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자의 물이 있는 풍경 -몽상(夢想)의 표정
1. 고요한 자연의 단상 물은 꿈을 꾼다. 그 꿈속에서 지나간 과거와 오지 않은 미래가 뒤 섞이며 저 먼 시 ․ 공간의 빗장을 연다. 물은 생명이 잉태하고 성장하고 성숙하는 힘이며, 생명의 신화(神話)이다. 이 흘러가는 물의 마음에는 인간을 존재론적인 성찰로 이끄는 사유로의 힘을 내포하고 있다. 물은 인간정신의 순도 높은 밀도를 추출해내며 문학적 상상력, 시적 상상력을 자극한다. 물을 주제로 그리는 작가, 김정자는 이러한 시적 상상력의 세계를 보여준다. 강물이 만난 대지는 고요한 시간의 흐름과 계절이 지나가는 순간의 딘상들로 가득하다. 작가는 섬세한 점으로 색을 표현하고 화면을 만든다. 점들의 수많은 뉘앙스들이 모여 바람의 지나간 물결과 햇살이 머문 흔적을 완성한다. 물결은 대지(大地)와 만나고, 길(道)이 되고 들(野)이 되어 꽃을 피운다. 아득한 대지의 향연. 물에 반영된 우주의 숨소리가 가슴 깊은 그리움으로 살아난다.
많은 예술에서 물의 몽상, 대지의 몽상을 발견한다. 이는 상상과 창작에 있어 물이 깊고 넓게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은 대지의 지평선으로 확장된다. 사실 화가의 시선에 맞닿은 자연, 우주, 세계는 비로소 드러난 아름다움이며 존재의 가치에 관한 깨달음이다. 이러한 세계는 스스로 눈을 활짝 뜨고 인간을 응시한다. 화가와 세계의 시선이 마주한 그 지점이 바로 존재론적인 인식의 순간이며, 화가의 자아(自我)가 투영된 상태이다. 세계를 응시하는 시선은 곧 자아의 존재를 깨닫게 되는 내면의 눈, 정신의 눈인 것이다. 물은 이러한 몽상의 강력한 이끌림으로 가는 매개체로서 작용한다. 물, 불, 공기, 대지의 4가지 요소가 인간의 예술적 몽상을 자극한다고 할 때, 작가의 화작(畵作)들은 물에서 대지로의 물질적 상상력(Material-Imagination)의 대표적인 예(例)라 볼 수 있다. 즉, 이러한 매개물은 정신을 몰입의 단계로 승화시키고 고요한 미적관조로의 순간을 경험하게 한다.
2. 몽상(夢想)의 표정: 향수(鄕愁) 사실, 작가의 화면에는 독일의 사진가 안드레아스 거스키 (Andreas Gusky)의 라인강 시리에서 느낄 수 있는 고요함과 그리움, 아득함이 공존한다. 이 사진가의 세계적인 인기에서도 볼 수 있듯이, 우리는 인간의 감성을 자극하고 진한 향수를 맛보게 하는 화면으로의 뿌리 깊은 로망이 존재하고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어쩌면 인간은 태생부터 그리움이라는 감성을 멍에처럼 짊어지고 나왔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따라서 물의 수평선, 대지의 아득함은 농도 짖은 자아의 성찰을 동반하며 대지의 선(線)만큼 끝도 없는 사유(思惟)의 고리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이러한 자연의 의미 하나하나의 성찰들은 물이 있는 풍경 주위로 일어나는 맑고 고요한 세계로 완성된다. 기러기는 하늘을 날아가고 키가 큰 나무는 바람을 맞이한다. 풀밭에 날아 앉은 작은 새는 꿈을 꾸는 듯 말이 없다. 따라서 작가의 화면에서 간취되는 자연은 작가의 존재론적인 성찰의 결과인 것이며, 자아가 몰입된 또 하나의 자신인 것이다. 점과 선으로 만들어낸 풍경은 표현의 수고로움을 동반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 수고로움 속에서 작가는 대상에 자신을 이입하고 몰입하고 관조함으로서, 그리기의 즐거움을 음미하고 있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무한한 자유의 세계로 들어가고 있음을 알게 된다. 그리기의 즐거움에서 오는 절대자유에로 들어가 유희하는 것은 인간내면의 고독이나 슬픔과 같은 부정성의 상처들을 길어 올려 치유하고 정화하는 과정이기도 한 것이다. 이러한 정신의 자유는 현재의 나를 극복하고 삶과 이상(理想)을 교차시킴으로서, 또 하나의 삶으로 재탄생시키는 과정인 것이다. 따라서 작가의 화면은 몽상의 증표이자 확인이며 그리기 속에서 승화된 자유에의 흔적인 것이다. 작가의 정신이 물결, 나뭇가지, 바람, 하늘 곳곳에 산포되어 있다. 그리기 속에서 녹여낸 정신의 자유가 산포되어 있는 것이다. 이러한 몽상 속에서 아득한 그리움이 발견된다. 향수(鄕愁), 그것은 오지 않은 미래의 그리움일 수도 지나가 버린 과거, 잃어버린 어떤 대상이나 시간의 그리움일 수도 있다. 이는 인간에게 던지는 휴식과 위안으로서의 그리움으로 다가온다. 노스텔지아의 향기가 강하고 깊다. 이러한 향수의 흔적들은 시(詩)적이고 문학적이다. 시는 몽상이고 몽상은 관조이며 예술인 것이다. 시가 있는 고요하고 서정적인 풍경에는 강물처럼 오래고 깊은, 실제의 삶속에서 추출되고 쌓여진 작가의 사유의 궤적을 본다. 아서 단토(Arthur Danto)는 “하나의 언어를 상상하는 것은 하나의 삶의 형식을 상상하는 것이다”를 기술하며 삶의 형식에 관해 고민한다. 그에게 있어서 삶의 형식이란 작가가 직접 살아진 것이며 예술은 작가의 삶의 형식 속에서 어떤 구실을 맡고 있는 꽤 복잡한 의미체계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예술이 삶 속에서 작용하는 의미체계라고 볼 때, 작가의 작품들을 관통하는 드넓은 수평선과 대지에서의 그리움은 숨을 쉬듯 살아있으며, 끊임없이 너와 나를 성찰하며 삶의 의미를 추출해내고 있다. 이러한 작가가 구현해낸 몽상의 표정에는 통시대적인 정신의 맥을 아우르는 보편성과 현대인의 정신을 환기시키는 위안이 담겨져 있다. 이것이 작가가 획득한 작품의 가치인 것이다.
- 長江 박옥생, 미술평론가
김정자
2006. 제25회 대한민국 미술대전 입선 (국립현대미술관) 2011. Good Morning 2012 새아침전 (갤러리 라메르, 서울) 2012. 개인전 (인사아트센터, 서울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