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설프게나마 내가 원하는 곳으로 이 얼어죽을 바퀴 네 개 달린 물건을 신고 갈 수 있다는 것 만으로도 만족해 하고
있을 줌, 내가 그랬던 것 처럼 나의 꼬임에 넘어가, 이 얼어죽을 것을 오늘 처음 배운 놈...
그놈이 이런 식으로 나에게 복수 아닌 복수를 할 줄이야...ㅡㅡ;
씨잉~~ 씨잉~~은 아니고, 허우적 허우적 거리면서 올림픽 공원을 싸돌아 다니고 있는데, 갑자기 그 사람의 생일이
기억 났다. 아... 요일 까지 안 알아 놓는 건데... 젠장, 핸드폰 하나만 봐도 금방 알 수 있는 것을...
어어어어... 야야... 좀 도와줘~~
녀석은 굴러가는 저 바퀴에 몸을 싣고, 균형 잃은 자신의 몸을 어떻게든 다시 원상태로 돌려놓기 위해서
양팔을 휘저으며 발악을 하고 있었다.
쒸댕아, 중심을 앞으로 잡으라니깐. 자세좀 낮춰라.
나는 도와주기(?) 위해서 녀석에게 다가 갔다.
그리고 나는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조금만 있어봐. 곧 편안하게 해주지." 란 말과 동시에 뒤에서 그 놈을 살짝쿵 밀어 줬다.
우헤헤헤헤...어때? 엉덩이가 땅에 붙어 있으니 편안하지? 네놈 안방 같지? 쿠해해해...
라고 할려는데...
이녀석... 무릎을 먼저 꿇고, 팔끔치를 땅에 닿고, 손 보호대가 있는 부분으로 땅을 짚은 후 고개 까지 옆으로 돌리는 것이
아닌가.ㅡㅡ; 이건 인라인 잘 타는 사람도 제대로 하는 이가 별로 없는...
좋은 말로 해서 낙법이다. 자식, 넘어지는 건 열심히 배우더니...
야... 너는 그냥 앞으로 너 잘하는 거나 계속해라.
앞으로 그렇게 계속 넘어져. 우해해해...
얍마, 그런데 오늘 며칠이냐?
야이, 쒸댕아. 오늘 며칠이냐니깐? 물어도 대답이 없는 그 녀석이 이상하다 싶어 처다보니, 아직도 완벽하게 넘어진
자신이 자랑스럽기 그지 없었나보다. 얼굴 표정이 완전히 인라인 신고 공중 네 바퀴라도 돈 놈 처럼 뭔가에
도취되어 있었다.
인라인 바퀴로 그 놈 머리를 스르륵~ 스르륵~ 긁어주면서...
야야야... 정신 차려!! 그건 나중에 여자 애들 많은 데서 보여줘라.
어...그래야겠다. 나의 멋진 낙법을. 우해해해...
(사실 넘어지는 동작, 옆에서 보는 사람 입장에선, 무지 추하다.;; 생각을 해봐라. 인라인 타다가 넘어지는 게
뭐 그리 자랑스런 일인지를...;;;)
야야..됐으니깐, 오늘 며칠인지나 욾어봐라.
어어...오늘 20일.
어...그래. 아직 삼 일 남았네.
이게... 일요일에 있었던 일이다.
하필이면 맨날 쓰던 일지도 다음날인 월요일엔 내가 쓰질 않아서, 그 날 종일, 날자에 대해서 무감각해져 있을 수 밖에 없었다.
저녁이 다 되어서야 짬을 낼 수가 있었던 난 메신저를 키자 카페 모 회원이 특유의 씨익~~~ 웃는 듯한 표정으로
하이를 외쳐 되는 것이다. 그 회원과 이런저런 잡담을 나누다 그때가 되서야 알았다. 오늘이 며칠인지를...ㅡㅡ;
아... 매신저 밑에 버젓이 떠 있는 그 숫자. 22일...
헐래벌떡 선물을 사기 위해서 랩을 나설려는데, 젠장젠장젠장....
담당 교수의 호출... 젠장젠장젠장...
실험 일정이 앞당겨 져서 오늘 밤새야겠다, 란 원망스런 한 마디.ㅡㅡ;
아... 내일인데... 한 번만 봐주세요. 울면서 메달리고 싶었지만, 이미 찍힐대로 찍힌 나이기에...
결국 그날 밤 꼬박 새우고, 다음날 점심 시간 때 밥 먹고 다들 잘 때 혼자서 학교에서 토깠다.;;
퀴퀴한 실험실에서 벗어나 밖을 나오니, 하늘도 그 사람의 생일을 축복하는지, 화창하기 그지 없었다.
저 구름은 은실 낭자 구름, 저 구름 룸메 구름... 을 혼자서 미친 놈처럼 입을 해~ 벌리며 교문 앞 버스 정류장
까지 걸어갔다.
일단 선물은, 전에 봐 뒀던 가디건과 마시마로 인형.
사실 전에 사뒀던 인형이 있는데, 아무래도 들고 가기 힘들 것 같아서 환불을 해버렸었다.(그 사람 닮았단 이유
하나로 샀었는데, 키가 1m10cm 다.ㅡㅡ; 다행이 아는 형이 하는 가게에서 사서...;;)
둘 중 어느걸로 할까 갈등 때리다가, 결국 꽃을 먼저 사기 위해서 한대 앞에 갔다.
오호 ~~ 내가 이런 델 오게 되다니... 졸업식 때도 꽃 살 돈으로 맛있는 거 사달라던 나인데...
그 사람의 생일을 조사한 바, 그 사람의 꽃말은 장미란다. 장미...
진열대에 가지런히 올려져 있는꽃병에 꽃혀 있는 이쁘기 그지 없는 것들이 나를 유혹한다. 오빠~~ 놀다가. 헉;;;;
장미 백 송이 주세요. 헉... 웬지 오늘 아니면, 이런 거 선물해줄 기회가 없을 듯 했다.
게다가 그 사람 꽃말이 장미라지 않는가.
꽃집 점원은 그 말을 듣자, 의미 모를 미소를 짓더니, 오늘 여자친구분 무슨 날이신가 봐요? 란 질문과 함께
어떤 걸로 하실 거예요? 연신 입가에 미소를 머금으며 물어본다. 그리고 그 웃음은, 비싼 걸로 사! 비싼 걸로 사!...
라는 최면을 거는 듯 했다.
나도 모르게 앞에 보이는 꽃 바구니를 가르키며, 이거 얼마예요?
점원은 속으로 "나이제~~" 를 외치는 듯 한 표정으로 대뜸 6 만원이요.
다른 데 보다 싸요. 다른 덴 이런 거 10 만원 넘고, 삼성동 같은 데 가면 15 만원 그냥 넘어요, 라며 마무리를 위해서
나를 계속 꼬득이기 시작한다.
나는 최면에 못 빠져 나온 상태로 침을 질질 흘리며, 이걸로 주세요, 하면서 바구니를 드는 순간.
헉;;;; 이게 뭐야. 들리질 않는 것이다.;;; 좀더 힘을 줘서 들어보니 그제서야 이 묵직한 것의 무게를 가늠할 수 있었다.
아아아... 에브리띵님이 말씀하시던 것이 이거였구나,란 생각과 동시에 나의 얇디 얇은 지값이 머릿속에서
"너 돈많다!!" 를 띠꺼운 목소리로 연발하는 게 아닌가.ㅡㅡ;
저저...이거 너무 무거운데요. 오늘 이거 들고 한참 싸돌아 다녀야 되는데...
저 다른 걸로 할게요. 순간 미소의 크기가 작아지는 그 점원. 그래도 아직 1 실점 밖에 하지 않았단 표정으로
다음 타자를 상대할 준비를 하고 있다.
저 이건 어때요?, 란 점원의 권유는 듣지도 않고... 나의 생활 신조인 "제일 싼 걸"로 주세요.
란 외마디만 조용히, 하지만 강하게 그 점원을 째려 보면서 말해 주었다. 마치 다시는 그딴 최면에 넘어가지 않겠다란
굳건한 의지를 내 보이기라도 하는 듯...
그럼 이걸로 하세요. 마치 마무리로 나와서 투 아웃 만루 상황에서 홈런이라도 맞은 투수 처럼 망연 자실해 하며
그야 말로 꽃만 백 송이인 다발을 가르키는 게 아닌가? 가격은 3만원... 이걸 사, 말어를 혼자서 갈등 때리고 있는데...
이건 정말 아니다.;;; 저 후질근 하면서도 촌스런 포장이 꼭 나를 보는 듯한 자괴감에 빠져들게 한다.
저저저.... 저 옆엔 건 얼마예요? 은실 낭자를 닮은 화려하면서도 싱그런 꽃 다발을 가르키며 물어봤다.
순간 점원의 눈 빛은 야구장 담장 밖에 까지 넘어갔던 공이 바람을 타고 사쁜 사쁜 우익수를 향해 돌아오는 듯한
긴장감 넘치면서도 실락 같은 희망이라도 본 듯이, 최대한 작은 목소리로... 오호호호호...마아아안워닝요.
라고 말 하는 게 아닌가. 그러면서, 이건 들어 보세요. 가벼워요. 저것 보다 "싸"요. 라며 꽃바구니를 가르킨다.
들어 보니 딱이다. 별로 무겁지도 않은 것이, 게다가 꽃바구니 보다 싸다잖은가.
그렇다. 오늘의 나는 수면부족과 과로, 그리고 꽃집 점원의 최면으로... 제 정신이 아니었다.
꽃 한 다발에 오 만원이라니.....;;;;;; 그 돈이면 일주일 밥 값인데...;;;
아 가뜩이나 이번 달 연구 지원비 제대로 안나와서 궁한데...;;;;
아 가뜩이나 한 달에 한 번 휴가 나오는, 군대 가긴 간 건지 조차 의심스런 후배 녀석 술 사준 덕분에
더욱더 궁한데...
꽃다발을 만들려면 시간좀 걸린다란 점원의 말을 듣고, 길 건너 편에 있는 팬시점에 괜찮은 악세사리라도 있을까 싶은
마음에 들어가는 순간. 들고 가기 힘들 거 같아서 참고 있었던 그 곰팅이 녀석이 거기서 쪼개고 있는 것이 아닌가.ㅡㅡ;
그 쪼개고 있는 녀석을 보니 그 사람이 다시 생각이 났다.
아... 이 녀석을 침대에 놔두고, 잘 때마다 내 생각하면서 꼭 껴안고 잘 그 녀를 생각한 게 아니라, 사실 무지 내구성이
좋아보이는 녀석이었다. 그녀가 열받는 일이 있을 때마다 갖은 구타를 다 해도 참아낼 수 있을 거 같다란 생각에 샀던 건데...
이제 보니 녀석의 웃음이, 좀전의 그 꽃가게 점원의 웃음과 같다.
녀석이 다시 " 나를 사가. 나를 사가" 하면서 나를 홀리기 시작한다.
다시 정신이 몽롱해진 난, 입에 침을 질질 흘리며, 저걸로 주세요.라면서 그 곰팅이 녀석을 가르킨다.
그리고... 예산으로 7 만원 잡았던 내 지갑에서 9만5천원이 가을 날 바람에 낙옆 날리듯 지갑에서 날라간다.
뭐가 그리 좋은지. 이 돈이면 보름치 밥값인 것을...ㅡㅡ;;;
결국 예산의 두 배가 넘는 돈을 쓰고 만 나.
이 놈을 어떻게 평택 까지 날라야 되나, 하면서 만원 지하철 안에서 꽃다발을 사수해 가면서 고민을 해봤지만
답이 나오질 않았다. 다행히 평택행 고속 버스는 한산했고, 곰팅이 녀석과 꽃 다발은 맨 뒷좌석에 고이 모셔 놓을 수가
있었다.
평택에 도착해서, 버스를 두 번 더 갈아 탄 후...
이제 부터가 전쟁이다. 앞으로 30 분을 더 걸어가야 된다.;; 오후의 날씨는 나 여름 아직 죽지 않았어, 라고 말하는 듯 했다.
아...이럴 줄 알았으면 옷 좀 가볍게 입고 오는 건데...
모자티가 왠말이더냐. 아;;;;;
그냥 택시 탈 걸... 하는 후회가 머리를 맴돌았지만
이걸 받고 환하게 웃음 지을 그 사람을 생각하면 이건 고생도 아니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등에 무겁게 짊어지고 오던 인라인으로 갈아 신고, 가방 끈을 최대한 널널하게 해서 곰팅이 녀석을 가방에
고정시킨 후 꽃다발을 가슴에 안고, 허우적 거리면서 가기 시작했다. 다행히 내리막 길이 보였고, 최대한 쫀 자세로
몸을 웅크리고 내려가는데... 순간 옆에서 자동차를 실어 나르는 카캐리어가 획~~ 지나가는 게 아닌가.
자동차가 진가면서 일으킨 바람에 나는 앞으로 고꾸라졌고, 그 순간에도 꽃다발을 지켜 낸 내가 자랑스러웠다.
X팔 카 캐리어 새끼. 락다운 시켜 버릴까부다.
아니지... 아니지... 오늘은 신성한 날(?)이 아니던가. 그냥 너그런 웃음을 한 가득 지으며,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고맙게도 곰팅이 녀석은 가방에 잘 매달려 있어 줬고, 꽃다발도 무사하게 나에 품안에서 그 먼지와 진동을 참아줬다.
회사 경비실에 도착하자, 보안업체 직원이 나의 몰골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게 아닌가.
머리는 땀에 절어 둘러 붙었고 입에선 연신 거친 숨을 내쉬고 있는 나.
그래도... 그래도... 무사히 도착해 냈다란 안도감과 은실 낭자의 생각...
결국 무사히 경비실에 맡겨 놓을 수 있었고, 인심 좋은 아주머니의 차를 얻어타고 버스 터미널 까지 올 수가 있었다.
하지만, 왠지 그냥 가기 아쉬웠다.
저 멀리서라도 그 사람의 얼굴을 보고 싶었다. 아니 내가 준 꽃 다발을 안고 있는 그 사람의 모습을 더 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결국 난 그 사람이 퇴근하는 시간 까지 피시방에서 기다리기로 했다. 스타를 실행할려는 순간, 오늘만은 살생을
말아야지... 오늘은 은실 낭자 탄생일 ㅡㅡ; 아닌가.
저글링도 다 살아가는 이유가 있는 것을...
두어시간 동안 새로 올라온 글도 없는 알럽과 다른 카페들을 들락 거리면서 지리하게 기다리다, 드디어 그 사람의 퇴근
시간에 맞춰서 길목을 지키고 있었다.
십 분, 이십 분, 삼십 분... 한 시간... 그렇게 나는 버러우 된 한 마리의 저글링이 되어 옆에 누가 지나가던
그 사람만을 기다렸것만...
그 사람은 볼 수가 없었다. 아...
아쉬운 마음으로 평택 까지 가는 막차를 타고 집에올 수 밖에 없었다.
무척 피곤했나보다. 서울 까지 어떻게 온지도 몰랐는데, 다른 내리는 사람이 "아저씨!! 다 왔어요. 내리세요."
라며 고맙게 깨워준 꼬마녀석 덕분에 잠에서 깰 수가 있었다.
집에 와서 컴을 켰다. 그리고 편지를 확이하는 순간, 새로 온 편지가 한 통 있는 게 아닌가.
두근 두근 거리며, 확인하니 역시 그 사람이었다. 한 순간 아쉬웠던 마음이 다 달아나는...
고맙다란 말과 함께 편지 안에는 그 사람의 웃는 모습이 가득했다.
얼마만인가. 그 사람이 나에게 이렇게 웃어준 것이...
첫댓글 고민많이 하시는것 같으시더니 좋은일이 있으셨네요.. 근데 읽다보니 왠지 참 가슴한편이 아리네요...계속 좋은만남 이어가시기를 빌겠습니다..
그녀 퇴근길에 만나셨다면 더 좋았을 것을~ 하여간 룸님의 그 행동과 맘이 부러울뿐입니다. 내 곁에 있을때 더 잘해줄걸... 부끄럽네요 제자신이...
처절하십니다.. 그래도 이번엔 좋은 결과인 듯 보이네요. 쫄면만 사주시면 그런 일 제가 배달같은 거 해드릴텐데..
으흠 으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