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화학명: Prunus mume
장미과/갈잎 넓은잎 중간키 나무
다른 이름: 매실나무
장미과의 갈잎 중간키 나무인 매화는 꽃을 강조한 이름이다. 열매를 강조하면 매실나무이다.
잎보다 꽃이 먼저 피는 매화는 다른 나무보다 꽃이 일찍 핀다. 그래서 매실나무를 꽃의 우두머리를
의미하는 ‘화괴(花魁)’라 한다.
매화나무는 꽃이 피는 시기에 따라 일찍 피기에 ‘조매(早梅)’, 추운 날씨에 핀다고 ‘동매(冬梅)’,
눈 속에 핀다고 ‘설중매(雪中梅)’라 한다. 아울러 색에 따라 희면 ‘백매(白梅)’, 붉으면 ‘홍매(紅梅)’라 부른다.
우리나라 화가의 경우 대개 18세기까지는 백매를 선호했으나 19세기부터 홍매를 선호했다.
중국 양쯔 강 이남 지역에서는 매화를 음력 2월에 볼 수 있다. 그래서 매화를 볼 수 있는 음력 2월을 ‘매견월(梅見月)’이라 부른다.
우리나라에서 매실이 가장 먼저 나오는 자료는 고려시대 김부식이 편찬한 『삼국사기』다. 매실은 신맛이 강하다.
신맛을 생각하면 입안에서 침이 돌게 마련이다. 중국 삼국시대 조조는 매실의 신맛을 이용하여 위기를 모면했다.
중국 삼국시대 위나라의 조조가 대군을 거느리고 출병했다. 그런데 길을 잃어 군사들이 몹시 피로했다. 아무리 둘러보아도 물 한 방울 보이지 않자, 군졸들은 모두 갈증을 느껴 행군조차 할 수 없을 지경에 이르렀다. 이에 조조는 큰소리로 군졸을 향해 “저 산을 넘으면 큰 매화나무 숲이 있다. 여기서 열매를 따 먹자”라고 외쳤다.
이 말을 들은 군졸들은 매실을 생각하니 금방 입안에 침이 돌아 갈증을 해소할 수 있었다.
『세설신어(世說新語)』에 나오는 이 고사에서 매림지갈(梅林止渴, 매실이 갈증을 그치게 함)이 탄생했다.
선비들이 매화나무를 좋아한 이유는 추운 날씨에도 굳은 기개로 피는 하얀 꽃과 은은하게 배어 나는
향기, 즉 매향(梅香)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매화나무는 정당매(政堂梅)이다. 이 나무는
『양화소록(養花小錄)』의 편찬자인 강희안의 조부인 강회백이 심은 나무이다.
정당매는 강회백의 벼슬이 정당문학(政堂文學)을 지냈기 때문에 붙인 이름이다. 조선 전기의 문신인
김일손은 『정당매기(政堂梅記)』를 남겼다. 지리산 자락의 단속사에 살고 있는 정당매는 600년의 세월을 견딘 탓에 키도 작을 뿐 아니라 죽은 가지도 적지 않다. 정당매 앞에는 매화를 심은 뜻을 기린 비석이 있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화가 중 한 사람인 김홍도는 매화를 무척 사랑했다. 하루는 어떤 사람이 매화나무를 팔려고 왔지만, 김홍도는 돈이 없어 살 수 없었다. 마침 어떤 사람이 김홍도에게 그림을 청하고 그
사례비로 3,000냥을 주자, 김홍도는 2,000냥으로 매화나무를 사고 800냥으로 술을 사서 친구들과 함께 마셨다. 그래서 이를 ‘매화음(梅花飮)’이라 한다.
동방오현(東方五賢) 중 한 사람인 한훤당 김굉필의 외증손이자 퇴계의 제자인 한강 정구는 자신의 고향 성주에 회연서원을 세우고 뜰에 매화를 심고 백매원(百梅圖)을 만들어 수양했다. 지금도 회연서원에는 이른 봄 만발한 매화를 볼 수 있다.
중국 남송시대 송백인이 편찬한 『매화희신보(梅花喜神譜)』에는 매화그림 백 폭이 수록되어 있다.
사람들은 백 폭 매화도를 「백매도(百梅圖)」라 불렀다. 한강 정구의 백매원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중국 송나라의 범성대는 세계 최초로 매화나무에 관한 전문서인 『매보(梅譜)』를 편찬했다.
중국에서 매화가 문인화로 등장하는 것은 대략 북송시대이다. 선비들이 매화를 그린 것은
자신의 지조와 절개를 드러내기 위해서였다.
중국 북송시대 임포는 ‘매화 그림’에 절대적인 영향을 준 사람이다. 그는 매화를 아내 삼고 학을 아들로 삼아 숨어 살았다. 그의 작품 「산원소매(山園小梅)」에 등장하는 시어(詩語)는 후대에 매화 그림의
단골 화제(畵題)가 되었다.
이때부터 달과 함께 그린 ‘월매도(月梅圖)’, 물가에 가지가 거꾸로 자라는 도수매(倒垂梅) 등이 유행했다. 경상북도 선산을 비롯해 남아 있는 조선시대의 정자 중 매학정(梅鶴亭)도 임포를 모델로 삼은 것이다.
일본 사람들도 매화 사랑에서 뒤지지 않는다. 일본적인 특징을 잘 드러내는 매화 그림 중 에도시대 오카타 고린의 「홍백매도 병풍(紅白梅圖屛風)」도 유명하지만, 같은 시기 우타가와 히로시게의 에도 백경(江戶百景) 중 하나인 「가메이도 매화정원(龜戶梅屋敷)」도 매우 유명하다. 특히 용이 누워 있는 것과 같은 이 판화 그림은 반 고흐가 유화로 모사하면서 더욱 유명해졌다.
우키요에 대가인 우타가와 히로시게의 에도 백경 중 「가메이도 매화정원」
빈센트 반 고흐의 「꽃피는 매화나무(히로시게를 따라서)」
매화에 얽힌 얘기는 아주 많지만 퇴계 이황의 유언 중 “매화 분재에 물을 주거라”도 빼놓을 수 없다.
이황과 같은 안동 출신으로 독립운동을 하다가 베이징 감옥에서 죽은 이육사의 「광야」도
매화의 의미를 강하게 전달하는 작품이다.
까마득한 날에
하늘이 처음 열리고
어디 닭 우는 소리 들렸으랴.
모든 산맥들이
바다를 연모(戀慕)해 휘달릴 때도
차마 이곳을 범하던 못하였으리라.
끊임없는 광음(光陰)을
부지런한 계절이 피어선 지고
큰 강물이 비로소 길을 열었다.
지금 눈 내리고
매화 향기 홀로 아득하니
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
다시 천고(千古)의 뒤에
백마 타고 오는 초인(超人)이 있어
이 광야에서 목 놓아 부르게 하리라.
첫댓글 우리 고유명절, '설, 은 잘 지내셨습니따 ?
입동과 '설,도 지났으니 멀지 않아서 梅花도 피겠지요 ?
그 香 도 좋은 작고도 예쁜 꽃소식은 저 南쪽 으로 부터 들려올것입니다,
부디 건강 하시고 새해에도 萬福을 누리시기 바랍니다,..感謝, 합니다,
봄을 알리는 매화 좋은 글 감사 합니다.
매화 이야기 잘 들었습니다.
감사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