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아시아에 고려채가 있다면, 고려의 유민이 해당지역으로 흘러들어갔다는 것을 반증하는 내용입니다. 사람의 이동이 있기에 역사와 문화(음식포함)가 이동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김유미님의 ‘양배추... 고려채... 서토남’에 대한 김재만님의 댓글에서 인용했습니다.
한반도에서는 양배추라 부르는데, 중국어(일본어)권에서는 고려채라고 부른다면, 여기에 우리가 뭔가 상식적으로 간단하게 풀 수 없는 문제가 내포되어 있는 것이 아닐까요?
김유미님의 고려채와 서토남은 분명히 한 가지 양배추를 부르는 이름이라면 채와 남(藍)은 같은 채소라는 말이고 고려와 서토는 같은 말입니다. 김재만님의 말씀처럼 서토의 고려 유민들이 동남아로 흘러 들어갔다는 것을 증명해 주는 언어 고고학적 유물로 남아 있는 것을 김유미님이 잘 발굴해 주신 것입니다.
카배추 호배추 고려채 서토남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사용했던 주체를 먼저 검토해야 합니다. 중국 대만 싱가포르 일본 사람들 - 중국어와 일본어를 사용한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중국어가 100년 전에도 신강을 포함한 중국 전 지역에서 사용되었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이는 잘 못 알고 있는 것입니다. 현대 중국어의 가장 중요한 여섯 지방 언어를 꼽는다면, 북경어, 산동어, 상해 절강어, 복건어, 광동어, 광서 호남어라고 알고 있읍니다. 바로 현 중국의 해안 지역의 언어들입니다.
이 현 중국의 해안 지역에서 살던 왜인들이 지난 150여년 사이에 대륙 내부를 요리하고, 장악했고 지금도 지배하고 있읍니다. 물론 지금은 대륙의 신강지역까지 이 ‘해안의 중국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반도에서는 양배추 카배추 호배추라고 불렀고 지금도 부르는데, 고려채 서토남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중국 대만 싱가포르 일본 사람들’)은 분명히 고려 사람들(THE KOREANS)은 아닙니다. 바로 해안가의 중국어 혹은 일본어 사용자들입니다.
그러면 언제 이 말이 붙여지고 사용되었을까요? 19세기 중후반에 대륙을 다 장악하고 난 다음에 이 말을 사용하기 시작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대륙을 다 장악한 이후라면 서토남 혹은 고려채라는 말을 사용했을 리가 없읍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19세기 중반 이전에 이 말이 사용되었을 텐데, 그때는 이 말의 사용자들이 해안(북경, 산동, 상해 절강, 복건, 광동, 광서 호남)의 사람들이었을 때 - 아직 대륙을 장악하기 전 - 라는 말입니다.
이 해안의 사람들(중국어를 사용하는 중국인-청인)이 봤을 때, 고려(KOREA, 조선)는 서토였읍니다. 그래서 서토남이라고 불렀던 것입니다. 서토와 고려는 정확히 동의어인 것입니다. 청나라가 저멀리 중앙아시아에 있었다고 하는 사람들은 다시 한번 생각해 봐야 할 문제입니다. 청나라 세력은 동쪽 해안의 세력이었던 것입니다.
정말 경천동지할 사실 아닙니까? 역사조작세력은 서의 고려 중원과 동의 중국어권 청나라와 동서의 바꿔치기를 해냈던 것입니다. 그래서 서쪽 누르하치와 명을 조작해서 마치 파미르 이서지방에 존재했던 것 같이 심어 놓았지요. 지금까지 막연하게 그럴 것이라고 생각해 왔는데 김유미님의 글을 보고 생각고 생각다가 2차 조작인 조선을 서안 이동으로 옮겨 놓은 25사의 조작이 다름 아닌 동서 바꿔치기였던 것입니다.
이 카페의 시작 화면의 큰 호랑이 그림은 말하자면 동쪽의 왜가 호랑이가 되어서 서쪽 조선을 노려보는 왜의 세력권의 확장판의 기세를 이미지화한 것입니다. 사이트 관리자님께서는 심각히 고려하셔야 할 그림이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이 문제에 관해서 지속적인 관심과 연구와 언급을 아끼지 않을 작정입니다.
이제 호도 호초(후추) 호밀 호떡 호빵 호배추(카배추) 호파(양파)의 호 혹은 카라는 말을 생각해 봅시다. 호 혹은 카라는 말은 해안가에서 봤을 때 서토 혹은 고려라는 의미로 쓰이는 말이라는 것입니다. 바로 夏나라로부터 殷周秦漢魏晉唐宋 朝鮮의 사람(스키타이)을 부를 때 당연히 하(夏) 혹은 胡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이 하 혹은 호는 고려이고 서토입니다.
누가 누구를 부르는 이름입니까? 바로 동쪽 왜인(혹은 중국어를 사용하는 청나라 사람)이 서쪽 고려인을 부르는 말인 것입니다. 고려는 청의 서쪽에 있었읍니다. 물론 청이란 것은 조작배기입니다. 존재하지 않았던 나라입니다. 그냥 왜인들에게 나라라는 옷를 하나 입혀 준 것뿐입니다.
밀 중에 아주 키가 커서 어른 키보다 더 큰 밀을 호밀이라 부릅니다. 우리가 어릴 때는 대국밀이라고 불렀읍니다. 어릴 때 그 이름을 들을 때 마다 중국사람들은 참 이상한 밀을 먹었구나 하고 생각하면서 꽤 이국적이고 낯선 먼 나라를 그렸던 기억이 납니다.
제 선친이 지금 살아계시면, 한국 나이로 86세가 되는데, 내가 어릴 때(열 살 전후로 기억) 자주 헷갈리는 말씀을 했읍니다. 중국에 대해서 대국, 어르신들이라고 부르며, 옷깃을 여미듯이 존경의 염(念)이 표정과 말씀에 역력하다가, '청국놈, 뙤놈, 뗀놈'이라고 경멸과 분노의 표정과 말씀을 하시곤 했읍니다. 오랜 기간 동안 나의 화두 중의 하나였는데, 오늘 김유미님의 글을 보고 그 의문이 완전히 풀렸습니다.
김유미님의 향비와 고려채, 서토남 같은 글은 과히 일품의 글이었읍니다. 덕분에 많은 개념이 명확해졌습니다. 그 감각을 살리셔야 합니다. 지금도 우리가 사용하고 중국이나 일본에서 사용하는 말 중에 역사의 실상을 보여 줄 수 있는 많은 말들이 있을 텐데, 김유미님 같이 감수성이 예민하고 감각이 살아 있는 분이 계속 발굴해 주신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호밀은 대국밀입니다. 즉 호는 대국입니다. 대국은 청국놈 뙤놈 뗀놈들의 서토에 있는 조선 황제국의 중원을 말씀하셨음이 분명합니다.
참고로 제 선친은 국민학교도 나오지 못했읍니다. 물론 문턱에 들어가지도 못했읍니다. 큰아버님이 일본 유학을 하는 동안 살림을 맡으셨다가 일본과 만주에 돈벌이까지 하셨던 국제적으로 개방적인 삶을 사셨던 독특한 개성과 '지성'의 소유자셨던 분입니다. 제가 중학생 때는 부산의 미군부대(하야리야)에서 폐지 수집 사업까지 하셨습니다.
한글과 한자와 부분적인 일본어와 중국말을 이해하셨읍니다. 즉 일제 교육으로 세뇌당하지 않고 세상의 흐름을 읽으셨던 분 같습니다. 징용과 한국전쟁 때의 징병을 내내 피해 다니신 고향 밀양에서는 영웅이기도 했읍니다. 말하자면 저는 '영웅'의 아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부지요, 와 헷갈리게 대국하고 청국하고 다르게 약(이야기)을 하는교?’하고 물으면, 내 말을 외면하듯이 못들은 듯이 무시하고는 했습니다. 그 실상을 아들이 알면 아들의 앞날에 그늘이 낄까봐 애써 내 말을 못 들은 체 했던 것 같습니다. 그 뒤 다시는 대국 청국의 헷갈리는 말은 못 들었습니다.
김재만선생님의 댓글을 또 인용합니다.
‘한선샌님 선친께서, '청국놈'이다, 또는 떼놈이다라고 말씀하신 것은 '청국'이라는 것이 존재한다는 반증아닐까요?.... 이것이 조선은 아닌 것이지 않나요?.... 이것을 중조로 볼 수 있는 것일까요?...’
그에 대한 제 답글도 인용합니다.
‘청국의 國은 제후국을 이르는 것이기 때문에 중조는 아니라는 것은 확실하다 하겠읍니다, 물론 이 청국이란 개념은 청일전쟁 청불전쟁과 같이 20세기에는 이미 확립되어 있는 개념입니다. 실제상으로는 회수 이북 중심의 이홍장 원세계 세력과 상강 중심의 증국번과 좌종당 세력을 이르는 것이고,
이들은 대원군(소위 중국사의 공친왕恭親王)을 움직여 중앙조정의 재가를 받아 내어 움직이는 동쪽 해안의 왜 세력의 군벌일 뿐입니다. 이 청국은 조선 중앙 조정의 재가를 받아 움직이는 조선의 일부였음이 확실합니다. 중조로 본다는 것은 천부당 만부당입니다. 태평천국에서 정식으로 다루겠읍니다.’
김유미님의 글을 보고 난 후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 의미가 하도 중대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 댓글을 정리해서 정식으로 글을 발표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다시 정리했습니다.
첫댓글한헌석 선생님, 관련 글을 다시 정리하여 올려주시니 정말 고맙습니다. 건전한 토론, 상생하는 연구, 이런 것들이 절실하게 필요한 때입니다. 말도 안 된다, 터무니 없다 라는 말을 하는 것보다는 이론에는 더 나은 이론, 학설에는 더 나은 학설로 서로 대응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요즘 헌신적으로 기여하시는 여러 선생님들 덕분에 배우는 것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본 카페에서 주장되는 이론과 학설이 더 체계적으로 완성되면 좋겠습니다. 건승하십시요.
여러가지 논점이 있습니다만, 일단 청국을 조선의 중조가 아닌 조선의 제후로 보시는 부분이 저와 일치하였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생각됩니다. 또한, 해당내용의 관점으로 그 전의 역사들을 해석한다면, '고구려 중조=수,당' 등의 내용도 다시 한번 검토되어야 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봅니다... 좋은 지적 잘해주신 것 같습니다...
일단, 양배추라는 언급은, 간단히, 서양에서 배추로 사용하는, 즉, 우리나라의 배추처럼 수시로 먹는 채소라는 뜻으로 그렇게 명명했다고 봅니다. 중요한 것은, 이것이 고려채라는 의미로도 사용된다는 것입니다. 다시말해, 이 서양의 배추를 주로 사용한 나라 또는 집단이 고려이고 고려인들이 주로 사용해왔던 채소라는 의미로 고려채라는 또 하나의 명칭이 탄생했다고 봅니다... 그 만큼 고려는 서양과 가까웠고, 서양의 문물을 빠른시기에 받아들일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어 있었던 위치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서토남의 순우리말이 양배추라는 괁점에서 본다면, 여기서 말하는 서토는 '양' 즉 서양을 의미하는 것으로, '서양배추(채소)=서토남'이라는 논리에 접근이 됩니다. 즉, 고려의 위치가 서토였기 때문에, 서토남이라는 명칭이 생겼다기 보다는, 해당 배추의 기원에 좀더 많은 촛점을 맞춰, 서양채소(배추)라는 의미로 '서토남'이라고 부르게 되었던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 저의 추측입니다...
바탕화면에 대한 내용도 '한'선생님과 의견이 동일합니다. 예전에 '용'을 조선의 상징으로 해서 올려놓으시다가, 호랑이로 바꾸셨는데, 과거의 모습에서는 대륙을 지향하는 호랑이의 역동적 모습이 한국인의 기상을 높히는 중요한 그림중에 하나였으나, 전세계의 중심을 이야기하는 대륙조선의 취지에는 못미친다고 생각합니다..... 다시한 번 말씀드리지만, 저는 '봉황'이 올라와야 한다고 거듭 주장하고 싶습니다... 또는 삼족오의 상징이 더 어울릴 수 있다고 봅니다... 본 카페는 '왜' 또는 '일본'의 조상을 가지고 계신분들도 많은 것 같은데, 삼족오는 일본에서도 신성시 하는 상징으로 알고 있고,
첫댓글 한헌석 선생님, 관련 글을 다시 정리하여 올려주시니 정말 고맙습니다. 건전한 토론, 상생하는 연구, 이런 것들이 절실하게 필요한 때입니다. 말도 안 된다, 터무니 없다 라는 말을 하는 것보다는 이론에는 더 나은 이론, 학설에는 더 나은 학설로 서로 대응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요즘 헌신적으로 기여하시는 여러 선생님들 덕분에 배우는 것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본 카페에서 주장되는 이론과 학설이 더 체계적으로 완성되면 좋겠습니다. 건승하십시요.
여러가지 논점이 있습니다만, 일단 청국을 조선의 중조가 아닌 조선의 제후로 보시는 부분이 저와 일치하였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생각됩니다. 또한, 해당내용의 관점으로 그 전의 역사들을 해석한다면, '고구려 중조=수,당' 등의 내용도 다시 한번 검토되어야 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봅니다... 좋은 지적 잘해주신 것 같습니다...
그러나, 양배추를 '고려채' 또는 '서토남'이라고 부르는 것에서는 2가지 접근이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일단, 양배추라는 언급은, 간단히, 서양에서 배추로 사용하는, 즉, 우리나라의 배추처럼 수시로 먹는 채소라는 뜻으로 그렇게 명명했다고 봅니다. 중요한 것은, 이것이 고려채라는 의미로도 사용된다는 것입니다. 다시말해, 이 서양의 배추를 주로 사용한 나라 또는 집단이 고려이고 고려인들이 주로 사용해왔던 채소라는 의미로 고려채라는 또 하나의 명칭이 탄생했다고 봅니다... 그 만큼 고려는 서양과 가까웠고, 서양의 문물을 빠른시기에 받아들일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어 있었던 위치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서토남이라는 또다른 명칭이 생긴것은 1) 해당 채소의 기원이 서양이었기 때문에 생긴것인지? 아니면, 2) 고려의 지역이 서토에 존재하기 때문에 고려인들이 주로 섭취하던 해당채소의 이름을 서토남으로 불렀는 지는 따져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여기서 서토남의 순우리말이 양배추라는 괁점에서 본다면, 여기서 말하는 서토는 '양' 즉 서양을 의미하는 것으로, '서양배추(채소)=서토남'이라는 논리에 접근이 됩니다. 즉, 고려의 위치가 서토였기 때문에, 서토남이라는 명칭이 생겼다기 보다는, 해당 배추의 기원에 좀더 많은 촛점을 맞춰, 서양채소(배추)라는 의미로 '서토남'이라고 부르게 되었던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 저의 추측입니다...
고려 배추가 서토남이면 당연히 서쪽에 있었던 게 되는군요. 청국에 대한 개념이 조금씩 바로 서는 것 같습니다.
바탕화면에 대한 내용도 '한'선생님과 의견이 동일합니다. 예전에 '용'을 조선의 상징으로 해서 올려놓으시다가, 호랑이로 바꾸셨는데, 과거의 모습에서는 대륙을 지향하는 호랑이의 역동적 모습이 한국인의 기상을 높히는 중요한 그림중에 하나였으나, 전세계의 중심을 이야기하는 대륙조선의 취지에는 못미친다고 생각합니다..... 다시한 번 말씀드리지만, 저는 '봉황'이 올라와야 한다고 거듭 주장하고 싶습니다... 또는 삼족오의 상징이 더 어울릴 수 있다고 봅니다... 본 카페는 '왜' 또는 '일본'의 조상을 가지고 계신분들도 많은 것 같은데, 삼족오는 일본에서도 신성시 하는 상징으로 알고 있고,
그 분들도 모두 포함될 수 있고, 모두 함께 새로운 고구려(고려)의 역사의 발견에 동참할 수 있다는 면에서 통합적인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cabbage: ca+bbage=카+배추, 카타이 배추, 고려 배추, 하 배추. 영어의 캐비지는 우리말이었습니다. 호배추/카배추에서 파생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