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오랫동안 함께 해 온 밴드 친구들과 초대를 받아 공연했습니다. 그런데 공연이 끝나고 소속사 직원분들, 연주자들과 함께 식사하는 식당에서 고추장찌개가 나오더군요. 얼마 만에 눈앞에서 보는 고추장찌개인가요! 그러고 보니 해운대에 살면서 고추장찌개의 존재를 아예 잊고 있었더라고요. 진정한 서울식 입맛이라 불리던 저희 아버지의 취향으로 우리 집에는 아주 어린 시절부터 고추장찌개가 식탁에 빠진 적이 없었거든요.
하지만 부산을 비롯한 어떤 지역에는 이 고추장찌개가 상당히 생소합니다. 가끔 부산의 지인들과 음식 얘기를 나눌 때 "그런데 형, 서울 사람들은 왜 고추장찌개를 먹어요?" 이런 질문을 받을 때가 종종 있습니다. 부산의 음식과 문화를 좋아해서 이곳에서 사는 저로서는 이런 질문이 너무 재미있습니다. 그런데 더 재미있는 것은 말이죠. 그날 제가 이 고추장찌개를 떠먹는 순간, '와, 너무 맛있다. 이게 얼마 만이야!'라는 생각이 든 거예요. 그러면서 내가 아무리 부산의 음식과 문화를 좋아하는 사람이지만, 결국에는 서울 사람이었던 것인가? 하는 자책 아닌 자책이 들더군요.
그 자리에서 고추장찌개는 아예 손대지도 않던 부산 출신 분들과 이 얘기를 나누며 한참 혼자 웃었더랬지요. 그러고 보면 사람들에게는 정말 결코 바뀔 수 없는 문화나 취향의 공감대가 있는지도 모릅니다.
대부분의 대중음악 콘서트가 12월에 열리는 것이 아닌가 할 정도로 연말에는 그 수가 상당합니다. 분명 누군가 그렇게 정해놓은 것도 아닌데 말이죠. 물론 12월에 열리는 콘서트가 어울려서 때를 기다린 아티스트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과 상관없이 수많은 대중음악 공연이 연말에 집중되어 열리는 문화는 솔직히 참 어색합니다. 라이브 공연이 그 아티스트의 음악과 직접 소통하기 위해서라기 보다, 꽤 오랫동안 우리에게 다른 이유로 자리 잡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요?
음악이 정말 휘발유처럼 빠르게 소비되고 음악이 음원으로 불리는 시대, 이러한 조짐은 이미 전부터 꽤 오랫동안 국내 특유의 문화로 서서히 자리 잡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오랜만에 만난 관객분들이 무척이나 고맙고 반가웠음에도 공연의 마지막으로 연말 신년인사를 건네고 있는 저 자신에게 어색함을 느꼈던 것도 이런 이유에서가 아니었을까요.
앨라배마 셰이크스(Alabama Shakes)의 음악을 들을 때면 저 자신에게 깊이 스며들어 바뀌지 않는 음악과 감성의 취향이 무엇인지 깨닫게 해 줍니다. 2009년 활동을 시작한 미국 4인조 밴드 앨라배마 셰이크스는 보컬과 기타를 맡은 브리타니 하워드 특유의 목소리와 개성 있는 음악으로 엄청난 반향을 얻고 있는데요. 국내외 평단과 음악 마니아들에게 한 해 가장 뜨거운 호응을 얻었던 아티스트로 이들을 꼽는 데는 모두 이견이 없을 것입니다.
솔 감성이 충만한 이들의 루트락 사운드를 듣노라면 어린 시절부터 제가 들어왔던 모든 음악이 다 녹아있는 듯하지요. 그래서 오늘날의 감성으로 새롭게 포장된 이들의 옛 사운드는 마치 새 단장을 마친 내 집에 온 듯한 포근함과 신선함을 준답니다. www.pudditoriu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