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례자 요한의 죽음
<연중 제17주간 토요일 강론>(2026. 8. 1. 토)(마태 14,1-12)
(성 알폰소 마리아 데 리구오리 주교 학자 기념일)
<그때에 헤로데 영주가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시종들에게,
“그 사람은 세례자 요한이다. 그가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난 것이다. 그러니 그에게서 그런 기적의 힘이
일어나지.” 하고 말하였다. 헤로데는 자기 동생 필리포스의
아내 헤로디아의 일로, 요한을 붙잡아 묶어 감옥에 가둔
일이 있었다. 요한이 헤로데에게 “그 여자를 차지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하고 여러 차례 말하였기 때문이다.
헤로데는 요한을 죽이려고 하였으나 군중이 두려웠다.
그들이 요한을 예언자로 여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마침 헤로데가 생일을 맞이하자, 헤로디아의 딸이 손님들
앞에서 춤을 추어 그를 즐겁게 해 주었다. 그래서 헤로데는
그 소녀에게, 무엇이든 청하는 대로 주겠다고 맹세하며
약속하였다. 그러자 소녀는 자기 어머니가 부추기는 대로,
“세례자 요한의 머리를 쟁반에 담아 이리 가져다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임금은 괴로웠지만, 맹세까지 하였고
또 손님들 앞이어서 그렇게 해 주라고 명령하고,
사람을 보내어 감옥에서 요한의 목을 베게 하였다.
그리고 그의 머리를 쟁반에 담아다가 소녀에게 주게
하자, 소녀는 그것을 자기 어머니에게 가져갔다.
요한의 제자들은 가서 그의 주검을 거두어 장사 지내고,
예수님께 가서 알렸다.(마태 14,1-12)>
1) 예레미야 예언서에 이런 고백이 있습니다.
“‘그분을 기억하지 않고, 더 이상 그분의 이름으로 말하지
않으리라.’ 작정하여도, 뼛속에 가두어 둔 주님 말씀이
심장 속에서 불처럼 타오르니, 제가 그것을 간직하기에 지쳐
더 이상 견뎌 내지 못하겠습니다(예레 20,9).”
이 말은,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다가 박해를 받는 것보다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지 않는 것이
더 힘든 일이라는 고백입니다.
세례자 요한도 그런 심정으로 회개를 선포했을 것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는 일에는 박해를 피하기 위한
‘세속적인 융통성’이나 ‘처세술’은 걸림돌이 될 뿐이고,
그런 요령을 부리는 것은 죄짓는 일이 될 뿐입니다.>
세례자 요한과 헤로데가 직접 만난 일이 있었는지,
헤로데와 헤로디아의 결혼을 그들의 면전에서 꾸짖었는지,
확실한 상황은 알 수 없습니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 앞에서 헤로데의 결혼을
공개적으로 여러 번 비판했을 가능성이 크고, 그것을
헤로데의 신하들이 듣고서 헤로데에게 전했을 것입니다.
물론 직접 만날 기회가 있었다면,
면전에서 비판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어떻든 헤로데는 세례자 요한 때문에 자기가 공개적으로
망신을 당했다고 생각했을 것이고,
요한의 비난을 왕권에 대한 도전으로 생각했을 것입니다.
2) 복음서에 묘사되어 있는 세례자 요한의 모습은,
박해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아닌 것은 아니라고 말하는
‘참 예언자’의 모습입니다.
세례를 받으려고 온 바리사이들과 사두가이들에게
“독사의 자식들아, 다가오는 진노를 피하라고 누가 너희에게
일러 주더냐?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어라(마태 3,7-8).”
라고 말하면서 그들을 엄하게 꾸짖은 일은, 세례자 요한이
어떤 예언자인지를 잘 나타내는 좋은 예가 됩니다.
그 바리사이들과 사두가이들은 세례자 요한을
박해하려고 온 사람들이 아니라, 요한의 선포를 듣고
세례를 받으려고 온 사람들입니다.
그런 상황이라면, 누구든지 어서 오라고 환영하는 말을
할 것이라고 예상하거나 기대할 것입니다.
그런데 세례자 요한은 환영하는 말을 하기는커녕
‘독사의 자식들아’ 라고 꾸짖었습니다.
그런 모습에 대해서, 그 자신이 박해를 자초했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참 예언자’는 ‘빈말’을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3) 당시에 율법을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헤로데와
헤로디아의 결혼에 대해서 “그러면 안 된다.” 라고
생각했을 텐데, 권력이 무서워서 아무 말도 못했을 것입니다.
헤로데 자신은 그러면 안 된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을까?
그 자신도 당연히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율법을 모른다고 해도, 상식적으로, 그것이 죄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죄인 줄 알면서도 죄를 짓는 사람을 꾸짖으면, 죄인 줄
몰라서 죄를 지은 사람보다 더 크게 반발하고
꾸짖는 사람을 미워하는 것을 흔하게 봅니다.
더욱이 헤로데는 “나는 왕이니까, 죄가 되는 일이라 해도,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다.” 라고 생각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4) 오늘날에도 세례자 요한과 같은 예언자들이 있고,
요한이 박해를 받은 것과 같이 박해를 받는 일도 많습니다.
반대로 말하면, 오늘날에도 하느님의 참 예언자들을
박해하는 헤로데 같은 자들이 있고,
권력에 아부하면서 그런 자를 추종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회개하라는 말은 듣기 싫어하고,
복을 빌어 주는 말만 듣고 싶어 하는 것은
그런 자들의 공통점입니다.
어느 시대에나 회개하라고 말하는 예언자는
환영받지 못하고, 현세적인 복을 많이 받는 방법만 말하는
거짓 예언자는 환영받고 명강사로 대우받게 됩니다.
그것은 우리 교회 안에서 흔히 있었던 일이고,
지금도 자주 볼 수 있는 일입니다.
오늘날에도 우리가 세례자 요한이 했던 말들을 읽고,
또 그의 순교를 기억하는 것은, 그의 회개 선포가 아직도
유효하기 때문이고, 우리의 회개가
아직도 완성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 송영진 신부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