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성으로 휴가 오세요
이정아
여름이 무르익었다. 휴가철이 시작되었다. 이른 방학을 한 한국의 조카는 7월 첫날 이곳에 왔다. 몸이 불편한 내가 어떻게 접대할까 걱정했는데, 아무 염려 없도록 한국에서 이미 시간표를 짜 가지고 왔다.
조카는 인터넷으로 류현진이 선발로 나오는 날의 LA다저스 티켓을 미리 구입해왔다. 10박11일의 그랜드캐년 트레킹도 한국에서 돈을 다 치르고 스케줄을 잡아왔다. 스테이플스 센터에서 8월에 공연하는 저스틴 팀버레이크의 콘서트 티켓도 온라인으로 예매해서 왔다. IT 강국의 국민답게 말이다. 사이 사이의 폴 게티 뮤지엄과 파머스 마켓, 그로브몰 쇼핑에 천문대 구경, 할리우드 관광까지도 인터넷을 검색해 깨알같이 계획을 세웠다. 차편은 대중교통을 이용할 것이라고 선언한다.
한국의 다른 대학생들은 어떤지 모르겠으나 엽렵한 조카 덕에 수월하게 손님을 치르고 있다. 아침도 알아서 냉장고를 뒤져 먹고 나가니 이렇게 편한 손님 치르기는 처음이다. 우리 집에서는 잠만 겨우 잘 뿐이어서 오히려 내가 서운할 지경이다. 샌프란시스코와 라스베이거스도 메가버스를 이용해서 다녀왔다. 이곳에 오랫동안 살면서 대중교통을 한 번도 이용해 보지 않은 내가 오히려 물어본다. 차비는 얼마니? 차는 시원하니?
지난 주엔 대학원생과 학부생을 이끌고 온 사촌동생이 집을 방문했다. 실리콘밸리를 견학하러 왔다가 LA에 잠시 들렀단다. 지도교수 자격으로 왔으나 가이드 역할을 하는 듯 보였다. 중형버스를 운전하며 학생들을 태우고 식사장소로 이동을 하고 시내의 이곳 저곳을 안내한다. 학생들은 비싼 가이드를 쓰는 셈이다. 여대를 다니는 소극적인 학생들이라 보호자가 필요하다나?
그런데 조카와, 사촌동생이 인솔해온 학생들은 같은 대학의 학생들이다. 가이드 없이 용감하게 혼자 다니는 조카가 더 대견해 보인다. 독립적인 조카는, 혼자 궁리해서 다니는 것이 시행착오가 있을지 몰라도 더 많이 배울 수 있다며 어른스럽게 말한다. 사촌동생 말이 여대에서는 열 명 중 한 명 있을까 말까한 적극적인 캐릭터라며 조카를 기특해한다.
'호랑이보다 무서운 여름손님'이라는 옛말도 있고 '물고기와 여름 손님은 3일이면 냄새 난다'는 서양 속담도 있다. 더위에 손님까지 있으면 불편하다는 말이리라. 그런 불청객 노릇을 병치레를 하면서 오랫동안 했다. 한국에서 2년여 투병생활을 하면서 친정 동생들과 친지들에게 민폐의 아이콘이었다. 그 빚을 조금이라도 갚으려면 여름뿐 아니라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을 개방하여 손님을 맞아도 부족할 것이다.
"언제든지 시간이 나면 나성으로 오세요. 누추하나 연중무휴 개방합니다. 봄이면 살구꽃이 피고 여름엔 무화과가 열리고 가을엔 감을 딸 수 있는 곳. 겨울엔 어느 곳보다 따뜻하답니다. 우리 집으로 휴가 오세요."
나성에서 띄우는 나의 편지이다. 손님을 맞는다는 건 내가 살아있다는 증거이다. 즐거운 일이다.
미주중앙일보/이 아침에/8월 9일 2014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