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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은 속리산 입니다.
속리산은 해발 1,057 천왕봉을 비롯 9개의 봉우리가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일일 등산코스로 한 구역을 다녀오는데 오늘 완주를 해보기로 합니다.
속리산 주변의 밤입니다. 오늘은 음력 16일...보름이 지났지만 달빛이 매우 밝았는데
달님은 어디론가 숨어버렸습니다.
약방이 있습니다. 약방과 약국의 차이를 아시지요~
이른아침의 속리산입구.......... 일찍 서둘러봅니다.
한적한 속리산...
이곳 속리산은 법주사 내부에 국보급 유물과 보물 문화재가 여러개 있습니다.
사자등과 팔상전을 비로하여...법주사의 사진은 별도로 옮겨놓습니다. 입장료 4,000원이네요.
법주사에는 24시간 매표를 합니다. 새벽일찍 동이트기 2시간 전에 입산을 허용합니다.
아직 아무도 없군요. 지금시각이 아침 6시10분...하산까지 엄청남 시간이 걸렸었는데
들머리앞서 미리 안내도를 잘 파악하였지만 다시한번더 자세히 읽어봅니다.
일반적으로 천왕봉코스나 문장대코스를 이용하는데...문장대에서 능선을 지나 천왕봉으로 다녀옵니다.
문장대까지 5,9km 멀군요~ 문장대에서 천왕봉까지 약 4km
가다서다 천천히 가보기로합니다.
한적한 속리산 아침...맑고고운 새소리와 맑은 공기
오늘도 양껏 가슴속 깊이 담아갑니다.
환상적이 물안개가 피어오르네요~
물안개는 청평의 소양강만 하겠습니까 만...
속리산의 분위기는 마치 도봉산과 비슷합니다.
곳곳에 커다란 화강암의 바위들로 이루어져 있고 신기한 형상이여러곳곳에 볼거리를 만들어 놓았습니다.
물론 사람의 손길이 아닙니다.
신기하게 생겼습니다.
목욕소의 전설을 읽어보세요~
스님께서 일찍 산책오셨네요~
이 지점이 세심정 입니다.
이곳에서부터 좌측은 문장대로 우측은 천왕봉으로 가는길목입니다.
자동차가 여기까지...
다리 이름이 이뭣고다리입니다.
이게뭐냐? 라는의미인듯
혹시 아는곳있으신지...
우리동네 산악회표식 3군데 있네요~
얘는 곰바위
얘는 배뿔뚝이
비가오면 대피하여도 되겠습니다.
누군가 바위를 단칼에 짤라놨네요~
잔막걸리 유혹이 ㅋ
주인장님도 안계 계시는지...지금 필요한것은 에너지 물이라는것을...
얘는 코끼리 바위입니다. 제가 지은 이름입니다.ㅎ
얘는 두꺼비 바위라고 지어주고 왔습니다.
진귀한 바위형상들 보느라 금새 문장대까지 온것 같습니다.
문장대 입니다.
멀리 봉우리를 넘어 천왕봉으로 제 1코스입니다.
법주사 탐방지원센터-세심정~문장대~천왕봉~세심정~법주사 탐방지원센터
소요시간은 약8 시간 거리14.5 ㎞ 난이도는 하급으로 분류를 해놨는데 본인의 체력에 따라 다릅니다. 제가보기에는 중급은 될듯
저 멀리 가운데 봉우리가 천왕봉 입니다.
저곳까지 가보기로 합니다. 여기서부터 약 3km 정도 . 문장대까지 올라오면 천왕봉까지 능선은 별로 힘들지 않습니다.
다만 올라오는동안 체력소모에 비하여 체력 조절을 잘 해야합니다.
이 바위는 햄스터 같으네요~
어느듯 문수봉에 왔습니다.
축지법이라도...빠르게 왔네요~
대단하다는 표현밖에 적을게 없습니다.
멀리 바위에 껌딱지 하나 붙어 있는듯
바위 정상에 소나무가 자라고 있네요~
다정하게 꼭 붙어 있습니다
바위틈의 진달래
저 멀리 천왕봉이 손에 잡힐듯 하지만
톰크루즈 주연의 지구종말 영화의 외계인같습니다.
돌계단에 이쁜 꽃들이 ...바라보느라 힘이 생겨납니다.
거북이 한마리가 움직이고 있습니다.
이녀석은 아기돼지 같으네요~
바위틈의 소나무...사진으로 표현 전달이 완벽하지 못하여 아쉽습니다.
입석대 전설
바위위에 거북이 한마리 올라앉아 있네요~
커다란 바위를 갈라놓아 사람들에게 길을 만들어 주었네요
고릴라 바위
저멀리 천왕봉이 보입니다. 이 능선은 백두대간 길입니다.
도룡용 바위
ㅌ
바위위에서 다정스레 나란히 나무들이 자라고 있습니다.
속리산 정상...천왕봉 입니다.
뒤돌아본 속리산 정상부 능선입니다.
세심정에서 올라오면 이 지점에서 만나게 됩니다.
정상찍고 되돌아와서 아래로 하산을 합니다. 가다서다 힘이드네요~ 지금시간이 약 2시경
세심정에서 천왕봉 코스로 올라온 사람들...천왕봉을 갔다가 다시 되돌아와야하는 지점입니다.
지금부터는 계속 내리막 등산로입니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내려와야 합니다. 무릎에 충격을 최대한 줄여야 합니다. ㅠ
신기한 괴목도 만나고
바위위에 자리잡고있는 나무
속리산에는 커다란 석문이 있습니다. 이 동굴처름 생긴 바위 터널을 지나는 길이있네요~
사람과 비교해 봅니다.
동굴이름이 상환석문 입니다.
학소대를 지나고
장엄한 절벽들...사진으로 표현 한계가있어 아쉽습니다.
사진으로본 속리산 여행...본인은 힘든하루입니다. ㅋ
어느새 지루하고 힘든 여정을 마친듯
마지막 도착지까지 안전을 생각합니다.
세심정에 왔네요~
조금은 멀고 힘들었지만 속리산 능선에 봉우리를 모두거쳐 신기한 바위들을 보느라 재미있는 산행이였습니다.
여기서부터 포장된 도로라 입구까지 조금 지루함이 느껴집니다.
속리산 천왕봉 오르기 전에 다녀온 법주사 사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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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자료는 법주사 홈페이지에서 옮겨왔습니다.
법주사의 창건
법주사는 의신 조사가 창건을 하고 진표 율사가 7년 동안 머물면서 중건하였다고 전해져 오나 ‘삼국유사’ 4권 관동풍악발연수석기(關東楓岳鉢淵藪石記)에 보면 진표 율사는 금산사에서 나와 속리산에 들러 길상초가 난 곳을 표해 두고 바로 금강산에 가서 발연수사(鉢淵藪寺)를 창건하고 7년 동안 머물렀다고 합니다. 진표 율사가 그 후 금산사와 부안 부사의방에 가서 머물 때 속리산에 살던 영심(永深), 융종(融宗), 불타(佛陀) 등이 와서 진표 율사에게서 법을 전수 받았습니다. 그 때 진표 율사가 그들에게 "속리산에 가면 내가 길상초가 난 곳에 표시해 둔 곳이 있으니 그 곳에 절을 세우고 이 교법(敎法)에 따라 인간 세상을 구제하고 후세에 유포하여라."하였다고 합니다.
이에 영심 스님 일행은 속리산으로 가서 길상초가 난 곳을 찾아 절을 짓고 길상사라고 칭하고 처음으로 점찰법회를 열었습니다. 금산사를 중건한 진표 스님이 미륵불을 조성하였기 때문에 진표 스님의 법을 받은 영심 스님 등도 마찬가지로 길상초가 난 곳에 절을 세우고 미륵불을 조성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러한 내용에 근거하여 현재의 법주사는 영심 스님에 의해 창건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고려 인조 때까지도 절 이름을 속리사라고 불렀다는 점과 '동문선'에 속리사라는 제목 시가 실려 있는 점으로 미루어 아마도 절 이름이 길상사에서 속리사로, 그리고 다시 법주사로 바뀐 것이 아닌가 생각되지만 지금까지 정확하게 규명되지는 않았습니다.
법주사의 중창
신라 진흥왕 14년(553)에 법주사라 이름 붙여진 이후 법주사는 성덕왕 19년(720)에 중건되었으며 고려에 와서는 태조 1년(918)에 왕사(王師)인 증통 국사(證通國師)가 중건하였습니다. 그리고 문종 때에는 여섯째 왕자인 도생 승통(導生僧統)이 중창에 힘을 기울였다고 합니다. 임진왜란 때에는 충청도 지방의 승병 본거지였던 법주사와 산내 암자가 모두 소실되는 상황을 맞게 되었으나 인조 4년(1626)에 벽암 각성(碧岩覺性)선사가 나와 중창에 힘을 기울였습니다. 벽암 선사는 보은에서 태어나 임진왜란 때 명나라 장군과 함께 해전에서 적을 크게 무찌른 인물이며 그 후 1624년부터 3년 동안 지금의 남한산성을 쌓았다고 합니다.
임진왜란 이후 벽암 선사의 일대 중창에도 불구하고 복구된 건물의 수는 20여 동에 불과했던 것으로 전해집니다.
현존하는 '법주사 사적'이 최초로 쓰인 것은 1630년인데, 여기에 임진왜란 이전 조선 초기에 있었던 건물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건물 60여 동, 석조물 10여 점, 암자 70여 개소가 기록되어 웅장한 규모였음을 증명해 줍니다. 그 가운데 예불용 전각 등 중요 건물만 발췌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대웅대광명전 (2층 28칸). 산호보광명전 (2층 35칸), 팔상오층전 (36칸), 비로전 (17칸), 약사전, 극락전 (6칸), 원통전 (6칸), 지장전, 연경전, 영산전, 도솔전, 응진전, 대양문 (7칸), 천왕문, 조계문, 해탈문, 동행랑, 서행랑
고려시대에 들어서 법주사에는 뛰어난 고승대덕들이 주석하면서 여러 차례 중창이 거듭되었습니다. 먼저 문종(1046~1083)의 다섯 째 왕자였던 도생 승통(導生僧統)이 절의 주지를 지냈다. 문종의 넷째, 다섯째 아들이었던 대각국사 의천과 혜덕왕사 소현은 도생 스님의 형이다. 고려시대에 불교는 국교라고 할 만큼 국광과 백성들의 절대적 믿음의 대상이었습니다. 왕실에서는 왕자가 출가할 경우 이를 대단한 영광으로 받아 들였고, 특히 문종은 세 아들을 출가시킬 만큼 신심이 돈독하였습니다. 도생 스님의 행장은 자세히 전하지 않으나 투철한 법상종 승려였던 해덕 왕사를 은사로 출가하였던 사실은 스님이 곧 법상종 승려임을 말해 주는 것입니다. 나아가 스님이 법주사의 주지를 지냈다는 것은 절이 신라 이래의 법상종 전통을 계속해서 이어 나갔다는 사실로도 이해 할 수 있습니다.
고려시대 절의 역사를 알 수 있는 자료는 인종 때(1122~1146) 김부식(金富軾)이 편찬한 [속리사점찰법회소(俗離寺占찰法會疏)], 1342년(충혜왕3)의 [고려국속리산법주사 자정국존비명(高麗國俗離山法住寺慈淨國尊碑銘)], 그리고 도생승통비(導生僧統碑) 등입니다. 이를 통해 먼저 인종 때까지는 법주사를 산 이름과 같은 속리사로 불렀고, 유학자 김부식이 왕명으로 점찰법회의 소문을 지을 만큼 사격이 높았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원종 때(1259∼1274)는 자정 미수(慈淨彌授, 1240∼1327) 대사가 절에 주석하였습니다. 스님은 고려 중기의 유명한 법상종 승려였습니다. 일찍이 13세에 출가한 이래 법주사를 비롯해서 장의사(莊義寺)국령사(國寧寺)대민천사(大旻天寺)동화사 등지에서 수행하였습니다. 법주사에 있을 때는 왕명으로 각종의 경전과 장소(章疏)를 92권이나 찬술하였습니다. 1281년(충렬왕 7) 왕이 절에 행차하여 산호전(珊瑚殿)에 참배하였고, 뒤이어 충숙왕도 절을 다녀갔습니다. 1363년(공민왕 12)에는 왕이 절에 들렀다가 양산 통도사(通度寺)에 사신을 보내 부처님의 사리 1과를 법주사에 봉안하도록 하였습니다. 이 사리탑은 지금 능인전 뒤쪽에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조선시대 들어서도 절의 법등은 계속 이어졌습니다. 흔히 조선시대가 숭유억불의 시대라 하지만 유교는 치국(治國)의 원리와 개인적 수양의 방편일 따름이고, 사람들의 불교신앙은 사실 상 그대로 이어졌습니다. 왕실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조선 초 세조 때(1455∼1468)는 신미(信眉) 대사가 머물며 절을 크게 중창하였습니다. 세조의 스승으로서 큰 존경을 받았던 신미 스님은 이보다 앞선 1449년(세종 31) 12월에 속리산 내의 복천사(福泉寺)를 중창하기도 하였습니다. 이 사실을 기록한 [복천사중수보권문]이 전합니다.
조선 중기 절은 60여 동의 전각과 70여 개의 암자를 거느린 대찰이었습니다. 그러나 1592년(선조 25)의 임진왜란으로 대부분 전각이 불에 타 없어지는 비운을 겪었습니다. 부분적으로 중수를 계속했으나 정유재란을 맞아 또다시 절이 전부 불타버렸다. 전쟁 뒤에는 1605년(선조 38)부터 1626년(인조 4)에 걸쳐 사명(四溟) 대사 유정(惟政) 스님이 팔상전을 중건했습니다.
1624년 다시 중수가 시작되어 이듬해 불사를 마치고 [법주사사적기]를 편찬하였습니다. 그 뒤 벽암 각성(碧巖覺性, 1575∼1660) 스님이 황폐화된 절을 중창하였습니다. 벽암 스님은 임진왜란 때 승병을 일으켜 나라를 구하였던 서산(西山) 대사에 버금가는 분입니다. 병자호란을 맞아 구국의 일념으로 의승장이 되어 혁혁한 공을 세웠던 것입니다. 1851년(철종 2) 3월 영의정 권돈인(權敦仁)이 힘을 기울여 국가적 규모의 중수가 이루어졌습니다. 1872년(고종 9)에는 지금의 청동대불 자리에 있었던 2층의 용화보전이 헐렸습니다.
1939년 미륵불상 조성이 시작되었습니다. 주지 장석상(張石箱) 스님이 발원하고 전라북도 태인에 살던 김수곤(金水坤) 거사가 시주하여 80척의 미륵상 조성이 시작되었으나 조각을 맡았던 김복진(金復鎭)이 요절하면서 중단되고 말았습니다. 이후 박정희 대통령의 희사로 1963년 3월에 재착수하여 1964년에 완공하였습니다. 현대에 들어와서는 1967년 금오 태전(金烏太田, 1896∼1968) 스님이 기울고 퇴락한 전각을 중수하였습니다. 당시 금오 스님은 일흔이 넘은 나이였지만 정열적으로 가람을 일궈나가면서 법주사의 선풍을 진작시켰습니다. 1974년 정부의 지원으로 가람의 전각 대부분을 보수하고 복원하였습니다.
1975년 현대불교의 산증인이었던 금오 스님의 부도와 비를 세웠습니다. 1976년 주지 탄성(呑星) 스님이 대웅보전을 보수하고, 범종각을 새로 지었습니다. 1990년 주지 월탄(月誕) 스님의 원력으로 청동미륵상을 대대적으로 중수하였으며, 그 좌대의 지하에 성보전시관인 용화전을 마련하였습니다. 1997년 선원과 후원 불사가 완료되어 현대적 시설을 잘 갖춘 환경에서 정진하는 대중을 외호하고 있으며, 2002년 청동미륵대불을 과거 진표율사계서 금동미륵대불을 모셨다는 기록에 의거 개금불사를 함으로써 본래의 모습을 복원하게 됩니다. 2005년 현재 4년간의 해체, 복원 불사를 통해 대웅보전이 예전의 위용을 되찾으며 속리산을 찾는 이들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잘봐주셔 감사드립니다.
첫댓글 _()_
나무아미타불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_()_
속리산 일주산행 대단하심니다 저도 한번가보고 싶은코스였는데 시간이 얼마쯤 소요 되나요 ?
아울러 법주사전경 잘 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 ()
안녕하세요~나루터(쉼)님...문장대와 천왕봉까지 가다쉬다 천천히 저는 하급수준이라 10시간정도 소요하였습니다.
일찍 입산하시면 충분히 다녀오실 수 있습니다. 6시~오후4시경 하산 (법주사에서 30분정도 소요시간 포함)
문장대까지 조금 힘을내시고 문장대에서 천왕봉까지는 그다지 힘들지 않습니다. 다만 하산길이 조금 지루하게 느껴집니다.
좋은 일정 잡으시고 안전하고 즐거운 산행 기원드립니다. 감사합니다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