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chael, a Man (2)
그런데 그 때 그 중년 부인은 무엇 때문에 나에게 그 이야기를 하였을까? 우리 나이가 되면 남자들은 무조건 외로워지게 되어 있다는, 그 이야기 말이다. 혹시 그녀는 우리 나이의 남자가 외로움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사용할 만한 방법을 알고 있어서 나에게 그것을 가르쳐주고자 하였던 것은 아닐까? 만약 그렇다면 그녀가 가르쳐주고자 하였던 방법은 무엇일까? 혹시 여자 친구를 만드는 것?
지난 겨울의 어느 날 밤에 있었던 일인데, 나는 가족들을 데리고 헌츠빌에 갔다 오는 길에 마이클에게 전화를 걸었다. 헌츠빌의 한인식품점에서 장을 보는 중에 마이클에게 줄 김치도 한 병 샀기 때문이다. “마이클, 지금 당신 집에 들러도 되지요?” 의외로 마이클은 멈칫하는 눈치를 보였지만, 곧바로 태도를 바꾸어 들러도 좋다고 승낙하였다. 마이클의 거실에서는 약간 야릇한 풍경이 연출되고 있었다. 중국인 부인 한 사람이 거실 소파에 앉아 있었다. 우리가 들어서자 마이클은 쑥스러운 표정을 지으면서 그녀와 (그 자리에 동석하고 있던) 그녀의 아들을 소개하고 그녀가 그 시간에 자기 집에 와있는 이유를 설명하였다. 그녀의 아들은 마이클이 돌보아주고 있는 UNA의 학생이다. 그녀는 지금 마이클에게서 “You Are My Sunshine”을 배우고 있다. 그녀는, 마이클이 그 다음 주에 양로원 공연을 할 때, 그 노래를 마이클과 같이 부르게 되어있다고 한다. 1절은 두 사람이 같이 영어로 부르고 2절은 그녀 혼자서 중국말로 부른다. 우리는 김치를 전한 후 서둘러 자리를 피해주었다. 그 얼마 뒤에 똑같은 일이 한 번 더 일어났다. 이번에는 인도에서 온 젊은 여자였다. 육감적인 얼굴과 몸매를 지니고 있었다. 초등학생 아들을 대동하고 있었다.
그 얼마 뒤 다시 헌츠빌의 한인 식품점에 갈 때 나는 아예 마이클을 데리고 갔다. 우리는 김치를 비롯해 한국 식품을 넉넉히 샀으며 ‘가람 식당’에 들러 돌솥비빔밥을 사먹었다. 그리고 우리는 왕복 세 시간 동안 중년의 로맨스에 대해 진솔한 의견을 교환하였다. 내가 물었다.
“마이클, 혼자 산 17년 동안 아무 일도 없었던 것은 아니겠지요?”
나는 멋진 로맨스를 기대하였지만, 마이클의 대답은 전혀 로맨틱하지 않았다. 마이클은 7, 8년 쯤 전에 한 사람을 잠시 사귀어본 적이 있을 뿐이라고 말했다. 나는
“당신은 남자, 여자 가리지 않고 아주 많은 친구들을 사귀고 있잖아요?” 하고 물었다.
마이클은 ‘여자인 친구’와 ‘여자 친구’(girl friend)를 엄격하게 구분하였다. ‘여자 친구’라고 할 만한 것은 7, 8년 전의 그 사람밖에 없다는 것이다.
“당신은 싱글이니까 자유롭게 여자 친구를 사귈 수 있지 않느냐”고 말하면서 내가 의아한 표정을 짓자, 마이클은 자신이 평생 지켜온 원칙, 혹은 평생 지녀온 신조를 한 가지 털어놓았다.
그것은, 이 쪽도 싱글이고 저 쪽도 싱글일지라도 결혼식을 올리기 전에는 깊은 관계를 가져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나는 기가 막혀서, 마이클에게, 자신이 어느 시대 사람이라고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마이클은 그렇게 멀리까지 거슬러 올라갈 것 없다고 대답하였다. 존 웨인의 서부 영화 가운데 한 편에는, 키스를 했으니 어쩔 수 없다면서 결혼을 하는 에피소드가 나온다고 한다. 마이클은 혹시 자기가 유혹에 굴복하게 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들어 위험한 장소에는 아예 가지 않는다고 말하기도 하였다. ‘위험한 장소’라는 것은 어떤 데를 가리키느냐고 묻자, 마이클은 해수욕장 같은 데라고 대답하였다.
기가 막혔지만, 나는 그런 기가 막히는 이야기를 들은 후 마이클에 관한 한 가지 의문을 말끔하게 풀게 되었다. 작년 여름 네팔 청년 라훌의 소개로 마이클을 처음 만났을 때부터의 일이지만, 나는 이 남자에게서 당당함 혹은 거침없음을 본다. 한편으로 그는 대단히 겸손한 사람이지만, 그러면서도 지극히 당당하다. 한편으로 그는 대단히 예의바른 사람이지만, 그러면서도 그는 거침이 없다. 언제나 어디서나 그러하고 누구 앞에서도 그러하다. 최소한 내가 보기에는 그렇다. (단 한번 예외가 있었다면, 그것은 작년 연말 우리 가족을, 한 중국인 가족과 더불어, 자기 집에 초대하였을 때다. 그 때 마이클은 약간 흥분하였으며, 흥분하지 않은 척하기 위해 (부자연스럽게) 콧노래를 부르기까지 하였다.) 그의 당당함과 거침없음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이제 알았다. 그것은 도덕적 자신감에서 나오는 것이었다. “나는 떳떳하다.” “나는 숨길 것이 없다.” 말하자면 그는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다. 이런 생각을 디디고 서 있는 사람이라면 그 행동은 당당하고 거침이 없을 수밖에 없다. 위에서, 어느 날 밤 나는 마이클이 ‘멈칫하는’ 것을 느꼈고 그의 ‘쑥스러운’ 표정도 보았다고 말했지만, 그것은 내가 느끼고 내가 본 것으로, 내가 만들어낸 것이다. 물론 ‘야릇한’ 무엇이니, ‘육감적’인 무엇이니 하는 것도 그와 마찬가지일 것이다.
도덕성을 바탕으로 당당하고 거침없이 행동하는 사람은, 다른 것은 몰라도 이른바 ‘인생의 재미’ 같은 것은 포기한 채 살아간다고 보아야 할까? 그리하여 이른바 ‘무미건조한 삶’을 산다고 보아야 할까? 만약 해수욕장을 비롯하여 ‘위험한 장소’에 ‘인생의 재미’가 쌓여있다고 가정할 수 있다면, 그리고 그러한 장소를 찾지 않는 삶은 ‘무미건조한 삶’이라고 가정할 수밖에 없다면, 위의 질문에 대하여 긍정적으로 답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 가정이 의심스럽다. 다름 아니라 이 남자 마이클이, 그 가정이 그릇되었다는 것을 증명한다. 마이클은 ‘위험한 장소’에는 가지 않은 채 인생의 재미를 만끽하며, 무미건조하기는커녕 신나게 살아간다. 마이클은 도덕적으로 살면서도 누구보다도 신나게 인생을 즐긴다. 마이클 자신은 ‘인생의 재미’보다는 ‘삶의 열정’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였지만 서로 통하는 말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마이클은, 자기는 삶에 대한 열정이 넘치는 사람, 삶에 목말라하는 사람이라고 말하였다.
내가 마이클에게 어째서 아직 재혼을 하지 않았는가를 물었을 때, 한번은 바로 그 ‘삶의 열정’이라는 말로 대답하였다.
“영태, 나처럼 삶의 열정을 가지고 있는 여자를 아직 발견하지 못하였기 때문이네. 나처럼 삶을 사랑하고 삶에 목말라하는 여자, 삶을 살 줄 아는 여자를 아직 발견하지 못하였다는 뜻이네. 그러나 아직 희망을 버리지 않았네.”
마이클로부터, 삶의 열정을 가지고 있는 여자라는 평가를 받고자 한다면, 그 여자는 다음과 같이 행동해야 한다. 마이클은 할리-대이빋슨을 타고 최소한 2, 3일을 달려 모터싸이클 협회의 캠핑 모임에 참석하곤 하는데, 그 여자는 모터싸이클 뒷 자석에 앉아 이러한 장거리 여행을 견뎌내고 즐겨야 한다. 알라바마에서 오클라호마 무스코기까지 달리는 이른바 ‘눈물의 행렬’(trail of tears) -- 인디언들이 ‘인디언 보호구역’으로 끌려간 사건 —을 재현하는 행사를 할 때는 모터싸이클 뒷 좌석에 앉아 당시 인디언들이 느꼈을 신체적, 심리적 고통을 자기 몸으로 느낄 수 있어야 한다. 마이클이 양로원에 가면 뼈만 남은 노인들이 휠체어에 실린 채 마이클에게 다가와 말을 거는데, 그 여자는 마이클 대신 그 말을 다 들어주고 농담으로 대꾸해서 노인들을 웃게 만들어야 한다. 그 여자는 외국인 학생들이 그 여자의 집을 자기들 집처럼 출입하는 것을 허용해야 하며, 김치니 카레니 하는 그들의 특이한 음식들을 견뎌내야 할 뿐 아니라 끝내는 그 음식들의 매니아가 되어야 한다. 명절을 그냥 지나칠 수는 없다고 생각해야 한다. 예컨대 크리스마스 이브가 되면 마이클은 오토바이에 썰매 모양으로 만든 트레일러를 달고 산타클로스 복장을 한 채 아이들이 있는 집을 방문하는데, 그녀는 루돌프 역할이나 막대 사탕을 나누어주는 역할 등 적절한 역할을 자연스럽게 수행해야 한다. 앞에서는 빼놓고 말하지 않았지만, 마이클은 남북전쟁을 주제로 한 극시(劇詩)를 출판한 적이 있는 시인이기도 하다. 그래서 마이클이 어느 날 저녁 갑자기 자기 시집을 꺼내 낭독을 하면 그 여자는 극 중 상대역을 맡아 같이 낭독을 해주어야 한다. 그리고 참, 그 여자는 마이클의 팔뚝을 감싸고 있는 문신을, 설사 사랑하지는 못한다고 해도, 최소한 묵인은 해 주어야 한다. 지울 수 없는 것이니까.
아무래도 이 양반 혼자 살아야 하겠지? 제일 까다로운 요구조건은 문신을 묵인해 달라는 것이다. 사실, 마이클은 2, 3년 전에 UNA 예술대학의 중국계 여교수 -- “영태, 이 여자 정말 미인이네. 자네가 그녀를 우연히 보게 되면 한 눈에 그녀가 바로 그녀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네. 저절로 눈에 띤다네.” -- 에게 대쉬를 한 적이 있는데, 그녀는 마이클 팔뚝의 문신을 보고 기겁하며 달아났다고 한다. 미국 사람들도 문신은 범죄자나 양아치들이나 하고 다니는 것으로 간주한다고 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마이클의 문신 내용을 알아야 한다. 한 쪽 팔뚝에는 큼지막하게 예수의 얼굴이 그려져 있다. 다른 팔뚝에는 단도(短刀)가 뱀의 머리를 찍은 그림이 그려져 있다. 뱀은 마이클 자신의 욕망을 상징한다고 하면서, 마이클은 이 문신들이 자기를 여러 번 구제하였다고 말하였다. 그 이외에도 그의 팔뚝에는 여러 가지 그림들이 아주 복잡하게 그려져 있다. 예컨대 인디안의 드림 캐쳐(dream catcher: 꿈 채반) 등 깊은 의미를 가진 여러 가지 상징들이 그의 몸 깊숙이 새겨져 있다.
마이클 자신도, 비록 말로는 아직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있다고 하지만, 자기가 찾는 여자가 나타나 주리라고 기대하지는 않는 눈치다. 지금 마이클은 무엇을 하고 있을까? 지난 번 헌츠빌 한인식품점에서 까나리 액젖을 사왔는데, 그는 지금 그것으로 김치를 담그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의 주방 한 구석에는 재봉틀이 놓여있고 그 쪽 벽면에는 빨강, 파랑, 노랑 등 수십 종의 색실이 가지런히 진열되어 있는데, 그는 지금 재봉질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늙은 남자가 밤 늦은 시간에 텅 빈 집에서 홀로 그런 일을 하고 있다. 그런 일을 할 때면 마이클은 유쾌한 듯 휘파람이라도 불까? 어깨를 으쓱하면서 중얼중얼 혼잣말을 할까? (끝)
첫댓글 어이쿠 마이클형이 완전 애같기도하고 전요원(존웨인의 한국 이름)처럼 구식 같이 보이기도하고...여튼 오랜 호래비 생활에 많이 숙달된 분인 갑다..좋게 말해 참 순수한 형!....그래도 그렇지 팔뚝 문신해 갖고 도덕성 삶의 열정 운운하며 그 멋진 로맨스를 거부한다?? (크 그형 어쩜 나랑 이리 같을꼬ㅋ)...아마도 오랜 외로움을 들키고 싶지 않아서이겠지..ㅎㅎ
그래 마형에게는 전형(전요원 형)과 닮은 점이 있는 것 같다. 문신도 문신이지만, 오토바이 타고 나설 때면 아주 볼 만해. 가죽 자켓, 가죽 바지에, 썬글라스, 머릿 수건, 그리고 무엇 때문에 그러는지는 모르겠지만, 쇠줄과 쇠조각을 옷에 주렁주렁 달고. 짜리 몽땅한 할배가 말이야.ㅋㅋ
이제 미국서 유골한담을 펼친 나날도 추억이 되겠군. 이사 준비 끝나셨나?
그래 거의 다 끝났어. 벌써 짐도 거의 다 꾸렸네.
어여 와~ 영태^^
졸는 글, 감사.
빅브라더 강국 목사님이 졸면서 댓글 달았나 보다ㅋㅋ
thank you every body. hh kk
thank you everybody, hh, k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