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8일(목)
* 시작 기도
(벧전 5:8-9)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건하게 하여 그를 대적하라. 이는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을 앎이라.
주님...
교회 안에서 영성 있는 자라고 자처하는 이들이 마귀를 대적한다고 하면서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사탄아 물러갈찌어다’를 많이 외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이 마귀를 물리치는 대단한 방법인 양 말입니다.
하지만 사실 이는 마귀를 물리치는 수단이 아닙니다.
길을 가다가 갑자기 개가 짖는 모습을 볼 때가 있습니다.
이 때 개가 짖는 이유는 다름 아니라 자신이 무서워서 그런 것임을 알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사탄을 대적하기 위하여 예수의 이름을 남발하는 것은 두려움에 떨며 짖어대는 개와 다름 아닙니다.
오히려 마귀를 대적하는 진짜 방법은 믿음으로 주의 품에 안겨 있는 것입니다.
이는 곧 우리 주님과의 완전한 관계 곧 교제와 사귐 안에 거할 때 가장 안전함을 누릴 수 있습니다.
오늘도 그런 안전한 평화가 내게 있기를 원하여 말씀으로 주님 안에서 교제와 사귐을 갖습니다.
새 영과 새 마음으로 빚어주시고 주의 영 곧 진리의 영으로 조명하사 말씀의 빛을 비추소서.
옛 사람은 십자가에 못 박습니다.
나의 의를 드러내려 하는 옛 사람은 이렇게 못 박아 죽고 주의 보혈로 나를 씻어 정결한 주의 신부로 세우소서.
오늘도 주 안에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며 주의 은혜를 누리는 한 날 되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성경본문 / 계 5:1-7
제목 : 일찍이 죽임을 당한 것 같더라.
1 내가 보매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손에 두루마리가 있으니 안팎으로 썼고 일곱 인으로 봉하였더라.
2 또 보매 힘 있는 천사가 큰 음성으로 외치기를 누가 그 두루마리를 펴며 그 인을 떼기에 합당하냐 하나
3 하늘 위에나 땅 위에나 땅 아래에 능히 그 두루마리를 펴거나 보거나 할 자가 없더라.
4 그 두루마리를 펴거나 보거나 하기에 합당한 자가 보이지 아니하기로 내가 크게 울었더니
5 장로 중의 한 사람이 내게 말하되 울지 말라. 유대 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가 이겼으니 그 두루마리와 그 일곱 인을 떼시리라 하더라.
6 내가 또 보니 보좌에 네 생물과 장로들 사이에 한 어린 양이 서 있는데 일찍이 죽임을 당한 것 같더라. 그에게 일곱 뿔과 일곱 눈이 있으니 이 눈들은 온 땅에 보내심을 받은 하나님의 일곱 영이더라.
7 그 어린 양이 나아와서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손에서 두루마리를 취하시니라.
* 나의 묵상
요한은 하늘이 열리고 보좌에 앉으신 이를 보았다.
피조물을 대표한 네 생물과 증인들을 뜻하는 24장로들이 보좌에 앉으신 이에게 영광과 권능과 존귀를 드리는 찬양을 하고 있다.
요한이 다시 보니까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손에 두루마리 하나가 들려 있고 그 안팎으로 글이 쓰여 있는데 이 두루마리는 일곱 인으로 봉인되어 있었다.
한 힘 있는 천사가 큰 소리로 외치기를 누가 그 인을 떼며 그 두루마리를 펴기에 합당한가, 라고 하였다.
그러나 하늘 위에나 땅 위 그리고 땅 아래에 그것을 능히 펴거나 보거나 할 자가 없었다.
그래서 요한은 이 사실을 알고 크게 울었다.
그러자 장로 중의 한 사람이 요한에게 말하였다.
(5절) 장로 중의 한 사람이 내게 말하되 울지 말라. 유대 지파의 사자(Lion) 다윗의 뿌리가 이겼으니 그 두루마리와 그 일곱 인을 떼시리라.
그 때 요한은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사이에 한 어린 양이 서 있는 것을 보았다.
그 어린 양은 이미 죽임을 당한 것 같았으며 일곱 뿔과 일곱 눈이 있었다.
이 눈들은 온 땅에 보내심을 받은 하나님의 일곱 영이다.
그 어린 양이 나아와서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 손에서 두루마리를 받았다.
요한계시록은 장차 될 일에 대한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이다.
이 계시는 4장을 서론으로 하고 5장부터 본론이 시작된다.
5장에 나오는 봉인된 두루마리는 6-19장까지 그 내용을 구성한다.
그것은 곧 마지막 때에 일어날 사건들이다.
두루마리의 봉인이 열려지면서 장차 될 일, 곧 마지막 때의 사건들이 일어난다.
그러므로 봉인을 떼는 것과 마지막 사건의 도래가 같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처음에는 그 봉인을 뗄 자가 없었다.
하늘 위에나 땅에서나 그 두루마리를 능히 펴거나 볼 자가 없었던 것이다.
하늘 위는 천사들을, 땅 위는 인간들을, 땅 아래는 악인들을 가리킨다.
이를 보고 요한이 울자, 한 장로가 나서서 울고 있는 요한에게 울지 말라고 하면서 봉인을 떼고 두루마리를 펼 자가 있음을 알린다.
그는 곧 메시야이며 이미 야곱의 축복에서 언급된 유다지파의 사자(獅子,Lion)이며 이사야를 통해서 예언된 다윗의 뿌리에서
난 자이다.
(창 49:9) 유다는 사자 새끼로다. 내 아들아 너는 움킨 것을 찢고 올라갔도다. 그가 엎드리고 웅크림이 수사자 같고 암사자 같으니 누가 그를 범할 수 있으랴?
(사 11:1)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
그는 한 어린 양으로서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사이에 서 있는데 일찍이 죽임을 당한 어린 양으로 묘사된다.
그에게는 일곱 뿔과 일곱 눈이 있는데 일곱 뿔은 완전한 신적 권세를 의미하고 일곱 눈은 하나님의 명령을 받은 일곱 영을 나타낸다.
이처럼 죽임당하셨으나 다시 살리심을 받아 우리의 원수인 사망을 정복하셨다.
물론 사망의 세력 너머에는 하나님의 원수인 사탄이 실재한다.
이 어린 양은 봉인된 두루마리를 받으심으로 마지막 때의 왕으로 부각된다.
곧 두루마리를 받으신 그리스도는 모든 권능과 모든 지혜를 가지고 마지막 사건을 친히 집행하신다.
그리고 성도들의 기도는 천사들과 24장로들에 의해 하나님께 올라간다.
한편 어린 양이란 요한계시록을 비롯한 신약 성경 전체에 자주 등장하는 그리스도의 명칭이다.
세례 요한은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켜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 양’이라고 하였다.
(요 1:29)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이르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유월절 어린 양의 죽음으로 묘사하였다.
(고전 5:7) 너희는 누룩 없는 자인데 새 덩어리가 되기 위하여 묵은 누룩을 내버리라.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되셨느니라.
어린 양으로 묘사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온 인류를 위한 희생제물이 되셨다.
그래서 그는 오늘 본문에서 ‘이미 죽임당한 어린 양’으로 불린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죽임당한 어린 양을 지극히 높이셔서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셨다.
(빌 2:9-11)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이에 대한 확증으로 네 생물과 24장로가 어린 양을 높이 찬양한다.
죽임당한 어린 양, 그러나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으로 등극하신 그리스도께서 두루마리 인봉을 떼시고 그것을 펴시기에 합당하시다.
왜냐하면 오직 그에게만 세상을 심판하시는 권세가 있기 때문이다.
(요 5:26-27) 아버지께서 자기 속에 생명이 있음 같이 아들에게도 생명을 주어 그 속에 있게 하셨고 또 인자됨으로 말미암아 심판하는 권한을 주셨느니라.
어린 양 예수가 그리스도 되심은 전쟁의 승리에서 비롯된 인간적 영웅(Hero)이 아니라 가장 비참하고 낮아진 희생적인 죽음에 근거한다.
그의 죽음은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 마귀를 멸하신 승리였으며, 이로써 죽기를 무서워하여 한 평생 종노릇하는 모든 자들을 해방시키셨다.
(히 2:14-15) 자녀들은 혈과 육에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같은 모양으로 혈과 육을 함께 지니심은 죽음을 통하여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멸하시며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한 평생 매여 종노릇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 주려 하심이니
다시 말하면 죽음에 종노릇하는 자들을 자기 피로 사셔서 하나님께 드리고 그들을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셨다.
누구든지 죽임당하신 어린 양, 곧 그리스도 안에 거하면 생명을 얻고 그 결과 죄와 사망의 세력에서 승리한다.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고 그와 함께 무덤에 장사된 자, 그는 죄의 세력에서 벗어나 새 생명으로 살아간다.
옛 사람이 죽어 죄의 몸이 불구가 되고, 선한 일을 할 때 역사하는 죄의 세력에서 해방되어 오직 썩을 육신이지만 이를 통하여 주님께 영광을 돌리게 된다.
주님 앞에서 육신적 그리고 의지적 담대함은 아무런 쓸모가 없다.
그저 가난한 심령, 상한 심령으로 주님께 나아가 죽임 당하신 어린 양 예수를 힘입어 나아가기를 원한다.
나는 죽고 오직 예수로 살며, 나는 감추어지고 오직 예수로 부요한 자를 주님께서는 생명의 도구로 쓰신다.
그 자리에 하나님의 일곱 영의 역사가 있을 줄 믿는다.
그 역사는 그 무엇이 아닌 생명의 역사이며 이 생명은 아들의 생명으로서 아버지와 아들 되신 예수 그리스도와의 사귐과 교제로 얻어지는 것이다.
이 생명의 실재가 오늘을 승리하게 하는 영생이다.
오늘도 복음을 통하여 주의 말씀에 귀 기울이는 자들에게 생명의 역사가 넘쳐나기를 간절히 원한다.
죽었다가 살아나신 우리 주님께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올려드린다.
* 묵상 후 기도
주님...
답답하고 캄캄한 심령에 복음의 빛을 비추사 생명으로 인도하소서.
나를 붙잡고 있는 악의 세력들은 주님의 보혈의 옷을 덧입혀 주사 정결함으로 물러가게 하시고 오직 주님과만 연합하는 이 시간, 이 자리, 오늘 하루가 되게 하옵소서.
죽임 당하신 어린 양 예수를 나의 주인으로 모십니다.
세상의 시각으로는 비참하고 수치스러울지 모르나 우리 주님께서 나를 부끄러워하지 않으시는데 내가 어찌 날 위하여 지신 그 십자가를 부끄러워할 수 있겠나이까?
내 안에 그런 모습 곧 내 피와 나의 세포에 조금이라도 있다면 그 피를 흘려버리게 하시고 그 살점을 떼어 버리게 하소서.
그리하여 정말 주님을 향한 순수한 사랑으로 주님을 대하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