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제주 추억
필자는 한전재직시절(1992~3) 20개월간 한전제주지사에서 근무한 제주의 추억이 있습니다.
한전은 입사해서 일정년도가 지나면 초급간부(당시는 ‘과장’, 현재는 ‘차장’으로 부름)로 승진 하는 아주 공정한 시험을 통하여 승진이 되고, 그 다음단계의 승진부터는 누구의 손금이 먼저 달아 없어지느냐에 따라 승진이 빨리 되기도 하고 늦어지기도 하며, 나와 같이 365일 손금이 또렷한 사람은 과장으로 정년을 마치며, 과장이 된 후 12년이 되도록 차 상위 직으로 승진을 못 하면 “순환근무”라는 제도가 있어 무능한 죗값으로 자신의 연고지(필자는 서울)를 떠나 타 지방으로 전근을 가야 합니다.
그래서 기왕 타지방으로 귀양살이를 갈 것이라면 좋아하는 바다낚시나 돈 안 들이고 실컷 해 보자는 욕심으로 제주도를 지원해서 낯 설고 물 선 제주 귀양살이를 하였습니다.
1. %&^%&% !
제주에 가서 얼마 안 되는 토요일 오후 낚시가방을 들러 메고 사택에서 5분 거리에 있는 낚시터로 허겁지겁 달려가는데 자그마한 움막집 앞 좁은 마당에서 웬 할머니 한 분이 노기 띤 눈에 삿대질을 해대며 필자를 향하여 무슨 욕을 격하게 해대고 있었다.
영문도 모르고 욕을 먹고 낚시터에 도착해서 낚싯대를 펴니 먼저와 있던 동년배또래인 사람이 “육지에서 오셨습니까?” 하고 물어서 그렇다고 했더니 “저 할머니가 당신보고 뭐라 했는지 아십니까?”하고 또 물어서 내가 “영어보다도 더 어려운 제주도 원토사투리를 제가 어찌 알아 듣겠습니까?, 제가 잘 못 한 것도 없는 데 왜 저를 보고 화를 내시는지 모르겠습니다.”하고 대답을 했더니 그 t사람이 하는 말이 저 할머님이 당신보고 한 말은 “대갈빼기 피도 안 마른 새파란 녀석이 남의 늙은 이것 공짜로 보려고 든다.”는 말씀이었고,저 작은 움막이 해녀들이 물질을 하고 와서 옷을 갈아입는 탈의실이라 남성들은 절대로 저 앞길로 다니면 안 된다고 친절하게 가르쳐 주었다.
아차- 내가 큰 실수를 했구나!
욕 얻어먹을 짓을 했구나!
하지만 욕만 실컷 얻어먹었지 공짜로 보지는 못 했습니다.
2. 기상천외한 제주 게 잡이
필자가 어려서 할머니 따라 고향(충남 당진 송악)의 한진 갯벌에 가서 게를 잡을 때는 갯벌 게 구멍에 팔뚝을 쑤셔 밖아 손가락을 무는 게를 손으로 움켜잡아 올렸습니다.
하루는 제주해변 검은 자갈밭에서 낚시를 하는데 영 입질을 하지 않아 하염없이 서울 쪽 하늘만 바라보면서 마누라와 애들 생각에 잠겨있는데 웬 더벅머리가 큰 깡통을 하나 들고 내 옆으로 다가 오더니 자갈밭에 직경이 2미터 정도 되는 원을 대충 그리고 그 원 안의 검은 돌멩이를 돌아가면서 바깥쪽으로 계속 집어 던지고 있었다.
내가 무얼 하는 것이냐고 물으니 더벅머리가 게를 잡는다고 대답을 하였다.
한참을 바라보고 있으려니 개 잡는 방법이 곧 이해가 되었다.
원 안의 돌을 계속 바깥으로 집어 던져 원이 점점 줄어들며 게들이 점점 안쪽으로 모여들었다.
낚시도 안 되고 나도 돌 집어 던지는 것을 거들어 주었다.
원이 줄어들다 마지막으로 큰 돌 몇 개 남자 게들이 몽땅 그 돌에 올라타고 게 덩어리를 이루고 있었다.
더벅머리가 양손으로 돌을 깡통위로 가져가서 손으로 쓸어내리니 게들이 몽땅 깡통 속으로 떨어졌다.
직경 2미터의 원 안에 있던 게들은 그야 말로 100%, 일망타진이었다.
제주해변은 제주도라는 하나의 큰 바위덩어리 위에 아주 일부에는 모래사장(함덕해수욕장 등)이 형성되어 있고 나머지는 검은 절벽이나 자갈밭을 이루고 있습니다.
육지의 갯벌 게보다 제주 돌 틈의 게는 훨씬 작고, 육지 게가 옅은 회색 일색인데 반하여 제주 게는 검은 색 바탕에 붉고 노란 점이 듬성듬성 찍혀있습니다. 좁은 돌 틈을 비집고 살려니 몸집이 작고 색상도 갯벌 자갈 색깔과 비슷하게 진화에 진화를 거듭하여 오늘의 게가 되었을 것입니다.
아- 자연의 오묘함이라니!
3. 고달픈 삶의 신음소리
갯바위나 자갈밭에서 바닷물에 낚싯대를 드리우고 있으면 어떤 때는 그 앞에서 해녀 몇 분이 자맥질을 하며 물질을 할 때가 있다.
그런데 물질을 하던 해녀가 물 위로 올라오는 순간 “휙- 휙-” 휘파람을 불어대었습니다.
그래서 속으로 물 위로 올라오면 휘파람을 불어 해녀 상호간에 저렇게 연락을 주고받는구나! 하고 생각하며 다음날 회사에 나가 그 얘기를 했더니 제주가 고향인 직원이 깔깔대며 그게 신호를 하는 휘파람 소리가 아니라 숨소리하고 했다.
그러면서 덧붙이는 설명이 2~3분간 숨을 쉬지 않고 물질을 하고 물위로 올라와서 숨을 쉬면 한 참 동안 숨 쉬는 소리가 그런 휘파람 소리 같은 소리가 난다고 하였다.
그것은 숨소리도 휘파람 소리도 아닌, 고달픈 삶이 자연스럽게 토해내는 신음소리였습니다.
4. 비바리
제주직원들과 얘기를 나누다 혹시 “비바리”라는 호칭이 여성을 얕잡아 보거나 깔보는 호칭이 아니냐고 물었더니, 제주직원 모두가 펄쩍 뛰며 육지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더러 있는 것 같은데, 제주에서 여성을 “비바리”라고 부르는 것은 절대로 욕이나 얕잡아 보는 그런 호칭이 아닌 아주 정감어린 부름이고, 여성은 나이에 관계없이 비바리라고 불러도 된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제주에서 가장 심한 욕은 바로 “몽골새끼?”라고 일러주었다.
고려시대 고려가 원나라의 침략을 받다 강화도로 왕실이 피난 겸 천도를 하여 43년인가를 버텼고, 더 이상은 버틸 수가 없어 왕실은 원나라의 부마국이 되는 뒷 협상을 하여 개경으로 돌아갔고 원에 항복하는 것을 마다한 삼별초군은 끝까지 항쟁할 것을 고집하며 진도로 쫓겨 가서 대몽항쟁을 하다 다시 제주도로 건너가서 항쟁을 하다 끝내는 여몽연합군에 제주가 함락되고 삼별초군은 모두다 항복을 하지 않고 옥쇄를 하였다.
우리의 3.1만세혁명, 만주벌판의 처절했던 독립투쟁, 4,19혁명과 광주민주화 운동 등의 효시가 삼별초 항쟁은 아닌지?
그러니 제주를 평정한 몽골군이 제주도민에 대한 박해가 얼마나 심했겠으며, 제주여성들을 얼마나 겁탈을 하였겠나?
그 역사적 아픈 앙금과 흔적이 남아 지금도 제주에서는 ‘몽골새끼’가 가장 심한 욕으로 전해진다는 것이다.
5. 잡는 놈 따로, 먹는 놈 따로
제주는 7월말부터 한치 낚시가 시작된다.
한치는 비교적 깊은 곳에서 몰려있어 바닷가의 수심이 얕은 돌밭에서는 낚시가 잘 되지를 않고 수심이 깊은 절벽 같은데서 낚시를 해야 한치 얼굴이라도 볼 수가 있다.
바닷가에서 그런 조건을 갖춘 데가 바로 한전의 사택 옆에 있는 북제주화력발전소 구내 연료를 싣고 온 선박을 대는 부두(‘물양장’이라고 불렀음)이다.
그러니 물양장은 일반인들은 출입이 안 되어 침만 삼킬 뿐이고, 한전직원이나 힘 있는 기관(경찰, 당시 안기부 등)사람들의 단골 낚시터이다.
저녁을 먹고 사택에서 나와 같이 객지 홀아비 생활을 하는 직원 몇이 소주병과 초간장통을 차고 물양장에서 한치낚시를 하며 홀아비시름을 달랜다.
헌대 낚시도구를 갖고 있는 낚시꾼은 나 한사람뿐이고 다른 사람들은 바람잡이다.
나는 열심히 건져 올리면 한치는 그 순간에 누구의 배로 들어갔는지 눈 깜짝 할 사이에 사라진다.
나는 열심히 건져 올리고, 바람잡이들은 열심히 입속에 집어넣고
글을 웬만큼 표현하는 나도 갓 잡아 올린 한치맛을 고대로 표현할 수 없다.
횟집에서 냉동한치나 수족관에서 건져 올린 눈동자가 허옇게 풀린 한치 맛하고는 하늘과 땅 차이다.
모든 생선회도 그렇지만 한치는 잡아 올린 그 자리에서 그 바닷물에 헹구어 살아있는 살을 먹을 때가 최고의 맛을 낸다.
둘이 먹다 하나가 죽어도 모를 정도가 아니라, 내가 먹다 내가 죽어도 모를 정도로 맛이 있다.
<아- 아름다운 제주>
한라산 자락에 걸린 구름 한 조각
발 뿌리에 차이는 돌멩이 하나
돌 틈에서 뾰족이 내민 이름 모를 풀 한 포기
귓가를 스치는 스산한 바람소리
코끝에 와 닺는 비릿한 바다-ㅅ 내음
그 모두가 아름답다.
제주에는 아름답지 않은 것이라고는 없다.
첫댓글 제주 이야기를
구체적으로 재미있게
꾸며 주셨네요
제주에는
저도 지인께서
살고는 계시지만
왠만해서는
선듯 찾아갈 거리가
아니되니
안타까운일 입니다
잘 읽고 갑니다
꺽은붓님
감사합니다.
제주 다고싶다.
장 읽고 갑니다.
행복한 저녁 되십시오.
감사합니다.
오늘 저녁 쐬주 한 병 까고 잘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