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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catumahārājasuttaṃ (AN 3.37) 사대천왕 경1(A3:36) Catumahārāja-sutta
♦ 37. “aṭṭhamiyaṃ, bhikkhave, pakkhassa catunnaṃ mahārājānaṃ amaccā pārisajjā
imaṃ lokaṃ anuvicaranti —
‘kacci bahū manussā manussesu matteyyā petteyyā sāmaññā brahmaññā
kule jeṭṭhāpacāyino uposathaṃ upavasanti paṭijāgaronti puññāni karontī’ti.
1. “비구들이여, 상현과 하현의 8일에 사대천왕395)의 신하들이 이 세상을 둘러본다.
그것은 인간 세상에 많은 사람들이 자기 어머니와 아버지와 사문과 바라문들을 존경하는지,
가족 중에 연장자들을 공경하는지, 포살을 실천하는지, 해야 할 일에 전념하는지,396)
덕을 쌓는지를 보기 위해서이다.
395) '사대천왕'으로 옮긴 원어는 cattaro mahārājano(줄여서 Catunahārāja로도 나타남)로 직역하면 네 명의 대왕이다. 사대천왕은 사대왕천(Cātumahārājikā)을 관장하는 네 명의 왕들이다. 사대왕천은 문자적인 뜻 그대로 네 가지 영역으로 구분된다. 이 넷은 동서남북의 네 방위와 일치한다.
동쪽의 천왕은 다따랏타(Dhataraṭṭha)인데 천상의 음악가들인 간답바(gandabba, 건달바라 한역되었음)들을 통치하고, 남쪽의 천왕은 위룰하까(Virūḷhaka)인데 숲이나 산이나 숨겨진 보물을 관리하는 꿈반다(kumbhaṇḍa)들을 통치하고, 서쪽의 위루빡카(Virūpakkha) 천왕은 용들을 통치하며, 북쪽의 웻사와나(Vessavaṇa) 천왕은 약카(yakkha, 야차)들을 통치한다고 한다. 여기에 대해서는 『디가 니까야』 제3권 「아따나띠야 경」(D32) §4 이하를 참조할 것.
396) 원문은 paṭijāgaronti인데 복주서에서는 paṭi paṭi jāgaronti(매사에 깨어있다)로 분석한 뒤 “반드시 해야 하는 일(kātabba-kicca)에 전념하기 때문에(pasutattā) 깨어있다고 하고 자신의 이익과 남의 이익을 놓아버렸기 때문에 잠들었다.(supati)고 한다.”(AAȚ.ii.108)고 설명하고 있다.
cātuddasiṃ, bhikkhave, pakkhassa catunnaṃ mahārājānaṃ puttā imaṃ lokaṃ anuvicaranti —
‘kacci bahū manussā manussesu matteyyā petteyyā sāmaññā brahmaññā
kule jeṭṭhāpacāyino uposathaṃ upavasanti paṭijāgaronti puññāni karontī’ti.
비구들이여, 상현과 하현의 14일에 사대천왕의 아들들이 이 세상을 둘러본다.
그것은 인간 세상에 많은 사람들이 자기 어머니와 아버지와 사문과 바라문들을 존경하는지,
가족 중에 연장자들을 공경하는지, 포살을 실천하는지, 해야 할 일에 전념하는지,
덕을 쌓는지를 보기 위해서이다.
tadahu, bhikkhave, uposathe pannarase cattāro mahārājāno sāmaññeva
imaṃ lokaṃ anuvicaranti —
‘kacci bahū manussā manussesu matteyyā petteyyā sāmaññā brahmaññā
kule jeṭṭhāpacāyino uposathaṃ upavasanti paṭijāgaronti puññāni karontī’”ti.
비구들이여, 보름의 포살일에는 사대천왕이 직접 이 세상을 둘러본다.
그것은 인간 세상에 많은 사람들이 자기 어머니와 아버지와 사문과 바라문들을 존경하는지,
가족 중에 연장자들을 공경하는지, 포살을 실천하는지, 해야 할 일에 전념하는지,
덕을 쌓는지를 보기 위해서이다.”
♦ “sace, bhikkhave, appakā honti manussā manussesu matteyyā petteyyā sāmaññā brahmaññā
kule jeṭṭhāpacāyino uposathaṃ upavasanti paṭijāgaronti puññāni karonti.
tamenaṃ, bhikkhave, cattāro mahārājāno devānaṃ tāvatiṃsānaṃ
sudhammāya sabhāya sannisinnānaṃ sannipatitānaṃ ārocenti —
‘appakā kho, mārisā, manussā manussesu matteyyā petteyyā sāmaññā brahmaññā
kule jeṭṭhāpacāyino uposathaṃ upavasanti paṭijāgaronti puññāni karontī’ti.
tena kho, bhikkhave, devā tāvatiṃsā anattamanā honti —
‘dibbā vata, bho, kāyā parihāyissanti, paripūrissanti asurakāyā’”ti.
2. “비구들이여, 만약 인간 세상에 자기 어머니와 아버지와 사문과 바라문들을 존경하고,
가족 중에 연장자들을 공경하고, 포살을 실천하고, 해야 할 일에 전념하고,
덕을 쌓는 사람이 적다면 사대천왕은 수담마 의회에 모여 있는 삼십삼천의 신들397)에게
'인간 세상에 자기 어머니와 아버지와 사문과 바라문들을 존경하고,
가족 중에 연장자들을 공경하고, 포살을 실천하고, 해야 할 일에 전념하고,
덕을 쌓는 사람이 적습니다.'라고 알린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삼십삼천의 신들은
'참으로 신들의 무리는 줄어들고 아수라의 무리는 늘어날 것이다.'라고 마음이 언짢아진다. 398)
397) '삼십삼천(Tāvatiṃsā)'의 tavatiṃsa는 tayo(3)+tiṃsa(30)의 합성어로서 33을 나타내는 tavatiṃsa의 곡용형이며 '33에 속하는 [천신]'이라는 의미이다. 삼십삼천의 개념은 베다에서부터 등장하며 조로아스터교의 성전인 아베스타에서도 언급될 만큼 오래된 개념이다. 베다에 의하면 신들은 33의 무리로 되어 있으며 이들의 우두머리가 인드라(Indra)라고 한다. 이런 신들이 모여서 회합을 가지는 삼십삼천의 집회소가 바로 수담마 의회(Sudhammā sabhā)이다. 수담마 의회에 모여서 회합을 가지는 삼십삼천의 모습에 대해서는 『디가 니까야』 제2권 「마하수닷사나 경」(D1S) §12와 「자니와사바 경」(D19) §2이하를 참조할 것.
398) 여기에 대해서도 앞의 주해에서 언급한 경들을 참조할 것.
♦ “sace pana, bhikkhave, bahū honti manussā manussesu matteyyā petteyyā sāmaññā brahmaññā
kule jeṭṭhāpacāyino uposathaṃ upavasanti paṭijāgaronti puññāni karonti.
tamenaṃ, bhikkhave, cattāro mahārājāno devānaṃ tāvatiṃsānaṃ sudhammāya sabhāya
sannisinnānaṃ sannipatitānaṃ ārocenti —
‘bahū kho, mārisā, manussā manussesu matteyyā petteyyā sāmaññā brahmaññā
kule jeṭṭhāpacāyino uposathaṃ upavasanti paṭijāgaronti puññāni karontī’ti.
tena, bhikkhave, devā tāvatiṃsā attamanā honti —
‘dibbā vata, bho, kāyā paripūrissanti, parihāyissanti asurakāyā’”ti.
비구들이여, 그러나 만약 인간 세상에 자기 어머니와 아버지와 사문과 바라문들을 존경하고,
가족 중에 연장자들을 공경하고, 포살을 실천하고, 해야 할 일에 전념하고,
덕을 쌓는 사람이 많다면 사대천왕은 수담마 의회에 모여 앉아 있는 삼십삼천의 신들에게
'인간 세상에 자기 어머니와 아버지와 사문과 바라문들을 존경하고, 가족 중에 연장자들을 공경하고,
포살을 실천하고 해야 할 일에 전념하고, 덕을 쌓는 사람이 많습니다.'라고 알린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삼십삼천의 신들은
'참으로 신들의 무리는 늘어나고 아수라의 무리는 줄어들 것이다.'라고 마음이 흡족해진다.”
사대천왕 경2(A3:37)399)
399) 육차결집본에는 본경의 전반부(§§1~2)가 앞의 경에 포함된 것으로 편집되어 있다.
♦ “bhūtapubbaṃ, bhikkhave, sakko devānamindo deve tāvatiṃse
anunayamāno tāyaṃ velāyaṃ imaṃ gāthaṃ abhāsi —
1. “비구들이여, 옛적에 신들의 왕 삭까(인드라)400)가 삼십삼천의 신들에게
[자신을] 알리면서 이 게송을 읊었다.
400) 원어는 Sakko nāma devānamindo이다. 삭까(Sk. Śakra)는 제석(帝釋) 혹은 석제(釋提)로 한역된 신이며 베다에 등장하는 인도의 유력한 신인 인드라(Indra)를 말한다. 『상윳따 니까야』에서는 S.i.229, DhpA.i.264) 그의 여러 가지 이름들을 열거하는데 그 가운데 세 번째에서 그는 인간으로 있을 때 존경하면서 보시를 베풀었다(sakkaccam dānam adāsi)고 해서 삭까(sakka)라 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산스끄리뜨 śakra는 '힘센, 막강한'이라는 뜻이다. 베다에서 이미 인드라는 끄샤뜨리야의 신으로 등장한다. 베다의 후기 시대부터 인도의 모든 신들에게도 사성(四姓)계급이 부여되는데 아그니(Agini, 불의 신)는 바라문 계급의 신으로 인드라는 끄샤뜨리야의 신으로 베딕 문헌에 나타난다. 베다 문헌들에서 신들은 자주 '인드라를 상수로 하는 신들(Indraśreṣṭāḥ devāḥ)'로 표현되어 나타난다. 이를 받아들여서 초기불교에서도 '신들의 왕(devānaṃ Indo, D11; M37/i.252)' 으로 표현하고 있으며, 구체적으로는 삼십삼천의 신들의 왕이며 그래서 삼십삼천은 제석천이라고도 부른다.
인드라는 웨자얀따(Vejayanta) 궁전에 거주하며 수도의 이름은 수닷사나(Sudassana)이다. 초기경들 가운데 인드라가 부처님께 와서 설법을 듣고 가는 것을 묘사한 경이 몇몇 있으며 목갈라나 존자가 이 궁전을 손가락으로 진동시켜 신들에게 무상의 법칙을 일깨웠다는 경도 나타난다.(M37)『디가 니까야』제2권 「제석문경」(D21)은 이런 신들의 왕 삭까가 세존과의 문답을 통해서 예류자가 되는 것을 기술하고 있다. 불교에서는 불교를 보호하는 신[護法善神]으로 일찍부터 받아들여졌다.
♦ “cātuddasiṃ pañcadasiṃ, yā ca pakkhassa aṭṭhamī.
♦ pāṭihāriyapakkhañca, aṭṭhaṅgasusamāgataṃ.
♦ uposathaṃ upavaseyya, yopissa mādiso naro”ti.
'나처럼 되기를 원하는 사람은
14일, 15일, 상현과 하현의 8일에
여덟 가지를 갖춘 포살401)을 준수해야 하고
연속적으로 행하는 [포살]402)을 해야 하리.”
401) 여덟 가지가 무엇인지 주석서는 언급하지 않지만 본서 「팔관재계 경」 (A3:70)에서 설하는 8계를 뜻하는 것으로 보인다.
402) “'연속적으로 행하는 [포살]'로 옮긴 원어는 pāṭihāriya-pakkha이다. 주석서에서는 “안거 중에 석 달 동안 매일 포살을 하는 것을 '연속적으로 행하는 포살'이라 한다. 이것이 불가능한 자는 두 자자(自恣)의 중간에 한 달 동안 매일 포살을 하는 것이다. 이것도 불가능한 자는 첫 번째 자자로부터 시작해서 반 달간 하는 것을 '연속적으로 하는 포살'이라 한다.”(AA.ii.234)
초기경들에서 pāṭihāriya는 일반적으로 신변(神變) 혹은 기적의 뜻으로 나타난다. 여기에 대해서는 본서 「상가라와 경」(A3:60) §4의 주해를 참조할 것.
♦ “sā kho panesā, bhikkhave, sakkena devānamindena gāthā duggītā
na sugītā dubbhāsitā na subhāsitā.
taṃ kissa hetu? sakko hi, bhikkhave, devānamindo avītarāgo avītadoso avītamoho.
2. “비구들이여, 신들의 왕 삭까는 게송을 잘못 노래한 것이다. 잘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무슨 이유 때문인가?
비구들이여, 신들의 왕 삭까는 탐욕을 제거하지 못했고 성냄을 제거하지 못했고
어리석음을 제거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 “yo ca kho so, bhikkhave, bhikkhu arahaṃ khīṇāsavo vusitavā brahmacariyo
katakaraṇīyo ohitabhāro anuppattasadattho parikkhīṇabhavasaṃyojano sammadaññā vimutto,
tassa kho etaṃ, bhikkhave, bhikkhuno kallaṃ vacanāya —
비구들이여, 한 비구가 있어 그는 아라한이고 번뇌가 다했고 삶을 완성했으며
할 바를 다했고403) 짐을 내려놓았으며404) 참된 이상405)을 실현했고 삶의 족쇄를 부수었으며,
바른 구경의 지혜로 해탈했다. 그 비구에게 이 게송은 적절하다.
403) “'할 바를 다한 자(katakaraṇīya)'라는 것은 네 가지 도로써 해야 할 일을 다 한 뒤 머무는 자이다.”(AA.ii.234)
404) “무더기의 짐(bhāra)과 오염원의 짐과 업형성(abhisaṅkhāra)의 짐을 내려놓고 머무는 자이다.” (Ibid)
405) “'참된 이상(sadattha)'이란 아라한과를 뜻한다.” (Ibid)
♦ “cātuddasiṃ pañcadasiṃ, yā ca pakkhassa aṭṭhamī.
♦ pāṭihāriyapakkhañca, aṭṭhaṅgasusamāgataṃ.
♦ uposathaṃ upavaseyya, yopissa mādiso naro”ti.
'나처럼 되기를 원하는 사람은
14일, 15일, 상현과 하현의 8일에
여덟 가지를 갖춘 포살을 준수해야 하고
연속적으로 행하는 [포살]을 해야 하리.'
♦ “taṃ kissa hetu? so hi, bhikkhave, bhikkhu vītarāgo vītadoso vītamoho”ti.
그것은 무슨 이유 때문인가?
비구들이여, 참으로 그 비구는 탐욕을 제거했고 성냄을 제거했고 어리석음을 제거했기 때문이다.”
sattamaṃ.
♦ 8. dutiyacatumahārājasuttaṃ (AN 3.38)
♦ 38. “bhūtapubbaṃ, bhikkhave, sakko devānamindo deve
tāvatiṃse anunayamāno tāyaṃ velāyaṃ imaṃ gāthaṃ abhāsi —
3. “비구들이여, 옛적에 신들의 왕, 식까가 삼십삼천의 신들에게
[자신을] 알리면서 이 게송을 읊었다.
♦ “cātuddasiṃ pañcadasiṃ, yā ca pakkhassa aṭṭhamī.
♦ pāṭihāriyapakkhañca, aṭṭhaṅgasusamāgataṃ.
♦ uposathaṃ upavaseyya, yopissa mādiso naro”ti.
'나처럼 되기를 원하는 사람은
14일, 15일, 상현과 하현의 8일에
여덟 가지를 갖춘 포살을 준수해야 하고
연속적으로 행하는 [포살]을 해야 하리.'”
♦ “sā kho panesā, bhikkhave, sakkena devānamindena gāthā duggītā na sugītā
dubbhāsitā na subhāsitā. taṃ kissa hetu?
sakko hi, bhikkhave, devānamindo aparimutto jātiyā jarāya maraṇena sokehi paridevehi
dukkhehi domanassehi upāyāsehi, aparimutto dukkhasmāti vadāmi.
4. “비구들이여, 신들의 왕, 삭까는 게송을 잘못 노래한 것이다. 잘 노래한 것이 아니다.
잘못 설한 것이다. 잘 설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무슨 이유 때문인가?
비구들이여, 신들의 왕, 삭까는 태어남과 늙음과 죽음과
근심 · 탄식 · 육체적 고통 · 정신적 고통 · 절망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는 또한 괴로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고 나는 말한다.
♦ “yo ca kho so, bhikkhave, bhikkhu arahaṃ khīṇāsavo vusitavā katakaraṇīyo
ohitabhāro anuppattasadattho parikkhīṇabhavasaṃyojano sammadaññā vimutto,
tassa kho etaṃ, bhikkhave, bhikkhuno kallaṃ vacanāya —
비구들이여, 그러나 한 비구가 있어 그는 아라한이고 번뇌를 다했고 삶을 완성했으며
할 바를 다했고 짐을 내려놓았으며 참된 이상을 실현했고 삶의 족쇄를 부수었으며
바른 구경의 지혜로 해탈했다. 그 비구에게 이 게송은 적절하다.
♦ “cātuddasiṃ pañcadasiṃ, yā ca pakkhassa aṭṭhamī.
♦ pāṭihāriyapakkhañca, aṭṭhaṅgasusamāgataṃ.
♦ uposathaṃ upavaseyya, yopissa mādiso naro”ti.
'나처럼 되기를 원하는 사람은
14일, 15일, 상현과 하현의 8일에
여덟 가지를 갖춘 포살을 준수해야 하고
연속적으로 행하는 [포살]을 해야 하리.'
♦ “taṃ kissa hetu? so hi, bhikkhave, bhikkhu parimutto jātiyā jarāya maraṇena sokehi
paridevehi dukkhehi domanassehi upāyāsehi, parimutto dukkhasmāti vadāmī”ti.
그것은 무슨 이유 때문인가?
비구들이여, 참으로 그 비구는 태어남과 늙음과 죽음과
근심 · 탄식 · 육체적 고통 · 정신적 고통 · 절망에서 벗어났기 때문이다.
그는 또한 괴로움에서 벗어났다고 나는 말한다.”
aṭṭhamaṃ.

첫댓글
예, 봄봄님, 말씀 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앙굿따라 니까야에 그 내용이 나왔네요. 잘 보았습니다.
(참고로, 다 아시는 내용이겠지만, 남섬부주 사람들에 대해
동영상 법문에서 들은 내용을 조금 필기했습니다.)
1. 왜 사람(마눗사)이라 하는가?
→ 특히 남섬부주 사람들에게는 강력한 마음(마노, 意)이 있다. 그러므로 사람(인간)이라 부른다.
(여기서 강력한(, 거룩한, 위대한) 마음이 있다고 한 것은: 사띠가 좋고, 용감하고, 청정범행(출가 등)으로 결합한 상태이기 때문에)
(여기서 용감하다: 불선업을 하는 데도 무간지옥에 떨어질 만큼 아주 무모하고, 선업을 할 때도 부처님이 될 바라밀까지 행할 만큼 아주 용감하다.) (심하게 말하면 나쁜 쪽으로는 무간지옥보다 더 아래로 떨어질 곳이 없어서 더 못 떨어지고, 좋은 쪽으로는 열반 보다 더 높게 더 이상 올라갈 곳이 없어서 더 못 올라간다고 할 만큼, 사람은 용감하다.)
→ 이 남성부주 사람들은 잘 안다: 바른 원인과 바르지 않은 원인을 / 이익과 불이익을 / 선업(선법)과 불선업(붋선법)을 잘 안다고 하여 사람이라 한다.
2. 남섬부주 사람의 수명
→ 정해지지 않았다. 정해진 한계가 없다. 선업을 아주 많이 지으면 아승지까지 올라가고 불선업을 많이 하면 10살까지 내려간다. 이렇게 남섬부주의 사람의 수명은 올라갔다가 내려갔다가 한다. 하나의 수명으로 고정되어 있지 않다는 뜻이다.
3. 남섬부주 사람이 북구로주 주민이나 도리천(삼십삼천)의 천신들과 다른 점은?
① 용감하다: 보시 등의 선업에서 더 용감하다.
② 사띠를 구족한다: 도리천의 신들은 부귀영화를 누리고 감각적 욕망을 즐기느라고 선법을 실현하는 것을 잊어버린다. 그래서 그들이 다시 사띠를 구족하는 것이 힘들다고 한다. 필수품들이 잘 구족되어 있으니까 계를 지키는 정도?이고 사띠를 계발하려는 노력은 잘 하지 않는다.
◌ 필기: 일반적으로 욕계 천신은
* 천신(데와, 데와띠(여자 천신))은. ‘형색, ... 감촉’ 등의 대상을 즐기는 존재이고, 빛나는 존재이다.
* 먹고 지내기 위해서 일할 필요가 없다, 다 구족되어 있다. 먹을 것과 입을 것 등이. 인간 세상의 행복과 천상 세계의 행복은 풀잎 이슬과 바닷물의 비유처럼 그렇게 차이가 난다.
* 왜 인간은 천신을 육안으로 보지 못하는가?
①인간의 업 생성물질인 눈의 감성물질은 천상의 것을 보기에는 힘이 약하다(인간의 육안은 벽 넘어서는 보지 못한다.) 천상의 눈의 감성물질은 벽 같은 것은 아무 장애 없이 본다고 한다. 또 ②천신들도 자신의 모습을 보이고 싶어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천신들의 모습을 보면 인간들이 한 번도 보지 못한 아름다운 수승한 모습이라서 그 충격으로(강한 탐욕 등이 생겨서) 그것을 얻지 못해서(강한 탐욕으로 불타서) 죽어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 천신의 용모: 천신은 처음의 용모가 그대로 유지된다고 한다. 남자 천신은 20세 정도의 모습으로, 여자 천신은 16세의 모습 정도로, 머리가 희어지지도 않고 이가 부서지지도 않고 눈이 침침하거나 귀가 잘 안 들리거나 주름이 지는 일도 없이.
* 천신들은 대소변을 보지 않는다고 한다. 천상의 음식은 너무나 미묘하다.
* 천신들은 몸이 크다고 한다. 공덕을 많이 누리기 때문에 몸집도 크고, 옷도 크고, 궁전도 크다고 한다.
* 그러나 아나함이나 아라한이 되면 더 이상 욕계 천상에 머물지 않는다고 한다.
* 아나함이 되면 정거천에 태어나고 아라한이 되면 반열반에 든다고 한다. .
* 인간세상이라면 아나함이라면 그대로 인간 세상에 머물 수 있고(더 이상 부부 생활은 없는 듯), 아라한이 되면 그날 출가할 수 있으면 출가하고 출가할 수 없다면 반열반에 든다고 한다. 그러나 천상에서는 출가가 없어서 아라한이라면 그대로 반열반에 든다.)
* 단, 사대왕천에 사는 땅을 의지해서 사는 지신, 목신은 아라한이 되어도 자기 수명대로 끝까지 머물 수 있다고 한다.
* 천신은 사람들의 이익을 얻게 하는 말도 해주고 인간들에 대한 보호와 자애를 행하기도 한다.
과거의 선업의 차이로 위력이 큰 천신도 있고 위력이 작은 천신들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