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승혁·경제부 WeeklyBIZ팀 기자.
“드라마 ‘올인’의 주인공 차민수 씨와 승부하면 제가 당연히 이길 겁니다. 제가 20년 이상 더 젊거든요. 포커는 별 거 없어요, 집중력과 체력 싸움입니다.”
한때 세계 포커 챔피언이었다가 지금은 은퇴해 도박판을 떠나 강연과 저술 등을 주로 하는 이태혁 씨는 ‘승부(勝負)’ 얘기가 나오자 눈을 반짝였습니다.
지난달 10일 서울 광화문의 한 카페에서 그를 만나서 한 인터뷰를 정리해 WeeklyBIZ에 실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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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체구에 장난기 가득한 소년 같은 눈매를 가진 이씨가 한때 세계 도박판을 주름잡았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는데요. 그는 “도박을 하다 승부욕이 강해진 게 아니고 타고난 승부욕이 강해서 도박을 한 것”이라고 하더군요.
군 제대 후 일본에 건너가 프로 도박을 처음 접한 이씨는 2004년 세계적 권위의 영국 브리티시 RCT 토너먼트에서 우승하며 국제적 명성을 얻었습니다. 2007~2008년 세계포커챔피언십 아시아투어 디렉터, 내셔널 포커리그 기술 고문, J-BET 포커 수석코치 등 지도자의 길을 걷다가 최근 주식투자 및 리더십 관련 강연과 저술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승부사 근성’이 넘쳐나는 이태혁씨를 인터뷰하면서 중국 고대 병법서(兵法書)인 손자병법(孫子兵法)이 자꾸 떠올랐습니다.
- 이태혁 前 세계 포커 챔피언.
고수와 하수의 차이는 ‘진퇴’를 알고 실천하느냐 여부
이태혁씨가 보는 고수(高手)와 하수(下手)의 차이 부분부터 그랬습니다.
그는 “도박이든 비즈니스이든, 주식이든, 고수는 언제쯤 물러나야 할 지를 정확히 아는 사람”이라고 정의(定義)하더군요. 반대로 하수는 그 타이밍을 모르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이태혁 씨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세계적인 유명 프로 갬블러도 도박판에서 돈을 잃을 때가 있어요. 그럼 그는 빨리 그 게임에서 손을 떼요. 어차피 내일 또 다른 판이 벌어지고 또 다른 기회가 찾아오니까요. 그리고 또 한가지 중요한 것은 승부에 임하는 태도에요. 원래 카드가 총 52장인데 ‘아마추어는 카드가 53장, 프로는 51장’이라는 얘기가 있어요. 고수들은 이미 만들어진 패라도 한 장을 빼고 가장 불리한 조합을 가정해서 베팅하는 반면, 아마추어는 ‘한 장만 더 오면 내가 이긴다’는 헛된 기대감으로 베팅하죠.”
이씨는 본인 스스로도 승부에서 불리해지면 물러난다고 했습니다.
“저는 애초에 돈 이상의 것을 잃을 수 있는 판에는 절대 함부로 승부를 걸지 않아요. 명예, 책임, 심지어 목숨이 걸린 그런 판 말입니다. 고수들 사이에는 ‘3대7의 법칙’이란 게 있는데, 판이 열 개가 열리면 그 중에 가장 자신있는 세 판에만 참가하는 거죠.”
이태혁씨는 “즉 승부는 최대한 가려서 해야 한다”며 “진짜 고수라면 자기 실력을 과시하기 위해 아무판에나 막 끼지 않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이는 ‘손자병법’의 시계(始計) 편에 나오는 ‘싸움을 하기에 앞서서 살피고 또 살피지 않으면 안된다(兵者 不可不察也)’는 구절을 연상시켰습니다.
두번째로 그가 어떻게 상대방의 수(数)를 꿰뚫고 승리하는 지가 궁금했습니다.
상대방의 ‘얕은 수’를 어떻게 꿰뚫을 수 있나요.
“사람은 누구나 단서가 있어요. (카페에서 서빙하는 남자 웨이터 두 명을 가리키며) 저기 웨이터들을 보면 자세가 곧 단서에요. 테이블에 기대 느긋이 서 있는 친구가 고참이고 손을 앞으로 모으고 긴장한 듯 서 있는 친구가 신입입니다. 모든 행동에는 이유와 명분이 분명히 있어요. 작은 단서들을 찾아내고 조합하는 거죠.”
큰 돈이 오가는 도박판이나 비즈니스 세계의 고수들도 그런 단서를 흘리나요.
“오히려 더 많이 흘립니다. 왜냐구요? 걸려 있는 리스크와 대가가 크면 클수록 사람의 심리는 더욱 쉽게 드러나기 때문이죠. 도박이나 비즈니스에선 순간의 결정에 따라 수백 억원이나 사운(社運)이 왔다갔다 해요. 긴장감이 더욱 증폭하고 심리가 드러나기 마련이죠. 완벽하게 자기 심리를 숨기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는 비법도 공개했습니다. 이런 식입니다.
“가장 완벽한 포커페이스란 곧 가장 평소와 다를 바 없는 모습입니다. 예를 들어 평소에 말 많고 산만한 사람이 갑자기 입을 꾹 다물고 수줍게 앉아있으면 그건 최악의 포커페이스죠. 고수들끼리 앉았을 때 보이지 않는 기(氣) 싸움이 엄청납니다. 저는 원래 수비 없이 시종일관 공격만 하는 스타일이라, 진작에 접든지 아니면 계속 공격적으로 나갑니다.”
이는 ‘손자병법’의 허실(虛實)편에 나오는 ‘공격을 잘 하는 사람은 적이 어디를 지켜야 할지 모르게 하고(善攻者 敵不知其所守) 잘 방어하는 사람은 적이 어디를 공격해야 할지 모르게 한다’(善守者 敵不知其所攻)는 구절과 맥락이 닿습니다. 또 ‘천하의 영웅호걸은 얼굴이 성벽만큼이나 두껍고 속은 석탄처럼 시커머야 한다(天下英雄豪傑 臉皮 要厚如城 必要黑如煤炭)’이란 후흑학(厚黑學)과도 동일한 철학입니다.
‘올인’의 주인공 차민수 씨는 이길 확률이 60% 이상이란 확신이 들면 올인하라고 했습니다. 당신은 몇% 쯤에 올인하나요.
“아마 60%라는 확률은 차 선생이 즐겨 하시는 리미트홀덤에서 나온 것 같은데 저는 주로 ‘노 리미트 홀덤’을 칩니다. 저는 확률을 따지기 보다, 분위기를 보고 ‘올인’이란 최종 무기를 쓸 지 말 지 판단합니다. 차 선생님과 자주 만나는데, 실제 성격은 매우 순박합니다.”
- 이태혁 前 세계 포커 챔피언.
“도박판에도 全勝은 없다. 때론 ‘져주기도 하는’ 게 진정한 승리”
마지막으로 프로갬블러 시절 경험에서 터득한 ‘인생 교훈’을 그에게 물었습니다. 이태혁씨가 꼽은 교훈은 세가지였습니다.
먼저 돈이 곧 행복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합니다. ”한때는 저도 비공식 판에서 하루에 수십억을 따봤고 또 수십억을 잃어봤어요. 그러다 보니 초연해지더라고요. 돈은 딱 필요한 만큼 이상이 되면 숫자에 불과합니다.“
두번째로 도박으로는 돈을 벌 수 없다는 사실이랍니다. “40억원을 딴 다음날 39억원을 잃은 적이 있어요. 프로들은 그게 성공한 도박이라고 해요. 왜냐면 대부분 40억을 땄으면 다음날 80억을 잃기 때문이죠.”
셋째, “관계는 주고 받는 과정에서 형성되는데 매번 상대를 이기기만 해선 관계를 유지하기 어렵고 가끔 져주기도 해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고 하더군요.
그는 “도박판에서 얻은 가장 중요한 교훈은 가끔 져주기도 해야 한다는 것”이라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상대를 짓눌러 버리면 게임은 끝나지 않아요. 원한을 품고 다시 돌아오든지 아예 판을 깨버립니다. 판을 계속 유지하려면 져주기도 해야 합니다. 다만 져줄 때 살짝 져주면서도 뭔가 크게 져주는 듯한 인상을 주는 게 포인트죠. 그러면서 실리를 얻고 주도권도 잡고.”
그럼 세계 포커 챔피언이던 이태혁씨가 실토한 가장 큰 적은 무엇일까요? 대답은 이랬습니다. “제 아무리 고수(高手)라도 자만심은 잘 통제하지 못합니다.”
‘교병필패(驕兵必敗·스스로 강하다고 생각하고 교만한 병사는 반드시 패배한다)’의 철칙인 셈입니다. 기원 전 68년에 이뤄진 이 금언(金言)이 2100여년 후인 지금도 여전히 도박은 물론 비즈니스와 인생 무대를 관통하고 있는 지혜가 되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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