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 주류만이 횡행하던 때, 그것의 일방통행에 대해 회의적 시선이 집결하던 때, 기성에서 탈피한 새로운 음악적 대안에 대한 욕구가 솟구치던 때, 여명을 밝히며 실체를 잡기 시작한 인디는 어리둥절하고 불투명한 미래 속에서 출발했다. 혁신과 시도를 키워드로 삼으며 대안의 영토를 찾던 사람들은 이 흐름과 호흡이 지속적으로 부흥해 보란 듯 역사를 가지게 될 먼 훗날을 불안 반 확신 반으로 상상했다.
감격스럽게도 지금 우리는 인디 20년의 역사를 목격하고 있다. 국내 인디 신은 1995년 너바나의 커트 코베인 추모공연이 클럽 '드럭'에서 열리고 크라잉 넛을 비롯한 몇몇 밴드의 난장이 정례적으로 펼쳐지면서 점화되었다. 홍대 신촌의 라이브클럽에서 발진한 인디 음악은 그 사이 지지와 주시 그에 비례한 질시와 냉대가 교차하는 무수한 성쇠 과정을 통해 나름의 지금에 이르렀다.
확실히 우리의 인디는 그간 활동이 간헐적이던 '밴드'들이 집단적으로, 공격적으로 세를 불리는 전기를 마련했다. 밴드문화의 정착! 그러면서 크라잉 넛, 노브레인을 거쳐 2000년대 들어 장기하와 얼굴들, 국카스텐 등은 메인스트림에 충격을 가하는 인디의 존재감을 확실히 했다.
인디 밴드들의 자생(自生)성은 아티스트와 마찬가지로 음악의 변화를 갈망하는 음악수요자들이 아니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들은 음악은 미디어를 통해 주어진 음악을 막연히 접하는 것이 아니라 '찾아 듣는 것'이라는 명제를 또래의 젊은 층에 유통시키면서 인디의 청취 층 확산을 도왔다. 일각의 영리한 언론도 미래의 시장성을 포착해 그것이 회자되는데 부분적으로 기여했다. 아직 시장 지분은 기대에 못 미치지만 그러면서 20년간 '정서 지분'만은 확실하게 수확했다. 변화의 샘으로서 인디를 바라봐야 한다는 점은 음악종사자와 대중 누구나 공감하게 된 것이다.
인디 신은 음악의 대전제인 실험과 도전의 장이 실천되는 장이다. 여기서 우리는 문화의 조건이라는 다양성을 얘기하지 않을 수 없다. 글로벌 딱지가 붙는 동시에 어느덧 물림의 징조가 나타나기 시작한 우리의 K팝 그리고 오디션 프로의 피치 높이기 난투가 점령한 주류 음악으로는 상투성과 작별하는 것, 우리의 다채로운 취향을 담보해줄 다양성을 기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안다.
인디는 시작점이라고 할 펑크와 뉴 웨이브, 힙합, 얼터너티브, 브릿팝, 랩 메탈, 포스트 그런지 그리고 2010년대 전후로 부상한 약간은 희화화된 음악, 유약한 포크적 사운드 등등 별의별 스타일의 밴드들이 할거하면서 '대중' 아닌 자신의 취향을 중시하는 '소중'을 포섭하면서 개체 인증에 성공했다. 자작농이라 할 그들과 함께 음악의 시제는 미래로 향하게 됐다. 자기만의 예술성은 음악가의 기본이다. 그 개성과 독자성으로 향하는 티켓을 인디에서 구입해야 한다는 것을 암묵적으로 동의한 것만으로 20년의 빛나는 쾌척이 아닐까 한다.
대부분 주류 가수들의 일제히 싱글과 미니 판으로 전환했어도 인디 뮤지션들은 지금도 풀 앨범을 낸다. 미련하지만 우직한, 음악성의 보전 작업이다. 인디는 음악 판의 체질 개선을 간접 도모하기 위해서라도 소중의 세를 불리면서 상승을 계속해야 한다. 인디 20년을 되돌아보며 20장의 앨범을 골랐다. 이렇듯 인디 뮤지션 각자가 다르고, 이렇듯 개성과 에너지가 넘쳐난다. 이 앨범들에 '그렇고 그런', '그게 그거'와 같은 상투성은 없다. (임진모)
1. 델리스파이스 < Deli Spice >
홍대 인디가 태동할 무렵, 대세는 엄연히 펑크였다. 그들은 섬세하기보다는 대범하고, 유려하다기보다는 강렬하며 직선적인 스타일로 홍대 인디 신의 이미지를 완성하고 있었다. 이 흐름에 역전 구도를 가져온 주인공이 바로 섬세하고 유려한, 델리스파이스의 이 데뷔작이었다. '챠우챠우'라는 걸작이 말해주듯이, 그들은 펑크라는 태풍 속에 위치했던, 모던 록이라는 이름의 핵심이었다. 아마 한국 시장에서 이 앨범이 없었다면 모던 록이라는 장르가 보편성을 획득하기까지, 몇 년은 더 걸렸을 것이다. 이렇듯 역사의 흐름을 앞당긴 작품을, 우리는 보통 명반이라고 부른다. (배순탁)
2. 노브레인 < 청년폭도맹진가 >
주변이 온통 신음 투성이다. 금 수저를 물고 세상에 나지 않는 이상, 처자식과 집에서 오순도순 모여 사는 보통의 삶은 기대할 수 없다. 3포를 넘어 5포라는 말까지 나왔다. 유명한 제목의 영화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고 했지만, 21세기 대한민국은 분명 청년을 위한 나라는 아니다. 노브레인의 메시지는 그래서 여전히 유효하다. 이보다 설득력 있게 '성내야 할' 젊음을 노래한 앨범은 없었다. 세상이 변하지 않는 한 앞으로도 우리 가슴을 두드릴 폭도들의 메시지 - 그들이 남긴 강령은 '성난 얼굴로 세상을 돌아보라'였다. 이는 다시 돌아오지 않을 노브레인의 청춘이기도 했다. (여인협)
3. 언니네이발관 < 꿈의 팝송 >
4년 만에 재정비하고 나타난 이 3집은 멜로디를 중심으로 좋은 팝송을 만들려는 노력의 산물이다. 기타 팝 형태로 이루어진 전작들과 달리 키보드를 통한 전개가 두드러지는데, 직접 연주한 것임에도 컴퓨터로 찍은 것처럼 일렉트로닉하게 들린다. '헤븐' '괜찮아'에서 알 수 있듯 키보드는 기타와 함께 중요한 위치에서 다양한 분위기를 전달한다.
전반부는 말랑말랑하고 후반부는 쌉싸름하다. 밝은 멜로디 아래 슬픈 가사가 배여 이들 특유의 양면성이 전체를 관통한다. 예민한 감정기복의 노랫말도 마찬가지. 이틀 만에 초도물량 15,000장이 모두 품절되는 신기록을 수립하면서 인디의 시장 가능성을 확대했다. 인디의 모던 록 1세대로서 가장 감성적 음악을 한 밴드임을 증거 하는 걸작이다. (정유나)
4. 마이앤트메리 < Just Pop >
팝과 록의 애매한 경계에서 혼란을 겪던 마이앤트메리는 이 앨범으로 비로소 안정궤도에 올랐다. 밴드의 대표곡으로 회자되는 '공항 가는 길'과 CM송으로 사랑받은 '골든 글러브'는 '그저 팝'이라고 명명된 이 앨범이 지향하는 지점을 명확히 드러낸다. 깔끔한 연주와 개별 곡의 수려한 만듦새, 선명한 멜로디 라인은 마니아와 평단뿐 아니라 대중에게도 매력적으로 다가갔고, 이듬해 한국대중음악상 '올해의 음반'과 2007년 '한국 대중음악 100대 명반'에 선정되는 영예를 안았다. (정민재)
5. 장기하와 얼굴들 < 별일 없이 산다 >
수많은 '을'들의 별일 없는 일상을 노래하고자 했지만, 자극적인 코드에 무게가 실린 곡들엔 진정성이 결핍됐다. 싸구려 커피에서 장기하는 '을' 그 자체다. 한국 가요의 문법을 꿰뚫는 독창성 있는 음악이라는 평가는, 본인 이야기임과 동시에 싸구려 커피를 넘기며 씁쓸해할 지친 청춘들의 공감을 샀기 때문이다. 랩 아닌 한탄 같은 주절거림은 청춘들의 심정을 고스란히 옮겨놓은 시대상이었다. 별일 없이 살고 싶은 청춘들의 바람을 그 만의 철학과 유머코드로 승화하며 현세대 청춘, 그 신(新)빈곤층의 고단함을 노래했다. 청춘 세대에 위로를 건넸다는 것으로도 의의 충만한 앨범. 이 작품으로 인디가 다시 한 번 살아났다. (박지현)
6. 이장혁 < Vol. 1 >
이장혁의 음악은 서슬 퍼런 검처럼 우리를 베어낸다. 그가 노래하는 세상은 아름답거나 희망적이지 않다. 오히려 까칠하고 위험하다. 1집의 타이틀 '스무살'도 청춘의 상처와 혼란을 담았다. 그의 기타는 '낭만적인 포크'와는 거리가 멀다. 고양이처럼 날카롭고 신경질적인 목소리는 젊음의 불안과 사회의 절망을 노래한다. 이런 시각은 단순한 '비관' 보다는 자신의 처지를 미화하거나 외면하지 않는 '현실 직시'에 가깝다. 그래서 그의 노랫말은 우울의 정서보다 조금 더 깊숙하게 마음을 도려낸다. (김반야)
7. 3호선 버터플라이 < Dreamtalk >
성기완이라는 지독한 문학가, 남상아라는 괴이한 보컬리스트, 치밀한 조율사 역할의 베이시스트 김남윤, 섬세하게 폭발하는 드러머 서현정, 이렇게 네 사람이 모여 함께 물레질하듯 각자의 이미지들을 쌓아간다. 촘촘히 깊어지는 괴로움을 향해 끝없이 파고들자 시퍼런 소리가 내뿜어지고, 지독한 시간 속에 사는 이들은 펑펑 울 수밖에 없다. 깊은 호흡으로 파열하며 들이쉰 꿈, 섭리처럼 질긴 소음의 향연, 자극도 절제도 모두 절정에 다다랐다. 의지나 결심이 아니라 원래 타고 태어난 것 같은 실험만으로도 앨범은 인디의 고부가가치 걸작이다. 수많은 담론들을 풀어놓고 또한 그 모든 것들을 무력화시킨다. 인디의 정점에 있는 밴드만이 구사할 수 있는 유일무이한 화법임을 증명하는 작품이다. (홍은솔)
8. 크라잉 넛 < 크라잉 넛 >
크라잉 넛 전에 펑크(Punk)의 3코드와 DIY 정신은 이 땅에 상륙하지 못했다. 영국경제공황기 저항의 아이콘 섹스 피스톨스처럼, 크라잉 넛의 등장도 대한민국 IMF 사태와 맞물린다. 어두운 시대상에 불만인 반발적 대중이 잉태한 반항아들은 홍대 인디클럽 드럭에서 입지를 다져 이 앨범을 통해 저항적이며 냉소적인 펑크 정신을 흩날린다.
세상을 조롱하고 통타하는 반항은 젊음의 성가가 된 '말달리자'로 응축되며 '묘비명', '펑크 걸'은 뭉그러지는 가사 를 매력화한다. 괴성을 질러대는 펑크를 넘어서 '갈매기', '검은 새', '성냥팔이 소녀' 등 미드템포의 곡들은 밴드가 지향하는 재미있는 '조선펑크' 개념의 구현이다. 20년 가까이 인디 나름의 '예술성'을 확보한 옹골찬 앨범. (이기찬)
9. 어어부 프로젝트 < 손익분기점 >
1997년 세상에 태어난 이 '한국적 아방가르드' 작품의 충격을 20년이라는 시간은 과연 따라잡았을까. 그땐 새로웠어도 지금은 흔한 것은 아닐까. 놀랍게도 이 작품은 시간의 흐름과는 무관하게 당시의 쇼크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국악과 사이키델릭, 뽕짝을 오가는 무국적 및 무장르적 속성과, 언어를 깨뜨려 날카로운 가사의 파편을 만든 후 그것을 마구 집어던지는 듯한 백현진의 가창은 지금 들어도 여전히 불친절하고 또 난해하다.
더불어, 전보다 몇 배는 더 혼란스러운 세상 속에서 그 해석의 곁가지를 쳐나가며 그때는 미처 알지 못했던 종류의 불편함까지 그 세력을 뻗치고 있다. 결국 시대를 앞서간다는 것은 그것이 이후의 경향을 예언한다기보다, 시대와 격리된 채 영속의 가치를 지니게 된다는 것과 같은 의미임을 알려준다. 고로 미래는 그들이 제시한 미래엔 절대 도달할 수 없는 역설에 부딪히고 만다. 마치 < 손익분기점 >이 결코 손익분기점에 도달할 수 없는 것처럼. (황선업)
10. 코코어 < cocore# Oder >
시애틀 발(發) 얼터너티브의 충격이 한반도에 당도하는 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1997년에 발매된 코코어의 정규 데뷔작 < cocore# Oder >에는 어디에 내놔도 결코 모자람이 없는 그런지 사운드가 넘실거린다. 거칠게 터져 나오는 리프를 시작으로 뇌리에 강렬함을 새기는 이우성의 보컬 퍼포먼스, 텁텁한 맛을 남기는 자조 섞인 텍스트, 꽤나 캐치한 멜로디가 어우러져 아홉 번의 멋진 순간들을 연출한다. 실험을 바탕으로 각양의 결과물들을 내놓는 지금의 코코어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아무래도', 'Lovesong', 'EtthylAlchol' 같은 직선적인 록 넘버들은 얼터 록 사운드가 한 축으로 자리했던 당시의 한국 인디 신을 잘 보여주는 사료로 남아있다. (이수호)
11. 불독맨션 < Funk >
< 유재하 음악경연대회 >에서 동상, < MBC 대학가요제 >에서 대상을 받고도, 주류 진출엔 관심 없었다. 이한철은 하고 싶은 음악 하러 인디로 유턴했다. 여기서 한 번 더 꺾는다. 마니아로 국한된 인디 신에 남녀노소 즐거운 펑크(Funk)를 들이댔다. 가사처럼, '똑같은 길은 가기 싫어'하던 과정이 색다른 걸작을 완성했다. 모던 록 가미된 편곡에 불독맨션만의 올바르고, 긍정적인 멜로디가 빛난다. 외국 따라 '시크'한 멋을 찾지도 않았다. 다양하면서 유기적인 수록 곡들의 배치 또한 이 음반의 매력이다. 어렵지 않다. 행보와 음악이 모두 멋진 명반이다. (전민석)
12. 허클베리 핀 < 올랭피오의 별 >
모험의 첫 출발인 < 18일의 수요일 >은 그들이 인디 씬의 숨은 보석임을 입증했다. 불투명한 노이즈엔 그들의 치기어린 패기가 녹아있었다. 그리고 소년에서 어른으로 성장한 밴드는 세 번째 모험이자 그들의 최고작 < 올랭피오의 별 >을 쏘아 올린다. 90년대 얼터너티브 락 밴드들을 수혈한 듯한 사운드에 중성적인 보이스, 공허함과 쓸쓸함을 담은 시적인 가사, 이들 모두 이도 저도 아닌 불완전한 우리의 모습을 닮았다. 치명적인 기타 사운드와 여린듯하지만 끝내 폭발하는 멜로디는 심장을 관통한다. 인디의 특성을 대표하는 이 앨범은 10년이나 지난 오늘도 우리의 무의미한 일상을 꼬집는다. 비주류라는 황무지에서 기어코 살아남은 밴드의 참으로 '고약한' 앨범이다. (이택용)
13. 노이즈가든 < Noizegarden >
정체의 늪에 빠졌던 1990년대 한국 록계에 단순히 더 좋은 사운드와 연주를 들려주고자 했다. 계보나 정통성이 따로 없었던 록의 변방 대한민국에 노이즈가드(nOiZeGaRdEn)은 자신들이 존경해오던 서구 밴드의 에센스를 담아 독보적인 메탈론(論)를 제시했다. 하지만 그 대안은 원본을 베끼는 데 그치지 않고, 독창적이고 파격적인 내용이었다. 굵직하고 간결한 기타 리프와 담대하고 거친 톤 메이킹, 다양한 변주 속에서도 합일되는 악기 간의 밸런스는 한국 록의 전성기를 1990년대로 집중시키는 큰 역할을 했다. < nOiZeGaRdEn >은 한국 록음악의 지평을 확대했음은 물론, 한국 록 역사 최고의 마스터피스로 자리매김하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신현태)
14. 국카스텐 < Guckkasten >
사이키델릭, 메탈과 포크 심지어는 국악까지 온갖 장르가 뒤섞인다. 폭주하는 기타 리프와 리듬 위로 하현우의 보컬이 내달린다. 대중성을 겸비한 멜로디와 범상치 않은 가사, 더불어 밴드로서 필수적인 라이브 실력까지 국카스텐의 데뷔는 그만큼 인디 씬에 충격으로 다가왔다. 특히 '거울'에서의 신들린 연주와 강약을 넘나드는 보컬은 국카스텐의 이름을 매스미디어에까지 알렸다. 앨범 수록곡 저마다의 균형뿐만 아니라 음반 사이사이의 완급까지도 극적으로 잡아내면서 디테일 면에서도 완성도를 높인다. 세부적으로도 전체적으로도 강했던 < Guckkasten >은 평론가 및 팬들의 찬사를 한 몸에 받으며 인디 시장이라는 한정된 프레임을 넘어섰다. 감히 '2000년대 가장 빛났던 데뷔 앨범'의 영광에 올릴만하다. (이기선)
15. 윤영배 < 위험한 세계 >
스스로 머리를 깎아 '이발사'라는 별명이 있는, 그리고 옆집 아저씨와 같은 소박한 인상의 뮤지션은 누구도 감히 하기 힘든 이야기를 툭 하고 내뱉는다. 그의 앨범이 아니면 '선언', '구속', '점거'라는 노래제목을 어디서 목격할 수 있을까. 대상과 이데올로기를 직접 겨냥하고 있지만 거친 선동가와는 다르다. 목놓아 '혁명'을 부르짖기 보다는 시인의 필체로 비참한 현장을 진술하며, 유려하게 흘러가는 기타 연주로 음악적 완성도를 높인다. 겉으로는 평화로워 보이지만 실상은 욕망과 불안, 슬픔이 뒤엉켜 있는 위험한 세계. 그의 무기력하고 연약한 보컬은 소리 죽인 우리의 초상을 보는 것 같아 쓰리고 아프다. 목소리는 작지만 '크고 지르는' 목소리가 담지 못하는 '한숨'과 '비탄'의 여운을 남긴다. '흔한 사람이 투사되고 열사되는 흔치 않은 지금 이 순간' 그래서 공식적으로는 정치색을 드러내지 않는 것이 미덕이 된 시국에 그가 발표한 '소신'은 그를 음악가를 넘어 사상가로 만든다. (김반야)
16. 달파란 < 휘파람별 >
1998년, 두 번의 삐삐 프로젝트를 막 마친 달파란(강기영)이 본격적으로 전자음악에 적을 옮기며 만든 이 앨범에는 테크노에 대한 충실한 실험이 담겨있다. 사운드 구현 뿐 아니라 트랙 리스트 전체를 연주곡으로 채운 접근과 '휘파람 별'에서의 이야기를 테마로 한 콘셉트 앨범으로서의 기획도 또한 의미 있는 시도라 할 수 있다. 이정현으로 대표되는 당시 대중매체에서의 테크노 음악에서는 만나보기 힘든, 장르의 본류에 음반은 가까이 다가서 있다. 모하비, 트랜지스터 헤드 등의 아티스트들이 남긴 작품들과 함께 달파란의 < 휘파람 별 >은 한국 일렉트로니카의 초기 모델을 제시하는 명반으로 자리해있다. (이수호)
17. 럭스 < 우린 어디로 가는가 >
< 청년폭도맹진가 >와 더불어 '조선펑크'의 쌍두마차 격 앨범. 노브레인이 날카로운 젊음으로 씬을 도륙했다면 럭스는 묵직한 양손 망치로 인디 록 시장을 후려쳤다. 굳건한 철학의 가사를 뼈대로 달려나가는 25곡의 폭격은 완성도 면에서나 펑크 정신으로나 어디 하나 흠잡을 곳 없이 완벽하다. 울분과 격노를 눌러 담은 투쟁의 서사시는 '세월이 지나도 언제나 그대로'의 신념과 '전진', '새로운 역사를 써내려' 가겠다는 단단한 포효로 터져 나온다. 아워 네이션에 대한 동경 하나로 펑크 록에 일념 한지 8년 만에 이룩한, 펑크 키드의 쾌거였다. 비록 때를 가리지 못한 무지종자들로 인해 비난과 조롱의 대상으로 전락했지만 '나 이렇게 이 땅에 선채'의 정신만은 역사에 남아야 한다. (김도헌)
18. 갤럭시 익스프레스 < Noise On Fire >
항상 폭발하는 에너지를 뿜어내며 '탈진 록큰롤' 밴드라는 닉네임으로 유명한 갤럭시 익스프레스의 기념비적인 데뷔작이다. 인디 음악 신에서 잔뼈가 굵은 멤버들의 다져진 내공으로 끓어넘치는 청춘과 혈기를 2 cd라는 방대한 양으로 훌륭히 담아냈다. 견고한 리듬속에서 거침없이 유랑하는 자유스러움은 가히 매력적이다. 펑크, 개러지, 하드록, 헤비메탈 등 어느 한 카테고리에 포지셔닝 하기는 어려운 그들만의 오리지널리티를 확립하며 평단의 찬사와 대중의 인기, 두 마리의 토끼를 잡아낸 앨범이다. 갤럭시 익스프레스는 이 앨범으로 2009년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 록 음반상을 수상했고 국내외 유수의 뮤직 페스티벌으로부터 러브콜을 받았다. 그들만의 에너제틱한 록큰롤의 시작을 알린 수작이다. (윤석민)
19. 아소토 유니온 < Sound Renovates A Structure >
'We don't stop', 'Blow ma mind' 그리고 'Think about'chu' 등 앨범의 어떤 수록곡을 들어도 마치 아프로 아메리칸 그룹인 듯 소울, 펑크(Funk), 재즈 등 블랙 사운드가 총출동해 청각을 검게 도배한다. 원형 복원 작업인 듯 그 신통한 재현에 그 무렵 모든 음악관계자들이 경악했다. 팀의 조타수 김반장은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이란 명제를 폐기하고 '소울 펑크 등 이미 세계적인 것을 한국화하는 게 한국적'이라는 새로운 사고 아래 블랙 펑크의 한국화를 향해 돌진한다. 그 결과물이 이 지극히 흑인적, 포스트모던적, 탈(脫)국적, 반(反)한국적 그러나 '한국적인 (블랙 펑크)' 음반이다. 심지어 김반장의 보이스까지 '흑형' 같다. 인디가 시범하는 한국음악의 새 아이덴티티 실험이라는 점에서 소중한 개가. 그 도전만으로도 역사에 길이 남는다. (임진모)
20. 검정치마 < 201 >
검정치마는 말 그대로 인디씬의 인디였다. 공연장의 무명 생활을 길게 거치지도 않았고 난다 긴다 하는 대회의 입상자도 아니었다. 재미교포 출신 리더 조휴일의 영향 아래 자유분방 튀어나가는 사운드와 가사가 그들의 정체성을 규정할 뿐이었다. 고급 혹은 고가의 기술이 사용된 것이 아니다. 뛰어난 절창과 연주 실력이 있는 것도 아니다. 이 상태에서 검정치마는 디스코 펑크 포크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을 거친 질감으로 선보였다. 새것과 낡은 것, 날것과 재단된 것이 한데 뒤섞여 인디씬에서도 쉽게 찾을 수 없던 사운드를 선보였고 대중은 폭발적인 반응으로 응답했다. 2000년대 인디 음악이 변모할 길을 제시했던 < 201 >은 새로움에 대한 팬들의 관심과 갈증이 당시에 얼마나 컸는지 방증하는 작품이었다. (이기선)
첫댓글 최근 앨범이 없고 다 명반이라 꼽히는 것들이네요. 요즘 인디음악 중에 들을만 한거 없는지 궁금했는데.
개인적으론 그런대로 잘 뽑은 리스트인 것 같네요...그런데, 저기에 있는 목록 중에서 제가 가지고 있는 음반들도 있다는게 더 반가운건 왜인지...ㅋ
최근에도 좋은앨범 많이 나왔는데 아직 20주년 리스트에 들어가기엔 최근 1~2년은 이른가 보군요
허클베리 핀 6집나와랏
3개 가지고 있네요. 메탈도 바슬린정도 하나 끼워주면 좋았을텐데....
JUST POP b :)
재발매가 되면 사고 싶은 앨범이 몇장있는데 재발매는 안될거 같고 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