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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테 '신곡'의 파라독스(逆說)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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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세기의 이태리 시인이자 정치인이기도 했던 단테의 신곡(神曲)이란 작품은 아마도 최초의 기독교적 문학작품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신곡'이란 명칭은 후에 붙여진 것이고 단테 자신은 비극의 반대인 '희곡(Commedia)'이라는 제명을 붙였다고 한다. 아마도 Commedia의 원래 의미는 지금처럼 웃긴다는 뜻의 단어가 아니라 환희라는 뜻으로도 쓰였던 것 같다. 서사시 형태로 쓰여졌지만 엄밀히 따지면 연극의 대본인 희곡(戱曲) 같은 인상을 주기도 한다. 그리고 워낙에 방대한 작품인데다 시적인 은유기법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무척 이해하기 힘든 작품이기도 하다. 특히나 그리스 신화를 모르고서는 내용의 대부분을 이해할 수 없게 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단테는 13세기 피렌체 사람으로서 논리학, 수사학, 산술학, 음악, 기하학, 천문학을 두루 섭렵한 당시의 쟁쟁한 지식인이었으며 특히 수사학에 대한 열정이 두두러져 많은 연애시를 썼다고 한다. 그 연장선상에서 쓰여진 것이 신곡이라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신곡의 상대 주인공은 베아트리체라는 아름다운 여성이었으니 말이다. 그는 '향연'이란 작품을 통해 사랑의 고귀함을 철학적으로 규명하면서 남녀간의 사랑은 선행을 이끌어내는 힘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神曲이라는 제명 때문에 순수하게 종교적 문학작품이라 생각하며 읽기 시작했지만, 사실은 단테의 연애감정이 순수한 종교적 사랑으로까지 승화된 카타르시스의 결과라는 인상을 준다.
뿐만 아니라 신곡은 단테의 순전한 개인적 문학작품이 아니라 그 배후에서 작용했던 영감(靈感)의 지시에 의해 쓰여진 것 같다. 처음부터 끝까지 마치 꿈 같은 장면들을 해설하는 형식으로 쓰여졌기 때문이다. 그는 천국을 체험하는 꿈 속에서 여러 행성들과 지구를 보았음을 이렇게 말하고 있다.
나는 일곱 천체 전부를 보았고 또 지구를 보았는데
너무나 작고 보잘 것 없는 그 모양에 웃음이 나왔다.....
또 자기가 신곡을 쓰게 된 동기를 이렇게 말하고 있다.
너는 육체를 지니고 다시 하계(세상)로 돌아가
여기서 본 것을 숨김없이 세상에 알려라....
신곡을 읽으면서 본인이 느낀 바로는 단테도 당시의 '접촉자'에 해당된다는 것이다. 그가 특별한 존재들과 접촉했다는 증거는 없지만 그는 꿈이나 환상을 통해 우주인들이 보내는 영상을 보았고 그것을 글로 옮겼을 것이다. 갈릴레오보다 3세기나 앞선 13세기 당시에는 극소수의 학자들이나 알까말까했던 천문학에 관한 지식이 포함되었다는 것도 그런 추측을 낳게 한다.
신곡은 지옥과 연옥, 천국을 환상 속에서 여행한 단순한 여행담이 아니라 당시로선 최첨단의 지식이라 할 수 있는 논리학적 신학적 그리고 윤리학적 지식이 총망라되어 있다. 또 문화적 자유주의 현상이라고 말할 수 있는 르네쌍스가 시작되기 전인 13세기였지만 단테는 자유의 가치를 이렇게 말하고 있다.
그는 자유를 찾아가고 있습니다.
그것은 목숨을 아끼지 않는 자만이 알 수 있는 귀중한 자유입니다....
자유 때문에 죽음도 괴로워하지 않았던 당신은
위대한 날에 빛날 옷(육체)을 우티카에서 버렸습니다......
단테가 살았던 피렌체는 그가 죽은 지 약 1세기 후부터 불기 시작한 르네쌍스 바람의 중심도시였다. 단테는 정치적으로 왕당파가 아닌 교황파에 속해 있었지만 왕권은 교황권으로부터 독립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그가 기독교에서는 금기시되어온 남녀간의 사랑에 대한 시를 주로 썼고 교황권과 왕권은 분리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는 점, 또 신학적 접근도 맹신이 아닌 논리학적이었다는 점 등은 그가 르네쌍스의 단초를 제공한 인물이 아니었을까 하는 인상을 준다. 그리고 그의 고향인 피렌체는 바로 르네쌍스의 중심지가 아니었던가?
신곡을 읽으면서 본인이 발견한 또 하나의 사실은 그 내용 속에 많은 파라독스(역설)가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다. 가장 대표적인 것은 루시퍼를 악마의 왕이라 칭하면서도 그를 유다나 브루터스 같은 배신자들의 심판자로 그리고 있다는 것이다. 악마의 왕이라면 유다나 브루터서 같은 인물을 반겨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런데 그들을 잡아먹는 마왕이라는 것이다. 또 지옥에서 죄인들을 벌하는 존재들도 루시퍼의 부하들이라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단테와 그 일행이 지옥을 빠져나올 때도 악마왕 루시퍼의 몸통에 난 털을 붙잡고 기어올라 지상으로 나왔다고 한다. 지옥을 빠져나오는 데 도움을 준 존재가 마왕이라는 말 아닌가?
그의 머리는 지구의 중심에 있지만 두 발은 지구의 표면으로 삐죽이 나와있을 정도로 몸집이 크다고 한다. 그렇게 마왕의 몸에 의지해서 지옥을 빠져나오니 그곳에는 연옥산이라는 산이 있고, 그 산은 천국에 오르기 위한 준비를 하는 영혼들이 머무는 공간이라고 한다.
신곡의 여성 주인공인 베아트리체는 단테가 9살에 처음으로 짝사랑했고 성장한 후에도 우연히 만나 짝사랑이 다시 불붙게 만들지만 다른 사람과 결혼한 후 24세엔가 죽은 여인이라고 한다. 이 베아트리체라는 여성은 외모도 아름다웠고 교양과 내적인 아름다움도 갖추었던, 단테에게 있어서는 가장 이상적인 여성이었던 것 같다. 그런데 베아트리체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에우리디케의 이태리식 이름이다. 에우리디케는 아폴론 신의 아들이었다는 오르페우스의 아내였으나 독사에게 물려 죽은 비운의 여자였다. 아버지 아폴론처럼 시와 음악의 신이었던 오르페우스는 지하세계에까지 내려가 아내 에우리디케를 죽음으로부터 구해내지만 마지막 순간에 뒤를 돌아보는 바람에 아내 에우리디케는 다시 지하세계로 끌려간 것이다. 그런데 단테의 신곡에서는 에우리디케(베아트리체)가 천국의 여성계에서 중요한 위치에 있으며, 또 그녀를 흠모하는 단테의 기도를 들으신 성모 마리아의 뜻에 따라 단테는 천국에서 베아트리체를 만나는 것이다. 그리고 단테는 에우리디케의 남편이었던 오르페우스를 상징하고 있는 것이다.
이 작품이 쓰여진 목적은 연옥편의 마지막 장인 '지상낙원'에 잘 나타나 있다. 연옥산 꼭대기에 있는 '지상낙원'은 태초의 에덴동산을 상징하고 있기 때문에 문제의 '나무'가 등장한다. 잎도 없고 꽃도 없이 헐벗고 있지만 위로 올라갈수록 넓게 퍼졌다는 이 나무에 대한 묘사를 보자.
이 나무는 입에서는 달콤하지만
나중에 배를 앓기 때문에
입으로 쪼지 않는 너는 복된 자다....
에덴동산에 있었다는 금단의 나무(지혜의 나무)를 상징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이어진다.
위대한 빛이 천상의 쌍어궁 뒤쪽에서 빛나는 빛과 섞이어
내리비칠 무렵
지상의 초목은 봉오리가 부풀고 그 색채가 모두 새로 되살아난다.
태양이 준마를 몰아 그 다음 별자리로 들어가기 전의 계절이다....
쌍어궁 뒤쪽에시 빛나는 빛이란 지난 2천년 동안의 쌍어궁 시대에 뒤이어 현재의 보병궁 시대가 도래함을 의미하는 것이다. 태양이 준마를 몰아 다음 별자리로 들어간다는 것도 같은 뜻이다.
그 때까지 쓸쓸하게 서 있던 그 나무가
새로이 생기를 머금더니 장미보다 더 엷게 제비꽃보다 더 짙은 빛의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그때 일제히 합창한 성가는
내가 이해할 수 없었고
지상에선 전혀 노래할 수 없는 가락인지라....
에덴동산 이래로 죄악의 나무로 알려졌던 지혜의 나무가 마침내 보병궁 시대라는 새로운 시대를 만나 비로소 잎이 나고 꽃을 피우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때 사람들이 일제히 합창한 노래를 이해할 수 없었다는 것은 뉴에이지 소식이 아무에게나 이해될 수는 없음을 의미할 것이다. 이해할 수 없는 노래였기 때문에 단테는 잠이 들었고, 잠에서 깨어나 보니 스승인 그리스도의 옷이 달라져 있었다,고 한다. 보병궁 시대의 그리스도는 우주인이라는 새로운 모습으로 인류 앞에 등장함을 상징하고 있는 것이다.
문제의 '나무'를 중심으로 벌어진 환상 속에는 '그립스'라는 2중적 성격을 지닌 '짐승'이 있고, 그 짐승이 한 마차를 끌고와서 그 나무에 붙들어 맨 후 하늘나라로 갔다고 한다. 이어서 하늘에 나타난 한 마리 독수리가 나무를 쪼아 상처를 내고 마차에는 온통 흰 깃털을 떨어트리고 갔다고 한다. 그러자 하늘에서는 "오, 나의 쪽배여, 짐을 잘못 싫었구나!!"라는 한탄의 소리가 들렸다고 한다. 그 다음은 마차 아래의 땅이 갈라지며 한 마리 용이 올라와 꼬리로 마차를 휘감고 상처를 낸 후 사라졌다고 한다.
수레 밑 한 끝을 쥐어뜯고는 유유히 사라졌다.
뒤에 남은 부분은 풀이 무성한 땅처럼
아마도 선의(善意)에서 바쳐진 깃털로
또 다시 덮였다.....
나무에 상처를 낸 독수리는 이 시대의 강대국인 미국을 상징하는 것 같다. 새시대의 도래를 알리는 '지혜의 나무'는 뉴에이지 소식을 전하고 있지만 지구 사회에 군림하고 있는 미국은 그 뉴에이지를 배척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땅에서 올라온 용은 무엇을 상징하고 있을까? 또 '아마도 선의에서 바쳐진 것털'이란 무엇을 상징하는 것일까? 요한계시록 13장에서는 용이 부정적 존재로 그려지고 있지만 10장의 '힘센 천사'는 한반도의 증산을 상징하고 있다. 증산은 무극대도와 상생주의, 우주일가(宇宙一家)를 부르짖었지 서양의 신을 악마로 규정하며 분열을 부추기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자신은 뱀의 독을 줄이기 위해 온 존재라고 했다. 용과 뱀은 전통적으로 동양의 신을 나타낸다.
이어서 벌어지는 장면은 그 마차에서 일곱 얼굴이 올라왔다고 한다. 그리고 그중 세 머리에는 황소의 뿔이 나 있고 네 머리에는 각기 하나씩의 뿔이 나 있었다고 한다. 도합 10개의 뿔이 등장한 것이다. 이는 요한계시록 13장의 '큰 짐승'과 같은 캐릭터인 것이다. '큰 짐승' 역시 일곱의 머리와 열 개의 뿔을 가진 짐승으로 묘사되고 있다. 그리고 그들의 머리 위에는 '침착하고 방자한' 한 창녀가 앉아 있고 그 옆에는 이 창녀를 호위하는 거인이 버티고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 창녀가 단테를 향해 추파를 보내자 거인이 질투와 분을 참지 못해 그녀를 매질한 후 나무에 매인 마차를 풀어서 근처 숲으로 사라졌다고 한다.
이 창녀 역시 요한계시록 17장의 여자와 같은 캐릭터로 그려지고 있다. 요한계시록에서는 창녀가 한 도시를 상징한다고 했다. 막강한 상권을 쥐고 경제적으로 세계를 지배하는 한 도시를 의미하는 것이다. 베아트리체는 단테가 본 이런 환상에 대해 지상으로 돌아가 전하라고 다시 당부한다.
그러면 '마차'는 무엇을 상징하는 것일까? 아마도 지구인들을 3차원에서 4차원으로 싫어나를 우주선을 상징할 것이다. 그런데 거기에 독수리의 흰 깃털이 가득차고 또 일곱 머리와 열 뿔이 돋아나 변형되었기 때문에 아, 나의 쪽배가 짐을 잘못 싫었구나,라고 한탄한 것이다. 그러면 독수리의 흰 깃털은 무엇을 의미할까? 아마도 미국의 전통적 기독교인들, 자신들은 실천하지도 못하면서 '사랑'이란 단어에 목을 매며 반뉴에이이지적인 복음주의자들을 의미할 것이다. 그러면 일곱머리와 열뿔은 무엇을 상징한 것일까? 일곱머리는 세계의 권력자들을, 그리고 열뿔은 언론기관을 상징하고 있을 것이다. 이 시대는 권력자 못지않게 언론기관도 막강한 힘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시대적 사명을 띈 '마차'가 기독교 근본주의자들과 권력자들에 의해 장악되었기 때문에 마차는 길을 벗어나 길도 없는 숲속으로 들어가게 된 것이다.
이처럼 마지막 시대를 위한 포석이 들어있지만 신곡은 지금으로부터 약 7백년 전인 13세기에 쓰여졌기 때문에 그 시대의 사람들을 첫 번째 대상으로 삼았음은 물론이다. 따라서 아무리 선하게 살아도 주를 믿지 못하는 자는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는 등의 도그마적 문구도 있지만 지혜의 나무에 대해서는 그 열매를 먹었다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지나침이 문제였다,는 현대적 해석을 내리고 있다. 지나침이 문제라는 것은 무슨 뜻일까? 인간은 지혜로워져야 하고 또 그럴 수 있는 존재지만 그렇다고 해서 인간지상주의를 내세워선 안된다는 뜻일 것이다. 지혜의 근원은 바로 하느님이고 또 신이기 때문이다.
신곡이란 작품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선 그리스-로마 신화를 몰라서는 안된다. 그런 점에서 본인이 접한 혜원출판사 발행 김의경 번역의 '신곡'을 추천하고 싶다. 그리스-로마 신화와 당시의 역사에 대한 훌륭한 주석을 달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로마 신화는 당시 사람들의 정신적 문화적 바탕을 이루고 있었기 때문에, 신곡의 전체 스토리에 배경음악처럼 깔려있는 것이다. 어떤 장에서는 제우스 신과 하느님을 동일시하기도 했다. 또 하나의 특징은 교황이나 성직자들 그리고 카톨릭 신자들을 비판의 대상으로 삼은 문장들이 무척이나 많다는 것이다. 그 한 예를 들어보자.
목장이란 목장에는 양치기 차림을 한
탐욕스런 이리들이 있는 것이 보이지만
아, 어찌하여 하느님의 손길은 뻗치지 않고 있는가?
또 이런 문구도 있다.
너희들은 마음의 눈이 병들어 있기 때문에
앞으로 전진하는 것 같으나 뒤로 물러나고 있다.
너희는 모르느냐? 우리는 나비가 되기 위해 태어난 벌레라는 것을?
어찌하여 네 자존심은 그리 높이 날아오르느냐?
너는 이를테면 불구자 벌레, 그것도 채 자리지 못한 번데기 같은 존재 아닌가?
아씨시의 성자 프랑체스코에 대해서는 태양에 비유하며 극찬하고 있다.
태양이 때로는 간지스 강에서 태어나듯이
이 비탈의 가장 완만한 곳에서(성 프란체스코의 고향)
한 태양이 이 세상에 태어났다.
때문에 이곳을 들어 말하는 자는
적절한 표현을 바란다면 '오리엔트(東方)'라고 할 것이지
돌아가지 않는 혀로 '아제시'라고 해서는 안될 것이다....
이태리에서 태어나 성 프란체스코로 살았던 영혼은 훗날 캐시미르에서는 쿠투후미라는 성자로 살았다. 그런 의미에서 오리엔트를 강조하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우주인들의 최근 메시지에 의하면 쿠투후미 대사가 보병궁 시대의 세계스승(World Teacher)이 될 것이라 한다.
단테의 고향인 피렌체는 원래 꽃이라는 뜻의 플로랜스라는 이름의 도시였다고 한다. 그리고 플로랜스의 신앙적 뿌리는 그리스도의 길을 예비한 세례요한에 대한 신앙에 있었다고 한다. 도시의 한 복판에는 세례요한을 기리는 교회가 세워져 있고 해마다 세례요한 축제도 열린다고 한다. 그런 도시에서 단테가 태어났고 또 신곡이라는 작품을 남겼다는 것이 모두 우연한 현상이었을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 또 신곡에 나오는 상징적인 꽃은 백합이 아니라 정열의 꽃인 장미다. 흰 장미와 베아트리체와 성모 마리아, 이 세 캐릭터가 단테의 사랑이 승화된 정점에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혜원출판사 간 김의경 번역 '신곡'에서 발췌했음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