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분이 하신 일은 모두 훌륭하다.”
<연중 제5주간 금요일 강론 >
(2026. 2. 13. 금)(마르 7,31-37)
“예수님께서 다시 티로 지역을 떠나 시돈을 거쳐,
데카폴리스 지역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갈릴래아 호수로
돌아오셨다. 그러자 사람들이 귀먹고 말 더듬는 이를
예수님께 데리고 와서, 그에게 손을 얹어 주십사고
청하였다. 예수님께서는 그를 군중에게서 따로 데리고
나가셔서, 당신 손가락을 그의 두 귀에 넣으셨다가
침을 발라 그의 혀에 손을 대셨다. 그러고 나서 하늘을
우러러 한숨을 내쉬신 다음, 그에게 ‘에파타!’ 곧 ‘열려라!’
하고 말씀하셨다. 그러자 곧바로 그의 귀가 열리고
묶인 혀가 풀려서 말을 제대로 하게 되었다. 예수님께서는
이 일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그들에게 분부하셨다.
그러나 그렇게 분부하실수록 그들은 더욱더 널리 알렸다.
사람들은 더할 나위 없이 놀라서 말하였다. ‘저분이 하신
일은 모두 훌륭하다. 귀먹은 이들은 듣게 하시고
말 못하는 이들은 말하게 하시는구나.’(마르 7,31-37)”
1) 이 이야기는, “예수님은 고장 난 세상을 고쳐서,
창조 때의 좋았던 상태로 복구하시는 분”이라는 증언입니다.
“저분이 하신 일은 모두 훌륭하다.”를
원문대로 번역하면, “저분이 모든 것을 좋게 하셨다.”인데,
이 말은 창세기 1장에 반복해서 나오는
“하느님께서 보시니 좋았다.”에서 온 말입니다.
그래서 이 말은, “예수님은 새로운 창조자” 라는 뜻이기도
하고, “예수님은 이 세상을, 천지창조 때의 상태로
원상복구하시는 분”이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귀먹은 이들은 듣게 하시고 말 못하는 이들은 말하게
하시는구나.”는, 이사야서의 예언을 인용한 말입니다.
“그때에 눈먼 이들은 눈이 열리고, 귀먹은 이들은 귀가
열리리라. 그때에 다리 저는 이는 사슴처럼 뛰고, 말 못하는
이의 혀는 환성을 터뜨리리라. 광야에서는 물이 터져 나오고,
사막에서는 냇물이 흐르리라(이사 35,5-6).”
이사야서의 예언을 예수님께서 하신 일에 적용한 것은,
‘예수님은 메시아’ 라고 증언한 것과 같습니다.
2) 요한복음 9장에 있는, ‘예수님과 제자들의 대화’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길을 가시다가 태어나면서부터 눈먼 사람을
보셨다. 제자들이 예수님께 물었다.
‘스승님, 누가 죄를 지었기에 저이가 눈먼 사람으로
태어났습니까? 저 사람입니까, 그의 부모입니까?’
예수님께서 대답하셨다. ‘저 사람이 죄를 지은 것도 아니고
그 부모가 죄를 지은 것도 아니다. 하느님의 일이
저 사람에게서 드러나려고 그리된 것이다.’(요한 9,1-3)”
여기서 예수님의 말씀은, 고통과 불행의 원인에 대한 말씀은
아니고, ‘하느님의 섭리와 자비’에 대한 말씀입니다.
“하느님의 일이 저 사람에게서 드러나려고 그리된 것이다.”
라는 말씀은, 하느님께서 당신의 일을 드러내려고 그 사람을
눈멀게 하셨다는 뜻이 아니고, 고통과 불행에서도 하느님의
일이(하느님의 섭리와 자비가) 드러난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어떤 사람의 고통과 불행을
그 사람 자신의 죄 때문이라고
단순하게 생각하지 말라는 가르침입니다.
물론 자기 죄 때문에 불행해지는 경우가 있긴 하지만,
정말로 억울하게 고통과 불행을 겪는 경우가 많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말합니다.
“한 사람을 통하여 죄가 세상에 들어왔고 죄를 통하여
죽음이 들어왔듯이, 또한 이렇게 모두 죄를 지었으므로
모든 사람에게 죽음이 미치게 되었습니다(로마 5,12).”
“그 한 사람의 범죄로 그 한 사람을 통하여
죽음이 지배하게 되었지만, 은총과 의로움의 선물을
충만히 받은 이들은 예수 그리스도 한 분을 통하여
생명을 누리며 지배할 것입니다(로마 5,17).”
<아담과 하와의 원죄 때문에 이 세상이 고장 나고,
이 세상에 고통과 불행이 생겼다는 설명을 들으면,
누구든지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 것입니다.
사실 ‘원죄론’은 인간 세상 현실의 원인을 신학적으로 설명한
것일 뿐이고, 모두가 납득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어떻든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이 세상은 목적지가 아니라
경유지일 뿐이며, 우리 인생도 지나가는 과정일 뿐이라는 것,
그리고 예수님께서 우리를 ‘영원한 목적지’로 데리고 가려고
오셨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이 말은 신학이 아니라 신앙입니다.>
3) “귀가 열리고”는, “하느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게
되었고”로, “묶인 혀가 풀려서 말을 제대로 하게 되었다.”는,
“하느님의 말씀을 제대로 전할 수 있게 되었다.”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이 말은 ‘신체장애’에 관한 말이 아니라,
‘말씀이신 분의 강생’에 관한 말이 됩니다.
어쩌다가 인간 세상이 이렇게 고장 났는지,
우리는 잘 모릅니다.
<원죄론은 아직도 여전히 이해하기 어려운 교리입니다.>
그런데 원인을 알아낸다고 해서
인간의 힘만으로 고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습니다.
‘메시아’로 오신 분만이 고장 난 세상과 고장 난 인생을
고쳐 주실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바로 그 메시아라는 것이 우리의 믿음입니다.
안식일에 눈먼 사람을 고치는 일을 했다고 시비를 거는
바리사이들에게 예수님께서는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너희가 눈먼 사람이었으면 오히려 죄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너희가 ‘우리는 잘 본다.’ 하고 있으니,
너희 죄는 그대로 남아 있다(요한 9,41).”
자신이 하느님 앞에서 아무것도 아닌 존재라는 것을
제대로 깨닫고, 인정하고, 고백하면서
자비를 간청하는 사람만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 송영진 신부님 -
첫댓글 하느님께서 당신의 일을 드러내려고
그 사람을 눈멀게 하셨다는 뜻이 아니고,
고통과 불행에서도 하느님의 일이
(하느님의 섭리와 자비가) 드러난다는 뜻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