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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은 하룻밤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에요. 최소한 12년은 참고 기다려야 하지만 나는 정원이 너무 좋아서 견딜 수가 없어요.“
미국 버몬트 주 숲 속에 그림처럼 아름다운 정원이 있다. 일년 내내 색색의 아름다운 꽃들이 피어나는 비밀의 정원. 바로 타사의 정원이라고 불리는 곳이다. 봄이면 물망초, 튤립, 돌능금을 필두로 작약, 장미, 붓꽃, 바이올렛, 라일락, 캄파눌라 등 늦가을까지 온 세상의 꽃들이 아찔할 정도로 아름다운 풍경은 타샤 튜터가 40여 년간 홀로 심고, 가꿔낸 그녀의 솜씨다.
미국에서 가장 사랑받는 동화작가인 타샤는 우리에게도 친숙한 ‘비밀의 화원’ 등 100권이 넘는 동화책을 세상에 내 놓았고, 최고의 동화작가에게 주는 칼데콧 상을 두 차례나 수상했다. 하지만 그녀는 독특한 라이프스타일로 더 유명했다. 버몬트 주 산골에 18세기 풍 농가를 짓고, 홀로 자급자족하며 생활했던 그녀는 옷이며 양초, 바구니, 인형, 비누 등 생활에 필요한 것은 뭐든지 직접 만들어 썼다.
이렇듯 자연적인 삶의 바탕에는 그녀가 일군 30만평의 아름다운 정원이 있었다. 전기도 수도도 나오지 않는 산골에서 고풍스런 의상과 앞치마. 머릿수건을 걸친 42㎏의 그녀가 맨발로 농가와 헛간을 드나들면서 꾸민 정원은 실로 놀랍기만 하다. 게다가 그 광활한 정원을 가꾸기 시작했을 때는 이미 그녀가 56세가 되던 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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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타샤 튜터의 그림책 <코기빌 마을 축제>, <코기빌 납치 대소동>, <코기빌의 크리스마스>
1971년 타샤는 버몬트 주 산골에 마침내 자신이 꿈꾸던 집을 마련한다. 남편과 이혼 후 네 명이 아이를 키우며 살아온 그녀는 아이들이 각각 결혼해 독립하자 뉴햄프셔의 집은 타샤에게 너무 큰집이 되었다. 마침 그녀의 그림책 <코키빌 마을 축제>가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그 책의 인세로 그토록 염원하던 버몬트 주로 이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녀는 오래전부터 자신이 1830년대에서 환상한 사람이라고 믿고 있었다. 소녀시절, 당시 아무도 입지 않는 18세 기풍 드레스에 앞치마를 하고 다니는 그녀를 보고, 가족들은 심각하게 고민할 정도였다. 그녀는 가난하지도 시골출신도 아니었다. 타샤의 집안은 보스턴 사교계에서 수세대에 걸쳐 부유하고 영향력 있는 가문이었다. 하지만 그것과는 상관없이 그녀는 어린 시절부터 시골마을에서 동물과 함께 정원을 가꾸며 18세기 사람들처럼 살고 싶다는 꿈을 가지고 있었고 그 꿈의 무대가 바로 버몬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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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부터 내가 정말 살고 싶었던 곳은 버몬트지방이었어요. 마음먹은 일은 반드시 하고마는 내 고집덕분에 꿈은 마침내 실현되었지요. 비록 30년이라는 긴 세월이 걸리긴 했지만요.”
땅은 30만평. 잡목이 무성한 황무지나 다름없었다. 그녀는 그 땅 가운데 아담한 오두막 집을 짓고 광활한 정원을 가꾸기 시작한다. 무성한 풀들과 잡목이 가득한 거친 초지. 땅을 일구고, 나무와 꽃들을 심고 제대로 된 그림을 나올 때까지는 적어도 십 수 년이 걸릴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이미 그녀에겐 27년간이 가꿔왔던 뉴햄프셔의 정원이 있었다. 뭔가를 새로 시작하기에 너무 늦은 나이라며 모두들 말렸지만 그녀는 굽히지 않았다. 그녀는 너무나도 버몬트에 살고 싶었으니까.
“인생은 너무 짧지 않나요?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하는 게 좋지요.” 그녀는 20년 후의 정원을 상상하며 땅을 일구고, 구근을 심으며 자신의 정원을 가꿨다. 56살에 20년 후인 76살의 미래를 생각하며 말이다.
“어느 식물학 교수의 훌륭한 정원을 가보고 감탄을 금치 못했던 적이 있었어요. 들어보니 만들어진 지 20년이 지난 정원이라고 하더군요. 나 또한 식물이 풍성하게 자라나 아름다운 꽃을 즐길 수 있기까지는 몇 년이고 어려움을 참고 견뎌야 한다고 처음부터 각오하고 있었죠. 그럼요. 정원은 하룻밤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에요. 최소한 12년은 참고 기다려야 하지만 나는 정원이 너무 좋아서 견딜 수가 없어요. 정원 일을 한다는 것만으로도 만족스럽기 때문에 힘들다는 생각은 조금도 해본 적이 없어요.”
타샤에겐 20년 이상의 세월도, 30만평의 광활한 대지도 두렵지 않았다. 이미 그녀는 네 아이를 키우며 막내가 다섯 살 때까지 전기도 수도도 없는 집에서 생활한 이력이 있었다. 아이들을 돌보며 생계를 이어가기 위해, 아이들이 잠든 밤이면 날을 새워 그림을 그리는 생활을 경험했다. 그것에 비하면 아이들이 장성하여 독립한 버몬트에서는 생활은 오히려 자유롭고 홀가분했다.
눈 녹는 4월부터 찬 서리 내리는 10월까지 수선화·튤립·금낭화·장미·작약·샤프란을 가꾸고, 능금과 블루베리를 재배해 허브 차와 함께 가족과 이웃에게 대접했다. 장작을 땐 주물스토브로 빵과 쿠키를 구워 음식을 만들었고. 틈틈이 손자들에게 선물로 줄 스웨터나 목도리를 짰다. 눈으로 가득한 긴 겨울이 오면 옅은 햇살이 내리쬐는 부엌창가에 앉자 꽃과 동물, 아이들 그림을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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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 정원은 나의 자존심이에요. 정원에 관해서라면 결코 겸손하고 싶지 않아요. 우리 집 정원은 지상의 낙원 이예요.“
그렇게 미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정원으로 꼽히는 타사의 정원은 40여년의 세월동안 천천히 천천히 가꾸어졌다. 최소한 12년, 대게 20여년은 걸리는 꿈이라니. 대부분의 사람들은 시작하기도 전에 지레 겁먹고 포기할지도 모른다. 20년 아니라 적어도 두 달 안에 뭔가 결과물이 보여야 만족하는 조급증의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가 아닌가.
하지만 꿈은 금세 자라지 않는다. 나무가 작은 씨앗을 품고, 씨앗이 자라나 뿌리를 깊게 뻗고 가지를 높게 드리우고 마침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기까지는 적어도 수년의 시간이 걸린다. 따뜻한 햇살과 솜털 같은 바람만 있는 것도 아니다. 천둥번개, 비바람이 치는 고통의 시간도 있기 마련이다. 꿈도 나무와 같아서 성취되는 데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부드러운 햇살뿐만 아니라 때론 비바람도 필요하다. 원래 빨리 자라는 것이 아닌데 빨리빨리 조급해 하다보면 마음에 병이 들 수밖에 없다. 그냥 물만 부어 쑥쑥, 급속하게 콩나물을 한 웅큼 키워내고는 금세 시들고 마는 것을 한탄한다.
56세. 무언가 시작하기에 결코 이른 나이라고 할 수 없는 때, 적어도 12년 이상 걸리는 정원 가꾸기. 하지만 그녀는 하루하루가 기쁘고 행복했다. “자신 있게 꿈을 향해 나아가고 상상해온 삶을 살려고 노력하는 이라면 일상 속에서 예상치 못한 성공을 만날 것이다.”라는 헨리 데이빗 소로우의 말을 신조로 여기며 꿈을 위한 쉼 없는 발걸음을 걸어왔다.
어느 해에는 다람쥐가 꽃의 구근을 다 갉아먹어 꽃 농사를 망친적도 있고, 또 어느 해에는 병충해가 나서 꽃들이 다 타들어 갔을 때도 있었다. 밤낮으로 출몰하는 늑대 때문에 골머리를 앓은 적도 많았다. 꽃의 구근을 넉넉히 사고 농장 물들을 돌보는 데는 많이 돈이 필요했고 그것 때문에 그림 그리는 것을 즐기지 못하고, 바쁘게 그려내야 한 적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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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타샤 튜터의 책 <나의 정원>
“난 , 정원을 어떻게 꾸밀지 확고한 계획을 가지고 있었어요. 씨앗을 사러가도 정원사의 말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았죠. 내가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가장 확실하게 알고 있는 사람은 바로 ‘나’이기 때문이죠. 내가 바라지 않는 것을 확실하게 아는 사람도 바로 나구요.”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며 어떤 꽃과 어떤 나무가 어울리는지, 또 어떤 꽃과 어떤 꽃들이 서로를 싫어하는지. 어떻게 하면 색의 조화, 꽃이 피는 시기의 조화를 이룰 수 있는지 한 해, 한해 정원을 가꿔가면서 천천히 알아갔고 56세의 그녀는 어느덧 아흔이 넘은 노파가 되어갔다. 그녀는 그렇게 꽃과 나무들에게 사랑을 쏟고 그 보답으로 매일매일 아찔할 정도로 고운 풍경과 행복한 일상을 선물 받았다.
그녀는 그렇게 자신의 30만평의 정원, 수천그루의 나무와 꽃, 흙, 동물들과 함께 행복한 삶을 살다. 2008년 6월. 그녀는 94세를 일기로 자신의 가꾼 정원 안에 묻힌다. 그녀는 떠났지만 타사의 정원은 여전히 남아서 사람들에게 또 다른 꿈을
첫댓글 요즘 꽃을 가꾸는일에 관심이 많습니다 고향집에 작은정원을 꾸미고있기 때문인가 봅니다 바닷가 언덕위 나만의 정원..
아름다운 정원 보고 싶습니다. 꽃이 피고 할때 보여주세요~~
저도 그녀의 책을 한 권 사서 읽었더랬습니다. 아름다운 정원과 그녀의 녹슬지 않는 열정과 부지런함이 마냥 부러웠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