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과를 다녀왔는데 입안이 엉망입니다. 동네 농협 마트에 치과가 두 개가 있는데 한양 치과를 선택한 것은 큰 이유가 없습니다. 엑스레이를 찍어보니까 상악 17번이 썩어 들어가면서 염증이 생겼고 시 신경에 영향을 준 탓에 눈알이 아픈 것이라는 닥터 소견입니다. 신경 치료와 동시에 거짓말처럼 목통 치통이 가라앉았지만 영 닥터(40살)가 신경 치료를 3번에 걸쳐 해야 하는데 부작용이 생기면 안면 마비가 올 수 있다고 고름을 줘서 짜증이 확 납디다. 당장 치료해야 할 이(Teeth)가 재산을 말아 먹을 수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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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전에 한 38번 어금니 In-rae가 떨어져 나갔고 47-46번 임플란트 위쪽 상학 17번이 음식물을 씹지도 않은 것 같은데 어느 사이 썩어 들어가 나를 괴롭힌 것으로 보입니다. 공포의 마취와 스케일링(55.000)을 마쳤고 37번 임플란트 100만-38번 In-rae 55만-17번 크라운 60만-기타 20만 원 토털 235만 원의 숙제를 가지고 고 홈 했어요. 이거야 원, 치 위생 사 각시와 20년을 살았는데 엉망진창 이(Teeth) 관리는 아이러니가 아닙니까? 똑똑한 치 위생사가 실장까지 5명 쯤 되는 것 같았고 젊은 닥터가 금방이라도 진접을 평정할 기세입니다. 살살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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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욕구에는 세 개의 차원이 있다고 해요. 필요(need)와 요구(demand)와 욕망(desire)이 그것입니다. 필요는 갈증, 식욕 등 생리적, 생물학적인 욕구입니다. 목 마르면 물 마시고 싶고, 배고프면 먹고 싶어 하는 필요 충족 욕구는 확실한 대상을 목표로 하므로 충족이 가능합니다. 목 마르면 물을 마시고 배고프면 밥을 먹으면 되는 이것이 필요입니다. 그런데 목 마르다고 떼쓰는 아이에게 물을 주어도 여전히 짜증을 부리는 경우가 있어요. 이때 아이는 물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물을 넘어서서 엄마의 사랑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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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이에게 아무리 물을 주어보았자 불만이 충족될 리 없어요. 표면적으로 요구는 우리의 필요를 충족시켜줄 것으로 간주되는 대상을 겨냥합니다. 아이는 물을 요구하나 요구의 진정한 목적은 이런 대상을 제공할 능력이 있는 타자의 사랑입니다. 아이가 원하는 것은 물을 가져다주는 엄마의 사랑 말입니다. 그러니까 이 아이가 요구한 물은 짜증을 내기 위한 핑계에 불과했고 그 표면적 대상이 주어진다 해도 당연히 만족은 없어요. 아이의 욕구는 실은 다른 것을 향해 있기 때문이지요. 이것이 요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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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자가 우리의 요구에 응하여 대상을 제공할 때 이 대상은 단순히 우리의 필요를 만족 시키는 것만이 아니라 우리에 대한 그의 사랑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이 요구한 대상을 얻을 때마다 주체는 “이것은 그것이 아니다” 는 묘한 경험을 겪게 됩니다. 자신이 요청한 것을 얻었는데도 요구는 완전히 충족되지 않았기 때문이지요. 왜냐하면 그 요구의 진정한 목적은 대상 그 자체가 아니라 타자의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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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은 바로 여기서 생겨납니다. 욕망은 생리적 욕구와도 다르고, 사랑의 요구와도 다릅니다. 욕망의 대상은 라캉이 사물(the Thing)이라고 부르는, 실재 입니다. 그런데 실재란 아무 것도 없는 텅 빈 허공, 다시 말해 결핍 상태입니다. 따라서 욕망이란 결핍에 대한 욕망입니다. 욕망은 구체적 물질 성인 대상과의 관계가 아니라 결핍과의 관계입니다. 아무것도 없는 것을 원하므로 그 욕망이 충족될 수 없음은 당연한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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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라보예 지젝이 말했듯이 욕망의 존재 이유는 만족이라는 목적을 달성하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욕망을 재 생산하기 위한 것입니다. 우리의 현실 세계는 주체로 하여금 대문자의 사물(the Thing) 즉 절대적 행복을 포기하고 대체 물에 불과한 기표(시니피앙) 들에 만족하도록 종용합니다. 그러나 이 대체물은 결코 우리에게 완전한 만족을 줄 수 없어요. 원했던 승진을 했는데 여전히 불만족스럽고, 원했던 명품 가방을 샀는데 여전히 마음이 헛헛할 때마다 매번 우리는 “이것은 그것이 아니다!”는 공허감을 느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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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런가? 우리의 욕망의 대상은 결핍이고 결핍은 우리에게 영원히 만족을 줄 수 없기 때문이 아닐까. 우리의 욕망의 대상인 실재 혹은 사물은 욕망의 대상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욕망이 만들어내는 대상이기도 합니다. 라캉은 하이데거의 항아리의 비유를 인용하여 그 과정을 설명해요. 항아리의 본질은 자기 한 가운데 있는 텅 비어 있는 공간입니다. 겉의 도자기가 아무리 견고하고, 디자인이 아무리 아름다워도, 한 가운데 텅 빈 공간이 없으면 항아리는 항아리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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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공이 힘들게 항아리를 만드는 것은 바로 이 텅 빈 공간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라는 것이 핵심입니다. 아무것도 아닌 텅 빈 공간을 만들기 위해 도공은 그렇게도 힘들게 창작의 과정을 거칩니다. 그런데 이 텅 빔은 항아리가 완성되기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어요. 그렇다고 도공이 항아리를 만들면서 직접 제조한 것도 아닙니다. 텅 빈 공간은 도공이 항아리를 만들 때 저절로 생겨납니다. 욕망 하는 사람은 항아리를 만드는 도공과 비슷해요. 그가 욕망 할 때 동시에 텅 빈 실재의 공간이 움푹 파입니다. 그것은 욕망의 발생과 함께 동시에 생겨나 욕망 안에 움푹 파여 새겨진 공허가 아닐까. I'm thinking of trying to memorize 10 words a day with only 10 sentences for a year.
2024.11.26.tue.악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