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신경에서 기독교 신앙의 신비를
김진혁 저, ‘우리가 믿는 것들에 대하여’를 읽고
저자 김진혁의 글을 처음 만난 건 그가 해제를 담당했고 칼 바르트의 절친 에두아르트 투르나이젠이 쓴 ‘도스토옙스키, 지옥으로 추락하는 이들을 위한 신학’에서였다. 도스토옙스키의 작품을 사랑하는 독자이자 일개 그리스도인으로서 나는 그 책을 놓칠 수 없었다. 그 책을 통해 문학 속에 녹아든 신학을 맛볼 수 있었으며, 문학이야말로 모든 학문을 담을 수 있는 유일한 그릇이 아닐까 하는 현재의 내 지론에도 이르게 되었다. 특히 김진혁의 해제는 도스토옙스키를 해제한 투르나이젠에 대한 해제, 혹은 두 거인과 그들의 작품에 대한 해제라고 볼 수 있기에 제삼자의 관점에서 작품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해석할 수 있는 길잡이가 되어주었다.
두 번째로 만난 책은 C. S. 루이스의 삶과 사상을 훑어보면서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상상력, 이성, 신앙의 조화를 촉구하는 ‘순전한 그리스도인’이었다. 도스토옙스키의 작품은 물론 루이스의 작품도 대부분을 읽었기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내게 김진혁의 글은 결코 쉽지 않은 내용을 간결하면서도 이해하기 쉽게 풀어주는 데에 일가견이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잘 정돈되고 겸손하며 잘 써진 글을 읽을 때 느낄 수 있는 쾌감을 나는 김진혁이 쓴 두 책에서 맛보았던 것이다. 그리고 그의 글쓰기는 그의 최신작인 이 책, ‘우리가 믿는 것들에 대하여’에서 정점에 다다른 것처럼 보인다.
언뜻 보면 사도신경 주해인 것처럼 보이는 이 책은 부제에서도 밝히고 있듯 사도신경 그 자체에 대한 해설에 그치지 않고 그 안에 담긴 기독교 신앙을 해설한다. 조직신학자이자 철학 박사 학위 소유자답게 저자 김진혁의 글은 사도신경의 각 조항에 담긴 교리를 신학의 언어만이 아닌 철학의 언어와 개념을 동원하여 설명한다. 신학에 철학까지 가세했기 때문에 생각만 해도 어렵게 느껴질지도 모르지만, 신학 책 한두 권이라도 읽어본 경험이 있다면 이 책이 상당히 쉽게 써졌고 가독성이 높으며 저자의 철학적인 관점과 해석 덕분에 오히려 다른 신학 책보다 더 풍성하다는 느낌은 물론 그것이 만들어낸 깊이까지 맛볼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이 책은 2021년 우드베리 연구소에서 ‘선교 현장을 위한 기독교 교리 해설’이라는 제목으로 진행된 연속 강의를 보완하여 엮었다고 한다. 교리를 기본적으로 다루되 신앙의 실천적 지평을 놓치지 않으려 했다는 책 소개가 내 시선을 끌었다. 나는 이 책을 읽고 사도신경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에 대한 역사적, 교리적인 지식을 넘어서 전반적인 기독교 신앙이 가지는 신비에 대해 다시금 묵상할 수 있었고, 내가 믿는 것이 무엇인지, 나는 지금 어디에 있으며 나의 정체성은 무엇인지, 내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지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
사도신경은 그리스도인이라면 믿어야 할 바를 핵심적으로 요약한 고대교회의 신앙고백이다. 십계명이나 주기도문처럼 성경에 기록되어있지 않기 때문에 사도신경이 가지는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도 있지만, 그리스도이신 예수를 통해 계시된 삼위일체 하나님의 존재와 활동에 전 생애를 걸겠다는 공동체적 고백이 역사와 전통과 함께 오롯이 담겨있다는 점은 여러 교단의 신학을 초월하여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저자 김진혁은 특정 교단 신학을 변증하듯 사도신경을 풀어내지도 않을뿐더러 조금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개성 있는 생각과 주장을 조심하며 글을 써 나간다. 그러므로 이 책은 신학을 전공하지 않은 기독교인뿐만 아니라 기독교에 관심 있는 비기독교인이 읽어도 치우치지 않은 기독교 신앙과 신학에 대한 안내를 받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처음으로 기독교 신학에 관심을 가지게 된 기독교인에게는 입문서로써 손색이 없을 것이다.
총 6부로 구성된 이 책은 사도신경을 읽어 내려가는 순서를 따르며 기독교 교리와 전통적인 신앙을 친절하게 설명한다. 1부 하나님, 2부 예수 그리스도, 3부 사람, 4부 성령과 교회, 5부 죄 사함, 그리고 6부 종말에 이르기까지 저자는 신론, 기독론, 인간론, 교회론, 구원론, 종말론 등의 조직신학적 주제를 가볍게 다룬다. 개인적으로는 유일신론, 삼위일체론에 대한 부분도 좋았지만, 성자의 자기 내어주심에서 하나님의 전능을 읽어내는 전복적인 해석을 읽을 때 나는 묵직한 울림을 느낄 수 있었다. 첫 창조와 새 창조의 대비가 아담과 그리스도로 표현되듯, 하와의 첫 불순종에 대비되는 마리아의 순종이 가지는 의미에 대한 해석도 내 뇌리에 남아 있다. 또한, “인간은 자기 삶의 주인이나 개척자가 아니라, 자신을 만드시고 자신에게 말을 건네며 찾아오시는 하나님께 반응함으로써 자아를 형성해 가는 존재”라는 문장을 읽을 땐 숨을 멈추고 책을 덮고 나 자신을 돌아보지 않을 수 없었다. 이는 그리스도인이라면 “‘수동적’ 존재가 아니라 ‘수동태적’ 존재”가 요구된다는 문장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죄가 무엇인지 알려 주는 궁극적인 기준은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 아니라 ‘성육신한’ 말씀이어야 한다는 문장 역시 나를 환기하기에 충분했다.
“‘거룩함’이 요구하는 ‘구분됨’과 ‘보편성’이 빚어낸 ‘개방성’ 속에서 교회는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뜻에 주의를 기울이게 되고 이를 현실화하는 선교적 공동체로 자신을 이해하게 된다”는 문장이나, “공동체에 현존하는 성령은 ‘다원성과 자율성’의 원천”이라는 문장을 접했을 땐 현재 한국 교회가 처한 암담함이 떠올라 가슴 한 편이 답답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또한, 사건으로서의 구원과 과정으로서의 구원의 의미를 통해 구원의 은혜를 믿음으로 받는 수동적 위치에 처한 인간이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셨던 그리스도의 삶을 따라 살려고 노력하는 능동적인 태도가 요구된다는 부분에서 균형 잡힌 칭의의 논리를 가다듬을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기독교의 종말론적 희망의 핵심 내용이 “죽음 이후 그리스도인이 경험할 진정한 피안은 단지 천국이 아닌 하나님 자체”라는 부분을 읽을 땐 전율이 돋았다. 부활과 영생 부분에 있어서도 삼위 하나님의 교제하는 삶에 영원히 초청되어 함께 누리는 것이 바로 그것의 의미라는 문장을 접하고 나는 하나님 나라에 속한 백성이 되었다는 사실에 다시 한번 감사함을 느꼈다.
이 책 덕분에 매주마다 참석하는 교회 예배에서 고백하는 사도신경으로부터 기독교 신앙의 기본적인 교리와 그 교리를 이루는 여러 가지 개념들을 점검할 수 있었고, 그것을 통해 나의 정체성과 사명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으며, 무엇보다 전능하신 하나님과 함께 하며 그분의 인도를 받으며 살아갈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한 감사가 회복되어 참 다행이란 생각이다. 아무리 문학 책이 좋지만, 신학 책을 손에서 놓지 말아야 할 이유가 아닌가 싶다. 모두에게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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