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말라야의 분노(憤怒)
얼음의 왕국에 길을 내려 한 문명에게
태초에 산은 대륙과 대륙이 맞부딪친 상처를 밀어 올려 하늘보다 높은 척추를 세웠다.
그 봉우리마다 수만 년의 눈이 내려앉고, 눈은 얼음이 되고, 얼음은 강이 되어 말없이 아시아의 생명을 길렀다.
황하(黃河)는 그 젖을 먹고 황토의 문명을 일으켰으며,
양쯔강은 긴 허리를 풀어 중원의 들판을 적셨다.
메콩은 여러 나라의 국경을 지나 논과 어머니의 밥상을 살렸고,
브라마푸트라와 갠지스와 인더스는 신들의 산에서 흘러내려 수십 억 인간의 목숨을 이어 주었다.
히말라야는 누구의 영토도 아니었다.
티베트의 것도, 중국의 것도, 인도와 네팔의 것도 아닌 구름과 바람과 별의 땅이었다.
그러나 인간은 산의 침묵을 허락으로 오해했다.
더 빠른 길을 내겠다며 절벽의 가슴에 굴착기를 밀어 넣고, 더 많은 물건과 군대와 자본을 나르겠다며
만년 빙하 아래에 도로를 그었다.
‘하나의 띠, 하나의 길’이라는 거대한 깃발이 펄럭일 때, 산 허리에서는 폭약의 섬광이 밤낮으로 터졌다.
한 번의 폭발은 바위 하나를 깨뜨렸지만, 수천 번의 폭발은 억겁의 세월이 맞물려 만든 산의 뼈와 관절을
흔들었다.
아무도 보지 못하는 바위 깊은 곳에서 미세한 금 하나가 태어나고, 그 금은 겨울과 여름을 건너며 다른 금을
불러들였다.
그러나 보고서에는 ‘이상 없음’이라 적혔고, 지도 위의 붉은 선은 더 깊은 계곡을 향해 뻗어 갔다.
산은 말하지 않았다.
인간이 숫자로 계산하지 못하는 시간을 빙하 속에 묻어둔 채, 오직 낮아지는 눈의 경계와 갈라지는 암벽의
신음으로 오래 경고했을 뿐이다.
대기는 뜨거워지고 만년설은 만년을 살지 못했다.
화석 연료의 검은 연기는 도시의 하늘에서 사라지는 듯했으나 바람을 타고 세계의 지붕에 올라 얼음의 수명을
갉아먹었다.
얼음은 단순한 얼음이 아니었다.
절벽과 절벽을 이어 붙인 쐐기였고, 갈라진 암반을 붙잡은 붕대였으며, 여름의 물을 겨울까지 보관하는
하늘의 저수지였다.
그 얼음이 녹자 산의 오래된 상처들이 벌어졌다.
그리고 어느 날, 해발 오천 미터의 침묵이 마침내 몸을 일으켰다.
처음에는 눈송이 하나가 굴러 내리는 듯했다.
그러나 그 뒤에서 빙하가 움직이고, 빙하 뒤에서 암벽이 일어서고,
암벽 뒤에서 산 하나가 자신의 무게를 견디지 못한 채 무너졌다.
대 피라미드 수십 개에 이르는 얼음과 바위의 군단이 천 길 낭떠러지 아래로 몸을 던졌다.
그것은 폭발이 아니었으나 지진 계는 지진이라 기록했고,
그것은 전쟁이 아니었으나 계곡은 포격을 받은 전장처럼 흔들렸다.
중력은 인간이 발명한 무기가 아니었다.
지구가 태어난 날부터 높은 것을 낮은 곳으로 부르는 가장 오래된 자연의 명령이었다.
수천 만 년 동안 높은 산에 저장된 힘이 한순간 길을 얻자,
어떤 제국의 핵탄두보다 거대한 질량이 검은 계곡을 향해 돌진했다.
빙하는 강물을 때렸고, 강물은 토사를 깨웠으며, 토사는 바위와 나무와 집을 삼켜 움직이는 산이 되었다.
자연 댐이 생겼다가 터지고, 아홉 미터의 흙빛 물기둥이 좁은 계곡을 가득 채웠다.
사람들은 달렸다.
그러나 물보다 느렸고, 바위보다 약했으며, 경보보다 재앙이 먼저 도착했다.
지룽의 국경 검문소에는 여권과 화물과 국가의 명령이 있었지만,
산에서 내려온 물에게는 국경도 비자도 검문도 없었다.
철문은 종이 장처럼 구겨지고, 콘크리트 건물은 흙 속으로 사라졌다.
어제까지 사람과 물자를 검사하던 권력은 오늘, 산이 내린 심판 앞에서 자신의 이름조차 지키지 못했다.
하류의 발전소들은 빛을 만들겠다며 강의 허리를 묶어 놓았으나, 분노한 강 앞에서 취수보와 터널과 발전기는
차례로 물과 진흙에 잠겼다.
건설 노동자들은 자신들이 뚫은 어두운 터널 속에서 구조의 손길을 기다리고,
마을과 학교와 다리는 지도에서 지워졌다.
그리고 국가는 무너진 산보다 먼저 진실의 길을 막으려 했다.
몇 명이 죽었는지, 몇 개의 마을이 사라졌는지, 어느 시설이 무너졌는지 숫자는 침묵 속에 갇혔다.
하지만 강은 검열할 수 없었다.
흙탕물은 국경을 넘어 네팔의 골짜기와 인도의 평원을 향해 감추어진 죽음과 파괴의 기록을
거대한 퇴적 층으로 운반했다.
사람들은 이것을 천재지변이라 부를 것이다.
그러나 산은 묻는다.
누가 대기를 뜨겁게 했는가?
누가 만 년 빙하의 시간을 단축했는가?
누가 살아 있는 암산을 폭약으로 가르고 가장 불안정한 계곡에 도로와 댐과 도시를 세웠는가?
비는 자연의 것이지만 재앙의 크기는 인간이 만들었다.
중력은 죄가 없고 강물도 죄가 없으며, 녹아내린 빙하조차 자신에게 주어진 법칙을 따랐을 뿐이다.
탐욕이 위험을 만들고, 개발이 위험을 키웠으며, 침묵과 은폐가 사람들이 피할 마지막 시간을 빼앗았다.
그러므로 이번 재앙은 하늘에서 갑자기 내려온 벌이 아니다.
인간이 오랜 세월 작성해 온 탐욕의 설계도가 마침내 자연의 언어로 준공된 것이다.
히말리야는 분노하지 않았다.
다만 더는 인간의 욕망을 떠받칠 수 없었을 뿐이다.
산이 무너진 것이 아니라 먼저 무너진 것은 인간의 절제였고,
빙하가 녹은 것이 아니라 먼저 녹아버린 것은 문명의 양심이었다.
이제 우리는 무너진 산 앞에 서서 선택해야 한다.
또다시 더 큰 폭약과 제방으로 자연을 굴복 시키려 할 것인가?
아니면 부서진 계곡의 신음 앞에서 길을 멈추고, 숲을 되살리고, 강에게 강의 자리를 돌려주며,
인간의 욕망에 경계선을 그을 것인가?
저 높은 봉우리에는 아직도 수많은 빙하가 푸른 침묵 속에 매달려 있다.
그것은 아름다운 설경이면서 수십억 생명의 물이고 깨어나지 않은 중력의 거대한 저장고다.
히말리야는 오늘 말없이 우리에게 경고한다.
'나를 정복하려 하지 말라.
내 몸에 새긴 상처를 발전이라 부르지 말라.
나의 얼음을 녹이고 그 물로 번영을 꿈꾸지 말라.
산의 질서가 무너지면 너희의 도시도 무너지고,
강의 기억을 지우면 너희의 역사도 함께 지워질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 마지막 만년설이 눈물을 흘리는 날,
인간은 비로소 깨닫게 되리라.
자연은 인간 없이도 존재하지만 인간은 자연 없이 단 하루도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 받은 글 옮김 -
나는 이 글을 읽으며 이렇게 멋지게 쓴 글을 본 적이 없었음을 느꼈다.
그러면서 "그래 모두 내 탓이었다. 내 이럴 줄 알았다."를 몇 번이나 외쳤는지 모른다.
뿌린 대로 거두도록 했을 뿐이다.
내가 1959년 서울로 올라왔을 때 서울 인구가 200만 명이 왔다 갔다 했다.
지금 자동차 대 수 만도 200만 대가 넘을 것이다.
자동차는 이기인가? 어니면 언제인가 우리에게 재앙을 돌려줄 무기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쇠뭉치 생각>
<끝>
첫댓글 이 글이 주는 가장 큰 교훈은 **“인간은 자연을 지배하는 존재가 아니라, 자연이 허락한 질서 속에서 잠시 살아가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핵심을 몇 가지로 정리해보면
자연은 인간의 소유물이 아니다.
국경을 긋고 영토를 나누어도 산과 강은 인간이 만든 경계를 따르지 않습니다. 히말라야와 그곳에서 흘러내리는 강은 어느 한 나라의 소유가 아니라 수많은 생명을 연결하는 공동의 생명줄입니다.
문명은 자연의 은혜 위에 세워져 있다.
황하·양쯔강·메콩·갠지스·인더스 등의 강은 히말라야의 눈과 얼음에서 시작됩니다. 인간이 문명을 발전시킬 수 있었던 것은 자연을 정복했기 때문이 아니라 자연이 생존에 필요한 물과 땅을 내어주었기 때문입니다.
자연을 훼손한 대가는 결국 인간에게 돌아온다.
빙하가 녹고, 홍수와 산사태가 발생하고, 강의 흐름이 불안정해지는 것은 자연의 ‘복수’라기보다 인간이 자연의 균형을 깨뜨린 결과입니다.
국경보다 생태계가 먼저다.
강물에는 국적이 없습니다. 한 나라에서 시작되거나 흘러가는 물이 다른 나라 사람들의 생명을 살립니다. 따라서 물과 기후 문제는 한 국가가 독점해서 해결할 수 없고, 서로 협력해야 합니다
현재 세대의 욕망이 미래 세대의 생존을 빼앗아서는 안 된다.
더 많은 개발과 에너지를 얻기 위해 자연을 희생한다면 그 비용은 미래의 사람들이 치르게 됩니다.
결국 이 글의 메시지를 한 문장으로 압축하면 이렇습니다.
“인간이 자연을 정복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과 공존하는 법을 배워야 문명도 살아남는다.”
네팔에서 일어난 지진의 사례를 보고 '히말라야의 분노'라는 글로 되었지만 지구는 이미 도처에서 자연의 분노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빙하는 녹아가고 있고 열대의 열이 계절을 바꾸고 있는가 하면 온 천지에서 자연이 분노하여
일으키는 재해는 장소가 정해진 것이 아니고 지구 도처에서 순간에 이루어 지고 있습니다.
지금 세계 인구가 82억 명이 넘는다 하지요.그 82억 명이 매일 쏟아내는 모든 것이 자연에게는 재해를 주는 요인이
되고 있습니다.모든 것이 공해를 주는 요인이지요.
공룡의 시대를 생각해 보자고요. 공룡이 지구를 지배하여 지구의 모든 생물이 멸종할 줄 알았지요.그런데 결과는
어떻습니까? 창조주께서 '빙하'의 시대를 열어 오히려 멸종 시키고 말았습니다
우리는 이 진리를 깨달아야 합니다. 단순히 히말라야의 분노로 끝나지 않습니다.이 '히말라야의 분노'는 우리 인간에게
주는 처음의 경고 신호로 받아 드리고 그런 재앙이 다시 일어나지 않게 대비를 철저히 하여 막아야 인류는 존재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히말라야의 분노'가 주는 경고를 우리는 깊은 각성으로 받아드려야 한다고 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