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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ionship with God Only through an Organization
오직 조직을 통해서만 이루어지는 하나님과의 관계
This concept, one stressed with mesmerizing frequency, is essential for the maintenance of the kind of nearly total control that is so notable among Jehovah’s Witnesses. Again and again, Jehovah’s Witnesses are reminded that God does not deal with individuals apart from an organization. Consider the kind of argumentation employed to nurture this view in the minds of Witnesses. Note the first paragraph of an article on “Organization” appearing in the May 1, 1981, Watchtower: 이 조직 개념은, 꿈에도 생각날 정도로 빈번히 강조되며, 여호와의 증인들에게 필수적이고 절대적인 것으로 생각하게 하여 조직에 의해 통제받도록 철저히 주입된다. 여호와의 증인들은 하나님께서 조직과 분리하여 개인들을 대하시지 않는다는 사실을 거듭 상기받는다. 증인들의 마음속에 이러한 관점을 주입시키기 위해 채택된 논증의 예를 생각해 보자. 1981년 5월 1일자 파수대에 실린 "조직"에 관한 기사의 첫 항을 참고하면: |
STRANGELY, in this highly intelligent age, many have given way to doubt as to whether God has an organization. Some hesitate, yes, now fear to use the expression “God’s organization,” because they have noted that their translation of the Bible does not use the word “organization” in connection with God or at all. 고도로 지성적인 이 시대에, 이상한 일은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조직이 있다는 사실에 의문을 제기해 온 일입니다. “하나님의 조직”이라는 표현의 사용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있는 이유는 그들의 성서 번역 가운데 하나님과 관련해서 또는 다른 것과 관련해서도 “조직”이라는 말이 전혀 사용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
Recall, now, the points made in the August 22, 1978 Awake! magazine (page 4) about the power of propaganda (there applied to certain advocates of evolutionary beliefs): 이제, 1978년 8월 22일자 깨어라! 잡지(4면)에서 선전(진화론을 믿는 특정 옹호자들에게 적용)의 힘에 대해 말한 요점을 추려 보면: |
. . . even educated, sophisticated persons fall prey to a very unfair and untrue type of propaganda. This type assumes a superior air of dismissal of an opponent’s viewpoint, treating it as rather pathetic and really not worth attention. . . . supposedly intelligent people who know nothing about the theory believe it because “all intelligent people believe it.” . . . 그러나 교육을 받고 지성적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매우 편파적이며 사실과 맞지 않는 선전의 희생물이 된다. 이러한 형태의 선전은 반대자의 견해를 배척하는 우월한 태도를 가지며, 그것을 감상적인 것으로 취급하고 실제로 유의할 가치가 없는 것으로 다룬다. . . 그 이론에 대하여 아는 것이 없는 지성인이라고 하는 사람들은 “모든 지성인들이 그것을 믿”는다는 이유로 그들도 그것을 믿는다. |
Compare those valid points with the Watchtower paragraph just mentioned. It begins by presenting it as “strange” that “in this highly intelligent age” anyone should be disinclined to think of God’s family of heavenly and earthly sons in terms of an “organization”—the kind of organization that the Watch Tower Society advocates. If those words had appeared after evidence demonstrating that they had valid application, there could be no objection. But they are used before any such evidence, employed at the very onset of the discussion, and thus serve only one purpose: to bias the mind of the reader before the evidence is even considered. 깨어라! 에서 인용된 요점을 방금 언급한 파수대 문항과 비교해 보라. " 고도로 지성적인 이 시대에" 누구라도 "조직"이라는 관점에서, 즉 워치타워 협회가 옹호하는 일종의 조직이라는 측면에서, 천상의 그리고 지상의 아들들로 구성된 하나님의 가족에 대해 언급하기를 꺼려하는 것은 "이상한" 것이라는 말로 표현된다. 만약 그 문장이 실제의 유효한 적용이 있음을 제시하여 증거를 나열한 후에 언급했다면, 이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 문장은 어떤 증거를 제시하기 전에 먼저 주장되었고, 논의가 시작되는 부분에 채택되어, 증거를 고려하기 전에 독자의 마음을 편향시키려는 한 가지 목적만을 이루는 데 도움이 될 뿐이다. |
The article then goes on to represent such persons as in “fear” of even using the expression “God’s organization” simply because of its absence in the Scriptures. In this one paragraph we find examples of the use of a “red herring” to divert attention from the real issue and the substitution of a “straw man” for that true issue, combined with what amounts to an ad hominem attack, depicting anyone differing with the Watch Tower’s viewpoint as some kind of anomaly in an intelligent age. This article, as also a Watchtower article preceding it, was based on a talk given by the president of the Watch Tower Society at the annual corporation meeting on October 1, 1980. (This was only a few months after the considerable upheaval that took place at the headquarters in the spring of that year, with the organization disfellowshiping certain staff members, including Edward Dunlap, a longtime and prominent member of the writing staff and former Registrar of the Watch Tower School of Gilead, as well as producing the Governing Body session that resulted in my resignation from that Body.) The president began his talk to the gathered corporation members by saying: 이어 이 기사는 성경에 없다는 단순한 이유로 '하나님의 조직'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것조차 꺼려하는 사람들을 대변하여 설명한다. 이 항에서 우리는 "빨간 청어"를 사용하여 실제 이슈로부터 주의를 돌리게 하고, 그 진정한 이슈에 대해 "허수아비"로 대체하는 예를 볼 수 있는데, 이는 에드호미넴(인신 공격)에 해당하는 오류와 결합되어, 워치 타워의 관점과는 관점을 달리하는 사람을, 지적 시대를 살아가는 어떤 변칙적인 종류의 사람으로 묘사하고 있다. 이 글 역시 그에 앞서 나온 파수대 기사로서, 1980년 10월 1일 연례 법인 회의에서 워치타워 협회장이 한 강연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이것은 그해 봄, 본부에서 일어난 상당한 격변 이후 불과 몇달 후, 조직에서 오랫동안 탁월한 집필진이자 길르앗 선교학교의 교무주임이었던 에드워드 던랩을 포함하여 내가 본부에서 사임하게 된 통치체 회기들을 제작했던 직원들을 제명시킨 사태가 있었다.) 협회장은 모인 법인 인사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면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
Now, the word “organization” has been pointed out to us as not occurring in the inspired Holy Scriptures, the Bible. And you can consult any translation that you want, any of the modern translations, and you will find that that term “organization” is lacking. So, in view of that fact, why—what right have you and I to say that God has an organization? Now that’s the big question that has been thrown up for discussion in recent months and it certainly deserves an answer, straightforward from the facts of the case. 지금까지, 우리에게 '조직'이라는 단어는 영감 받은 성경인 바이블에서는 나타나지 않는 것으로 지적되어 왔다. 그리고 여러분이 원하는 어떤 번역본에서도, 어떤 현대 번역본에서도, 여러분은 "조직"이라는 용어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따라서, 그 사실에 비추어 볼 때, 왜—여러분과 내가 하나님이 조직을 가지고 있다고 말할 근거가 있는가? 이러한 이슈가 최근 몇달 동안 논의하기 위해 던져진 큰 문제였으며, 그 논의는 확실한 해답을 얻을 가치가 있었다. 이제 이 사례와 관련된 사실로부터 직접적인 실마리를 찾을 수 있었다. |
A straightforward answer based on the facts of the case would indeed have been refreshing. The fact is, however, that the true issue, the big question in the minds of many of Jehovah’s Witnesses was not the one the president presented. The one presented in his introduction amounts to a classic example of a “straw man.” Neither I nor Edward Dunlap nor any of the others that I know were primarily or particularly concerned about the appearance or nonappearance of the word “organization” in the Bible. And that is not the concern of numerous other Witnesses or former Witnesses right now. They are not concerned about whether it is allowable or proper to use the term to describe God’s arrangement for his servants in heaven and on earth. They do not challenge anyone’s “right” to do so. What does concern them are the claims of allembracing authority, of elevated superiority, and demands for unquestioning acceptance and submission, that are voiced by the Brooklyn-based Watch Tower organization. They are concerned about the claim that Christ Jesus, the head of the congregation, purposed and has guided the development of a highly structured organization with successive grades of authority positions, leading through bodies of elders to circuit overseers, district overseers, branch committee members and terminating at the international seat of organizational authority, the Governing Body. They are concerned about the Scriptural validity of all these organizational claims, but particularly the claim that membership in, and subordination to, such organization is an absolute essential if one is to have a relationship with God and Christ. 사건의 진상을 바탕으로 한 솔직한 답변이 참으로 신선했을 것이다. 그러나 사실은 많은 여호와의 증인들의 마음 속에 있는 참된 문제, 큰 의문점을 협회장이 제시한 것은 아니었다. 그의 서론에서 제시된 것은 전형적인 "허수아비 공격"의 예에 해당된다. 나나 에드워드 던랩이나 내가 아는 다른 어떤 사람들도 성경에서 "조직"이라는 단어의 출현이나 비출현에 대해서 주로 관심을 가지거나 또는 특별히 관심을 갖지 않았다. 그리고 그것은 현재 많은 증인이나 이전 증인들의 관심사가 아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하늘과 땅에서 그의 종들을 위해 마련하신 것을 묘사하는 조직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이 허용될 수 있는지 아니면 적절한지에 대해 관심을 가진 것이 아니다. 그들은 그렇게 하겠다는 "권리"에 도전하지 않는다. 그들이 우려하는 것은 모든 것을 포괄하려는 권위, 높아진 우월성, 그리고 브루클린에 본부를 둔 워치타워 조직에 의해 제기되는 무조건적인 수용과 복종에 대한 요구이다. 그들은 회중의 머리이신 그리스도 예수께서, 장로회로부터 시작하여 순회 감독자, 지역 감독자, 지부 위원 그리고 국제적 권위를 지닌 통치체에 이르기까지 연이은 직급으로 고도로 구조화된 조직의 발전을 도모하고 지도했다는 주장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 그들은 이러한 모든 조직적 주장의 성서적 타당성에 대해서 의문을 가질 수 있지만, 특히 하나님과 그리스도와 관계를 가지려면 그러한 조직에 소속되어 종속되어야 한다는 것이 절대적이고 필수적인 조건이라는 데 대해 의문을 가지고 있다. |
Thus the question is not whether the mere term “organization” is good or bad in itself, acceptable or unacceptable. It is whether the Watch Tower’s organizational concept and approach and control and spirit conform to the teachings of Christ Jesus and are representative of the Christian congregation as established in the first century. They may also be concerned about the close parallel they see between this authority structure, with its exceedingly strong emphasis on human authority, and the developments which religious history reveals as taking place during the second and third centuries of the Common Era, the period Watch Tower publications present as a time of initial apostasy from primitive Christianity. 따라서 '조직'이라는 단순한 용어 자체가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 또는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인지 아닌지에 대한 의문이 아니었다. 워치타워 조직의 개념과 통제의 영이 그리스도 예수의 가르침에 부합하고 1세기에 세워진 그리스도인 회중을 대표할 수 있는 흐름인가 하는 것이 이슈이다. 또한 워치타워 출판물들이 최초로 배도가 일어난 시대로 제시하는 기간인 기원 2세기와 3세기에, 인간의 권위를 극도로 강조하는 종교 역사에서 일어난 것으로 보이는 권위 구조와의 밀접한 유사성에 그들은 우려했을 지도 모른다. To ignore this concern is to ignore the real “facts of the case,” facts which the president’s talk never faced, never answered, either straightforwardly or otherwise. By making the mere absence of the word “organization” in the Bible take on the appearance of being the fundamental question, the real issue was simply sidestepped. This is the setting up of a convenient “straw man” that is much easier to attack than the real points at issue. 이런 우려를 무시하는 것은 협회장의 대화가 직설적이든 그렇지 않든, 전혀 대답하지 않고 어물쩍 넘어가버린, 진짜 '일어났던 문제점'을 무시하는 것이다. 성서에 '조직'이라는 단어가 없는 것이 근본적인 질문이라는 외관을 전제함으로써, 실제의 이슈는 그냥 비켜나갔다. 실제 문제의 쟁점보다 훨씬 공격하기 쉽고 편리한 '허수아비'를 세워 공격한 것이다. The Watchtower article referred to follows the same path. It offers no proof that anyone is actually in “fear” of using the phrase “God’s organization.” It simply asserts it. It makes no acknowledgement that persons could possibly have weighed matters intelligently in the light of Scripture and have come to a courageous—not fearful—decision that they could not conscientiously go along with what they considered authoritarian practices, even though that decision meant facing painful difficulty. “Straw men” are much more easily dealt with than real persons and in the same way artificial issues are easier to argue against than genuine ones. Persons depicted as out of step with a “highly intelligent age” are less likely to be taken seriously compared with those presented as ‘wise enough’ to follow the organizational norms being advanced. Few would want to accord any merit to the course of persons depicted as ‘hesitant’ and ‘fearful’ overa point of quite minor importance. At the end of the same May 1, 1981 Watchtower magazine, a “Question from Readers” (also based on the president’s talk at the annual corporation meeting) takes up this same issue, as can be seen here: 파수대 기사도 마찬가지의 경로를 따른다. 누가 실제로 '하나님의 조직'이라는 문구를 사용하기를 '꺼려'하는지에 대해 어떤 예나 증거도 제시하지 않는다. 단지 그 사실을 주장할 뿐이다. 사람들이 성경에 비추어 문제를 현명하게 저울질하고, 비록 그 결정이 고통스러운 어려움에 직면하는 것을 알았음에도 불구하고, 권위주의적인 관행을 양심적으로 따를 수 없다는 용기 있는 결정을 그들이 내렸을 수도 있다는 사실은 인정하지 않는다. "허수아비"는 실제 사람보다 훨씬 더 쉽게 다룰 수 있으며, 마찬가지로 인위적인 이슈는 진짜 이슈보다 논쟁하기 쉽다. "고도로 지성적인 시대"와 보조가 맞지 않는 것으로 묘사된 사람들은 선진화된 조직 규범을 따를 만큼 충분히 현명하다고 제시된 사람들에 비해 심각하게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적다. 아주 사소한 중요성에 대해 '망설이거나' '꺼려하는' 것으로 묘사되는 사람들의 행태에 어떤 장점을 부여하고 싶어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1981년 5월 1일 같은 파수대 잡지의 말미에 나와 있는「독자의 질문」에서(또한 연차 법인 회의에서 협회장의 강연을 근거로 삼는다)이 문제를 다룬다: |
● Since the word “organization” does not occur in the Bible, even in its original languages, what right do we have to say that God has an organization or to speak of God’s organization? ● 성서에 심지어 그 원어에도 “조직”이라는 단어가 나오지 않는데 우리가 하나님께서 조직을 가지고 계시다고 말하거나 하나님의 조직을 이야기할 권리가 어디 있는가? A modern Hebrew word for “organization” is the noun ir·gunʹ. It is drawn from the Hebrew verb e·ragʹ, which means “to arrange in line,” as well as “to follow.” Correspondingly, an organization is an arrangement of things. (For an example of this, one can refer to “Things in Which It Is Impossible for God to Lie,” chapter 17, paragraph 28, in the Hebrew edition.) “조직”이라는 현대 ‘히브리’어 명사는 ‘이르군’입니다. 이 말은 ‘에라그’라는 ‘히브리’어 동사에서 유래한 것인데, “줄로 세우다” 그리고 “따르다”를 의미합니다. 따라서 조직이라는 말은 사물의 배열을 의미합니다. (이의 한 예로 「하나님이 거짓말하실 수 없는 사실」 제17장 28항 ‘히브리’어 판을 참조할 수 있다.) The Hebrew language has another word equivalent for “organization,” namely, histadruthʹ. This word is based upon a word that is found in the original Hebrew Scriptures. The basic or key letters in the word histadruthʹ are s and d and r. With these three consonants is built up the Hebrew verb sadarʹ, which means, basically, “to arrange in order,” thus producing an arrangement. The reflexive form of the verb sadarʹ serves as the basis for the noun histadruthʹ, which means “organization.” ‘히브리’어에는 “조직”에 해당하는 또 다른 말로 ‘히스타드루드’라는 말이 있읍니다. 이 말은 원 ‘히브리’어 성경 가운데 나오는 단어에 기초를 두고 있읍니다. ‘히스타드루드’라는 말의 기본 혹은 주요 글자는 ㅅ(S)과 ㄷ(d)과 ㄹ(r)입니다. 이 세 자음으로써 ‘히브리’어 동사 ‘사다르’라는 말이 되며, 그것은 근본적으로 “차례대로 세우다”를 의미하며 그리하여 배열이 나오게 됩니다. 재귀 형태의 동사 ‘사다르’는 “조직”이라는 뜻의 명사 ‘히스타드루드’의 기초 역할을 합니다. Although we do not find this word in the inspired Hebrew Scriptures, we do find the related Hebrew noun seder in Job 10:22. There this noun is used in the plural number, being spelled sʽdarimʹ. The English Revised Version renders Job 10:22 as follows: “A land of thick darkness, as darkness itself; A land of the shadow of death, without any order [sʽdarimʹ], And where the light is as darkness.” (Also, Authorized Version; Young’s Literal Translation.) The New World Translation here reads: “To the land of obscurity like gloom, of deep shadow and disorder [lo sʽdarimʹ], where it beams no more than gloom does.” (Also, Rotherham’s The Emphasised Bible.) Disorder, without any order, here would mean a lack of arrangement, a disorganized state. 영감받은 ‘히브리’어 성경 가운데서 이 단어를 발견할 수 없기는 하지만 욥기 10:22에 이와 관련된 ‘히브리’어 명사 ‘세데르’가 나옵니다. 이 귀절에서 이 명사가 복수로 사용되어 ‘스다림’으로 철자가 되어 있읍니다. ‘공동 번역’은 욥기 10:22을 이렇게 번역하였읍니다. “그믐밤같은 어둠이 깔리고 깜깜한 가운데 온통 뒤죽박죽이(‘로스다림’) 된 곳, 칠흑같은 흑암만이 빛의 구실을 하는 곳으로 갑니다.” (또한 ‘로더함’의 강조된 성서) 질서가 없는 뒤죽박죽이 된 상태는 배열되지 않은, 조직되지 않은 상태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To this day the Jews use the word seder. A seder is part of the Jewish Mishnah. Under the word “Mishna,” M’Clintock and Strong’s Cyclopædia says: “The Mishnah is divided into six parts (. . . , Sedarim, arrangements), which contain 62 treatises . . . and 514 chapters . . . The latter, again, are divided into numbered sections.”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유대’인들은 ‘세데르’라는 말을 사용합니다. ‘유대 미쉬나’를 ‘세데르’로 구분합니다. “미쉬나”라는 단어하에 「‘매클린톡’과 ‘스트롱’ 공편 사전」은 이렇게 설명합니다. “‘미쉬나’는 여섯 부분(···, ‘세다림’, 배열)으로 나뉘어 있다. 거기에는 62개 논설이 들어 있고 ··· 514장이 들어 있으며 ··· 후자는 다시 숫자로 세분되어 있다.” So in the original Hebrew Bible the word for “order” or “arrangement” is to be found. Emphasizing the needs for order and arrangement in the Christian congregation, the apostle Paul wrote to the Christians in Corinth: “For God is not a God of confusion, but of peace; as in all the churches of the saints. But let all things be done decently and in order [Hebrew translations: sʽdarimʹ nʽkhonimʹ].” (1 Cor. 14:33, 40, English Revised Version; Authorized Version) This apostolic counsel of the first century applies with equal force today to all congregations of the Christian witnesses of Jehovah. The apostle Paul wrote in the common Greek of the day, and the Greek word for “organization” is or·ganʹo·sis. The root for this word is erʹgon, a word meaning “work” that is found repeatedly in the Christian Greek Scriptures. 그러므로 원 ‘히브리’어 성서 가운데는 “질서” 혹은 “배열”이라는 말이 들어 있읍니다. 그리스도인 회중 내에 질서와 배열의 필요성을 강조하여 사도 ‘바울’은 ‘고린도’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이렇게 편지하였읍니다. “하나님은 무질서의 하나님이 아니라 평화의 하나님이십니다. 모든 일을 적절하게 또 질서있게(‘히브리’어 번역판, ‘스다림 응코님’) 진행시키기를 바랍니다.” (고린도 전 14:33, 40, 새번역) 제1세기의 이 사도의 교훈은 오늘날 여호와의 그리스도인 증인들의 모든 회중에게도 똑같이 적용됩니다. 사도 ‘바울’은 그 당시 사용되던 공통 그리스어로 기록하였으며, “조직”이라는 그리스어는 ‘오르가노시스’입니다. 이 단어의 근원은 ‘에르곤’이며, “일”이라는 뜻의 이 단어는 「그리스도인 그리스어 성경」 가운데 반복적으로 나옵니다. All things considered in the light of the Scriptures, it is straining the point to argue that God has no organization in view of the fact that the original words meaning “organization” in ancient languages do not occur in the inspired Hebrew and Greek Scriptures. In everything God demonstrates that he has the ability to organize. What would happen if he did not organize his obedient creatures? As a structure an organization is a body of intelligent persons who are brought together and arranged so as to work peacefully and harmoniously together in carrying out a common purpose, the purpose of the organizer. 성경의 빛으로 모든 것을 고려할 때, 영감받은 ‘히브리’어와 그리스어 성경 가운데 고대 언어로 “조직”을 의미하는 원어가 나오지 않는다는 사실로 하나님께서 조직을 가지고 계시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것은 무리입니다. 하나님께서 전시하신 만물은 그분에게 조직력이 있음을 나타냅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자기의 순종적인 피조물들을 조직하시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 것입니까? 하나의 구조물로서, 조직이란 평화스럽고 조화롭게 공동 목적, 조직자의 목적을 함께 수행하도록 함께 모아져서 배열된 지성적인 사람들의 단체입니다. In line with this fact, God is repeatedly called “Jehovah of armies.” An army is an organized body of troops. So, in support of the truth that God has an organization, we read the following exhortation addressed to his organization: “Bless Jehovah, O you angels of his, mighty in power, carrying out his word, by listening to the voice of his word. Bless Jehovah, all you armies of his, you ministers of his, doing his will. Bless Jehovah, all you his works, in all places of his domination.” (Ps. 103:20-22) Jehovah had an organization of heavenly spirit creatures before ever he created our earth and put man upon it. 이러한 사실과 일치하게 하나님은 거듭 거듭 “만군의 여호와”라고 칭해집니다. 군대란 군인의 조직된 단체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하나의 조직을 가지고 계신다는 진리를 지지하여 우리는 자기 조직에게 다음과 같은 훈계를 하신 것을 읽을 수 있읍니다. “능력이 있어 여호와의 말씀을 이루며 그 말씀의 소리를 듣는 너희 천사여 여호와를 송축하라. 여호와를 봉사하여 그 뜻을 행하는 너희 모든 천군이여 여호와를 송축하라. 여호와의 지으심을 받고 그 다스리시는 모든 곳에 있는 너희여 여호와를 송축하라.” (시 103:20-22) 여호와께서는 우리의 지구를 창조하시고 그 위에 사람을 두시기 훨씬 전에 하늘의 영적 피조물들로 이루어진 조직을 가지고 계셨읍니다. Against various backgrounds God uses figures of speech to refer to his organization. The first case of this is in Genesis 3:15, where God speaks of his celestial spiritual organization as “the woman,” in opposition to “the serpent,” a figure of speech denoting Satan the Devil. (Compare Genesis 3:14; Revelation 12:9.) This rebel against God has imitated him and built up an organization against God’s organization, God’s figurative “woman.” 여러가지 배경과 대조하여 하나님께서는 자기의 조직을 빗대어 말씀하십니다. 이러한 첫째 경우가 창세기 3:15에 나옵니다. 여기에서 하나님께서는 자기의 하늘의 영적 조직을, ‘사단’ 마귀를 비유한 “뱀”의 반대인 “여자”로 말씀하십니다. (비교 창세 3:14; 계시 12:9) 하나님을 대항한 이 반역자는 하나님을 모방하여 하나님의 비유적인 “여자”인 하나님의 조직을 대항하는 하나의 조직을 세웠읍니다. |
Having started with a question implying that some persons were challenging the very “right” to speak of “God’s organization,” note the similar way the material distorts the issue in saying: 일부 사람들이 '하나님의 조직'이란 용어를 언급할 수 있는 바로 그 '권리'에 도전하고 있다는 것을 암시하는 질문으로 시작했던 이 자료도 다음과 같이 말하면서 이 문제를 왜곡시키고 있다는 점에 유의하라: |
All things considered in the light of the Scriptures, it is straining the point to argue that God has no organization in view of the fact that the original words meaning “organization” in ancient languages do not occur in the inspired Hebrew and Greek Scriptures. 성경의 빛으로 모든 것을 고려할 때, 영감받은 ‘히브리’어와 그리스어 성경 가운데 고대 언어로 “조직”을 의미하는 원어가 나오지 않는다는 사실로 하나님께서 조직을 가지고 계시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것은 무리입니다. |
This of course immediately casts those questioning organizational claims in a poor light, as people who ‘strain at points.’ Yet the very thing they are here said to do is presented in a totally different light in a statement in the July 15, 1957, issue of the Watchtower. An article titled “The Holy Spirit—Third Person of Trinity or God's Active Force?” contains this expression (page 431): 물론 이것은, 빈약한 빛에 의존하여 조직이 있다는 사실을 주장하는 데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을 '안간힘을 쓰는 사람들'로 즉시 몰아버린다. 그러나 그들이 여기서 사용 하는 바로 그 논리는 1957년 7월 15일자 파수대에서 발표한 내용에서 전혀 다른 시각으로 제시되고 있다. "성령—" 삼위일체의 제 3위인가 하나님의 활동력인가?"이라는 제목의 기사에는 다음과 같은 표현이 포함되어 있다(431쪽): |
If the holy spirit is equal with Jehovah God, as claimed by the Athanasian Creed, and if the trinity is the central teaching of the Christian religion, as claimed by The Catholic Encyclopedia, should we not expect these things to be plainly stated in so many words in the Bible? And should this not especially be the case in view of the fact that it is stated that the trinity teaching is “of all revealed truths” “the most impenetrable to reason,” and yet salvation depends upon its acceptance? The fact that the Word of God does not explicitly mention, explain or teach a trinity is in itself strong proof that the trinity teaching is false. 아타나시어스 신조가 주장한 대로 성령이 여호와의 하나님과 동등하고, 삼위일체가 가톨릭 백과사전이 주장한 대로 기독교 신앙의 중심 가르침이라면 이런 것들이 성경에 그것을 나타내는 단어로 어느 정도 명기되기를 기대해서는 안 되는 것인가? 그리고 삼위일체 가르침은 "모든 밝혀진 진리 중에서" "이성으로 가장 이해할 수 없는 것"이라고 명시되어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원은 그 교리를 받아들이는 데에 달려 있다는 사실에 비추어 볼 때 특별히 이 교리와 관련된 단어가 성서 가운데 있어서는 안 되는 것인가? 하나님의 말씀이 명시적으로 삼위일체를 언급하거나 설명하거나 가르치지 않는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삼위일체 가르침이 거짓이라는 강한 증거다. |
There is an appeal to logic in the argument presented. Consistently, however, one could rephrase this Watchtower statement as follows: 제시된 주장에는 논리에 호소력이 있다. 그러나 이 파수대의 앞 진술을 일관성 있게 다음과 같이 바꾸어 말할 수 있다: |
If the kind of highly structured organization found among Jehovah’s Witnesses today is produced by Jehovah God, as claimed by the Governing Body, and if it is God’s sole channel on earth, as claimed by the Watchtower, should we not expect these things to be plainly stated in so many words in the Bible? And should this not especially be the case in view of the fact that it is stated that to reject the organization’s directives or its teachings is to rebel against God, and that salvation depends upon adherence and submission to that organization? The fact that the Word of God does not explicitly mention, explain or teach such kind of organization is in itself strong proof that the teaching about such an organization is false. 오늘날 여호와의 증인 가운데서에서 발견되는 일종의 고도로 구조화된 조직이 통치체의 주장대로 여호와의 하나님께서 만들어 내셨다면, 그리고 파수대가 주장하는 것처럼 지구상에 하나님의 유일한 통로라면, 우리는 이러한 것들이 성경의 말씀으로 어느 정도 명기되기를 기대해서는 안 되는가? 그리고 조직의 지시나 그 가르침을 거부하는 것은 하나님에 반항하는 것이며, 구원은 그 조직에 대한 집착과 복종에 달려 있다고 파수대에 명시되어 있다는 사실을 볼 때 특별히 이런 용어가 성경에 명시되어서는 안 되는가? 하나님의 말씀이 그러한 조직을 명시적으로 언급하거나 설명하거나 가르치지 않는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그러한 조직에 대한 가르침이 거짓이라는 강한 증거다. |
The argumentation is the same, parallel, founded on the same principles and premises. Evidently when used toward sources outside the organization it is acceptable; when applied within the organization it is not acceptable. 논증의 방법은 동일하고 평행적이며, 동일한 원칙과 전제에 기초한다. 조직 외부의 자료에 대해 사용될 때 그 논증은 분명히 옳은 것이 되고, 조직 자체에 적용하면 왜 받아들여질 수 없는가? It is easy to be overwhelmed by the sheer number of words in lengthy explanations. Refer again to the “Questions from Readers” material and its first five paragraphs, covering the better part of a page. This material, forming the bulk of the reply to the “loaded” question presented, is filled with technical explanations about Hebrew and Greek terms. It does little to clarify the issue but should impress the reader with the superior scholarly knowledge of the writer.13 The reader, finding it hard to see just what the relevance of these points is, may well assume that this is due to his own inferior knowledge or education.14 The effect is intellectual intimidation. 자세한 설명에 들어 있는 많은 단어의 수에 압도되기 쉽다. 그 면(page)의 가장 핵심 부분을 다루는 "독자로부터의 질문" 내용과 그 첫 다섯 단락을 다시 참고해 보라. "실려있는" 질문 제시에 대한 답변의 대부분을 구성하는 이 자료는 히브리어와 그리스 용어에 대한 설명이 기술적으로 채워져 있다. 그것은 문제를 명확히 하는 데는 거의 도움이 되지 않지만 저자의 우수한 학술적 지식으로 독자에게 깊은 인상을 줄 수 있다.13 이러한 점들의 관련성을 정확히 알기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된 독자는 이것이 자신의 열등한 지식이나 교육 때문이라고 추정할 것을 충분히 예상 할 수 있다.14 그 효과가 바로 "지적 위협"인 것이다. In reality, what is said in these complex five paragraphs could be simply and succinctly summarized thus: 실제로, 이 다섯 문단에서 말하는 것은 다음과 같이 단순하고 간결하게 요약될 수 있다: |
An organization is an orderly arrangement. 조직은 질서를 정연하게 하기 위한 방식이다. Though there is a Hebrew word for “organization” it does not appear in the Bible, but the Hebrew word for “order” or “arrangement” does. (Job 10:22) 히브리어로 "조직"이라는 단어가 있지만 성서에는 나타나지 않으며, 히브리어로 "질서"나 "마련"이라는 단어가 있다. (욥 10:22) There should be order and arrangement in the Christian congregation. (1 Corinthians 14:33, 40) 그리스도인 회중에는 질서와 마련이 있어야 한다.(고린도전서 14:33, 40) There is a Greek word for “organization” but this does not appear in the Bible either, though the root from which it is drawn does appear often. '조직'이라는 그리스어 단어가 있지만, 성서에 이 단어가 역시 등장하지 않는데, 비록 그 단어의 근원이 되는 뿌리는 가끔 사용된다. |
Granted, that is not very impressive, yet it puts in simple, understandable form what is actually said in all those intricately worded five paragraphs. Whether there should be order and arrangement in the Christian congregation was never at issue. The material sidesteps the true issue and does not provide evidence in support of the development of an ecclesiastical authority structure such as is found in the present-day organization of Jehovah’s Witnesses—the genuine issue in question. 물론, 이것이 그다지 인상적이지는 않지만, 이 미묘한 다섯 개의 문단에 실제로 말하고자 하는 것을 간단하고 이해할 수 있는 형태로 표현했다는 것은 인정된다. 그리스도인 회중에 질서와 마련이 없어도 되는지를 결코 쟁점으로 삼지 않았다. 그 자료는 참된 문제를 비켜나가고, 의문이 제기될 수 있는 순수 쟁점인 여호와의 증인 현대 조직에서 나타나는 것과 같은 종교 권위 구조의 발전을 뒷받침하는 증거를 제공하지 않는다. It is a good practice, then, to reduce any lengthy argument down to simply stated basic points, perhaps even list these on a paper if necessary to see if they really “stack up” to a valid argument. It is good to ask, not only what is explained but what is not explained. The material quoted, for example, does not explain why, in view of the acknowledged absence of the term “organization” in the Bible, the Watch Tower publications continually use it as the term of choice, why, in referring to the worldwide association of Witnesses they do not prefer to give primary emphasis to terms the Bible does use, such as “congregation” or “household [of God],” “association of brothers,” terms found in their own New World Translation, rather than lay such constant and heavy stress on the non-Biblical term “organization.” Does not this indicate that the real issue is—not the mere use of a term—but organizational authority and its proper extent? The Biblical terms do not lend themselves well to the enormous stress laid on human authority. 그렇다면, 긴 논증을 다섯 가지로 언급된 기본 사항으로 단순하게 줄이는 것이 좋은 방법이며, 아마도 그들이 유효한 논점을 "정리"하기 위해 필요하다면 그것들을 서류상에 기재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설명되어 있는 것뿐만 아니라 설명되어 있지 않은 것도 질문으로 올리는 것이 좋다. 예를 들어 인용된 자료에서 성경에 "조직"이라는 용어가 없다는 사실이 인정된 것을 볼 때 워치타워 출판물이 그것을 계속해서 선택의 용어로 사용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왜 전세계적인 증인들의 연합을 언급할 때 "회중"이나 "[하나님의] 전"과 같이 성서가 사용하는 용어에 일차적으로 중점을 두지 않는지 설명하지 않는다. 비성서적 용어인 "조직"에 이처럼 지속적이고 무게 있는 강조를 하기 보다는, "하나님의 전", "형제들의 연합"이라는 용어는 자체 번역본인 신세계 역에서 볼 수 있다. 이는 단지 용어의 사용이 아니라 조직의 권위와 그 권위의 적절한 범위가 어떠해야 할 지를 나타내지 않는가? 성서 자체에 나타나는 이러한 용어는 인간의 권위에 엄청난 강조를 하기에는 결코 어울리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At times a single word or phrase is inserted early in the presentation of an argument, one that actually represents a value judgment, a judgment that is not left to the reader to make on the basis of evidence, but which is made for him. As Logic and Contemporary Rhetoric (page 10) says, one word “can be used to slant the viewpoint of a whole article and put the reader into a frame of mind receptive to the writer’s message. The fact that only one word was used to do the job makes it all the harder to detect the fallacy.” In the Watchtower of February 15, 1989, for example, when discussing the account in Acts chapter fifteen and the visit of Paul and Barnabas to Jerusalem to settle the issue of circumcision and lawkeeping, the article (page 19) starts off by saying: 때때로 주장을 내세우는 진술의 첫 머리에 하나의 단어나 구절이 삽입되기도 하는데, 그것은 실제로 가치 판단을 나타내는 것으로서, 증거에 근거하여 독자에게 판단되도록 남겨진 것이 아니라, 주장하고자 하는 자체를 강조하기 위해 그렇게 한 것이다. <논리학과 현대 수사학>(10면)이 말하듯이, 한 단어는 "전체 기사의 관점을 기울게 하여 독자로 하여금 작가의 메시지를 수용하도록, 마음의 틀을 만드는데 사용될 수 있다. 그 일을 하는 데 한개의 단어만 사용되었다는 사실이 그 오류를 발견하는 것을 더욱 어렵게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1989년 2월 15일의 파수대에서는 사도행전 15장을 논의하면서 할례와 율법을 지키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바울과 바나바가 예루살렘으로 방문했을 때 다음과 같은 말로 기사(19쪽)가 시작된다: |
The apostles and older men in Jerusalem (obviously recognized as a governing body in the early Christian congregation) carefully examined the spirit-inspired Scriptures and reviewed how holy spirit had directed things over the previous 13 years.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과 장로들은(초기 그리스도인 회중의 통치체로 분명히 인정됨) 영에 의해 영감받은 성경을 자세하게 살피고 성령이 지난 13년 동안 어떻게 상황을 이끌어는지를 살펴보았다. |
Notice the word “obviously.” It represents a value judgment and serves one purpose: to condition the reader’s mind in favor of the claim that follows. The fact that there was a council held on a single occasion at Jerusalem certainly does not prove that a “governing body,” a centralized administrative group, functioned there. As has been shown in Chapter 3, the primary reason for Paul and Barnabas’ going to Jerusalem was because the problem originated there. (See Acts 15:1, 2, 23, 24; compare Acts 21:15, 20.) In the paragraph preceding this quoted passage, reference is made to a “central teaching body” at Jerusalem. Again there is nothing in Scripture indicating that Jerusalem was the seat of any such “central teaching body.” All of the Christian Scriptures with the exception of the letter of James (and, possibly, the gospel of Matthew) were evidently written elsewhere. There is nothing, not the slightest evidence that Paul, Peter, John or anyone else submitted their writings to some “central teaching body” for approval or were in any way subject to the governance of such a body. "분명히"라는 단어에 주목하자. 그것은 가치판단을 나타내며 한 가지 목적을 제공한다: 다음과 같은 주장을 지지하여 독자의 마음을 조종하는 것이다. 예루살렘에서 단 한번총회가 열렸다고 해서, 중앙집권적 행정조직인 '통치체'로서 그 기능을 했다는 것은 분명히 아니다. 3장에서 보았듯이 바울과 바나바가 예루살렘으로 간 주된 이유는 그 곳에서 문제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사도행전 15:1, 2, 23, 24; 21:15, 20을 참조하라.) 이 인용된 구절 앞 단락에서 예루살렘의 "중앙 교단"이라는 용어를 언급한다. 다시 강조하지만, 성경에 예루살렘이 어떤 "중앙 교단"의 위치였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야고보의 편지(그리고 아마도 마태의 복음서)를 제외한 모든 그리스도인 성경은 분명히 예루살렘이 아닌 다른 곳에서 쓰여졌다. 바울, 베드로, 요한 또는 그 밖의 어떤 사람도 자신의 글을 어떤 '중앙 교단'에 승인을 받기 위해 제출했거나 어떤 식으로든 그러한 기구의 통제를 받고 있었다는 증거는 조금도 없다. |
The initial article of the earlier-mentioned May 15, 1981 series on “Organization” contains a typical example of suppression of unfavorable evidence. On analysis, the overall effect and thrust of the material is a diminishing of the importance of a personal relationship with God and an elevation of the concept of organizational loyalty. The article is titled “Which Organization—Jehovah’s or Satan’s?” and its theme text is from Joshua 24:15. Notice how the material manipulates that text to fit the concept being developed: 앞서 언급한 1981년 5월 15일자 파수대 기사 '조직' 시리즈의 첫 기사에는 불리한 증거를 가리워버리는 전형적인 예가 수록되어 있다. 분석해 본다면, 그 자료의 전반적인 영향과 요지는 하나님과의 개인적 관계의 중요성을 감소시켜버리고 조직에 대한 충성 개념을 높이는 것이다. 그 기사의 제목은 "여호와의 조직 혹은 ‘사단’의 조직—어느 쪽인가? 주제의 성경본문은 여호수아 24장 15절이다. 해당 성경 본문을 이 자료에서 발전시키고자 하는 개념에 맞추어 어떻게 조작하는지 주목하라: |
“Choose for yourselves today whom you will serve.”—Josh. 24:15 “너희 섬길 자를 오늘날 택하라.”—여호수아 24:15 1TODAY the choice is between the two biggest organizations in existence. Historically, this is nothing new, but today the need for making the right choice is more urgent than ever before. Two thousand years ago a historical person, whose decision on the question would carry the greatest consequences for all the universe, was faced with the need to make such a choice. 2 Two witnesses to this fact, two searchers for the historical facts, namely, Matthew Levi, a former tax collector, and Luke, a physician, give us the testimony establishing the truth of it. The historical person upon whom the eyes of the whole universe were then focused was Jesus Christ of the Middle East. Matthew Levi tells us that Satan the Devil “showed him all the kingdoms of the world and their glory, and he said to him: ‘All these things I will give you if you fall down and do an act of worship to me.’” Jesus did not dispute Satan’s claim to the organized world, but he unhesitatingly rejected Satan’s offer. (Matt. 4:8-10) Jesus refused to desert the organization to which he already belonged and make himself a part of Satan’s organization. 1 오늘날 선택이 관련된 가장 큰 두개의 조직이 있읍니다. 역사적으로 볼 때 이것은 결코 새로운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오늘날 올바른 선택을 해야 할 필요성은 이전 어느 때보다도 더욱 긴요합니다. 이천년 전에 한 역사적인 인물이 그러한 선택을 하지 않으면 안되었으며, 그가 어느 쪽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그것은 온 우주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게 되어 있었읍니다. 2 이 사실에 대한 증인이고 역사적 사실을 조사하던 두 사람 곧 전에 세무 공무원인 ‘레위 마태’와 의사인 ‘누가’가 이 사실을 확증하는 증언을 합니다. 그 당시 온 우주의 주목을 받고 있던 그 역사적 인물은 중동 지방의 예수 그리스도였읍니다. ‘레위 마태’는 ‘사단’ 마귀가 “천하 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 가로되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고 말한 것을 우리에게 알려 줍니다. 예수께서는 조직된 세상에 대한 ‘사단’의 주장을 반박하지 않으셨읍니다. 그러나 그분은 주저함이 없이 ‘사단’의 제안을 거절하셨읍니다. (마태 4:8-10) 예수께서는 자기가 이미 속해 있는 조직을 버리고 ‘사단’의 조직의 일부가 되기를 거부하셨읍니다. |
The Bible text itself focuses on “whom you will serve,” and the context shows that in Joshua’s day the issue was loyalty to a PERSON, Jehovah God, choosing between Him and false gods. But the Watchtower article immediately begins: 성경 본문 자체는 "당신이 누구를 섬길 것인가"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그 문맥은 여호수아 시대에 여호와 하나님 개인에 대한 충성에 대한 문제이었고, 그와 거짓 신들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는 점을 보여주는 문제였다. 그러나 워치타워 기사는 처음에 다음과 같이 시작된다: |
Today the choice is between the two biggest organizations in existence. 오늘날 선택이 관련된 가장 큰 두개의 조직이 있읍니다. |
In a sort of intellectual “shell game,” the person is subtly replaced by an organization as the crux of the issue. Then, in the second paragraph, Jesus is represented as having to choose between two opposing organizations as to his loyalty. Matthew 4:8-10, is cited in support. But only a fragment of these verses is quoted and none of the responses that Jesus gave to Satan are included. This is a case of suppression of unfavorable evidence, since in them Christ Jesus plainly showed that his concern was for loyalty, not to an organization, but to a PERSON, his heavenly Father, God. His responses were, as presented in the New World Translation: 일종의 지적 "셸 게임"에서처럼, 개인이 문제의 핵심으로서 조직에 의해 교묘하게 대체된다. 그 다음, 두 번째 단락에서 예수는 두 개의 대립적인 조직 중에서 그의 충성을 선택해야 하는 것으로 표현된다. 마태 4:8-10이 지지 성구로 인용된다. 그러나 이 구절의 일부분만 인용되고 예수께서 사탄에게 나타낸 반응은 하나도 포함되지 않는다. 이것은 불리한 증거들을 감추어버리는 경우인데, 그 내용에서 그리스도 예수께서는 자신의 관심사가 조직이 아니라 개인, 즉 그의 하늘 아버지이신 하나님에 대한 충성이라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의 대답은 신세계 역에서 제시된 바에 의하면 다음과 같다: |
Man must live, not on bread alone, but on every utterance coming forth through Jehovah’s mouth. 사람이 빵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아야 한다 Again it is written, “You must not put Jehovah your God to the test. “‘너의 하느님 여호와를 시험해서는 안 된다’라고도 기록되어 있다.” It is written, “It is Jehovah your God you must worship and it is to him alone you must render sacred service. “사탄아, 물러가라! ‘너의 하느님 여호와를 숭배해야 하고, 그분에게만 신성한 봉사를 드려야 한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
How could anything be more personal? Despite this, the Watchtower
paragraph concludes:
어떻게 이보다 더 개인적일 수 있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파수대 내용은 다음과 같이 결론짓는다:
Jesus refused to desert the organization to which he already belonged and make himself a part of Satan’s organization. 예수께서는 자기가 이미 속해 있는 조직을 버리고 ‘사단’의 조직의 일부가 되기를 거부하셨읍니다. |
By mere assertion, the organizational loyalty concept taught by the Watchtower supplants the very personal relationship with God found in the statements of Jesus Christ. There is not the slightest indication in the account that Christ thought in terms of an organization or viewed the matter as a question of organizational loyalty. His concern was for loyalty to the Person, God. In the Watchtower article we have a case of reading into the Scriptures something which is not there. One must indeed make a “choice” here, choosing by which source he will be guided. It is remarkable how this constant emphasis on “organization” will cause Witnesses in general to read Biblical statements and almost automatically adjust them to fit the organizational concept. Thus, when Jesus said to his disciples, “You do not want to go also, do you?” Peter responded, “Lord, whom shall we go away to? You have sayings of everlasting life.”15 Witnesses will consistently quote that text when speaking in favor of “staying with the organization” and say, “where shall we go away to?” But Peter did not say “where,” he said, “whom shall we go away to?” He did not express reliance on an organization for truth, but said “you [Jesus Christ] have sayings of everlasting life.” But due to indoctrination the mind of Witnesses makes an automatic switch, replacing the person, God’s Son, with “the organization.” That the organization wants them to make this transference is evident from the caption under a picture in the March 15, 1988 Watchtower (page 18), which clearly equates loyalty to Christ with loyalty to itself. 단지 주장만으로 워치타워가 가르치는 조직에 대한 충성 개념은 예수 그리스도의 진술에서 발견되는 바로 그 하나님과의 개인적 관계를 대체시킨다. 그리스도께서 그 문제를 조직적인 관점에서 생각하거나 조직적인 충성의 문제로 보았다는 점이 그 내용에 조금도 나타나지 않는다. 그의 관심사는 하나님에 대한 충성이었다. 이 파수대 기사에서는 성경 본문에 없는 것을 파수대가 만들어 내는 경우로 볼 수 있다. 어떤 자료로 안내받을 것인지를 결정하면서, 여기서 실로 '선택'을 해야 한다. 이렇게 끊임없이 '조직'을 강조하다 보니 일반적으로 증인들이 성경 본문을 읽고 조직개념에 맞게 이해하도록 거의 자동으로 조종되는 것은 주목할 만하다. (요한복음 6:67) 67 그래서 예수께서는 열두 제자에게 “여러분도 가고 싶습니까?” 하고 물으셨다. 베드로가 대답했다. “주여, 우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주께 있습니다."15 증인들은 '조직에 계속 머물러 있'는 것을 적극 강조할 때 일관성 있게 인용하는 말은 "우리가 어디로 가겠습니까?" 이다. 그러나 베드로는 '어디로' 가느냐 ? 하고 말하지 않고, '누구에게 가겠느냐 ?' 라고 말하였다. 그는 진리를 위하여 조직을 의존하겠다는 표현을 하지 않았으며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당신[주]께 있습니다"고 말했다. 그러나 주입으로 인해 답습된 증인들의 마음은 자동적으로 조직으로 전환되어 사람, 즉 하나님의 아들을 "조직"으로 대체되어버린다. 워치타워 조직이 증인들로 하여금 이러한 전이가 되기를 원한다는 것은 1988년 3월 15일 파수대(18면)의 사진 아래 자막에서 분명히 나타나는데, 이것은 그리스도에 대한 충성과 조직에 대한 충성을 분명히 동일시하고 있다. |
베드로는 예수께서 "영원한 생명의 말씀" 소유하셨기 때문에 달리 갈 곳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 당신은 여호와의 조직에 충실히 머물기로 결정하였습니까? [1988년 3월 15일 파수대 18면(영문)에서] |
13 The style is that of the Watch Tower’s then-acting president.
13 문체는 당시 워치타워를 대행하던 협회장의 것이다.
14 The text from Job, chapter ten, verse 22, about “the land of obscurity like gloom,
of deep shadow and disorder,” will perhaps leave the reader groping for the obscure
connection with “God’s organization” under discussion.
14 욥기 10장 22절에서 '흑암의 땅, 짙은 그늘과 무질서의 땅'에 대한 내용은 아마도
독자들이 논의 중이었던 '하나님의 조직'과의 모호한 연관성을 더듬어 보게 할 것이다.
15 John 6:67, 68.
15 요한 6:67, 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