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통쾌함 뒤에 오는 씁쓸함
아주 어릴 때, 초등학교 시절이었던 걸로 기억난다. 너무너무너무 싫어했던 여자아이가 있었다. 나는 정말 그 여자애가 죽어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당시 유행했던 "빨간 색으로 이름쓰기"를 빽빽하게 했다. 빨간색으로 이름을 백번 쓰면 죽는다더라, 해서 정말 미련하게 빨간색으로 이름을 열심히 썼다. 쓸 때는 두근두근 하더라. 정말 얘가 죽을까? 내 눈 앞에서 없어질까? 그러면 좋겠다. 하면서. 그치만 걔는 멀쩡히 살아서 내일도, 그 다음날도 학교에 왔고, 계속 내 눈에 거슬리는 행동을 일삼았다. 그렇지만 어쨌든, 그 아이는 지금도 여전히 살아있을 것이다.
"수출은 생각도 하지 않았다"는 강우석 감독의 말처럼, 영화 한반도는 외교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문제 될 것들이 한 두가지가 아니다.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일본을 "개쪽바리 깡패나라"로 비추고 있고, 그 외에 미국, 중국, 러시아 역시 한반도에 일절 도움이 되지 않는 나라로 묘사하고 있다. 일본 대사관을 우리나라 군대가 포위하는 장면이라든지, 일본 외상에게 "깡패같은 군대" 라는 말을 일삼는 대통령이라든지 - 여튼 현실에서는 상상도 못할 일들이 영화 속에서는 버젓이 일어난다. 맺힌 게 많은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속이 시원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영화는 어디까지나 영화일 뿐이다. 러닝타임이 끝나고 암전이 걷히면, 우리는 다시 현실로 돌아와야만 한다. 그러면 우리는 다시 일본에게 할 말을 가려야하고, 말도 안되는 조건의 FTA 협상을 고려해야하는 약소국의 국민으로서의 현실을 직시하게 된다. 빨간색으로 아무리 이름을 써도 죽지 않았던 그 여자아이처럼, 한국 내부에서 쪽바리, 양키새끼 욕을 하는 "강대국"들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다.

민족 자긍심 고취를 위한 한국식 수퍼MEN, 그러나.
문제는 이 영화는 일본, 미국, 중국, 러시아 뿐만 아니라 그 어느 나라에도 수출될만한 내용이 아니라는데 있다. 어느 나라 영화든지, 특히 역사나 군사 문제를 다루는 정치적인 영화들은 어느 정도 주관적이 될 수밖에 없다. "진주만" 이나 "아마겟돈" 이 미국인들의 자긍심을 드높이는 동시에 세계 영화시장에 "먹혔던" 것은, 그럴 수 있다고 끄덕여줄만큼의 오버 - 즉 뻥~튀기 정도는 아니고, 걍 여기저기 분장 좀 했어요.. 정도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반도는 다르다. 애초부터 한일 양국 사이의 역사적 사실을 알지 못하면 이해할 수 없는 내용이 영화를 찾는 관객들에게 전제되어있고, "숨겨진 옥새" 라는 작가의 상상력 - 즉 말 그대로 "픽션"이 영화의 시작과 끝을 관통하는 중요한 요소로 자리하고 있다. 아, 진짜로 이랬으면 좋겠다- 하는 조금의 여지도 남기지 않는 그야말로 "허구" 라는 것을 너무나 잘 보여주기 때문에, 관객들의 뒷맛이 더 씁쓸한지도 모르겠다. 확실히 영화나 소설은 허구의 작품이지만, 현실에서 일어남직할만한 사실성이 뒷받침되어야 하는데, 자라나는 청소년들의 민족성을 고취하는데 너무나 신경을 쓴 나머지 사실성은 옆집 똥개 개먹이로 줘버렸다.

함부로 옳은 역사를 정의내리지 마라
역사를 평가하는 것은 - 특히나 채 100년 남짓된 역사를 평가하는 것은 학계에서도 매우 조심스러운 일이다. 물론 강우석 감독 나름대로 펼치고 싶은 이야기가 있었겠고, 우리 국민들의 특징상 애국심이니 민족성이니 하는 자극은 그럭저럭 잘 먹혀들어가는 편이긴 하다. 그러나 관객들에게 일말의 생각할 여지도 남겨놓지 않고 "이게 옳아", "이게 맞그덩?" 하는 식의 세뇌는 실례다.
막말로 총리의 말이 옳을지 어떻게 아는가. 나라도 그런 대통령은 무슨 짓을 하더라도 잠재우겠다. 이상적인 정의를 실현하는 것보다 당장 먹고사는게 급하면 그럴 수도 있다. 노무현 정부 들어서 가장 욕먹는 부분이 뭔가. 결국 먹고사는 문제 아닌가. 노무현 대통령이 사회의 돈 안되는 부분을 개혁하는데 중점을 두느라 먹고살기 힘들어지니 제일 많이 까댄 것 아닌가. 포장하고 미화해서 마치 그것이 정석인 양, 관객들에게 2시간 30분 동안 끊임없이 주입해대는 게 뭐 하는 짓인가; 난 돈 내고 영화보러 왔지 국정홍보물 보러 온 게 아니란 말이다.
명성황후가 어떻게 죽었는지는 커녕 정확히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는 마당에 마치 그것이 정답인 양. 영화에서 그랬지.
"딸들이 명성황후가 누구냐고 물으면 이미연이라 그러고, 을사늑약이 뭐냐고 물으면 새로나온 약 이름이라 그래."
그럼 한반도 본 사람들은 다 명성황후는 그렇게 죽고, 일본놈들은 다 그렇게 싸잡아 나쁜놈이고, 우리나라 총리는 미친놈이고, 대통령은 당장 먹고사는 것보다 다른 나라 외상들 앞에서 하고 싶은 말 다 하는 게 정의라고 생각할 것 아닌가.
(말이 격해졌다)
뭐, 돈이 아깝냐고 물으면 그럭저럭이다. 나도열이 100만을 넘기는 너그러운 관객들이 포진한 대한민국에서, 이 정도도 못 볼까. 본다면 말리지는 않겠다. 다만 보라고 추천하지도 않겠다.
이 영화에 별점을 3개나 매긴 이유는, 정말 눈물이 앞을 가리는 배우들의 열연과 그나마 96억 쓴 피가 팍팍 나는 볼거리 때문이다. 태풍만큼 비현실적이지만, 태풍만큼 볼 거리는 많다. (그리고 객관적으로 봐도 태풍보다는 연출이 잘 되어있다)
총 15건의 전문가 평점이 있습니다.
|
4 |
말이 너무 많다 |
김봉석 |
|
5 |
과도한 주의, 주장에 개인이 사라진다 |
김은형 |
|
6 |
대한사람 대한으로 길이 분개하세? 저돌성과 단순성! |
박평식 |
|
4 |
메시지에 ‘올인’한 영화. 그 메시지가 위험하고 투박한 영화 |
이동진 |
|
4 |
평론가들이 싫어한다고 재미있을 거란 편견을 버려~ |
황진미 | |
필름2.0 |
![]() |
 |
0.00% |
 |
100.00% |
|
![]() |
 |
최은영,송형국,양성희,이승재,이형석,허남웅,강유정,이상용,김영진,최광희 | |
 |
제국주의를 비판하기 위해 '자국보호'라는 이름의 파시즘을 끌어들인 영화. |
최은영 |
|
 |
관객 수준을 너무 얕본다. 관객의 자존심을 생각지 않는 영화. |
송형국 |
|
 |
강우석의 장기가 사라진 노골적인 시사평론. 부담스러운 과잉의 민족주의. |
양성희 |
|
 |
'무엇을 말하느냐'보다 '어떻게 말하느냐'의 문제. |
이승재 |
|
 |
강우석 포퓰리즘의 한계. |
이형석 |
|
 |
감독의 감정은 넘치되, 이야기부터 인물설정까지 심지어는 이를 통해 보여주는 역사관까지 너무 단순하다. |
허남웅 |
|
 |
국가주의의 환상과 극우적 절대선의 불온한 조우. |
강유정 |
|
 |
한마디로 프로파간다(선전선동) 영화. |
이상용 |
|
 |
한국영화역사상 신상옥 이래 가장 성공한 감독의 가장 멀리 나간 자기확신. |
김영진 |
|
 |
<실미도> 흥행의 착시와 대한민국주의가 합작한 불량 애국상품. |
최광희 | | | |
첫댓글 글쎄... 좀 있다가 보러 갈 생각인데 갈등 때리게 만드는군요...--;; 피해의식을 선동하는 포퓰리즘적인 국수주의 영화인 것같군요. 이러면서 일본의 "남자들의 야마토"어쩌구는 "반성할 기미가 없다"라는 이유만으로(적어도 천황 만세는 없건만) 국수주의 쪽빠리 영화라고 비판하는 한국 사회... 우리는 옆동네 "원숭이"들보다 몇 술 더 떠는 집단이라는 것이겠지요. 영화는 어쩌나...
이 영화를 안봐서 잘 모르지만, 내용을 살펴볼 때 이거는 마음속의 열등감이라든지 아님 자기만의 한민족의 우월감을 표출하는 영화인것 같습니다. 그리고 우리나라사람들이 가장 큰 문제는 겪여보지 않을려고 하는 자세입니다.(이거는 옛날부터 있었던 문제인데, 이게 지금은 아주 증폭이 된 느낌입니다. 최소한 상대방을 연구하는 생각을 가져야 하는데 이거는 그럴생각이 전혀없으니....)
강우석이야말로 한국 영화의 '공공의적'입니다. 이딴 거나 만들면서 스크린쿼터를 말하다뇨. 더구나 조재현은 이런 큰 영화가 성공해야 작은 영화가 성공한다는 말까지 하더군요. 세상에 동고동락하던 김기덕이 어떻게 됐는지도 모른단 말입니까. 어떻게 다른 사람도 아니고 조재현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옵니까.
극중에서 국모가 죽은 날도 모르는 여편네들에게 반말도 못해!라고 하던데 그럼 세계사도 모르는 여편네(김희재)에게 반말도 할 수 있겠군요. 도대체 사전 조사나 해봤답니까. 샌프란시스코 조약에서 모든 걸 취소한 것도 모르고 이런 걸 쓰다니. 상식이 없어도 정도가 있지 이건 아예 우리 스스로를 얽매이지 못해 안달난 구조군요.
강우석도 짜증나지만 김희재는 미스테리일 지경이군요. 강우석이야 그나마 예전에 성공한 게 많아서 그런다치지만 김희재는 그나마 성공한 거라곤 실미도 밖에 없습니다. 실미도 전이야 그랬다쳐도 후에 나온 공공의적2, 홀리데이보고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 안들었을까요? 홀리데이 인질극 장면에선 뇌구조가 어떻게 된 건지 의심가는 지경.
뭐 국수주의니 뭐니 따질 필요도 없습니다. 이건 재미 자체도 없습니다. 액션은 예고편만 보면 다 보는 겁니다. 총싸움은 커녕 주먹질조차도 안하고 반전이라고 있는 게 느닷없이 발굴 현장 바꾸는 게 다입니다. 해군 등장? 독고영재 가오 잡고 땡이죠.
막말로 강우석이 감독질 해먹은 게 몇년째인데 연출이 이렇게 허접하답니까. 아무리 위급한 상황에서도 등장인물들은 웅변대회 수준의 대사를 날리며 정부종합청사 폭파나 대통령의 자작극은 그게 무슨 필요인지도 모르겠고 암만 위기 상황이라고 부르짖어도 관객들에게 긴장감은 털끝만큼도 안들더군요. 모르겠습니다. 제가 조조로 봐서 사람들 반응이 어떤질 몰라.
엔딩은 국새 찾았으니까 얼른 끝내자 수준. 윤도현의 엔딩곡은 언발란스의 극치. 그나마 배우들 연기가 볼만한 것도 아니고(연기력 문제보다 설정이나 캐릭터 자체가 몰입 안되고 붕뜬 느낌이죠). 참고로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영화판에서 권순범에게 코끼리 있는 곳 가르쳐 주는 대통령이 여기선 친일파 총수로 나오더군요. -,.-
그저 바라는 게 있다면, 투사부일체 600만 신화가 재현되지 않기만을 바랄 뿐입니다. =.=;; 아, 그리고 안성기와 백일섭이 손잡고 있는 저 사진, 극중에선 나오지도 않습니다. 그야말로 철저한 낚시 정신을 지향하는군요.
다행히(?) 안 봤습니다... 액션이 예고편의 그것 다라니..--;
저는 어제 여자친구랑 보고왔는데..글쎄요.공짜표로 봐서 돈은 안아깝지만서도..지나친 마스터베이션적 민족주의에다가 샌프란시스코조약은 치매걸렸는지 고려도안한 스토리에 반전없는 밋밋한 1차원적구성에 을미사변씬에서 남부14식권총이 나오는 사소한 고증오류와 결론없는 엔딩..돈내고 봤다면 매우 아까운 영화라고 생각되네요..
뭐 중간중간에 고종이나 명성황후가 수모를 당하는 씬들은 사실적인 구도와 앵글 기법이 맘에들고 분노도 치솟지만서도 문제많은 영화입니다.뭐랄까..좀 성의가 부족하고 골조도 어설픈 영화라는 생각이 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