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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을 정복한 불사신... 조치훈... -
아, 조치훈... 불같은 열정으로 일본을 삼킨 작은 거인...
조치훈은 5세때 일본에 건너가 기다니 도장에서 바둑 수업을 받는다. 명인을 따기 전엔 절대 한국에 돌아가지 않겠다는 다짐을 한 조치훈... 피눈물을 삼키며 다다미에서 차가운 겨울을 견디며 묵묵히 바둑 실력을 갈고 닦는다.
조치훈의 천재성은 그가 11세의 최연소 입단 기록을 세움으로써 비로서 빛이 났다. 그런 조치훈에게 드디어 명인을 쟁취할 기회가 왔다. 1980년... 조치훈의 나이 23세 때였다.
상대는 명인 오오다께 9단... 미학이란 별칭을 가질 만큼 바둑에서 아름다움을 추구하던 오오다께... 하지만 그는 조치훈의 치열한 3,3포석에 4대1로 무릅을 끓고 만다. 조치훈이 일본에 우뚝 서는 순간이었다.
그토록 바라던 명인이 된 조치훈은 고국땅을 당당히 밟게 되었고, 기사로는 처음으로 은관문화훈장을 받게 된다.
이미 바둑에 눈을 뜬 조치훈에게 거칠 것이 없었다. 곧이어 그는 랭킹 3위 기전인 본인방(本因坊) 타이틀까지 따게 된다. 그리고 랭킹 4위인 십단(十段) 타이틀까지 손에 쥐어 최절정기를 맡게 된다.
하지만 그런 조치훈에게도 랭킹 1위 기전인 기성(棋聖) 타이틀을 가지지 못한 아쉬움이 있었다. 아무리 조치훈이 타이틀을 많이 가지고 있어도 일인자 호칭은 달랑 기성 타이틀 하나만을 가진 후지사와 9단에게 주어졌다. 그게 관례였던 것이었다.
드뎌 조치훈에게 기성을 쟁취할 기회가 주어진다. 1983년 봄... 후지사와 9단과 운명의 7번기를 벌이게 되었다. 후지사와는 그때까지 쟁쟁한 도전자들을 물리치고 기성을 6연 연속이나 방어하고 있었다.
후지사와... 그는 괴짜로 통하는 기사다. 경륜으로 모든 재산을 날리고, 빚쟁이에게 쫓기다가 최고 상금이 걸린 기성전이 생기는 소식을 듣고는 빚을 갚을 생각으로 죽을 힘을 다해 기성을 쟁취한다.
기성을 쟁취한 뒤 그는 비행기 안에서 자신의 빚이 상금의 10배가 넘는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비행기에서 뛰어 내리겠다고 손으로 비행기 문을 열려고 했다. -_-;; 주위의 승객들은 공포에 질려 거의 초죽음이 되었다는 얘기는 너무나 유명하다.
괴짜에다 독설가로도 유명한 후지사와 9단은 입이 근질거렸던지 인터뷰에서 조치훈을 이렇게 평한다.
" 그는 나한데 질 것이다. 그의 바둑엔 철학이 없기 때문이다. 나하하... " -_-;;
상대방을 무시하는 것... 과연 후지사와다운 독설이었다. 그는 몇 년후에 이창호에게도 그 비슷한 독설을 퍼붓는다. 한마디로 후지사와는 세상 무서운 게 없는 사람이었다.
조치훈은 후지사와의 독설에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그 충격은 곧 승부에도 영향을 주었다. 철학이 없다는 말...마음이 여린 조치훈에겐 정말 견디기 힘든 말이었다. 조치훈은 흔들렸다.
누구도 예상치 못한 조치훈의 3연패... 단번에 막판에 몰리고 말았다. 하지만 조치훈은 그대로 물러서질 않았다. 연일 언론에다 조치훈은 약하다고 입방아를 찍어대는 후지사와가 얄미워서라도 4-0으로 물러 설 순 없었다. 지더라도 한 판이라도 건져야 체면이 설 판이었다.
조치훈은 자신의 필살기인 3,3 포석을 꺼낸다. 내리 세 번을 질 때 이상하게도 쓰지 않은 포석이었다. 조치훈은 다른 방법으로도 후지사와를 이길 수 있다는 걸 증명하고 싶었던 것이었다. 그래서 자신의 필살기를 버렸다. 후지사와의 독설의 효과는 그렇게 조치훈에게 필살기를 버리게 하는 효과까지 있었다.
다시 찾은 필살기...몸에 맞는 옷을 입어서 그런지 조치훈은 믿을 수 없게도 내리 세 판을 이긴다. 스코어 3-3... 기적의 대역전승이 일어날 지 사람들은 긴장했다. 운명의 마지막 판이 열린 날 후지사와 9단의 얼굴은 창백하게 굳어 있었다.
다 이겼다고 생각한 바둑이 순식간에 3-3이 되면 심적 부담은 이기고 있던 쪽이 훨씬 큰 법이다. 후지사와는 그 부담을 견디기 힘들어 했다. 그가 조치훈을 이기기란 마치 흐르는 강물을 역류시키는 것만큼이나 힘겨워 보였다. 결국... 조치훈은 후지사와를 이기고 기적의 대역전승을 이루고 만다. 정말... 그건 기적이었다.
이로써 조치훈은 그야말로 랭킹 1위부터 3위까지의 기전을 한꺼번에 쟁취해 일본 바둑 역사상 처음으로 대삼관을 이루었다. 일본의 심장에 비수를 꽂은 것이었다.
하지만 호사다마라고 최절정기를 맞은 조치훈에게도 시련은 있었다. 86년 어느 날... 조치훈은 온 몸에 골절상을 입는 교통사고를 당하고 만다. 조치훈은 오직 왼손가락만이 움직일 수 있을 뿐, 뼈란 뼈는 모조리 부서지고 말았다.
하지만 조치훈이 다쳤어도 그건 개인 사정일 뿐... 어김 없이 기성 도전기는 다가오고 있었다. 그리고 도전기는 연기란 게 없다. 어떤 이유에서든 정해진 날짜에 참석을 못하면 실격패인 것이다. 기성인 조치훈은 한 판도 싸우지 못하고 기성을 내 줄 운명이었다.
하지만 중환자실에서 신음하던 조치훈은 이런 말을 한다.
" 난 아직 왼 손가락을 쓸 수 있어. 제발 시합에 나가게 해 줘! "
조치훈의 말에 기가 찬 의사는 이런 말을 한다.
" 내 평생 이런 지독한 농담은 처음이오! 제발 그 몸으로 날 웃기려 하지 마시오! " -_-;;;
결국 조치훈은 1국을 참가하지 못하고 실격패 당하고 만다. 고바야시(小林光一) 9단은 그야말로 싸우지도 않고 기성을 쟁취하게 생겼다. 그는 진정 땡잡은 것이었다. -_-;;
하지만 조치훈은 바둑을 두다 죽는 한이 있어도 바둑을 둬야 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모든 사람이 말렸지만 막무가네 였다. 결국 그렇게 해서 전무후무한 휠체어 대국이 벌어지게 되었다.
NHK에서는 한 사나이가 헬리콥터에서 간이 침대에 묶여서 내려진 뒤 다시 엠블란스로 옮겨져서 어디론가 사라지는 장면을 방영했다. 그 중환자가 지금 바둑을 두러 가는 길이라고 한다면 과연 몇 사람이나 그 사실을 믿을까? 진정 조치훈은... 총알탄 사나이보다 더 끈질긴 생명력을 보여 주었다. -_-;;
온 몸에 깁스를 하고 휠체어를 탄 채 대국에 임하는 조치훈 9단의 처절한 모습은 크로테스크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그는 진정한 프로였다. 무대에서 뼈를 묻을 수 있는 용기가 있는 자만이 프로란 말을 들을 수 있는 자격이 있지 않을까?
--'목숨을 걸고 둔' 휠체어 대국 세계바둑사에 영원히 남을 휠체어대국. 86년 1월 15일 기성전 도전1국에 이어 벌어진 29일 2국장면. 이 바둑에서 조치훈 九단은 불굴의 투혼으로 명국을 남기며 완승, 바둑팬들을 감동시켰다.
하지만 아무리 바둑도 좋지만 그 몸으로 이틀 동안 두는 바둑은 무리였다. 기성전은 제한시간이 9시간으로 두 사람이 합쳐 18시간을 두는 바둑이다. 성한 사람도 견디기 힘든 시간인 것이다. 만일을 대비해 조치훈의 곁에는 의사가 대기해 있었다.
결국 조치훈은 두 판을 이기지만 세 판을 내줘 기권패까지 합쳐서 4-2로 기성 타이틀을 고바야시에게 내주고 말았다. 하지만 그 몸으로 두 판을 이겼다는 건 거의 초인적인 일이었다. 고바야시는 국후에 자신의 솔직한 심정을 털어 놓는다.
" 난 진 것이다. 난 진정 그를 꺽지 못했다. 난 영원히 이 부끄러운 승리 때문에 괴로울 것이다. "
하지만 진정 고바야시는 부끄러움을 아는지 모르는지 부끄럽게 땄다는 기성전을 악착 같이 지킨다. 8년 동안이나... -_-;;;
조치훈은 그 후 내리막길을 걷게 된다. 타이틀 하나 없는 무관의 신세가 된 것이다. 잘 나가던 조치훈이 교통사고를 당해서 내리막길을 걷게 되는 건 꼭 살아있는 기성 오청원의 모습과 닮아 있다.
살아있는 기성 오청원! 그는 진정 위대한 근대 바둑의 대부다. 그도 중국에서 일본으로 건너와 모든 일본 고수를 꺽고 최절정기에 있을 때 교통사고를 당하고 만다. 그리고 그 후엔 내리막...
한국과 중국의 두 고수는 그렇게 똑같이 의문의 교통사고를 당해야 했다. 단지 그들에게 죄가 있다면 일본 고수들을 무참히 꺽은 죄 뿐... 왜 꼭 절정기에 있는 그것도 외국인 기사가 교통사고를 당해야 하는지... 정말 의문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한가지 덧붙이자면...일본의 지랄같은 극우파들은 외국인이 설치는 꼴을 못 본다. 그리고 야쿠자도 그에 못지 않다. 그럼, 이들이...?? 하여간 일본이란 나라는 한마디로... 지랄이다... -_-;;;
누구나가 조치훈의 시대는 갔다고 말했다. 그건 사실로 보였다. 하지만 조치훈은 정말 불사신처럼 다시 사람들 앞에 나타났다. 89년.. 우주류 다께미야로부터 랭킹 3위 기전인 본인방을 빼았는다.
화려한 재기였다. 하지만 환자인 조치훈으로부터 기성, 명인을 뺏았아 그의 시대를 화려하게 열어 나가던 고바야시는 그나마 조치훈이 하나 가지고 있는 본인방을 탐내기 시작했다.
대삼관... 그 영예의 왕관을 쓰기 위해선 고바야시는 본인방이 절실히 필요했다. 당연히 그의 눈엔 본인방의 주인인 조치훈이 눈에 가시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고바야시는 7대기전 중 유일하게 본인방만 가지지 못했기 때문에 만일 조치훈으로부터 본인방을 빼았으면 조치훈 다음으로 그랜드슬램까지 달성하는 이중의 쾌거를 이루게 된다.
고바야시는 운명처럼 90년에 본인방에 도전을 한다. 피할 수 없는 고바야시의 도전... 조치훈과 고바야시의 30년 전쟁 중에 하나의 에피소드로 장식될 본인방 도전기... 이번엔 무슨 또 에피소드를 남길지 모두들 긴장했다.
고바야시는 3-1로 탱크처럼 조치훈을 막판에 몰아 부쳤다. 이제 고바야시는 그의 화려한 시대에 화룡정점만을 남겨둔 상황이었다. 대삼관... 그랜드 슬램... 거기엔 오직 한 판만이 남아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불사신답게 조치훈은 다시 일어났다. 운명의 라이벌 고바야시가 대삼관을 이루는 꼴은 추호도 못보겠다는 듯이 조치훈은 내리 세 판을 이겨 4-3으로 가까스로 본인방을 지켜낸다. 과연 조치훈다웠다.
하지만 고바야시는 순순히 물러서지 않았다. 91년에 다시 본인방 도전권을 따내 다시 조치훈 앞에 몸을 드러낸다. 그리고 2-0으로 앞서는 고바야시... 일본 열도는 들끓었다. 이번에는 순일본 혈통인 고바야시가 대삼관을 꼭 이루리라... 굳게 믿었다.
하지만 모두들 조치훈은 불사신이란 사실을 간과하고 있었다. 위기의 순간에 살아나는 그답게 내리 네 판을 이겨 4-2로 다시 힘겹게 본인방을 지켜 내었다. 고바야시는 다시 한번 좌절을 맛보았다.
고바야시.. 이 인간은 정말 지독했다. 그는 감바레 정신으로 92년도에 다시 본인방 도전자가 되어 조치훈 앞에 나타난다. -_-;; 이쯤되면 고바야시의 별명을 지옥의 터미네이터로 붙여줘야 하지 않을까?
고바야시는 대삼관에 대한 의지를 드러내듯 이번에 내리 세 판을 이겨 버린다. 3-0... 정말 이번만은 절망같은 스코어 였다. 화려한 고바야시 시대에 조치훈은 그렇게 제물이 될 운명이었다.
' 대삼관을 이루는 고바야시! 그랜드 슬램의 사나이! 조치훈을 누르고 드디어 일본의 자존심을 세우다! 반자이! 고바야시!! 반자이!! '
그렇게 폭발하는 일본의 기운 속에서 조치훈은 간신히 한 판을 건진다. 그리고 다시 두 판째를 조용히 건졌다. 이번만은을 외치던 고바야시... 다시 내리 세 판째을 내줘 순식간에 기적같이 3-3 스코어가 되고 만다.
아마 그쯤되면 고바야시는 악몽에 시달릴 것이었다. 아무리 죽이고 죽여도 상대가 다시 고개를 내민다면...그것만큼 소름끼치는 게 어디 있으랴.., 조치훈은 그렇게 죽지 않고 상대방을 향해 고개를 내밀었다.
3-3에서 운명의 마지막 대국... 조치훈은 불사신답게 다시 한번 기적의 대역전승을 이끌어 낸다. 일본 열도가 경악한 한 판이었다. 도대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조치훈은 진정 위대한 불사신이었다.
대삼관... 그랜드 슬램... 고바야시는 그 영예를 눈 앞에 두고 조치훈 앞에 쓰러지고 말았다. 그는 국후에 이런 말을 한다.
" 귀신하고 바둑을 두는 기분이었다. 생각하기도 싫다. "
그리고 94년... 조치훈은 교통사고 때문에 잃어야 했던 기성전 도전권을 가까스로 따낸다. 꿈에도 그리던 기성전... 조치훈은 이 날을 위해 8년 동안 칼을 갈았다. 상대는 8년전 그대로 고바야시였다.
원수는 외나무 다리에서 만난다고 누가 그랬던가... 조치훈으로선 고바야시가 기성전을 지키고 있었던 걸 오히려 고마워했다고 한다. 더욱 투지가 불타오를 수 있으니...
조치훈은 고바야시를 가볍게 누르고 기성위를 쟁취해 8년만에 서열 1위 자리를 되찾게 되었다. 태양처럼 빛나던 고바야시 시대의 종말을 알리는 서막이었다.
조치훈은 96년... 또다시 명인까지 쟁취해 두번째 대삼관을 이루게 된다. 한 번도 하기 힘든 대삼관... 그 누구도 이룬 적 없는 대역사.. 조치훈은 그 위대한 역사를 만든 것이다.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그대로 내리막을 걸은 오청원과는 달리 뜨거운 피를 가진 한국인 조치훈은 교통사고 따위는 자신의 운명에 아무런 장애도 될 수 없다는 걸 보여주었다.
일본인들은 그들이 자랑하는 기록이 하나 있었다. 다까가와 9단이 기록하고 있던 본인방 9연패였다. 20세기에는 깨질 수 없는 기록이라고 자랑했다. 물론 21세기도 마찬가지라고 그들은 예상했다.
대삼관의 영예는 조치훈에게 뻬앗겼지만 일본은 그래도 다까가와 9단의 본인방 9연패를 위안 삼았다. 조치훈! 넌 대삼관만 먹고 떨어져라.. 본인방 9연패는 꿈도 꾸지 마랏! 음화핫! 아마도 일본인들은 이런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_-;;
하지만 조치훈은 89년에 쟁취한 본인방을 꾸준히 방어한다. 그리고 97년... 어느새 조치훈은 다까가와 9단과 타이를 이루는 본인방 9연패를 이룬다. 일본열도는 다시 한번 경악했다. 그들의 자랑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조치훈은 잔인하게도? 98년 왕립성을 물리치고 전인미답의 본인방 10연패를 이룩한다. 이미 일본의 자랑 따위는 헌식짝 꼴이 되고 말았다. 일본은 그들의 자랑이 갈가리 찢기는 장면을 국민들에게 내보낼 수 없다는 애국심으로? 국영방송 NHK는 수십년 동안 중계하던 본인방 도전기를 그때만큼은 방영하지 않았다. 역시 일본은... 지랄이었다. -_-;;;
조치훈은 올해 아버지를 잃었다. 하지만 조치훈은 아버지가 죽는 날 파리에서 고바야시와 기성전을 벌이고 있었다. 바둑을 두고 난 후에 그 사실을 안 조치훈은 바로 한국으로 날아 오지만 빈소에서 울지 않았다.
사실 조치훈은 아버지의 정을 모르고 살았다. 오히려 매니저격인 그의 형 조상연 5단에게서 아버지의 정 같은 걸 느껴야 했고, 철저히 고독했다. 아버지의 빈소에서 조치훈에게 눈물을 바란다는 건 어쩌면 지나친 요구일 지도 모른다.
조치훈은 그가 이룩한 업적에 비해 단란한 가족의 정을 느끼지 못한 불행한 삶을 살았는지도 모른다. 단란한 가족의 정을 희생한 댓가로 얻은 대삼관... 어쩌면 조치훈은 대삼관 보단 살가운 가족의 정을 더 가치있게 여길런지도 모른다.
80년대에 그렇게 고국에서 영웅대접을 받고 스포트라이트를 받던 조치훈은 어느새 우리들의 시야에서 사라지고 있다. 80년대에는 9시 뉴스에 그렇게 자주 나오더니 요즘은 대삼관을 해도 나올까 말까다. 왜 그렇게 조치훈을 홀대?하게 된 걸까?
더 기가 막힌 건... 우리나라 사람들 중엔 조치훈이 아예 귀화한 걸로 아는 사람도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는 귀화 따위는 하지 않았다. 사고 방식은 일본 사람에 가깝지만 그는 엄연한 한국인이다.
조치훈은 일본에서 바둑을 배웠지만, 그도 어쩔 수 없는 뜨거운 피를 가진 한국인 임을 드러내 놓고야 만다.
그의 바둑을 보라...어디 그게 일본 바둑인가? 조치훈의 바둑은 한국의 전통 순장 바둑의 냄새가 물씬 풍긴다. 일본 바둑의 미덕인 미학 따위는 개무시하는? 빈삼각도 서슴치 않는 실전적인 행마...절대 물러서질 않는 불꽃같은 투쟁심... 일본 기사들에겐 도저히 찾아볼 수 없는 것들이다. 그가 일본에서 바둑을 배웠다는 건 어쩌면 순 구라인지도 모른다. -_-;;;
우리는 스스로가 조치훈을 버리고 있는 지도 모른다. 진로배 국가 대항전 당시 조치훈은 당연히 한국이 자기를 부를 줄 알고 기다렸다. 하지만 한국이 놓은 엔트리엔 그가 빠져 있었다.
조치훈은 충격을 받아야 했다. 버림받는 기분... 그것도 마음속에 늘 짝사랑하는 조국으로부터 받은 버림이었으니... 조치훈은 자신의 여린 가슴으르 그 아픔을 다 감당해야 했다.
하지만 조치훈은 그런 조국을 여전히 짝사랑 한다. 그런 의미로 그는 내제자를 키우는데 그 내제자는 한국인이다. 조국에게 정나미가 떨어졌다면 숙식을 함께하는 내제자를 받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는 정말로 수준 높은 내제자를 받아 들였다. 그 증거까지 보여 줄 수 있다. 그의 내제자 이름이 김수준이다. 정말 수준이 있지 않는가? -_-;;
조치훈이 키우는 호랑이 김수준 4단은 수준 높은 기사답게 98년 48-8패로 8할이 넘는 경이적인 승률로 400명이 넘는 일본 바둑 기사 중에 승률 1위를 차지했다. 정말 수준이 높다 하지 않을 수 없다. -_-;;
일본의 바둑 잡지 '기도'는 여태껏 요다 노리모토나 유키 사토시 같은 기라성 같은 신인을 표현할 때 '대물'이란 표현을 사용했지만 김수준에게 만큼은 대물이란 표현을 쓰지 않았다. 대신 '초 대물' 이란 표현을 썼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고, 일본은 한국의 새끼 호랑이 김수준의 출현에 적이 놀라고 있다. 조치훈은 그런 김수준을 정말 아낀다. 김수준의 아버지가 지지부진 하던 김수준을 다시 한국으로 데려가려 했을 때 극구 말린 사람이 조치훈이다.
이창호가 스승 조훈현의 타이틀을 하나씩 빼앗아 갔듯이 김수준도 조치훈의 타이틀을 하나씩 빼앗아 갈 것지만, 조치훈은 그런 날이 빨리 오기를 기다린다.
조치훈이 조국을 사랑하는 방식은 바로 그런 것이다. 조국의 유망한 소년을 자신의 손으로 직접 키우는 것... 그럼으로써 조치훈은 조국인 한국과 하나의 끈으로 연결돼 있음을 느낄 것이다. 그게 바로 조치훈의 아이덴티티인 것이다.
기성, 명인, 본인방... 그 이름만 들어도 일본 기사들은 가슴 설레어 밥 잠 못이루는 타이틀을 조치훈은 3년째 모조리 가지고 있다. 그 대삼관의 주인공 조치훈을 감히 나는 위대한 한국인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는 진정... 위대한 불사신이다.
첫댓글 바둑을 하나도 모르는데, 이거 읽어보니까 정말 위대해보이네요^^
기성전 하나만 해도 그당시 모든 세계대회상금 합한거 만큼 됬죠..그러나 조치훈9단도 이창호는 넘을수 없다고 인정했으니..어찌됫든 한국 바둑 만세~~
우리나라에서는 사람을 못알아보는건지 외면하는건지....
멋찌다....감동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