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자씨의 비유, 누룩의 비유
<연중 제17주간 월요일 강론>
(2026. 7. 27. 월)(마태 13,31-35)
<예수님께서 또 다른 비유를 들어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하늘나라는 겨자씨와 같다. 어떤 사람이 그것을
가져다가 자기 밭에 뿌렸다. 겨자씨는 어떤 씨앗보다도
작지만, 자라면 어떤 풀보다도 커져 나무가 되고
하늘의 새들이 와서 그 가지에 깃들인다.” 예수님께서
또 다른 비유를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하늘나라는
누룩과 같다. 어떤 여자가 그것을 가져다가 밀가루
서 말 속에 집어넣었더니, 마침내 온통 부풀어 올랐다.”
예수님께서는 군중에게 이 모든 것을 비유로 말씀하시고,
비유를 들지 않고는 그들에게 아무것도 말씀하지 않으셨다.
예언자를 통하여 “나는 입을 열어 비유로 말하리라.
세상 창조 때부터 숨겨진 것을 드러내리라.”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려고 그리된 것이다.(마태 13,31-35)>
1) ‘겨자씨의 비유’와 ‘누룩의 비유’는, “하느님께서 일하시는
방식은 인간의 생각을 초월한다.” 라는 가르침입니다.
구약시대 백성들은, “하느님께서는 인간들을 압도하는
놀라운 권능을 드러내시는 방식으로 일하신다.” 라는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셋째 날 아침, 우렛소리와 함께 번개가 치고 짙은 구름이
산을 덮은 가운데 뿔 나팔 소리가 크게 울려 퍼지자,
진영에 있던 백성이 모두 떨었다(탈출 19,16).”
그런데 하느님께서는 엘리야 예언자에게 나타나실 때에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나타나셨습니다.
“그분께서 말씀하셨다. ‘나와서 산 위, 주님 앞에 서라.’
바로 그때에 주님께서 지나가시는데, 크고 강한 바람이 산을
할퀴고 주님 앞에 있는 바위를 부수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바람 가운데에 계시지 않았다. 바람이 지나간 뒤에 지진이
일어났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지진 가운데에도 계시지
않았다. 지진이 지나간 뒤에 불이 일어났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불 속에도 계시지 않았다. 불이 지나간 뒤에
조용하고 부드러운 소리가 들려왔다(1열왕 19,11-12).”
2) 오늘날의 우리는 ‘겨자씨의 비유’ 때문에
구약시대 백성들과는 반대로, 하느님께서 항상 작고 여리고
조용한 방식으로 일하신다는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 항상 꼭 그렇게 일하시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다시 큰 소리로 외치시고 나서 숨을
거두셨다. 그러자 성전 휘장이 위에서 아래까지 두 갈래로
찢어졌다. 땅이 흔들리고 바위들이 갈라졌다. 무덤이 열리고
잠자던 많은 성도들의 몸이 되살아났다(마태 27,50-52).”
“오순절이 되었을 때 그들은 모두 한자리에 모여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하늘에서 거센 바람이 부는 듯한 소리가
나더니, 그들이 앉아 있는 온 집 안을 가득 채웠다. 그리고
불꽃 모양의 혀들이 나타나 갈라지면서 각 사람 위에
내려앉았다. 그러자 그들은 모두 성령으로 가득 차,
성령께서 표현의 능력을 주시는 대로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 시작하였다(사도 2,1-4).”
“사도들의 손을 통하여 백성 가운데에서 많은 표징과
이적이 일어났다. 그들은 모두 한마음으로 솔로몬 주랑에
모이곤 하였다. 다른 사람들은 아무도 감히 그들 가운데에
끼어들지 못하였다. 백성은 그들을 존경하여, 주님을 믿는
남녀 신자들의 무리가 더욱더 늘어났다(사도 5,12-14).”
마태오복음에 기록되어 있는 ‘예수님 죽음 때에 일어난
놀라운 이적들’이나 사도행전에 기록되어 있는 ‘성령 강림’,
또 사도들이 많은 기적을 일으켰다는 이야기들은,
확실히 ‘겨자씨의 비유’나
‘누룩의 비유’의 가르침과는 거리가 멉니다.
하느님께서는 사람들을 압도하는 권능을 드러내는 방식으로
일하실 때도 있고, 겨자씨의 방식으로 일하실 때도 있습니다.
따라서 하느님께서 우리를 위해 일하시는 방식에 대해서
어떤 한 가지 고정관념만 가지고 있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3) ‘겨자씨의 비유’를 다음 말씀에 연결해서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그가 제자라서 시원한 물 한 잔이라도
마시게 하는 이는 자기가 받을 상을
결코 잃지 않을 것이다(마태 10,42).”
‘물 한 잔’은 보잘것없게 보인다는 점에서
‘겨자씨’와 거의 같습니다.
그렇지만 누구에게나 대수롭지 않게 보이는 그 ‘물 한 잔’의
선행은, 물을 준 사람에게도, 그 물을 받아 마신 사람에게도
많은 열매를 맺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그 결과가 언제 어떻게 나타날지는 모릅니다.
어쩌면 물을 준 사람이나 물을 받아 마신 사람이나 모두
그 일을 잊어버릴지도 모르는데,
하느님께서는 그 일을 결코 잊지 않으신다는 것이
예수님의 가르침입니다.
그런데 만일에, 물을 받아 마신 사람이 그 선행을
하찮은 일로 생각하면서 무시하고,
또 혹시라도 고마워하기는커녕 불쾌하게 여긴다면?
주님께서 베풀어 주신 은총이 기대했던 것에 비해서
너무 작은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실망하고,
주님께 감사드리기는커녕 서운해 하고 주님을 원망한다면?
4) 신앙인은 누구나 예외 없이 신앙인이 되는 그 순간부터
주님께서 주신 씨를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 씨가 아주 작은 겨자씨일 수도 있고,
아주 큰 씨일 수도 있는데, 그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신앙생활은 주님께서 주신 씨를
잘 가꾸고 돌보는 생활입니다.
그리고 그 씨에서 열매를 얻는 것,
바로 그것이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무슨 거창한 일을 해야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각자 자기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면 됩니다.
- 송영진 신부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