千家詩(천가시)/昌黎先生集(창려선생집)]4-39.自詠(자영)/左遷至藍關示姪孫湘(좌천지람관시질손상) - 韓愈(한유)
[千家詩(천가시)/昌黎先生集(창려선생집)]4-39.自詠(자영)/左遷至藍關示姪孫湘(좌천지람관시질손상) - 韓愈(한유)
<좌천되어 남관에 이르러 종손 유상에게 보여주다>
自詠(자영)/左遷至藍關示姪孫湘(좌천지람관시질손상)
韓愈(한유)
一封朝奏九重天(일봉조주구중천),
夕貶潮州路八千(석폄조주로팔천)。
欲為聖明除弊事(욕위성명제폐사),
肯將衰朽惜殘年(긍장쇠후석잔년)?
雲橫秦嶺家何在(운횡진령가하재)?
雪擁藍關馬不前(설옹람관마부전)。
知汝遠來應有意(지여원래응유의),
好收吾骨瘴江邊(호수오골장강변)。
아침에 상주문 한 통을 황제에게 올렸다가
저녁에 팔 천리 머나먼 조주(潮州)로 귀양 가게 되었네.
황제를 위하여 폐단을 없애려 하였으니
어찌 감히 노쇠해지는 남은 삶을 아까워하겠느냐?
구름 비낀 진령(秦嶺)에 오니 나의 집은 어디인가?
눈 덮인 남관(藍關)에서 말은 더 이상 가지 않으려 하네.
네가 먼 길 나서 이곳까지 온 뜻을 아니
내가 죽거든 바로 뼈를 수습하여 저 장강(瘴江) 가에 묻어다오.
<원문출처> 左遷至藍關示姪孫湘/作者:韓愈 唐
本作品收錄於《昌黎先生集》和《千家詩/卷四》
----------------------------------
○ 左遷(좌천) : 직위를 강등당하다. 한유가 조주로 폄직(貶職)되었음을 말한다.
○ 藍關(남관) : 남전관(藍田關). 섬서성 남전현 동남쪽에 있는 관문.
○ 湘(상) : 한유의 조카 손자인 한상(韓湘).
○ 一封(일봉) : 한 통의 상주문. 한유가 올린 <논불골표(論佛骨表)>를 말한다.
※ 논불골표(論佛骨表) : 당 헌종이 불교를 숭상하여 사신을 보내 부처의 진신사리를 궁중으로 맞아들이려 하자 한유가 <논불골표>를 올려 불가함을 극력 간하였다. 한유는 이 일로 황제의 분노를 사 당일로 조주자사(潮州刺史)로 좌천되었다.
○ 朝奏(조주) : 아침에 상주문(上奏文)을 올리다.
○ 九重天(구중천) : 가장 높은 하늘. 여기서는 조정 혹은 황제를 말한다.
○ 潮州(조주) : 지금의 광동성 조양시. 한유가 좌천되어 자사(刺史)를 지낸 곳.
○ 路八千(로팔천) : 길이 먼 것을 말한다. 八千은 정확한 숫자가 아니다.
○ 聖明(성명) : 황제.
○ 弊事(폐사) : 정치적 폐단. 부처의 진신사리를 궁중으로 맞아들이는 일.
○ 肯(긍) : “敢”으로 기록한 판본도 있다. 어찌 감히.
○ 衰朽(쇠후) : 노쇠함. 쇠약하고 병이 많다.
○ 惜残年(석잔년) : 남은 삶을 아까워하다.
○ 秦嶺(진령) : 남전현(藍田縣) 동남쪽에 있는 종남산(終南山)
○ 雪擁(설옹) : 눈으로 길이 막히다.
○ 汝(여) : 너. 한상(韓湘)을 가리킨다.
○ 好(호) : 正好. 곧. 마침
○ 瘴江邊(장강변) : 조주(潮州)의 장강(瘴江) 가. 장강(瘴江)은 영남의 강으로 당시 남쪽은 고온다습하여 축축하고 더운 땅에서 생기는 독한 기운이 있어 장강(瘴江)이라 하였다.
--------------------------------------
이 시는 <천가시> 및 <창려선생집>에 실려 있으며, 당나라의 문학가인 한유가 지은 칠언율시이다. <창려선생집>에는 ‘좌천지람관시질손상(左遷至藍關示姪孫湘)’으로 기록하고 있다.
한유는 원화 14년(819년)에 헌종(憲宗)이 불골(佛骨)을 맞아들이려는 것을 반대하는 표문(表文)을 올렸다가 헌종의 노여움을 사서 조주사마(潮州司馬)로 좌천되었으며, 이 시는 조주로 좌천되어 가면서 조카 손자인 한상(韓湘)에게 전해준 시이다.
----------------------------------------
※ 韓愈(한유) : 768~824. 당(唐)나라를 대표하는 문장가, 정치가, 사상가이다. 당송8대가(唐宋八大家)의 한 사람으로 자(字)는 퇴지(退之), 호는 창려(昌黎)이며 시호는 문공(文公)이다. 792년 진사에 등과, 지방 절도사의 속관을 거쳐 803년 감찰어사(監察御使)가 되었을 때, 수도(首都)의 장관을 탄핵하였다가 도리어 양산현(陽山縣:廣東省) 현령으로 좌천되었다. 이듬해 소환된 후로는 주로 국자감(國子監)에서 근무하였으며, 817년 오원제(吳元濟)의 반란 평정에 공을 세워 형부시랑(刑部侍郞)이 되었으나, 819년 헌종황제(憲宗皇帝)가 불골(佛骨)을 모신 것을 간하다가 조주(潮州:廣東省) 자사(刺史)로 좌천되었다. 이듬해 헌종 사후에 소환되어 이부시랑(吏部侍郞)까지 올랐다. 유가의 사상을 존중하고 도교와 불교를 배격하였으며, 성리학의 선구자가 되었다. 작품은 《창려선생집(昌黎先生集)》(40권) 《외집(外集)》(10권) 《유문(遺文)》(1권) 등의 문집에 수록되었다.
----------------------------------
[출처] [千家詩(천가시)/昌黎先生集(창려선생집)]4-39.自詠(자영)/左遷至藍關示姪孫湘(좌천지람관시질손상) - 韓愈(한유)
태그#천가시#창려선생집#자영#좌천지람관시질손상#한유#당송8대가#퇴지#창려
[출처][千家詩(천가시)/昌黎先生集(창려선생집)]4-39.自詠(자영)/左遷至藍關示姪孫湘(좌천지람관시질손상) - 韓愈(한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