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7월 16일 연중 제15주간 목요일 (마태 11,28-30)
복음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28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
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
그러면 너희가 안식을 얻을 것이다.
30 정녕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전삼용 요셉 신부님]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면 에너지가 넘친다>
‘최강의 인생’을 쓴 데이브 아스프리는 자신의 책에서 성공한 사람들이 어떻게 돈과 권력과 쾌락을 다스렸는지 그 세 가지 방법을 제시합니다.
첫 째는 지금 이렇게 절제 없이 산다면 20년 후에 자신의 모습이 어떨지를 그려보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내가 상상하는 20년 후의 나의 미래를 위해 지금 ‘아니오!’란 말을 더 많이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의 애정이나 인기, 돈이나 명예, 쾌락에 휩쓸리다보면 거기에 자신의 모든 에너지를 빼앗겨 정작 힘이 필요할 때 주저앉고 말기 때문입니다.
세 번째 이를 위해서는 중요한 의사결정이 아닌 이상 삶의 모든 패턴을 자동화하라는 것입니다. 몇 시에 일어나서, 어떤 운동을 얼마나 하고, 식사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어떤 옷을 입고 출근할 것인지, 출근해서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귀가해서는 어떻게 하루를 마무리하고 잠자리에 들 것인지를 미리 생각해 놓으라는 것입니다.
이 세 가지는 결국 하나입니다.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지금의 자신의 욕구를 절제해야 하고, 그 방법은 욕구를 이기기 위해 평소 생각과 판단에서 에너지를 비축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학계에서 진행된 흥미로운 연구결과가 있습니다. 판사들이 수감자들을 대상으로 가석방 심사를 하는 상황을 살펴보았습니다. 10개월이 넘는 기간 동안 1,000여 차례가 넘는 공판을 조사했는데, 놀라운 결과가 도출되었습니다.
‘판결 결과’는 범죄 유형이나, 수감자의 학력, 수감 생활 등의 변수보다는 판사가 ‘판결을 내리는 시간대’에 더 밀접한 관련이 있었던 것입니다.
오전에 내리는 공판에서는 판사가 매우 너그러운 판결을 내렸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를수록 판사들은 수감자에게 우호적인 판결을 내리지 않았습니다. 점심 전에는 거의 0%까지 떨어졌습니다. 그런데 점심 식사와 잠시 휴식을 거친 뒤에는 다시 우호적 판결을 내릴 확률이 65%까지 오른 것입니다.
이런 ‘판결을 내리는 시간대’와 ‘판결 결과’의 상관관계는 꾸준하게 반복되어 나타났던 것입니다. ‘시간대’가 ‘판결의 결과’를 가르다니, 어떻게 이런 어처구니없는 결과가 나왔을까요?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가석방 승인 여부를 둘러싼 여러 의사결정들이 판사들의 ‘의지력 계좌’를 점차 소진시켰던 것입니다. 따라서 의지력이 바닥났을 때 의사결정을 하는 것은 나쁜 결과를 도출할 확률을 높이게 됩니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의사결정 피로현상’이라고 부릅니다. 의사결정을 많이 하면 할수록 피곤해져 판단력이 흐려지는 것입니다. 평소에 무의식적으로 하는 생각과 판단은 우리의 의지력을 소진시켜 결국 통제해야 할 것들을 통제하지 못하게 됩니다.[참조: ‘최강의 인생’, 체인지 그라운드; 웅 이사의 하루공부, 유튜브]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인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 그러면 너희가 안식을 얻을 것이다. 정녕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 마음인 온유와 겸손은 바로 구원받기 위한 믿음을 담는 그릇입니다. 다시 말하면 어린이와 같은 마음이라 할 수 있습니다.
벳사이다, 코라진, 카파르나움은 믿음이 없어서 수많은 기적을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을 하느님의 아드님으로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믿음을 간직할 수 없었던 이유는 그들이 너무 생각을 많이 했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은 생각하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생각해야 할 때에 부모에게 맡겨버립니다. 그리고 때가 되면 해야 할 일을 합니다.
부모가 자라고 하면 자고 학교에 가라고 하면 갑니다.
숙제를 하라고 하면 하고 밥을 먹으라고 하면 먹습니다. 이것이 온유하고 겸손한 마음일 것입니다. 이렇게 온유와 겸손으로 얻는 ‘안식’은 ‘쉼’입니다. 그래서 온유하고 겸손하면 어린이처럼 에너지가 넘칩니다.
축구나 야구, 모든 운동이 그렇지만 지친 선수는 아무리 실력이 좋아도 경기에 뛰게 하지 않습니다. 질 것이 뻔하기 때문입니다. 선택을 잘하기 위한 실력도 중요하지만 선택을 하기 위한 에너지도 잘 관리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스티브 잡스나 마크 주커버그와 같은 사람들은 옷을 한 가지만 입었습니다. ‘어떤 옷을 입을까?’에 에너지를 쓰지 않기 위함이었던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온유하고 겸손한 사람입니다. 겸손하니까 자신의 에너지의 한계를 알기에 하루의 일과를 정해놓고 온유하게 순종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도 하느님의 자녀라면 우리 부모님인 하느님께서 우리를 위해 정해 놓은 시간표가 있을 것입니다. ‘내가 준 하루를 이렇게 알차게 살았으면 좋겠다’는 주님의 뜻이 있을 것입니다. 겸손하고 온유한 사람은 그래서 주님의 뜻에 따라 다음 날 해야 할 일을 미리 생각해보고 잠자리에 들 것입니다.
어린이처럼 잠자기 전에 감사 일기를 쓰고 다음 날 할 일들을 시간을 생각하며 시간표를 짜 봅시다. 다음 날 훨씬 힘이 덜 들 것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께서 메어주시는 멍에를 받아들이는 방법일 것입니다.
이렇게 온유하고 겸손한 이들은 일일이 고민하고 선택해야 하는 삶의 무게를 내려놓고 그리스도의 온유와 겸손의 멍에를 통해 평안한 안식을 얻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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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전주교구 백재욱 스테파노 신부님]
프랑스 철학자 알베르 카뮈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시시포스 일화에서 인간 삶의 부조리를 떠올립니다. 신들의 노여움을 산 시시포스는 무거운 바위를 산꼭대기로 밀어 올리면 바위가 다시 밑으로 굴러떨어지는 과정을 끝없이 되풀이해야 하는 형벌을 받습니다. 이는 날마다 되풀이되는 단조로운 일상 속에서도 삶의 무게를 짊어지고 살아가야 하는 우리의 운명과 비슷한 모습입니다.
카뮈는 이 의미 없는 반복과 허무함을 극복하려면 삶의 허무를 외면하지 않고 오히려 분명하게 바라보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어쩔 수 없다고 포기하거나 상황을 부정하지 말고, 주어진 삶을 용기 있게 마주하라고 초대합니다. 주어진 삶을 적극적으로 마주할 때 인간은 비로소 ‘행복한 시시포스’를 마음에 그릴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누구보다 이러한 인간의 처지를 잘 알고 계셨습니다. 그러나 그분의 접근은 카뮈와 달랐습니다.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마태 11,28). 주님께서는 우리를 가혹한 운명의 산에 홀로 남겨 두시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곁에 머무르시며 쉼의 자리를 마련하시고, 그곳이 더 이상 형벌이 아닌 치유와 회복의 공간이 되게 하십니다. 무엇보다 그분께서는 스스로 인간이 되시어 몸소 그 형벌 같은 삶을 살아 내심으로써 당신을 따르는 이들의 짐을 가볍게 해 주셨습니다. 이렇게 예수님을 따름으로써 인간은 참된 행복, 그 궁극적 ‘좋은 삶’에 이를 수 있게 됩니다. 결국 카뮈가 꿈꾸던 ‘행복한 시시포스’는 그리스도를 만나야 비로소 실현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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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레시오회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주님은 내게 얼마나 자상하고 따뜻하고 친절한 분이신지?>
한 구절 한 구절 어디 하나 버릴 수 없는 예수님의 말씀이지만, 오늘 복음 말씀은 더욱 그러하고, 휘청휘청 힘겹게 걸어가는 우리에게 큰 위로와 격려가 됩니다.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매고 나에게 배워라. 그러면 너희가 안식을 얻을 것이다. 정녕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마태 11, 28-30)
한 단어 한 단어 곱씹으며 묵상하다 보니, 우리 주님의 다정하고 자상한 마음이 온몸과 마음으로 느껴져, 전율이 일어나는 느낌입니다.
오늘도 결코 만만치 않은 버거운 하루를 견뎌내야만 하는 우리, 그 누구에게도 대놓고 힘들다며 하소연하기조차 어려운 우리, 그 모든 굴욕감과 수모도 말없이 참아내야 하는 오늘 우리를 향해 주님께서 다가오십니다.
얼마나 힘드냐며, 우리의 어깨 위에 당신의 손을 다정하게 얹으십니다. 부드럽게 두드리며 말씀하십니다.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이윽고 우리를 꼭 끌어안아 주시며 속삭이십니다. “두려워하지 마라.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와 함께 하겠다.”
사랑스러운 나라 몽골 여기저기를 순례하면서 참 많이 배웠습니다. 마침 순례 기간과 몽골의 대명절 나담 축제 기간이 겹쳐, 그들이 오랜 세월 간직해온 전통문화를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축제 기간 동안 몽골인들은 민족 전통 복장으로 단장합니다. 오늘 우리에게는 점점 사라져가는 한복 문화 같은 분위기가 생생히 살아있습니다. 사원으로 들어가는 길에 전통 복장을 한 오누이 어린이들을 만나 허락을 득하고 사진을 찍었는데, 얼마나 예쁘던지요.
이 기간 동안 몽골에서는 남자들의 세 가지 경기, 씨름, 활쏘기, 말타기의 본선 경기가 울란바토르 전역에서 펼쳐집니다. 축제 기간 티브이를 켤 때마다 경기가 생중계 되고 있었습니다.
몽골에도 설날이 있는데, 그때 우리나라에서는 볼수 없는 특별한 진풍경이 펼쳐집니다. 그들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새해 인사를 윗사람들에게 건네는데, 우리와 반대로 아들이 아버지께, 제자가 스승에게 새뱃돈을 건넨답니다. 이 얼마나 우리가 본받아야 할 아름다운 전통인지!
그들과 마찬가지로 우리에게도 설날, 추석과 같은 민족 고유의 명절이 있습니다. 명절이 지닌 의미가 참으로 풍요롭습니다. 명절을 지내며 우리는 오늘 우리와 우리 민족과 나라를 존재하게 한 부모, 조상들을 기억하고 감사드립니다. 더 나아가서 만물의 창조주 하느님을 또한 기억하며 감사드립니다.
오늘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노력이 있다면 기억하는 것입니다. 회상하고 감사하고, 오늘 이 자리에 되살리고, 다시 한번 새롭게 시작하고...
오늘 다시 한번 기억하면 좋겠습니다. 하느님께서 내게 베푸신 은총이 얼마나 큰 것인지? 부당한 죄인인 나를 살리신 하느님은 얼마나 자비로운 분이신지? 그분은 내게 얼마나 자상하고 따뜻하고 친절한 분이신지?
몽골 청소년 돕기를 위한 ‘양 한 마리 프로젝트’에 기쁘게 참여해주신 형제자매님께 진심으로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여러분이 보내주신 양 한 마리는 수많은 길잃은 양을 구해내는 마중물이 될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여러분의 따뜻한 마음을 보시고 크게 기뻐하실 것입니다.
■양 한 마리 후원하기■
양 한 마리 가격: 10만원
살레시오회 몽골지부 후원 계좌
국민은행 090-01-0323-505
예금주: (재) 천주교 살레시오회 선교국
*송금시 반드시 ‘양 한 마리’라고 명기해주시기 바랍니다.
양 한 마리 후원 문의 및 연말 기부금 영수증 신청
살레시오회 선교국 02) 828-3524, 010-8983-3524(월~금, 09:00~18:00)
출처: 복음말씀의 향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