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상 마을
김홍희
상상이 유치하게 끝나는 경우가 가끔 있다. 새로운 무엇인가가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것에 대한 설명을 듣고 가지게 되는 상상일 경우 더욱 그러하다.
거기다 사진까지 등장하게 되면 이런 오류를 더욱 부추기게 된다. 사진이 존재 증명을 위한 도구로만 사용되면 그 오류의 폭을 줄일 수 있다. 하지만 사진가는 세계를 직사각형의 파인더 속에 밀어 넣으면서 무엇을 강조하고 무엇을 뺄 것인가를 알게 모르게 정하며 셔터를 끊는다. 이때 셔터를 끊는 행위가 곧 그가 본 세계를 자신의 사유의 틀 속에 가두어버리는 행위다. 존재 증명이자 다시 관념증명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이것이 사진의 숙명이다.
세계적인 관광지 사진을 보고 현장을 답사한 사람들이 실망하는 이유도 이것이다. 그리고 그 순간의 느낌은 온몸으로 기억하지만, 광경은 다시 자신이 이전에 보았던 사진을 통해 재각인되는 것이다.
옥상 마을이라는 말을 듣는 순간 왠지 너절하고 삶에 지친 오래전 우리의 삶을 상상했다. 그러나 실제 옥상 마을을 방문하는 순간, 입이 딱 벌어졌다. 시장 옥상에 지어진 집들이 얼마나 깨끗하고 단정한지. 좁은 골목길이지만 담배꽁초하나 떨어져 있지 않았다. 나의 너절한 상상을 단번에 깬 것이다.
이런 경우, 사진을 찍는 나의 행위는 존재 증명도 아니고 관념 증명도 아닌 무위로 끝나게 된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카메라를 들고 배회하고 있는 것이다.
--김홍희 시집 {부산}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