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을 우연히 읽었다. 너무 유명한 책이라 읽었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다소 생소해서 찾아보니 적어도 최근 10년간에는 읽지않은 듯하다. 자전적인 소설로 여주는 세살때 큰아들이었던 아버지가 맹장염에 한약과 무당처방을 하는 통에 죽고 숙부들은 자식이 없어 귀여움을 받으면서 자랐다. 그리고 엄마는 오빠를 가르치기위해 상경하여 현저동 달동네에 월세방을 얻고 삯바느질로 오누이를 키운다. 그녀는 시골에서는 서울에서 산다고 그리고 서울에서는 상것들이라고 이웃을 깔보는 이중적인 태도를 보이지만, 유일하게 물장수는 하대하지 않는데 그 이유가 아들을 전문학교까지 보냈다는 것이었다. 3
여주는 현저동에서 산을 넘어 대문안의 소학교에 다니면서 외톨이가 된다. 사직동의 부유함을 따라갈 수도 없었고 현저동의 수준도 멸시했기 때문이다. 어쨌든 바느질로 오빠를 졸업시키고 총독부에 취직했으며 숙부도 둘째는 남대문에서 자리잡아 장사를 시작하고 첫째는 면서기에 취업하여 소작을 주게 된다. 그러다가 여주가 집주인 아이와 싸움을 하는 바람에 어른싸움으로 번지고 엄마는 무리해서 집을 사게된다. 5 그리고 마치 소공녀가 따뜻하고 맛있는 음식이 있는 방으로 매일 귀가하는 것과 같이 국어시간에 알게된 도서관을 일요일마다 방문하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6
일제말기에 여주는 14살이었고 숙명고보에 다니고 있었지만 배급제도로 식량사정이 악화되어 고향에서 쌀을 얻어와야 했다. 오빠의 징용은 군수품공장으로 지정된 철공소에 근무중이어서 빠질 수있었고 숙부가 면에 근무했기에 공출조사에서도 봐주곤 했기 때문이다. 당시 시골에 가면 같은 나이의 딸을 시집보낸 아줌마가 그녀를 잡고 울기도 했다. 당장 입을 하나라도 줄여야 할 상황에 딸은 정신대에 아들은 징병으로 빼앗기기 전에 조혼을 통해 씨라도 받으려는 이해가 서로 맞았기에 아직 출산할 나이가 아님에도 결혼을 시키곤 했다. 즉 말세가 된 것이다. 7
해방이 되어서 숙부네집은 공격을 당하고 오빠는 폐병장이와 결혼했지만 오래가지 못했다. 그리고 좌익운동에 빠졌다. 그녀도 집안의 영웅의 행보에 영향을 받지않을 수없었다. 10 결국 재혼을 하여 아들을 가지게 된 여주의 오빠는 한국전쟁과 이로 인한 두번의 수복을 통해 폐인이 되고 작은 숙부도 처형되었으며 자신도 고생했지만 결국 오빠의 아들들은 챙길 수있었다. 마지막 장면은 처음 서울에 정착한 현저동으로 피난을 가서 빈집의 식량으로 목숨을 이어가는 것이었다.
좋은 전쟁은 없다. 하지만 덜 나쁜 전쟁과 아주 나쁜 전쟁으로 방위를 위한 전쟁과 내전을 대표적으로 꼽을 수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저자는 내전을 통해 고생한 우리의 역사를 간접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밀가루를 하역하지 않고 바다에 버려서 가격조작을 하는 자본가에 대한 팜플렛 내용은 꼭 좋은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아주 나쁜 것도 아니다. 우리는 생존을 위해 에너지가 필요하지만 그 에너지는 다른 생물의 희생을 뜻하기도 한다. 인간의 희생도 범위의 문제이지 생존에 필요한 방법 중의 하나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런 측면에서 상위 10국중의 하나와 최하위권인 체재비교가 가능할 것이다.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