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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캄한 밤, 이어지고 이어지는 계단을 올라가며 새내기 때 보았던 학교의 108계단이 생각났습니다. 그렇게 ‘행복의 도가니’로 향하는 계단은 살짝 설레이고 살짝 숨이 가빴습니다.
현재 광주도시철도공사 1층에 문을 연 카페 ‘홀더’ 1호점을 만들기 위해 열렸던 몇 차례의 콘서트에 함께하지 못했던 터라 사실 조금 더 설레였습니다. 티켓을 자리표로 교환하고 캄캄한 공연장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맨 뒷자리에 자리잡은 휠체어를 사용하는 활동가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가볍게 인사를 나누고 계단을 밟아 자리를 찾아 앉았습니다. 제가 앉은 자리가 중간쯤 위치한 곳이었는데 역시나 무대 위 사람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다행히 공연은 모두 노래들로 채워졌고 함께 즐기는데는 큰 무리가 없었습니다.
목소리가 참 맑은 포크가수 박강수 씨의 노래로 공연은 시작되었습니다. 노래를 마친 박강수 씨가 공연의 사회를 자연스럽게 이어갔습니다. 그런데 맑고 차분한 진행 와중에 턱 하고 걸린 ‘장애우’란 단어…. 새삼 이 ‘장애우’라는 단어를 불편하게 들으며 한 번 더 생각해본 시간이었습니다. 조금 더 가까운 이웃으로 그리고 호의로써 장애인과 함께 하고자 하는 여느 사람들의 선의가 담긴 ‘장애우’라는 표현이 그 마음과 달리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경계선을 분명히 하는 것임을…객석에 앉아 그저 듣고 있어야 하는 그 때는 딱히 설명할 길은 없었습니다.
토이의 객원보컬이었던 변재원 씨의 이어지는 공연 또한 매우 멋졌습니다. 편안한 목소리와 잔잔한 웃음들을 이끌어내는 멘트들…. 무대 위를 담아내려 전화기 카메라의 줌을 당겼을 때, 전 두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박강수 씨의 공연에도 무대 위에 있었고 변재원 씨의 공연 때에도 무대 위에 있는 그 사람, 그렇습니다. 수화통역사였습니다.
가수들은 몇 곡의 노래를 하고 무대 위를 내려가지만 한결같이 무대 위 한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수화통역사, 순간 누가 주인공일까 하는 엉뚱한 생각을 해봤습니다.
부활의 전 멤버였던 이성욱 씨의 공연이 이어지며 행복의 도가니는 점점 절정으로 이어졌습니다. 록 그룹 보컬이라고 생각하기엔 거칠지 않고 맑은 이성욱 씨의 깔끔한 공연은 ‘lonely night’을 부르는 중간에 박완규 씨가 등장하며 정점을 찍었습니다.
‘lonely night’이 끝나고 친숙함이 묻어나는 박완규 씨와 이성욱 씨의 멘트가 오가는 가운데 관객들은 순간순간 폭소를 터뜨리며 즐거워했습니다. 이성욱 씨가 무대에서 내려가고 박완규 씨의 멋진 무대가 이어지는 가운데 부활의 리더인 김태원 씨에게 장애인 자녀가 있다는 사실을 들을 수 있었고 그 자녀와 장애아동을 위한 재단을 만들 계획이 있다는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습니다. 가수 생활이 너무 힘들어 음악 학원을 알아본 적이 있었다는 것과 그렇게 힘들 때 손을 내밀어 자신을 챙겨주었다는 김태원 씨의 이야기들…. 공연장이 아니면 들을 수 없는 뒷이야기들일 것 같았습니다. 박완규 씨의 대표곡, ‘천년의 사랑’을 끝으로 행복의 도가니 공연은 끝이 났습니다.
여러 내빈 중 축하 인사를 전했던 강운태 광주시장의 말 가운데 카페 홀더 2호점을 광주에 들어설 큰 병원 가운데 한 곳에 자리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말이 기억에 남습니다. 청각장애인 당사자들이 보여준 수준급의 난타 공연 또한 기억에 남습니다.
카페 홀더 2호점과 장애우, ‘도가니’와 ‘행복’. 공연이 끝나고 어둠이 덮인 계단을 내려오며 못내 마음에 묵직하게 남은 단어들입니다.
아직 사람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광주도시철도공사 1층에 위치한 카페 홀더 1호점은 더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계획 중인 카페 홀더 2호점 또한 번창해서 인화학교 학생들과 졸업한 이들이 함께 일할 수 있는 안정적인 공간이 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홀더’로 표현되어지는 이 지난하고 힘겨운 한 점 한 점의 노력들이 지역과 사회로 이어지는 ‘선(line)’이 되지 못한다면 수많은 이들의 마음이 모아지고 참 많은 노력으로 문을 연 ‘홀더’는 그 의미가 반감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비장애인이 장애인을 ‘친숙하게 대해야 할 존재’로 애써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장애우’가 아니라 각자 이름을 가진 ‘개인’으로 ‘장애인’이 지역사회에 등장할 수 있도록….
축사를 해주신 ‘시장’님의 고민과 2000여 명에 가까운 관객들의 고민이 남는 듯했습니다. 당당한 주권자이자 시민으로써 지역 사회에서 자신의 삶을 영위할 권리를 가진 소유자(holder)로 성장하고 길러지는 곳으로, 카페 ‘홀더’ 1호점이 조금 더 번성하고 2호점이 개점할 수 있게 되기를 바라봅니다.
도연
도연 님은 사람이 사람으로 사는 세상을 꿈꾸며 장애인운동 활동가로 살고 있습니다. 고양이와 함께 지내는 꿈 많고 고민 많은 사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