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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1. 28. 오늘의 양식 : 내가 네 환난과 궁핍을 알거니와
삶의 터전에서 드리는 예배
표어 : 오직 예수. 재림 신앙. 땅끝 선교
1. 예배의 부름---------- 마음을 정돈하고 예배를 드리는 데 방해가 없도록 합시다. ------------
2. 찬양과 경배---------- 237 저 건너편 강 언덕에
350 우리들이 싸울 것은
516 옳은 길 따르라 의의 길을 -------------------------------------
3. 신 앙 고 백---------- 사 도 신 경--------------------------------------------------------
4. 찬 송---------- 527 어서 돌아오오 ------------------------------------------------
5. 기 도---------- 주의 나라를 위하여
주의 동력자를 위하여
예배자를 위하여 ---------------------------------------------------
6. 하나님 말씀---------- 요한계시록 2장 9절
내가 네 환난과 궁핍을 알거니와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니라. 자칭 유대인이라 하는 자들의 비방도 알거니와 실상은 유대인이 아니요 사탄의 회라.
7. 설 교---------- 내가 네 환난과 궁핍을 알거니와
주께서는 서머나 교회 목사의 계명 순종과 충성의 행위와 환난과 궁핍을 아셨다.
주께서는 우리의 계명 순종과 충성을 아신다. 또 주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들은 이 세상에서 많은 환난과 궁핍을 경험할 것이다.
* 행 14: 22 -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
9-1] 칭찬 : 내가 네 환난과 궁핍을 알거니와
(1) 환난(患難) : [영] Tribulation [히] tsar, tsarah [그] thlipsis .
성경에서 말하는 환난[트립시스(thlipsis)]이란 외부상황에서 오는 고뇌, 중압감, 불행을 의미한다. 고뇌를 의미하는 파데마(pathema)와는 구별된다.
엄밀하게 양자를 구별하기는 곤란하다. 양자는 동시에 쓰여 있어 구별하기 어렵다.[롬 2: 9. 8: 35. 고후 1: 6]
성경은 모든 환난을 인류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로 본다. 이사야서는 고난의 종이 불의한 사람들을 위해 고난을 당한다는(사 42: 1-4. 49: 1-6. 50: 4-9. 52: 13 – 53: 12) 사상에까지 달해 있다.
이 사상이 신약에서는 예수의 수난이다.'나는 받을 세례가 있으니 그 이루기까지 나의 답답함이 어떠하겠느냐.'[눅 12: 50]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막 10: 45]
예수께서 친히 말씀하신 말씀 중 세례라든가 섬김은 그의 수난을 가리키는 것으로 생각된다. 우리 주께서 고난을 겪으셨으므로 우리도 고난을 몸에 져야 한다. 예수님은 백성을 거룩하게 하려고 자기 피로 성문 밖에서 고난을 받으셨다. '그런즉 우리도 능욕을 지고 영문 밖으로 그에게 나아가자.'[히 13: 12-13]
예수의 수난은 구원에 이르는죄의 대속인 동시에, 구원을 찾아내는근거요, 모범이다. 그가 하나님의 아들일지라도 받으신 고난과 순종으로 온전하게 되셨다. 따라서 자기를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은 대제사장이라 칭하심을 받았다.
* 히 5: 8-10 – 8 그가 아들이시면서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9 온전하게 되셨은즉 자기에게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 10 하나님께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른 대제사장이라 칭하심을 받으셨느니라.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 오게' 하셨다. [벧전 2: 21]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면 겉 사람은 부패하나 우리의 속은 날로 새롭게 된다.
우리의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다.
* 고후 4: 16-18 – 16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 17 우리가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18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롬 5: 3-4] 예수 그리스도의 환난을 통하여, 구원에 이르며, 참된 환희를 환난에서 찾아낼 수 있다.
바울은 육체에 가시 하나가 자기에게 주어진 것으로[고후 12: 7] 내 능력이 약한데서 온전하여짐이라(12: 9)고 말한다.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고(12: 9-10) 했다.
환난에 대한 많은 기록이 바울의 편지에 나타난다. 특히 복음의 사자로 직면했던 일들이 기록되어 있다. 그의 용기, 희망, 위로 등 각양의 심경을 아는 실마리가 되었다.[행 20: 23. 롬 5: 3. 8: 35. 고후 1: 4-8. 2: 4. 4: 17. 6: 4. 7: 4. 8: 2. 엡 3: 13. 빌 1: 17. 4: 14. 살전 1: 6. 3: 3,7. 살후 1: 4]
바울은 하나님의 영광에 참여하는 희망으로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였다. [롬 5: 3] 이렇게 말하는 것은 고통을 몰라서가 아니라, 환난이 임시적임을 알기 때문이다. 또 세상에 있는 그리스도인에게 불가결의 한 부분 됨을 알기 때문이다.
* 행 14: 22 - 제자들의 마음을 굳게 하여 이 믿음에 머물러 있으라. 권하고, 또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 하고
* 계 21: 4 -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 계 22: 12 –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가 행한 대로 갚아 주리라.
또한 그리스도인의 고난이나 환난은 구원의 증거이며, 그를 성장하게 하는 힘인 것을 알기 때문이다.
* 빌 3: 10 -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고자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예수님 때문에 받는 환난이다.
이 교회는 예수 믿는다는 것 하나 때문에 핍박을 받고 순교를 당했다. 여러분들도 남편이 못 믿게 하는데 교회 나온다. 생활이 어려운데 예배 시간을 지킨다. 이것도 다 환난의 종류다.
예수님 때문에 겪는 외부적 고통은 다 환난이다. 바클레이는 이런 말을 했다. '이런 것은 생각도 하기 싫은 것들이지만 예수 믿기로 작정했으면 이런 것들은 각오하고 있어야 한다.'
'환난'에 해당하는 헬라어 '들마신'(*)는 '무거운 물건 밑에서 눌려 부서지는 것'을 의미하는 말로, 신앙으로 말미암아 받는 외부적 핍박을 시사한다.
(2) 궁핍 - 경제적인 가난에 의하여 당하는 고통.
비록 서머나 교회의 목사가 환난과 궁핍 가운데 있었지만, 예수께서는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니라”고 평가하셨다.
인생의 참된 부요는 물질적인 곳에 있지 않고 영적인 데 있다. 물질적인 가치는 일시적이지만, 영적인 가치는 영원하다. 주께서는 자기를 위해 재물을 쌓아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치 못한 자가 되지 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한 자가 되라고 교훈하셨다. (눅 12: 21).
또 가난한 자들이 믿음이 좋은 경우가 많다. 야고보는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들을지어다. 하나님이 세상에 대하여는 가난한 자를 택하사 믿음에 부요하게 하시고 또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나라를 유업으로 받게 아니하셨느냐?”고 말했다. (약 2: 5).
세상에서 가장 부요한 자는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과 교통하며 하나님만 소망하며 그를 위로로 삼고 하나님의 뜻만 행하며 사는 자이다.
궁핍에는 두 가지 개념이 있다. '페네스'는 상대적 가난을 말하고, '프토케이아'라는 것은 절대적 가난을 말한다.
서머나 교인들은 예수 하나, 믿음 하나를 지키기 위해서 물질의 부를 전부 날려 버렸다. 폴리갑도 그랬다. 예수 때문에 가난해야 한다. 짐이 많으면 수영을 못한다. 수영복만 입어야 한다.
예수를 믿으면 이 땅에서도 물질을 축복해 주신다. 그것은 이 땅에서 누리고, 영광 받고, 타락하라고 주신 것이 아니다. 하나님 나라를 위해, 큰일을 맡기기 위해 주신 것이다.
'궁핍'의 헬라어 '프토케이안'(*)은 '외적 핍박으로 생긴 물질적인 빈곤'을 나타낸다. 이것은 그리스도인들이 황제 숭배를 거절함으로 당한 경제적 제재나 적대 감정을 가진 유대인이나 다른 사람에게 당한 경제적 어려움을 가리킨다(Johnson, Ladd).
(3) 핍박의 이유
① 무신론자
② 흡혈귀
③ 가정 파괴자
④ 방화범
* 행 26: 11 - 또 모든 회당에서 여러 번 형벌하여 강제로 모독하는 말을 하게하고 그들에 대하여 심히 격분하여 외국 성에까지 가서 박해하였고,
* 롬 5: 3-4 – 3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4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 살후 1: 6-7 – 6 너희로 환난을 받게 하는 자들에게는 환난으로 갚으시고 7 환난을 받는 너희에게는 우리와 함께 안식으로 갚으시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시니 주 예수께서 자기의 능력의 천사들과 함께 하늘로부터 불꽃 가운데에 나타나실 때에
* 고후 8: 2 - 환난의 많은 시련 가운데서 그들의 넘치는 기쁨과 극심한 가난이 그들의 풍성한 연보를 넘치도록 하게 하였느니라.
서머나 교회는 외적으로는 환난과 궁핍으로 어려움을 당하고 있다. 그러나 내적으로는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를 경험하고 소유하고 있기에 어려움을 기쁨과 평안으로 대처해 나가고 있다.
하나님의 은혜가 크기에 환난과 궁핍은 그들에게는 작고 보잘것없게 되었다. 예수의 환난과 요셉의 환난은 영적(靈的)인 신앙(信仰)의 문제로 형(兄)들에게 미움을 받고 버려짐을 당하는 고통의 환난이다.
야곱의 환난은 장자(長子)권의 문제로 형(兄) '에서'에게 미움을 받고 광야로 내어 좇기는 환난이다.
* 계 1: 9 – 나 요한은 너희 형제요 예수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자라.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를 증언하였음으로 말미암아 밧모라 하는 섬에 있었더니
* 암 6: 6 - 대접으로 포도주를 마시며 귀한 기름을 몸에 바르면서 요셉의 환난에 대하여는 근심하지 아니하는 자로다.
* 렘 30: 7 – 슬프다. 그 날이여! 그와 같이 엄청난 날이 없으리라. 그 날은 야곱의 환난의 때가 됨이로다. 그러나 그가 환난에서 구하여 냄을 얻으리로다.
요셉은 꿈(비전, 진리)의 문제로 형(兄)들에게 미움을 받아 애굽으로 팔려 가는 환난이요, 예수님은 성전(聖殿)문제로 신앙의 형(제사장)들에게 미움을 받아 십자가에 죽임을 당하는 환난이요, 두 증인도 예언(豫言)의 말씀으로 인하여 바벨론에서 환난이 닥치어 죽게 된다.
* 계 11: 3-7 – 3 내가 나의 두 증인에게 권세를 주리니 그들이 굵은 베옷을 입고 천이백육십 일을 예언하리라. 4 그들은 이 땅의 주 앞에 서 있는 두 감람나무와 두 촛대니 5 만일 누구든지 그들을 해하고자 하면 그들의 입에서 불이 나와서 그들의 원수를 삼켜 버릴 것이요, 누구든지 그들을 해하고자 하면 반드시 그와 같이 죽임을 당하리라. 6 그들이 권능을 가지고 하늘을 닫아 그 예언을 하는 날 동안 비가 오지 못하게 하고, 또 권능을 가지고 물을 피로 변하게 하고, 아무 때든지 원하는 대로 여러 가지 재앙으로 땅을 치리로다. 7 그들이 그 증언을 마칠 때에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오는 짐승이 그들과 더불어 전쟁을 일으켜 그들을 이기고 그들을 죽일 터인즉
9-2] 부요한 자 :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니라.
(1) 기독교인이 가난한 이유
① 사회적으로 하급 신분에 속한 자들이 많았다.
② 폭도로부터 약탈을 당하였다.
* 고후 8: 9 -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이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부요하게 하려 하심이라.
* 딤전 6: 18 - 선을 행하고 선한 사업을 많이 하고 나누어 주기를 좋아하며 너그러운 자가 되게 하라.
* 약 2: 5 -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들을지어다. 하나님이 세상에서 가난한 자를 택하사 믿음에 부요하게 하시고 또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나라를 상속으로 받게 하지 아니하셨느냐?
(2) 부요 : 富饒 [영] Wealth [히] hon, 'ashir [그] ploutos
재물이 넉넉함을 말한다. 부유와 동의어.
구약은 여호와의 부요하심과 정직한 자의 후손이 부요할 것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
* 시 104: 24 - 여호와여 주께서 하신 일이 어찌 그리 많은지요, 주께서 지혜로 그들을 다 지으셨으니 주께서 지으신 것들이 땅에 가득하니이다.
* 시 112: 3 - 부와 재물이 그의 집에 있음이여 그의 공의가 영구히 서 있으리로다.
신약에서는 주로 하나님의 부요하심에 대해 말한다. 예수께서는 참된 부나 부요함은 이 세상의 부나 부요가 아니라 하늘에 보물을 쌓는 일로 하나님께 대해 부한 것임을 가르쳐주고 있다.
* 롬 11: 33 -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풍성함이여, 그의 판단은 헤아리지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
* 눅 12: 15,21 – 15 그들에게 이르시되,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 하시고 21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하지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
요한 사도는 라오디게아 교회에 보낸 편지에서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계 3: 17]고 호언하고 있는 교인이 실제로는 비참한 가난한 자임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다고 책망하고 있다.
그것은 미온적인 신앙적 무관심에 유래하는 것이었다.서머나 도시 자체는 부요한 도시였다. 그러나 서머나 교회는 온갖 핍박으로 인해 실제적으로 궁핍하였다.
그런데도 그리스도께서는 서머나 교회를 향해 부요하다고 인정하신다. 이것은 육신적으로는 궁핍하나 내적으로 정결하고 부요함을 의미한다. 이는 외적으로는 부요하나 내적, 영적으로 궁핍했던 라오디게아 교회와 정반대이다(3: 17).
* 눅 12: 20-21 – 20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21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하지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
* 고후 6: 10 -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
* 딤전 6: 17-18 – 17 네가 이 세대에서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 18 선을 행하고 선한 사업을 많이 하고 나누어 주기를 좋아하며 너그러운 자가 되게 하라.
(3) 성도는 천국을 소유한 자 - 믿음이 부요한 자
* 눅 6: 20 - 예수께서 눈을 들어 제자들을 보시고 이르시되, 너희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 것임이요.
* 히 10: 34 - 너희가 갇힌 자를 동정하고 너희 소유를 빼앗기는 것도 기쁘게 당한 것은 더 낫고 영구한 소유가 있는 줄 앎이라.
8. 기 도 ---------- 받은 은혜와 귀한 사명을 통하여
이웃에게 나누어주는 자가 되기 위하여 ------------------------------
9. 찬 송 ---------- 261 이 세상의 모든 죄를 -----------------------------------------
10. 폐 회 ---------- 주기도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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