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7일(수)
* 시작 기도
(벧전 4:3) 너희가 음란과 정욕과 술취함과 방탕과 향락과 무법한 우상숭배를 하여 이방인의 뜻을 따라 행한 것은 지나간 때로 족하도다.
주님...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지금까지 온갖 음란과 정욕, 술취함과 방탕, 향락과 무법한 우상숭배 등 이방인의 뜻을 따라 행한 숱한 악행들은 이제 지나간 때로 족하지 않느냐고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과연 족합니다.
이제 그런 불법과 불의한 악행들은 어디에 숨겨둘 만한 곳도 없습니다.
이제 정말 족하오니 여기서 끊고 주님의 품안에 거하기를 원합니다.
죽기에만 합당한 이 죄인을 불쌍히 여기사 주의 보혈로 나를 씻어주소서.
새 영과 새 마음으로 빚어주시고 주의 영 곧 진리의 영으로 조명하사 말씀의 빛을 비추소서.
옛 사람은 십자가에 못 박습니다.
여기서 그치게 하옵소서.
하지만 나로서는 안 되오니 나의 의지를 믿는 것이 아니라 나를 붙드시는 주님만 믿고 의지하게 하소서.
나는 여전히 죄인이요 면목 없는 자임을 고백합니다.
이 하루도 성령 안에서 새롭게 태어나 거룩한 불구자로 살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성경본문 / 계 4:1-11
제목 : 자기의 관을 보좌 앞에 드리며...
1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하늘에 열린 문이 있는데 내가 들은 바 처음에 내게 말하던 나팔 소리 같은 그 음성이 이르되 이리로 올라오라. 이후에 마땅히 일어날 일들을 내가 네게 보이리라 하시더라.
2 내가 곧 성령에 감동되었더니 보라 하늘에 보좌를 베풀었고 그 보좌 위에 앉으신 이가 있는데
3 앉으신 이의 모양이 벽옥과 홍보석 같고 또 무지개가 있어 보좌에 둘렸는데 그 모양이 녹보석 같더라.
4 또 보좌에 둘려 24보좌들이 있고 그 보좌들 위에 24장로들이 흰 옷을 입고 머리에 금관을 쓰고 앉았더라.
5 보좌로부터 번개와 음성과 우렛소리가 나고 보좌 앞에 켠 등불 일곱이 있으니 이는 하나님의 일곱 영이라.
6 보좌 앞에 수정과 같은 유리 바다가 있고 보좌 가운데와 보좌 주위에 네 생물이 있는데 앞뒤에 눈들이 가득하더라.
7 그 첫째 생물은 사자 같고 그 둘째 생물은 송아지 같고 그 셋째 생물은 얼굴이 사람 같고 그 넷째 생물은 날아가는 독수리 같은데
8 네 생물은 각각 여섯 날개를 가졌고 그 안과 주위에는 눈들이 가득하더라. 그들이 밤낮 쉬지 않고 이르기를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여 전에도 계셨고 이제도 계시고 장차 오실 이시라 하고
9 그 생물들이 보좌에 앉으사 세세토록 살아 계시는 이에게 영광과 존귀와 감사를 돌릴 때에
10 24장로들이 보좌에 앉으신 이 앞에 엎드려 세세토록 살아 계시는 이에게 경배하고 자기의 관을 보좌 앞에 드리며 이르되
11 우리 주 하나님이여 영광과 존귀와 권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오니 주께서 만물을 지으신지라.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었고 또 지으심을 받았나이다 하더라.
* 나의 묵상
계시록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에게 말씀하신 계시이다.
이 계시는 천사들을 통하여 요한에게 알려졌다.
이에 요한은 그리스도의 명을 따라서 일곱 교회에 편지하였다.
성령에 감동된 요한이 하늘에 배설된 보좌를 본다.
이는 새로운 환상의 시작으로 하늘의 열린 문이 보이고 처음 환상 때와 같이 나팔 소리와 같은 주의 큰 음성이 요한에게 나는데 하늘로 올라오라 하며 장차 될 일들을 보여주겠다고 말씀하시는 것을 듣는다.
요한이 성령에 감동되어 하늘 보좌 및 보좌에 앉으신 이에 관한 환상을 본다.
이제 그의 눈앞에는 보좌에 앉으신 이의 모습과 보좌 주변의 광경이 펼쳐진다.
보좌에 앉으신 이의 모습이 벽옥과 홍보석 같으며 또 보좌 주위에 녹보석 같은 무지개가 둘려 있다.
또 하나님 보좌 주위에 24보좌들이 있는데 24장로들이 흰 옷을 입고 금 면류관을 쓰고 앉아 있다.
하나님의 보좌로부터 번개와 음성과 노성이 나고 보좌 앞에는 켜진 일곱 등불 곧 하나님의 일곱 영이 있다.
보좌 앞에 수정 같은 유리 바다가 있고 또 보좌 주변에는 앞뒤로 눈이 가득한 네 생물이 있다.
요한은 또한 네 생물의 모습과 함께 그 생물들이 하나님을 찬양하는 모습을 본다.
네 생물 중 첫째는 사자, 둘째는 송아지, 셋째는 사람, 넷째는 날아가는 독수리 같이 생겼다.
이 생물들에는 각각 여섯 개의 날개가 있는데 날개의 안과 주위에는 눈들이 가득하였다.
이 네 생물들은 밤낮 쉬지 않고 하나님을 향하여 그 거룩하심과 전능하심 그리고 영원하심을 찬송하며 영광과 존귀와 감사를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께 돌린다.
이 때 24장로들도 하나님께 경배와 찬송을 드린다.
24장로들은 자신들이 썼던 면류관을 벗어 드리며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께 엎드려 경배를 드린다.
24장로들도 영광과 존귀와 능력을 주께 돌려드리며 만물이 주 뜻대로 창조되었다고 고백한다.
하늘 문이 열리고 곧 요한에게 하늘의 음성이 들린다.
그 음성은 요한이 전에 들었던 나팔소리 같은 음성이다.
그리고 마땅히 일어날 일들을 계시하기 위하여 올라오라고 초청한다.
요한은 성령에 이끌려 하늘로 올라가는데 거기서 보좌에 앉으신 이를 본다.
그 모양은 벽옥 홍보석 같은 것이 있고 무지개와 같은 빛이 보좌를 둘렀는데 그 보석은 마치 녹보석 같았다.
보좌의 둘레에는 24장로가 흰 옷을 입고 금면류관을 쓰고 앉아 있다.
24명의 장로는 완전수 12를 두 번 더한 것으로 하나님의 백성 곧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의인이 된 이들을 말한다.
이 24장로는 대상 24:1-19절에 언급된 제사장들의 24반열에 근거하여 나왔음을 알 수 있으며 특히 이들은 제사장 역할만 아니라 보좌에 앉아 면류관까지 쓰고 있다.
이는 왕적 지위를 가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한 마디로 하면 왕과 제사장, 그리고 왕 같은 제사장을 의미한다.
주석학자 보캄은 12와 12를 더한 숫자 24와 관련해서 계시록에서 12라는 숫자는 완전성을 나타내기 위해서 제곱이 되며, 방대한 수를 나타내기 위해서 여기에 천을 곱하여 144,000이 나왔다고 말을 하면서 곧 12는 하나님의 백성을 상징하는 숫자라고 언급한다.
12의 숫자는 열두 문들, 열두 기둥들, 열두 지파, 열두 족장, 열두 사도 등 하나님 나라의 완전성을 구약과 신약을 통하여 이러한 숫자로 상징화시킨 것이다.
따라서 12와 12를 더한 숫자 24장로는 분명히 하나님의 백성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통해서 정결케 된 의인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보좌로부터 나는 번개와 음성과 천둥소리는 하나님의 현현을 뜻하며 이것을 통해서 예언자들이 소명을 받는다.
일곱 개의 켠 등불은 일곱 영으로서 이는 온 땅으로 나간 하나님의 영이다.
보좌 가운데와 보좌 주위에 네 생물이 있다.
계시록에서 네 생물은 특별한 직책을 가진 자들로 어떤 경우에는 하나님을 대신해서 하나님의 행동하심에 참여하기도 한다.
네 생물에 눈이 가득한 것은 에스겔의 환상과 관련되어 있다(겔 1:18, 10:12).
또한 그 앞에서는 아무 것도 숨길 수 없는 하나님의 영의 편재를 뜻한다.
네 생물의 모습은 사자, 송아지, 사람의 얼굴, 독수리의 형상을 하고 있다.
이런 네 생물은 피조물 전체를 아우르는 것이다.
네 생물은 각각 여섯 날개를 가졌고 그 안과 주위에 눈들이 가득하다.
이는 이사야서에서 스랍으로 표현되고 있다.
이사야서에서의 스랍들이 찬양하듯이 네 생물들 역시 보좌에 앉으신 이에게 영광과 존귀와 감사를 드린다.
(8b)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여 전에도 계셨고 이제도 계시고 장차 오실 이시라.
그와 함께 24장로들도 세세토록 살아계신 이에게 자기들의 면류관을 그 앞에 던지며 찬양한다.
(10-11) 24장로들이 보좌에 앉으신 이 앞에 엎드려 세세토록 살아계시는 이에게 경배하고 자기의 관을 보좌 앞에 드리며 이르되 우리 주 하나님이여 영광과 존귀와 권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오니 주께서 만물을 지으신지라.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었고 또 지으심을 받았나이다 하더라.
요한이 하늘에서 본 것은 피조물을 대표한 네 생물과 하나님의 사자를 대표한 24장로의 찬양이다.
이는 곳 하늘의 예배요 천상의 예배이다.
이 예배의 찬양은 세세토록 울려퍼지는 반면 지상의 상황은 덧없이 끝나고 만다.
모든 피조물의 대표인 네 생물의 경배는 모든 찬양과 감사 그리고 영광과 권능이 하나님께만 향해야 함을 선포한다.
24장로들도 그들의 면류관을 하나님 보좌 앞에 던져 드린다.
이는 그들의 순교와 헌신이 아무리 값진 것이라 할지라도 하나님 앞에서는 사실 자랑할 것이 없으며 오직 하나님만 영광을 받으셔야 하기 때문이다.
스스로 계시는 하나님, 곧 히브리어 하야의 하나님은 결코 당신 혼자서 일하지 않으신다.
언약 안에서 하나님의 백성들을 참여시키시고 사건도 일으키시며 그 행동하심에서 하나님의 존재를 드러내시고 또한 우리들과 함께 연합하여 일하시기를 원하시기 때문이다.
비록 우리가 지상(地上)인 이 땅에서 살아갈 때 고난의 연속이지만 그 고난 속에서도 오늘 요한이 본 하늘의 예배요 천상의 예배는 지속되어야 하며 또한 지속되고 있다.
시편 63편은 아들 압살롬에 의해서 도망자 신세가 된 이스라엘의 왕 다윗이 참담하고 비참한 현실인 광야, 물이 없어 마르고 황폐한 땅을 마주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끔찍한 상황에서도 그의 영혼과 육체는 오직 주를 앙모하며 사모하고 있다.
그래서 거칠고 황량한 광야에서 그는 주의 권능과 영광을 보기 위하여 그 광야를 성소로 삼고 예배하는 것이다.
그의 고백은 이러하다.
(시 63:3, 5-7) 주의 인자하심이 생명보다 나으므로 내 입술이 주를 찬양할 것이라. 골수와 기름진 것을 먹음과 같이 나의 영혼이 만족할 것이라. 나의 입이 기쁜 입술로 주를 찬송하되 내가 나의 침상에서 주를 기억하며 새벽에 주의 말씀을 작은 소리로 읊조릴 때에 하오리니 주는 나의 도움이 되셨음이라. 내가 주의 날개 그늘에서 즐겁게 부르리이다.
현실적으로 그가 서 있는 광야는 거칠고 비참하며 황폐한 땅이다.
하지만 그는 오직 주를 갈망한다.
그리고 그가 있는 광야는 주의 영광과 권능을 보는 성소가 된다.
당시 계시록의 독자들은 사지(死地)에 내몰리는 핍박을 받고 바벨론 음녀의 유혹 앞에 풍전등화와 같은 신세로 서 있다.
그들은 순교의 잔을 받거나 사치와 향략을 거절하고 광야로 내몰린 상황이다.
지상에서는 교만한 자가 형통하고 패역한 자가 권세를 누리는 실정이다.
죄악은 여전히 관영하고 악이 판을 치지만 하나님은 여전히 침묵하고 계시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런 고통의 깊이가 더한 자들에게 하늘의 예배가 말씀으로 계시된다.
이런 예배에 핍박과 조롱에 숨을 죽이며 사는 이들 또한 함께 참여한다.
나는 조금만 고난과 어려움이 오거나 숨 막히는 순간이 오면 금세 힘이 빠지고 절망에 빠지고 만다.
물론 나를 인도해 달라고 기도는 하지만, 그 기도는 주님을 찬양과 영광으로 경배하는 예배가 아니라 나의 위급한 상황을 해결해 달라고 하는 부르짖음에 지나지 않는다.
주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출애굽하는 길목을 다 막아버리셨다.
앞으로는 홍해요 양 옆으로는 광야, 뒤에서는 애굽 군대가 쫓아오는 사면초가의 상황에서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향하여 원망과 불만을 쏟아 놓았다.
그리고 모세를 향해서는 애굽에 매장지가 없어서 우리를 이곳으로 이끌어 내어 광야에서 죽게 하느냐고 하면서 대들기도 하였다.
그들에게는 진짜 아무런 소망이 보이지 않았다.
그들 앞에 놓인 것은 죽음 외에 아무 것도 없었던 것이다.
이렇게 죽겠다고 아우성치는 그들의 눈에 하나님께서 미리 준비해 두신 바다 속에 있는 길이 보일 리 만무하였다.
그러나 그들이 죽겠다고 아우성치는 그 순간에도 그 바닷길은 이미 준비되어 있었다.
그것을 이스라엘이 보지 못했을 뿐이다.
출애굽을 작정하시고 약속하시며 이끌어 오신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 홍해에 수장시키실 리 만무하지 않은가?
우리 주님은 ‘하야’의 하나님으로 스스로 존재하시며 사건이나 사람을 생성하시고 가만 놔두고 보시는 분이 아니라 그들과 함께 그 사건에 참여하여 활동하시는 분이심을 이 사건을 통하여 우리에게 확증해 보이신다.
나는 이런 복음을 전하는 자이면서도 순간순간 이런 낙심과 절망에 빠지는 지극히 연약한 자임을 고백한다.
우리 주님은 막다른 골목으로 인도하기도 하신다.
하지만 또한 그런 자에게 피할 길도 허락하시는 분이심을 다시 한 번 고백한다.
그리하여 어떤 상황이나 거치른 광야에서도 하늘의 하나님께 천상의 예배를 드리는 자로 나아가길 소망한다.
* 묵상 후 기도
주님...
나 비록 연약하여 자주 넘어지고 쓰러지나이다.
조그만 비바람에도 소스라치게 놀라며 가슴을 쓸어내리는 일이 허다합니다.
이런 연약한 자를 불쌍히 여기시고 주의 의로 덧입혀 주옵소서.
죄인 중에 괴수인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나님의 마음을 찢어지게 하고 아프게 하는 장본인이 여기 있기에 나는 죽기에만 합당합니다.
하지만 그런 나에게 주의 사랑의 징계를 통해서 다시 새 생명으로 살아나게 하시고 오늘도 이 말씀을 통하여 하늘의 예배를 맛보게 하소서.
내 육신은 피곤하나 나의 영은 오늘도 새롭게 다시 일어나 주님과 깊은 교제와 사귐으로 나아가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