 양재 국립외교원 앞에 승객을 내려주는 거로 이번 회문산행을 마감했다.
안내 산악회 계획대로 '덕치 치안센터 → 홍성문 대사 옛집 터 → 일중마을 갈림길 → 빨치산 교통호 → 깃대봉 → 천마봉 → 삼연봉 → 임도 → 회문산 역사관 갈림길 → 서어나무 갈림길 → 장군봉 갈림길 → 회문산 정상(큰지붕) → 작은지붕 → 헬기장 → 시루봉 → 문바위 → 돌곶봉 → 회문산자연휴양림 '의 10.65km(트랭글) 코스를 4시간 31분 동안 둘러봤다. 이동 4시간 15분, 휴식 16분!
규모에 비해 높이가 있는 산으로, 반드시 달려봐야 하는 산이다. 까만 소가 달리 100+ 산으로 추가한 게 아니다.
10km가 조금 넘는 코스에 이것저것 보는 재미가 있는 산이다. 물론 탁월한 조망은 더 말할 것도 없고!
아픈 현대사를 간접적으로 배울 수 있는 산이기도 하다.
홍성문 대사 덕분에 작은지붕에서 시루봉에 이르는 능선은 거의 공동묘지라 아쉬움이 남는 산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