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홀 지나면 반드시 먹는다” 日 골퍼들 그늘집 필승 메뉴
카드 발행 일시2024.11.13
에디터
성호준
일본 골프장 완전정복
관심
살코기라 생각했던 돈가스에 물컹한 비계가 씹혔다. 옆 사람이 입에 넣었다가 몰래 컵에 버린 소주를 물로 생각해 마신 적이 있는데, 그때 기분이었다.
나는 돼지고기 비계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삼겹살도 지방이 너무 많으면 먹지 않는다. 그런데 돈가스 조각 속 비계는 고기의 절반쯤 됐다.
나가노 현 나카 가루이자와 골프장 식당에서 일어난 일이다. 골프장은 오거스타 내셔널처럼 아름다웠다. 이런 곳에서 큼지막한 비계를 넣었다면 이유가 있겠지라는 마음으로 계속 씹긴 했다.
오물거리다 보니 바삭한 튀김옷과 야들야들한 살코기, 부드러운 비계의 조합이 괜찮았다. 특히 비계에서 흘러나온 고소한 육즙의 여운이 좋았다. 운전을 해야 하지 않았다면 나마비루(생맥주)를 한 두 잔 마셨을 것이다.
일본 골프장에서 돈가스는 거의 실패하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됐고 가끔 먹었다. 일본 고급 식당의 돈가스는 두텁고 비계가 고스란히 붙어 있다. 그냥 붙어 있는 정도가 아니다. 한국은 삼겹살 비계를 위한 돼지를 육종한다는데 일본 가고시마 등 일부 지역에선 돈가스 등심용 지방이 많은 돼지를 키운다고 한다.
일본 지바현 소세이 골프클럽의 돈가스. 사진 소세이 골프클럽
돈가스는 일본 근대화의 상징이자 서양 음식 일본화의 대표적인 메뉴다. 대중적인 요리라는 걸 감안하더라도 골프장 메뉴에 돈가스는 너무나 많았다. 돈가스뿐 아니라 가스동, 카레가스, 가스산도(돈가스 샌드위치), 히레(안심)가스, 꼬치돈가스 등 가스투성이다.
일본 여행 전문가인 주성진 테라투어 대표는 “일본 골프장 레스토랑에 돈가스 메뉴가 없는 곳은 없다. 돈가스의 가스는 발음이 승리와 같고 일본인들은 골프 9홀이 끝난 후 후반 9홀을 준비하면서 승리를 상징하는 돈가스를 즐겨 먹는다”고 했다.
일본 골프와 돈가스의 관계에 대한 가설은 매우 흥미로웠다. 그러나 발음 때문에 돈가스를 먹는다는 정도론 근거가 좀 빈약했다. 일본인을 포함, 몇 명에게 물어봤는데 그럴 수도 있겠지만 아닐 것 같기도 하다고 했다.
그러나 매우 흥미로운 가설이었고 그래서 여기저기 찾아봤다. 『일본의 맛 탐구사전』 등을 쓴 오카다 데쓰의 책 『돈가스의 탄생』에 이런 문구가 나왔다.
“돈가스가 인기를 얻은 데는 그 이름이 가스(勝つ:かつ)로 적을 이긴다(テキ(敵)に勝つ)는 의미가 들어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지금도 수험생, 운동선수 등은 ‘스테이크(ステーキ, 적이라는 말인 데키와 스테이크의 테-키가 음이 비슷한 것에 맞춘 언어 유희, 옮긴이)와 ‘돈가스’를 나눠 먹으며 필승을 다짐한다. 그리고 시험철이 되면 수험생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돈가스 도시락이나 돈가스 샌드위치를 먹고 시험에 임한다.”
일본 골프장의 돈가스. 성호준 기자
2000년에 나온 책이라 지금은 그런 생각이 덜하겠지만 라운드 중간에 승리라는 이름의 음식을 먹을 정도니 일본인들은 골프에 매우 진지한 듯하다. 가고시마현 게도인 골프장의 최인길 총지배인은 “한국인은 골프를 일종의 놀이라고 생각하는데 일본인은 스포츠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운동선수가 대회에 나가는 걸 한국에서는 참가 혹은 출전한다고 한다. 일본에선 참전(參戰)한다고 한다. 스포츠는 전쟁이라는 뉘앙스가 강하다. 놀이는 대충 해도 되지만, 전쟁에서는 어설프게 할 수 없다. 일본인들은 골프 규칙을 잘 지킨다. 멀리건을 거의 쓰지 않고 볼이 홀인할 때까지 퍼트를 하고 숫자를 다 센다. 벙커나 피치마크 정리도 한국인에 비해 매우 신경 쓴다.
아마추어의 명랑골프, 인조이 골프에서 일본 스타일의 고지식한 원칙주의가 반드시 좋은 것만은 아니다. 최 총지배인은 “일본인들은 규정대로 하느라 라운드 시간이 지나치게 오래 걸린다. 스피드가 빠른 한국인들과 앞뒤 조에서 경기하면 충돌이 생기기도 한다. 그래서 한국인들은 한국인들끼리, 일본인들은 일본인끼리 모아 놓는다”고 했다.
한국인의 경기 스피드가 빠른 건 성격이 급하기도 하고 OK 문화가 후하기도 하며 국내 골프장에서 워낙 빨리빨리 치는 습관이 들어서이기도 하다. 경기 흐름에 협조하려는 배려심도 있을 것이다.
나카 가루이자와 골프장의 연어, 오징어 덮밥.
나카 가루이자와 골프장의 돼지뼈 라면.
일본인들은 골프장 식당 내 모자 착용에 대해서도 매우 예민하다. 모자를 쓰고 식사하면 다른 손님들의 눈총을 받고 종업원이 와서 탈모해 달라고 요청하는 곳도 있다. 모자를 테이블 옆에 둬도 되지만 입구에 비치된 모자걸이 이용을 권장한다.
서양에서 여성의 모자는 패션의 일부로 여겨 실내에서 벗지 않아도 되는데 일본에서는 클럽하우스에서 모자를 쓴 여성을 탐탁하게 여기지 않는 듯하다.
테라골프 주 대표는 “일본에선 골퍼의 모자를 사무라이 투구 같은 걸로 생각한다. 사무라이는 치열한 전쟁을 치를 때라도 식사를 할 때는 투구를 벗어 놓고 여유롭게 식사한다”고 말했다.
역시 흥미로워 여러 명에게 물어보고 뒤져봤지만 골퍼들이 모자를 사무라이 투구로 생각한다는 근거는 찾지 못했다. “영국의 클럽 문화를 교조적으로 받아들여서 아닌가”라는 답이 더 많았다.
일본 도쿄TV에 사무라이 골프라는 프로그램이 있는데 사무라이 얘기는 없고 아마추어 클럽 챔피언이 홈코스에서 시니어 프로와 승부하는 내용뿐이다.
그래도 추정은 해볼 수 있다.
일본에서 야구 인기가 높은 건 도입기에 운동장에서 방망이를 휘두르는 모습이 사무라이가 칼을 휘두르는 것과 비슷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일본 야구 대표팀을 사무라이 재팬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벌판에서 막대기를 휘두른다는 점에서 보면 야구 보다는 골프가 더 사무라이 같다.
일본의 프라이빗 클럽엔 사무라이들이 투구를 걸어 놓듯, 회원들의 모자를 걸어 놓는 곳이 있다.
일본 가고시마현 한 골프장의 회원 모자 보관소. 성호준 기자
한국에도 일본 사무라이 골퍼의 흔적 같은 게 있긴 하다.
1921년 한국에 생긴 첫 골프장인 효창원은 남만주철도 경성관리국 간부가 본사 부설 골프장에 갔다가 초원 위에서 검을 휘두르듯 스윙하는 골퍼들의 모습에 반해 만들었다고 한다. 대한골프협회가 발간한 『한국 골프 100년』에 의하면 초창기 경성 골프장에서 일본인들이 퍼트는 거의 하지 않았다. 무사도 정신에 위배된다고 생각해 그린에 올라가면 그냥 공을 집어 다음 홀로 갔다고 한다.
홋카이도 삿포로 제외 지역
신재민 기자
홋카이도 넓이는 한국의 83%다. 여행할 곳이 많다. 한 도시에 3박4일 머물더라도 매번 다른 골프장에서 칠 수 있을 정도로 개성 있고 수준 놓은 골프장이 많다.
하코다테는 유서 깊고 운치 있는 바닷가 도시다. 골프 코스들도 이 도시를 딱 닮았다. 유럽풍 스키장으로 유명하며 서양 관광객이 유난히 많은 니세코에는 유럽이나 미국의 스키 휴양지 코스 비슷한 예쁜 산악 골프장들이 있다. 골프만큼 온천을 좋아한다면 노보리베쓰로 가라. 숲의 미인이라는 별칭을 가진 걸출한 코스를 경험할 수 있다.
윈저 그레이트 피크 오브 도야 골프코스. 성호준 기자
일본 최북단 와카나이 혹은 최동단의 네무로의 황량한 오지에선 바닷바람이 만든 정통 링크스를 만날 수 있다. 네무로에선 최동단 플레이 증명서를 준다.
해발 고도 2000m가 넘는 봉우리 16개가 있는 다이세쓰잔(大雪山) 공원 산기슭엔 웅장한 코스들이 널려 있다. 홋카이도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인 아사히카와, 후라노로 유명한 비에이 등에서 대설산을 보며 라운드할 수 있다. 여름에 시원한 곳을 찾는다면 태평양 연안의 구시로가 좋다. 8월 평균 일 최고 기온이 25도가 안 된다.
삿포로 북쪽 이시카리만 인근의 골프 코스들은 스웨덴 힐스, 셰익스피어 등 특이한 이름의 골프장이 있다.
하코다테 베이코스트 골프장. 성호준 기자
하코다테
하코다테GC : 홋카이도에서 가장 오래된 코스다. 늙은 소나무와 작은 포대그린은 역사를 느끼게 한다. 티잉그라운드를 바꿔 9홀을 두 번 도는 건 단점이라기보다는 과거의 정취가 느껴져 정겹다.
하코다테 베이코스트 : 쓰가루 해협이 보이는 아름다운 코스다. 안선주. 이민영이 여기서 우승했다.
홋카이도CC 오누마 코스 : 프린스 호텔이 운영하는 관리가 매우 잘된 코스다. 로버트 트렌트 존스의 설계로 꽤 어렵다. 손님을 너무 많이 받는다는 비판도 있다.
일본 홋카이도의 무로란 골프장. 성호준 기자
노보리베쓰
노보리베쓰CC : 홋카이도 최고로 꼽히는 노보리베쓰 온천 지척에 있다는 것 말고도 장점이 많다. 넓은 부지의 숲속에 숨겨진 흥미로운 코스다. 숲의 미녀라는 별명이 붙었다.
무로란 : 태평양을 바라보는, 다소 거칠지만 질리지 않는 아름다운 코스다.
윈저 피크 오브 도야 : 도야 호수가 내려다보인다. 코스 자체는 평범하고 짧다.
일본 니세코 인근 하나조노 골프장. 성호준 기자
니세코
니세코 골프코스 : 아널드 파머가 설계한 오르막, 내리막이 재미있는 코스다. 단출한 클럽하우스 등 일본의 다른 골프장들과는 다르고 서양 골프에 익숙한 골프 애호가들은 매우 좋아하는 코스다.
니세코 빌리지 골프 코스 : 힐튼 호텔 부설 코스다. 호텔 온천에 대한 평가도 좋다.
하나조노 : 매우 잘 관리된 세련된 리조트 코스다. 자작나무 숲과 요테이산 뷰가 아름답다.
일본 최동단에 위치한 네무로 골프장. 사진 네무로 골프장
에디터
성호준
관심
중앙일보 골프전문기자 [출처:중앙일보]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914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