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이 가면 사람은 늙는다.
자연의 이치다.
나는 1990년 12월에 결혼했다.
그 혼사로 인해 부모님이 네 분이 되었다.
본가의 두 분, 처가의 두 분이었다.
나의 자녀들이 어느새 30대 초반이 되었다.
세월이 많이 흘렀다는 얘기다.
유수같은 세월의 흐름 속에서 본가의 '아버님'과 '어머님', 처가 '아버님'이 각각 하늘나라로 먼 여행을 떠나셨다.
보모님과의 별리는 슬프고 애통한 일이었으나 '생노병사'는 우리가 주관할 수 없는 문제였다.
그건 신의 영역이었다.
그렇게 세 분이 떠나셨고 지금은 '장모님'만 계신다.
자식으로서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 잘 모시고 싶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다 그런 생각을 할 것이고, 그렇게 행동하리라 믿는다.
처가댁 형제자매는 1남3녀다.
장손이자 외아들인 형님은 명절 때마다 자신의 집에서 차례를 지냈고, 처형과 처제도 각각 큰며느리 입장이라 자신의 집에서 차례를 주관했다.
우리는 종교적인 영향으로 차례나 제사로부터 자유로운 편이었다.
그래서 매년 설날과 추석이 되면 우리 부부가 고향으로 내려와 장모님과 함께 2박3일 간 즐겁고 유쾌한 시간을 보냈다.
2주 전 추석 때도 그랬다.
명절이 끝나고 손위 처남 부부는 이태리로, 처형과 조카딸은 동유럽 3개국으로 각각 여행을 떠났다.
내주에 귀국한다.
처제도 골프투어가 있어 주말에 바쁘다고 했다.
그래서 우리 부부가 다시 몇 가지 음식과 과일을 준비하여 장모님을 뵈러 왔다.
2주만의 반가운 재회였다.
이번엔 일을 좀 하려 한다.
집 주변 잡초도 뽑고, 집과 연해 있는 야산의 우거진 잡목과 대나무도 일부 손을 보려 한다.
어찌나 울창하고 빽빽한지 93세인 어머니께서 처리하시기엔 힘에 부치고 위험한 일들이다.
그래서 '정글도','정글톱' 같은 연장도 챙겨왔다.
아직도 한낮엔 30도를 넘나들고 있다.
여전히 덥다.
내가 수돗가에서 숫돌로 '정글도'를 갈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신 어머니께서 그러셨다.
"아이고 지금 밖은 여전히 무더우니 햇살이 조금 누그러지면 그때 작업하라"고 당부하셨다.
"이런 기온엔 무리하지 말라"며 손사래를 치셨다.
오후 5시 경부터 본격적인 작업을 시작하려 한다.
오늘 뿐만 아니라 내일 새벽과 오전에도 시간을 빼서 계속 해볼 작정이다.
어머니는 넓은 마당에 풀 한 포기 나는 꼴을 그냥 두고 보지 않는 성격이다.
정말로 깔끔하고 깨끗하게 유지,관리 하신다.
나도 적극 도와드리고 싶다.
잘 벼린 정글도 칼날이 햇볕을 받아 반짝거렸다.
자신의 존재 목적에 맞게 열심히(?) 일을 하고 싶어 하는 눈치다.
"그래 잠시 후에 본격적으로 땀을 흘려보자."
대도시 사람들은 시골살이를 '여유와 목가'로 생각하곤 한다.
그래서 은퇴 후에 양평이나 여주, 남양주 등에 땅을 사서 예쁜 집을 짓고 꿈에 그리던 '전원생활'을 시작한다.
그러나 내가 아는 분들 중 채 3년을 버티지 못하고 다시 도시로 돌아온 사람들도 적잖다.
투자금액의 절반 정도에 집을 내놓아도 문의하는 사람이 아예 없다고 했다.
잡초나 각종 벌레와의 치열한 전쟁에서 꿋꿋하게 견뎌내기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공기 맑고 조용한 점도 있지만 시골생활은 불편하고 외롭다.
가끔씩 뱀도 출몰하는데 기겁하는 사람도 있다.
인생의 모든 결정엔 책임이 뒤따르는 법이다.
타인의 별장이나 요트를 부러워 하지 말고 자신의 위치에서 언제나 최선을 다하며 즐겁게 살면 된다.
인생의 '황금기'가 따로 있는 게 아니다.
언제 어느 곳에 있든지 지나가는 객이 아니라 주인 같은 마음과 정신으로 최선을 다하는 삶.
그런 삶의 모습, 그런 삶의 태도가 바로 인생의 황금기를 엮게 해주는 유일한 새끼줄이다.
9월의 마지막 주말.
행복하고 즐거운 주말이 되길 빈다.
브라보.
살며 사랑하며 배우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