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남자를 양자 삼은 독일 시어머니 (1)
수냐/ 이선자
1975 년 오월 어느 봄날이었다.
날로 날로 더 무거워져 가는, 만삭이 되어가는 몸을 이끌고,
산부인과에서 근무하든 중에 윗 전에서 호출이 왔다.
간호부장님이 나 보고, 빨리 5층 사무실로 와서 잠깐 통역을 해 달라는 전화라고,
동료가 알려줬다.
그 당시에 자주 있는 일들, 즉 광부들이 3년 간의 고용계약이 끝나면,
더러는 이곳에 남고 싶어서, 여러 지방의 병원들을 돌며, 자격증이 없지만
남자보조간호사로 취업이 가능한지를? 발품을 팔며 찾아다니던 시절이었다.
그전에도 자주 그런 상황을 겪은 터라, 이번에는 또 몇 분이나 왔나? 생각하며,
‘Oberin‘(간호총책임자) 방을 노크했다.
까만 머리와 깡마른 체구의 한국 남자분 셋이 앉았다가 나를 보고 반가워하며,
“이 병원에 직장을 구하려 왔는데, 서로가 말을 잘 알아듣지 못해 난감하네요“ 했다.
광부로 온 분들은 지하탄광에서 3년 동안 혼자서만 석탄 캐는 일만 했을 뿐,
언어를 배우고 익힐 시간이 없어서, 간단한 인사말 외엔 독일사람들과 대화하는 것도
그 당시에는 대부분 불가능했었다.
“내가 이 사람들에게 무엇을 물어도 확실한 대답 보다는 무조건 ‘야,야‘(네,네) 라고 해서,
아주 답답해서 그러니, 어디 통역 한번해 봐요!“ 라고 오버린(Oberin)이 말했다.
내가 한국말로 “이 병원에 취직하시려고요?“ 하며 그들을 쳐다봤다.
“네, 임기가 끝나서, 다시 새 직장을 구하지 못하면 노동허가가 나오지 않기 때문에,
강제귀국 조치를 당할 수도 있답니다. 오늘도 이곳저곳 병원을 전전하는 중인데,
가는 곳 마다 독일어 실력 때문에 퇴짜를 맞는답니다.“ 라고 한사람이 운을 떼자,
또 다른 사람은,
“혹시나 이곳 간호학교에 1년 짜리 간호조무사 과정도 있는지 알아봐 주세요! 학교에
입학하는 조건으로 일단 노동허가를 받을 수만 있다면요.“ 라며 다급한 심정을 말했다.
그 당시엔 병원마다 남자간호사를 절실히 필요로하는 곳이 많아서 웬만하면 다 취직이
되는 시절이기도 했다.
그런데 환자들과의 언어의 소통은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지금 당장은 채용할 수 없으나,
만약 이 다음에 독일어를 잘 할 수 있으면 그때 다시오라고 병원측이 정중하게 거절하는바람에
이 말을 통역하는 내 마음도 편하지 않았다.
“이곳 근무가 3부 교대라, 전 13시면 끝나요, 혹시 오늘 시간이 있으시면, 나랑 우리집에 같이 가실 수 있나요?
일단 우리집에 가서 저의 남편과 한번 상의하도록 합시다.
저의 남편도 이 방면에 발이 좀 넓은 사람이니까 병원 말고 양로원도 알아보면 좋을 것 같네요.
그리고 맨 아랫층에 가면 병원구내식당이 있는데, 저렴하게 누구나 식사할 수도 있으니,
그곳에서 식사하시며 기다리시면 제가 근무 끝내고 그리로 가겠습니다.“ 라고 말했다.
그 전에도 취직하러 온 한인들이 있었기 때문에 놀랄 일은 아니지만, 그 중 한사람은
자신의 아내가 본(Bonn)대학병원 안과에 근무하는데 임신중이라고 했다.
만약 이번에 노동허가를 받지 못하면 아내를 두고 혼자 고국으로 돌아가야 한다며,
안타까운 사연을 말했기에, 어떤일이 있어도 꼭 도와줘야 겠다는 생각이 불같이 일었다.
근무가 끝나고, 낯선 한국 남자들을 셋이나 데리고 집에 갔는데도, ‘도움신드롬'이 있는
남편은 우리가 도우는게 당연하다고 했다. 곧장 여러군데 전화를 걸더니,
면접을 허용한 병원이 3 군데나 나왔다고 알려주며, 다음 주로 시간을 미리 예약했으니,
나 더러 통역으로 따라가라고 했다.
다음 주 부터는 나도 출산예정 6 주 전이라 임산부들에게 주어지는 특별휴가가 시작되는
주간이기도 해서, 다행히 시간을 낼 수 있어서 좋다고 했다.
약속된 그 다음 주, 면접에 따라가서 통역을 했는데, 가는 곳마다 언어실력이 모자라서
채용할 수가 없노라고 병원 세군데 다 툇자를 맞았다.
Saffig라는 동네에 있는 캐톨릭계통의 정신병원에서는,
“환자가 목 마르다고 하면 당신네들은 그말을 알아들 수 있나요?“ 라는 등,
여러가지 말로 테스트를 하기도 했다.
또 나를 보고, “당신이라면 당장 내일 부터 여기 일하러 오라고 할 것입니다.“ 라고 해서,
“직장을 구하는 것은 내가 아니고 이분들입니다. 나는 지금 ‘노이비드‘시립병원에 근무하는
사람인데, 왜, 내가 여기까지 옵니까.“ 라고 큰소리로 말했다.
모두들 맥이 빠진 모습을 하고 집에 오니, 아직 한군데 알아볼 곳이 더 있다고 남편이 말했다.
부르그브롤(Burgbrol)에 개인이 운영하는 양노원이 있는데, 그 주인을 잘 아니까 한번
물어 보겠다고 했다.
문제는 세 사람 다는 안될 것이고, 한 사람만 가능할 것이라는 말에, 두 젊은이는 아직
미혼이고, 결혼한 길훈씨 만 아내가 임신중이어서 더 다급한 실정이라며,
길훈씨를 부탁한다고 했다.
(다음편에 계속)
요즘 이곳에도 동네마다 유채꽃이 만발하여 눈이 부실 정도로 노오랗습니다.
지난 주, 수난의 금요일 날 오후, 동생부부와 함께 유채밭을 거닐며, 산보길에서 찍은 사진들입니다.
첫댓글 다음 편이 궁금해 지내요!
유채꽃들판 과 풍경이 아름답기만 하네요.
저도 다음편이 궁금합니다~!!
독일도 완연한 봄이 왔네요
늘
좋은 날 되시기바랍니다~!!
노란 유채꽃과 초록의 밀(보리)밭이
어우러진 풍경이 너무나 아름답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