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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고전을 읽고 토론하며 배우는 진짜 공부의 힘
인문학부터 수학, 과학, 음악까지 고전으로 배우다
고전 100권 속에서 발견한
생각하는 공부의 즐거움
《세인트존스의 고전 100권 공부법》은 고전을 읽고 토론하며 배우는 학습 공동체 세인트존스 대학의 공부법을 깊이 있게 들여다본 책이다. 세인트존스 졸업생인 저자는 그곳에서 4년 동안 공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공부법과 학교생활을 한국인의 입장에서 생생하게 들려준다. 저자가 말하는 세인트존스는 우리 알고 있는 ‘학교’의 이미지를 완전히 깨부순다. 그곳에는 교수가 없고, 강의가 없으며, 시험이 없다. 대신 학생과 함께 공부하는 튜터(tutor)가 있고, 꾸준한 독서와 치열한 토론이 있다. 고전 100권을 읽는 것이 학교의 핵심 커리큘럼이며, 철학과 역사 같은 인문학은 물론이고 언어와 음악 심지어 수학과 과학도 고전을 통해 배운다.
세인트존스의 수업은 단순하다. 고전을 읽고 자신만의 의견을 만들어 와 함께 토론한다. 토론을 하며 생각이 정리되었다면 그것을 써낸다. 단어와 공식을 외울 필요는 없다. 세인트존스에서는 오히려 자신의 의견이 없는 사람이 좋지 못한 평가를 받는다.
고전 속에서 고군분투하며 저자는 배움의 즐거움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또 자신과는 상관없다고 생각했던 고전을 읽으며 오히려 한국에서는 몰랐던 자신의 모습을 발견했다. 세인트존스만의 커리큘럼을 통해 학생들은 스스로 공부하는 법을 배우고 평생 공부하는 습관을 들이는 것이다.
저자 소개
조한별
부모님의 남다른 교육관 덕분에 초등학생 때 한 번, 중학생 때 한 번 학교를 휴학하고 가족들과 세계여행을 다녔다. ‘미래는 도전하는 사람의 것이다’라는 가훈 아래, 어릴 적부터 키워온 영화인의 꿈을 이루고자 고등학교 졸업 후 무작정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그러던 중 고전을 읽고 토론하는 세인트존스라는 신기한 학교를 발견, 영화와 인문학 중 어느 길을 택할지 고민하다가 영화를 만드는 기술보다 자신만의 세계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에 입학을 결심했다. 부잣집 딸도 아니고 영어를 잘하는 것도 아니었지만 매일 외국어로 고전을 공부하며 고군분투한 끝에 무사히 졸업할 수 있었다. 한국에서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공부, 배움의 즐거움을 공유하고자 이 책을 썼다. 지금은 한국으로 돌아와 13년간 마음속으로만 그려오던 영화 일을 시작했다.
가족들과 함께, 세계 여행기인 《엄마 아빠와 함께하는 솔빛별 세계 여행기》와 《사춘기 세 딸, 사추기 부모의 못 다한 배낭 속 이야기》, 제주도 생활기 《똥개라도 넌, 찾아올 수 있겠지?》를 썼다.
목차
추천사
서문_세인트존스는 스스로 공부한다
1. 세인트존스를 소개합니다
말 안 하면 ‘쫓겨나는’ 대학
강의와 교수가 없는 학교
전공과 시험이 없는 학교
튜터들의 공개 뒷담화, 돈 래그
2. 진짜 공부하는 법 배우기
그 누구도 아닌 나 스스로 하기
똑똑하지 않아야 공부가 시작된다
소크라테스 같은 튜터들
‘다름’을 소통한다는 것
3. 세인트존스는 어떻게 공부하는가
세인트존스의 핵심, 세미나
책은 읽는 것이 아니라 생각하는 것
2학년 말, 가장 많은 학생이 쫓겨나는 이유
핵심 토론 프리셉토리얼
논문에서 공개 구술시험까지
누구에게나 자신만의 이해도가 있다
4. 핵심 교양을 키우는 학교
모든 배움은 연결되어 있다
원전을 독해하기 위한 언어 수업
영혼과 감정을 풍부하게 하는 음악 수업
과정을 증명하고 설명하는 수학 수업
실험을 통해 인간을 공부하는 과학 수업
다른 공부, 깊이 있는 공부
5. 영어로 하는 세인트존스의 독서, 토론, 작문
영어 말고 소통을
영어와 싸울 것인가, 책 내용과 싸울 것인가
셜록 홈즈처럼 듣기
질문은 가장 좋은 말하기다
배움을 정리하여 쓰다
6. 방과 후의 세인트존스
수업은 끝나도 열정은 꺼지지 않는다
건강한 신체에 건강한 정신이
파티를 즐기다
7. 내가 세인트존스에서 배운 것
후기_책을 마치고 새로운 챕터를 향하며
부록 1. 입학준비 알아보기
부록 2. 유학비용 알아보기
책 속으로
세인트존스에서 1학년을 보내던 어느 겨울날, 밤새 눈이 펑펑 내린 적이 있다. 도로 사정이 안 좋아 교수님이 수업에 못 오시는 불상사가 발생해 속으로 ‘오호, 휴강이다!’ 하고 있었다. 그런데 한 친구가 교수님으로부터 연락을 받고는 우리에게 말했다.
“우리끼리 수업하래.”
그날 우리는 교수님 없이도 아주 유익하고 즐거운 수업을 하는 비극(?)을 맞이했다. 그렇다. 여기는 세인트존스였다.
세인트존스 수업에는 다른 대학들과 다르게 없는 게 두 가지 있다. 첫 번째는 강의, 두 번째는 교수다. 그게 대학이야? 그게 수업이야? 강의가 없고 교수가 없는데 그걸 어떻게 대학 수업이라고 부를 수 있지? 하지만 대신 이곳에는 세인트존스만의 수업을 만들어주는 두 가지가 있다. 바로 토론과 튜터다.
_1장. 세인트존스를 소개합니다 中(19~20쪽)
나는 처음 독서를 하면서 이 심사숙고해서 진짜 생각하기를 하지 않았다. 그저 애국가를 읽고 “‘영원히 우리나라 만세’라는 뜻이구나” 하고 받아들이며 넘어갔다. 그러고는 내가 읽은 구절을 ‘이해했다’고, ‘생각해봤다’고 믿었다. 수업에 가니 토론을 할 수가 없었던 건 당연하다. 나는 진짜 생각을 해보지 않고 생각해봤다고 착각한 것이었다.
_2장. 진짜 공부하는 법 배우기 中(50쪽)
토론을 할 때는 어떤 주제에 대해 깊은 이야기를 나누기 때문에 서로의 의견 충돌은 피할 수 없다. 아니, 피할 수 없는 게 아니라 새로운 것을 배우기 위해선 충돌해야만 한다. 다른 의견을 들어야 자신의 제한된 생각에만 머물지 않고 시야를 넓힐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새로운 의견을 듣는 건 신나는 일이다. 내 한계를 벗어나야 그 이상의 것을 볼 수 있게 된다. 하지만 동시에 전혀 말도 안 되게 느껴지고 받아들여지지 않는 의견을 듣는 경우도 많다. 지구는 둥글다고 주장한 갈릴레오가 미친 사람 취급을 받았던 것처럼 지금은 옳다고 밝혀진 많은 진리들이 예전에는 그랬다.
어찌 보면 자신이 평생을 믿어온 가치관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의견들을 쉽게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그때 소통을 단절하면 나는 여전히 지구가 네모나다고 믿는 내 세상 속에만 머물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소통하는 법을 익혀야 하는 것이다. 의견이 다른데도 불구하고, 전혀 동의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소통을 해나가기 위해. 그래서 모두가 진리에 다가가기 위해 함께 노력하는 과정에서 배움을 얻기 위해.
_2장. 진짜 공부하는 법 배우기 中(69쪽)
세미나 수업이 있는 월요일, 목요일 오후 시간대는 캠퍼스의 전반적인 분위기가 상당히 학구적이다. 도서관은 물론 어딜 가도 학생들, 튜터들이 다 책을 들고 있고 밥 먹을 때도 큰 테이블에 모여 앉아 세미나 책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 일찍 저녁을 먹고 나와 잔디밭에 또는 연못 앞에 앉아 못다 읽은 책을 읽는 학생들도 많고, 학교 전체가 곧 있을 세미나를 준비를 하는 풍경이 펼쳐진다.
세미나가 시작되기 15분 전인 7시 15분, 학교 종이 뎅뎅 울리면 이 소리와 함께 마치 철새들처럼 학생과 튜터 들의 대이동이 시작된다. 1학년부터 4학년까지 다 그 시간에 세미나가 있으니 모두 자기 교실로 이동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7시 반부터 9시 반까지는 세미나 에 가지 않고 숨어 있는 몇몇의 반항자들 빼고는 사람을 볼 수 없을 정도로 캠퍼스가 조용해진다. 대신 대부분의 교실에서는 튜터와 학생들의 치열한 지적 전쟁이 벌어진다.
_3장. 세인트존스는 어떻게 공부하는가 中(79~80쪽)
이와 달리 고전은 이상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괴도 루팡》 같은 추리소설에 순식간에 읽히는 힘이 있다면, 고전은 한 줄 한 줄 천천히 읽게 하는 힘이 있다. 어려워서라기보다 한 줄 한 줄 곱씹으며 ‘생각’해봐야 하기 때문이다.
고전에 대한 나만의 개똥철학이 있는데 그건 바로 고전은 ‘읽는 책’이 아니라 ‘생각하는 책’이라는 것이다. 나만 그런 건지 모르겠지만 고전은 웬만큼 자신감이 있지 않고서야 ‘읽었다’고 말하기가 쉽지 않다. 대신 고전을 ‘생각했다’고는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즉 고전들에 대해서는 질문부터 달라져야 할 것 같다. “너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 읽어봤어?”가 아니라 “너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 생각해봤어?” 하고 물어야 정확한 질문이라고 느껴진다. 그러면 나는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다. “응. 고작 두 시간 생각해봤어. 다시 읽고 더 생각해보고 싶어.”
_3장. 세인트존스는 어떻게 공부하는가 中(93쪽)
세미나가 세인트존스 커리큘럼의 장남이라면 과학 실험(LAB)과 수학은 쌍둥이 동생쯤 되겠다. 수학 수업이 인간의 순수이성을 사용해 우주와 인간을 공부하는 시간이라면, 과학 실험 수업은 실험과 경험을 통해 땅과 자연, 동물로서의 인간을 공부하는 시간이다.
과학 실험에 대한 세인트존스의 자부심은 꽤 큰 편이다. 수학은 시대순으로 중요한 업적과 연구들을 짜깁기한 매뉴얼로 공부했다면, 과학 실험은 그런 매뉴얼에 실험까지 더해지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 실험은 그 옛날 과학자들이 했던 연구와 실험을 그대로 재현해내는 게 대부분이다. 그래서 실험실에 가보면 정말 이상한 정체불명의 기구들이 아주 많다. 흡사 옛날 흑백영화 속 과학자들의 실험실에서나 볼 수 있을 것 같은 그런 실험 도구들이다.
_4장. 핵심 교양을 키우는 학교 中(161쪽)
여기에 쓴 내용들은 내가 정말로 세인트존스에서 토론 수업을 통해 배운 중요한 말하기 방법들이다. 이 방법만 익혀도 토론이 아니라 평범한 대화를 하더라도 말하기가 훨씬 수월해질 뿐만 아니라 유쾌하고 즐거운 대화를 할 수 있게 될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영어 말하기는 중요하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영어라는 도구를 이용해 나와는 다른 의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과 생각을 나누며 공감하고 반박할 줄 아는 소통의 능력이다. 우리가 영어 말하기를 잘하고자 하는 이유는 갈라파고스 섬에 가서 말귀도 못 알아듣는 펭귄에게 유창하게 영어로 말하기 위해서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 질문하기 방법들은 영어 말하기 실력을 키우기 위해서 기본적으로 갖춰야 할 자세가 아닐까. 그 자세가 갖춰져 소통이 되기 시작하면 대화가, 토론이 재미있어진다. 조금씩 질문에 내 의견까지 덧붙이기 시작하면 어느새 말하기 실력은 훌쩍 향상돼 있을 것이다.
_5장. 영어로 하는 세인트존스의 독서, 토론, 작문 中(202쪽)
학생들이 자신의 한계와 정정당당히 마주하게 하고 그 한계를 인정하게 하는 학교. 그 후 한계에 도전하고, 실패 혹은 성공하기도 하 면서 그 과정 속에서 자신의 가능성을 깨닫게 하는 학교. 그래서 결국에는 학생 각자가 자기만의 배움을 찾도록 하는 학교. 그게 내가 경험한 세인트존스다. 그리고 이것이 세인트존스가 원하는 교육 목표, 스스로 학습(배움)이 아닐까 감히 생각한다.
_7장. 내가 세인트존스에서 배운 것 中(242~243쪽)
출판사 서평
선인의 지혜를 읽고 자신만의 생각을 만들어가는
세인트존스의 고전 공부법
세인트존스에서 고전을 읽는 이유는 고전 속에는 인류가 고민해온 문제들 그리고 앞으로 계속 생각해봐야 할 문제들이 있기 때문이다. 세인트존스에 들어오기 전, 저자에게 고전은 ‘나와는 상관없는 있어 보이는 책’이었다. 하지만 세인트존스에서 공부하면서 그녀는 고전이란 ‘읽는 책’이 아닌 ‘생각하는 책’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고전은 쉽게 읽히는 책이 아니다. 우리말로 쓰여 있어도 어려운 게 당연하다. 모르겠으면 무엇을 모르겠는지, 궁금한 점은 무엇인지 물음표를 달아가면서 자신만의 답을 찾으며 읽어야 하는 책 바로 고전이라는 게 저자의 생각이다. 그럼으로써 누가 읽든 자신의 수준에서 이해하고 자신만의 생각과 가치관을 만들게 하는 것이 바로 고전이다.
《세인트존스의 고전 100권 공부법》은 저자가 4년 동안 읽은 리딩 리스트를 바탕으로, 세인트존스의 세미나 수업이 어떤 식으로 학생들을 배움의 길로 이끄는지 알려준다. 학생들은 4년 동안, 고대 그리스의 서사시 《일리아스》부터 모더니즘 소설 《더블린 사람들》까지, 철학과 소설 그리고 역사를 넘나들며 시대순으로 고전을 읽는다. 《파이드로스》와 《향연》을 읽으며 사랑에 대해 생각해보고, 아리스토텔레스의 《물리학》을 읽으면서 자연 운동의 작동 원리에 대해 토론한다. 칸트의 《순수이성비판》 독서 후에는 인간의 이성과 본성의 한계에 대해 고민하며, 멜빌의 소설《베니토 세레노》를 읽고 인종차별과 인간의 잔혹함에 대해 토론한다. 그렇게 고전을 시대순으로 읽어가다 보면 인류의 가치와 생각이 어떻게 변화해왔는지를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300년 전, 데카르트에 의해 유럽에 대수학과 해석기하학이 소개된다. 이 일은 정치, 도덕, 종교 등 여러 분야에 있어서 역사상 가장 위대한 지적 혁명의 하나였다. 또한 인간의 자연, 문화적 가치를 재정의하고 변화시켰다. 그렇기 때문에 이 사건은 세인트존스 프로그램의 핵심이자 학교가 특별하게 강조하는 부분이다. 세인트존스 커리큘럼의 마지막 2년 과정(3, 4학년)은 이 사건에서부터 뻗어나간 우리 사회의 변화를 보여준다.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은 첫 2년(1, 2학년) 때 배우는 호메로스 시기부터 데카르트 시기까지에 대한 이해가 없다면 불가능하다.”
_4장. 핵심 교양을 키우는 학교(162쪽)
가르치지 않는 수업
세인트존스는 스스로 공부한다
세인트존스의 모든 수업은 토론이다. 특히 일주일에 두 번, 세미나 수업에서는 고전 100권을 읽고 토론한다. 토론식 수업은 강의식 수업과 다르다. 강의식 수업을 들을 때는 예습할 필요 없이 교과서만 가지고 가서 교수가 설명해주는 핵심만 잘 듣고 외우면 된다. 하지만 토론식 수업에서는 예습이 필수다. 예습, 즉 책을 읽어가지 않으면 토론에 참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세인트존스의 학생들은 교과서 대신 고전을 읽고 느낀 자신만의 생각을 정리하여 수업에 가야 한다. 토론을 하면서 자신의 생각을 풀어놓고 다른 학생들의 의견을 듣는다.
이런 강의식 수업과 토론식 수업의 차이를 저자는 전쟁터의 군인에 비유한다. 강의 전쟁터의 군인(학생)은 총(교과서)만 잘 챙겨 가면 된다. 총을 쏘는 방법은 지휘관(교수)이 알려준다. 그가 알려준 대로 연습만 잘하면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다. 그러나 토론 전쟁터에서는 학생이 직접 총 사용법을 만들어간다.
반면 토론 수업에서는 스스로 사용법을 익히고 오기 때문에 엉뚱한 총 사용법이 있을 수 있다. 하나, 총을 들고 탭댄스를 춘다. 둘, 추다가 필이 오면 방아쇠를 당긴다. 이와 같은 법을 자기 스스로 만들어서 온다. 그 후 전쟁터에서 이들이 하는 일은 자기가 연구해온 대로 우선 총을 쏴보는 거다. 각자가 연구해온 방법을 살펴보면서 다른 사람의 방법을 물어보기도 하고, 따라 해보기도 하고, 자신의 방법을 더 발전시키기도 한다.
_2장. 진짜 공부하는 법 배우기(44~45쪽)
세인트존스의 토론에는 사회자가 없다. 발언권을 얻을 필요 없이 발언하고 싶을 때 끼어들어 말하면 된다. 그 과정에서 서로 충돌하기도 하고 의견을 수렴하기도 하며 자신의 생각을 깊고 넓고, 더 풍부하게 가다듬는다. 고전을 읽으며 그 속에 담긴 지혜를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바탕으로 자신의 생각을 만들어나가는 것이다. 그리고 그 생각을 글로 써서 내야 한다.
고양이를 해부하고 수학 공식을 증명하다
고대 그리스어를 번역하고 작곡을 공부하다
세미나 수업에서 읽는 고전은 세인트존스에서 읽는 책의 4분의 1 정도다. 이곳에는 세미나를 뒷받침하는 언어, 음악, 수학, 과학 수업이 있고 각 수업에서는 해당 과목의 고전을 읽는다.
수학 수업에서는 수학자들이 쓴 고전을 읽고 토론한다. 또 유클리드의 기하학이나 뉴턴과 오일러의 증명을 그대로 재현한다. 그 증명들을 자신이 이해하고 친구들에게 설명하며 납득하는 방식으로 추론 능력과 창의력, 비판 능력을 키운다.
과학 수업에 대한 학교의 자부심은 꽤 높다. 과학 수업 중 일주일에 하루는 실험으로 이루어진다. 직접 동물을 해부하며 생물에 대해 배우고 예전에 이루어졌던 주요 실험들을 그대로 재현하며 물리, 화학 등 과학의 발전 과정을 그대로 따라간다. 과학과 수학 수업을 통해 학생들은 우주 속의 인간과 사물, 자연으로서의 인간을 생각해보고 그에 대한 과학자들과 수학자들의 생각을 접한다.
언어 수업에서는 고대 그리스어와 프랑스어를 배운다. 특이한 점은 회화를 위한 수업이라기보다 원전을 읽기 위한 수업, 그리고 언어의 구조를 알기 위한 수업이라는 점이다. 원문을 번역하고 친구들과 번역문을 비교하는 수업도 있다. 또 리포트나 에세이를 쓰기 위한 글쓰기의 기초를 닦는다.
세인트존스는 음악이 사람의 감정과 영혼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한다. 음악 수업에서는 합창을 연습하고 음악의 기초 이론부터 작곡까지를 공부하며 학생의 정서를 함양한다. 물론 토론도 빠질 수 없어서, 여가활동의 의미와 목적 혹은 음악이 어떻게 인간을 풍요롭게 하는지 등에 대해 토론하기도 한다.
무엇을, 어떻게, 왜 배워야 하는가?
고전을 넘어 배움을 생각하다
만약 한국의 학교에서 고전 100권을 배운다면 그 수업은 어떻게 이루어질까? 강의실 칠판 앞에 교수가 서 있다. 학생들은 단체로 교수를 바라보고 앉아, 교수가 입을 열기를 기다린다. 이윽고 교수가 《니코마코스 윤리학》이 무엇인지에 대해 설명한다. “이 책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책으로 최고선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으며…….” 학생들은 교수의 말을 듣고 그가 중요하다고 한 문장에 밑줄을 긋고, 교수가 설명하는 그 문장의 뜻을 그대로 필기한다. 시험문제로 그 문장의 뜻이 무엇이냐는 질문이 나오면 모두 교수가 말한 것을 그대로 적는다. 고전을 배우는 이유가 성적을 잘 받기 위해서가 아닌 선인들의 지혜를 얻기 위해서라고 한다면, 이렇게 배운 학생들은 고전 속 지혜를 얼마만큼 제대로 배워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을까?
한국에서는 몰랐던 배움의 즐거움을 세인트존스에서 깨달았다는 저자의 말은 ‘공부란 무엇인가, 배움은 어떠해야 하는가’를 생각하게 한다. 한국 학생들에게 공부가 즐겁냐고 물어본다면 돌아올 말은 십중팔구 ‘아니요’일 것이다. 점수를 잘 받기 위한 공부, 일등이 되기 위한 배움은 즐거움보다 스트레스와 가깝다.
그냥 읽어도 어렵다는 고전을 읽고 토론까지 해야 하는 세인트존스의 수업이 한국 학교의 수업보다 쉽다고 할 수는 없다. 한국 학생이 헤쳐 나가기에는 더 힘들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에게 배움이 즐거웠던 이유는 배운 것을 자기 것으로 만들어 끄집어낼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 없이 외우기만 하고 배운 것을 꺼낼 기회를 주지 않는 주입식 교육만 받은 학생은 언젠가 터져 버릴지도 모른다. ‘문제가 있다’는 우려를 받는 한국의 교육이 어쩌면 터지기 직전에 와 있는 것은 아닐까. 만약 그렇다면 앞으로 한국의 교육은 어떤 방향으로 바뀌어야 하는지 생각해보는 데, 고전을 생각하게 하는 《세인트존스의 고전 100권 공부법》이 유의미한 지표가 되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