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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전 대통령과 박근혜 대표의 만남 2004/08/16 00:47 | 추천 1 스크랩 4 |
오늘부터 정식업무에 복귀했습니다.
언제나처럼 아침 회의도 시끌벅적했구요- 그리고 오늘은 ‘김대중 전대통령과의 만남’이 예정되어 있었습니다. 다들 전직 대통령과의 만남의 ‘하일라이트’라고 할수 있겠죠? 박대표와 함께 만남의 장소인 김대중도서관을 가면서 영국에 있는 대처 전총리나 레이건대통령을 떠올렸습니다. 한사람은 알츠하이머를 앓다 세상을 떴고 대처역시 지금 몸이 안좋은 상태라고 합니다. 아마도 이들에 대한 평가는 역사가 도도한 시각으로 할 것입니다. 그런데 어쨌든 부러운 것은 이들이 존경받고 있다는 점입니다. 레이건은 미국인의 사랑과 존경속에 삶을 마쳤구요- 그리고 대처는 ‘현재진행형 존경’을 받고 있다고 런던에 사는 친구가 전해왔습니다. 어느날 한 식당에 점심을 먹으러 들어갔대요. 그런데 사람들이 일제히 다 일어서더라는 겁니다. 런던에 온지 4-5년되었지만 그런 일은 첨이라 놀랐죠- 그런데 입구쪽을 보니 글쎄-마가렛 대처 전 총리가 들어오더라는 것입니다. 몸은 약간 불편해 다른 사람의 부축을 받았지만 위엄과 품격은 여전했다고 합니다. 대처총리가 앉자 사람들은 조심스레 앉았고 편안히 식사를 할수 있도록 부러 시선을 주지 않고 자신들끼리 소곤소곤 이야기를 하며 배려하는 모습이 참 좋았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메일에 덧붙였습니다. ‘언제쯤 우리는 저렇게 퇴임후에도 존경받는 정치인을 가질 수 있을까?’ DJ는 지금 어떤 모습일까? 김대중도서관은 아담하지만 매우 아름답게 꾸며져 있었습니다. 일찍 도착해 잠시 기다리자 김대중전대통령이 곧 나타났습니다. 전보다 마른듯했고 나이 탓인지 움직임이 느리고 조용했습니다. 그러고보니 파란만장한 DJ와의 직접간접 만남이 파노라마처럼 스쳐갔습니다. 어린 시절 아버지가 감동했던 ‘한강 모래사장의 DJ" 온갖 고난을 거친 DJ, 그리고 제가 직접 만났던 한 10년전쯤 DJ와의 인터뷰--- 박대표와 김대중 전대통령과의 대담은 마치 비단 실타래가 맵시있게 풀리듯 술술술 풀려나갔습니다. 기자들이 잠시 뒤로 한뒤 박대표와 김대중 전대통령은 낮은 목소리로 많은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박대표는 이야기처음부터 ‘아버지 때문에 고생하신 것 딸로서 사과드린다‘고 했습니다. 저는 참 기뻤습니다. 박대표의 목소리가 담은 진실됨이 제게도 느껴졌고 김대중전대통령에게도 전해진다는 감이 자연스레 왔으니까요. 두 사람은 우리사회를 걱정했고 나름대로 무엇이 최선인가를 머리를 맞대로 고민했습니다. 저는 그 모습을 혼자 보기 아까웠습니다. 저 진지한, 마음을 비운 모습을 많은 분들이 보았다면 얼마나 큰 위로와 희망을 얻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섭니다. 짧은 만남이지만 그 사이에 흘렀던 세월의 강을 두 사람은 훌쩍 뛰어넘었습니다. 이렇게 간단한 것을, 이렇게 단순한 것을, 왜 우리는 그토록 수많은 시간을 미움과 갈등으로 아깝게 보냈을까요? DJ는 여전히 명료했고 해박한 지식과 지적호기심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건강한 모습을 보니 기뻤습니다. 저역시 정치인 DJ에 대한 갈래갈래 수많은 아주 복잡한 감정을 지녔던 사람입니다. 한때 열렬히 지지했고 한때 몹시 실망했고 한때 분노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세월과 더불어 김대중 전대통령을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 그분이 박대표를, 박정희 전 대통령을 받아들이듯 말입니다. 이제 우리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이해, 사랑, 포용, 용서, 화해, 하나됨입니다. 존경받는 정치인을 가진 나라의 국민이 되기위해서 우리 먼저 정치인에 앞서 이런 것들을 넓게 품어보면 어떨까요? 2004년 8월 12일
전여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