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파구 잠실동 현대 아파트 및 주변 지도>
잠실 현대 아파트 101동 및 그 앞 주차장(오늘 붕괴됨) /사진자료 (스피드 뱅크에서 캡쳐)
< 붕괴된 101동 앞 주차장>
잠실 현대 아파트 건물 이력
준공년월 : 1990년 9월.
시공사 : 현대산업개발
난방구조: 도시가스 개별난방
이명박의 현대계열 주요 약력
1978년~ 1992년 현대 건설 사장
1978년 한국도시개발(현 현대산업개발) 대표이사 사장 겸임 . 언제까지 겸임했는지는 미확인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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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오후 1시24분께 서울 송파구 잠실동 현대아파트 101동 앞 지상 주차장 아래 기계실과 연결된 지하공간이 무너져 주차돼 있던 승용차 2대가 10m 아래 지하공간으로 추락했으나 인명피해는 없었다.
붕괴된 지하 주차장의 면적은 가로 10m, 세로 10m로 바로 옆 놀이터의 펜스와 스티로폼 재질의 바닥 타일도 일부 무너진 지하공간으로 함께 떨어졌다.
아파트 관리사무소 관계자는 “오후 1시께 기계실을 점검하러 지하에 들어갔는데 천장에서 콘크리트가 떨어지기 시작해 급히 지상으로 올라와 보니 주차장 바닥에 금이 가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아파트 입주민에게 연락해 근처 차량을 다른 곳으로 옮기도록 했지만 지하공간에 떨어진 차 두 대는 주인에게 연락이 닿지 않았다”고 말했다.
붕괴 현장에서는 3시간 이상 지난 오후 5시까지도 먼지와 연기가 올라왔으며 경찰이 사고현장의 출입을 통제했다.
아파트 주민 조모(39.여)씨는 “직장에서 근무하다 주차장이 무너졌다는 연락을 받고 달려왔다”며 “놀이터가 바로 옆에 있는데 아이들이 놀고 있었으면 정말 큰일이 날 뻔했다”고 말했다.
아파트의 전기와 수도 공급은 모두 끊겼고 구청과 소방서가 펌프 6대를 동원해 지하 기계실의 물을 빼내고 있다.
송파구청은 한전과 협의해 아파트에 전기를 공급할 방법을 모색하고 있으며 급수차를 지원하고 공동화장실 10곳을 설치할 예정이다.
소방서는 폭우로 주차장 주변의 지반이 약해져 기계실과 연결된 지하공간이 무너져 내린 것으로 보고 정확한 사고 원인을 조사 중이다.
경찰은 아파트 건설사를 상대로 부실공사 여부를 수사할 계획이다.
// 보너스 자료
건실했던 현대 건설 파산 원인
이명박의 무리한 이라크 공사 수주, 현대건설 파산의 직접적 원인
공교롭게도 현대건설이 이라크에 처음 진출한 것은 이명박이 현대건설 사장에 취임한 직후인 1978년부터다. 그러나, 그 후 이라크는 1980년부터 88년까지 무려 8년간 이라크와 전쟁을 벌였고, 같은 기간 쿠르드족을 화학무기까지 써가며 대량 학살하여 국제적으로 고립되기 시작하였고, 급기야는 1990년과 1991년에 걸쳐 걸프전쟁이 벌어지게 되었고, 이로인해 이라크 경제는 완전 초토화되었을 뿐아니라 경제제재 조치로 인해 원유 판매에 제동이 걸려 대외지불능력에 결정적 문제가 생기는 상황이 발생하였다. 결국 이것이 현대건설 이라크 미수금으로 이어졌으며, 바로 이것이 현대건설 파산의 직접적인 원인이 된 것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현대건설의 미수금이 당시 이라크에 진출했던 한국기업 미수금 총액의 90%를 차지하고 있었고, 이라크 진출 전세계 민간기업 채권액의 40% 가까이를 차지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당시 이라크 건설시장에서 현대건설의 시장점유율이 40%였다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 1980년대에 지속된 이라크-이란 전쟁으로 인해 외국기업들은 1차 탈출 행렬일 이루었고, 90년대 초의 걸프전쟁으로 인해 대부분의 외국기업들은 모두 이라크를 떠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건설만 꿋꿋이 이라크에 버티고 앉아서 무리한 프로젝트를 수주하고 공사를 강행해나갔던 것이다. 현대건설 여동진 해외사업본부장은 작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라크 건을 계기로 아무리 규모가 큰 공사라고 하더라도 공사비를 받는데 어려움이 있다면 공사를 수주하지 않는다는 확고한 원칙을 갖게 되었다"고 밝혔다. 얼마나 뼈저린 반성을 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참고로 80년대 이라크에서 진행된 공사를 큰 것으로 몇개만 뽑아보면 알무사이브 화력발전소 공사, 이라크 국립메시병원 공사, 북부철도 공사, 하이파 하우징 공사, 400kv 변전소 공사, 키르쿠크 상수도 공사, 바스라 항만 공사 등이 있다. 이들 대부분이 ´저가 출혈경쟁´으로 인한 적자 공사이며 그나마도 거의 모두가 현대건설 이라크 미수금 형태로 남아있다.
물론, 이명박 측은 현대건설 부도가 2001년에 일어난 일이고 자신은 1992년까지만 현대건설 CEO 자리에 있었기 때문에 자신과 무관한 일이라고 이야기할 지도 모른다. 그러나, 자신의 재임기간 중 수주한 공사에 대해 재임기간 중 끝내 채권을 회수하지 못하고 미수금으로 남긴 채 회사를 떠났다는 것 자체가 CEO로서는 중대한 결격사유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다.
현대건설 직원들의 안전과 생명은 ´안 중에도 없었던´ 이명박 회장
더욱이, 대부분의 외국기업들이 이라크에서 철수를 마쳤던 1990년대 초까지 직원들에 대해 이라크 잔류를 지시하며 공사를 강행하도록 한 것은 ´미친 짓´이라고 표현할 수 밖에 없다. 한 마디로 ´묻지마 수주´와 ´묻지마 시공´이 기업의 재무구조에 치명타를 입혔을 뿐아니라 직원들의 안전과 생명마저 위협한 처사라고 볼 수 밖에 없다. 현대건설 부도 문제에 대해서는 재임기간을 이유로 빠져나간다고 하더라도 자신의 CEO 재직기간 중 벌어진 걸프전쟁 당시의 무모함에 대해서는 피해갈 수 없을 것이다.
걸프전쟁 당시 이라크 현장에 남아있던 현대건설의 한 직원은 자신의 블로그에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1990년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침공하며 발발된 걸프전쟁은 이라크에 있던 모든 외국인을 공포에 떨게 하였다. 이라크는 화학무기로 위협하고, 미국은 화학무기를 쓸 경우 핵무기를 사용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을 떼니 이라크에 있던 외국인들은 모두 철수하게 된다. 하지만 현대 직원들은 본사의 이명박 회장으로부터 철수하라는 명령이 떨어지지 않아 공포에 떨며 영국 BBC라디오에 의지하여 하루하루를 지나게 되었다.
결국에는 미국이 이라크를 공격하던 91년 1월 14일가지 이라크의 북부 키르쿠크에서 나오지 못하고 눈앞에서 벌어지는 총격적을 천장 속에 숨어서 기도를 하며 볼 수 밖에 없었고, 결국 이라크인 직원의 도움을 받아 이라크 북부 슐레마니아를 거쳐 시리아와 이란을 거쳐 귀국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본인은 전쟁이 나기 하루 전인 1월 13일 바그다드서 택시로 약 1,000km를 달려 요르단 암만을 통해 귀국했습니다."
이와같은 이명박의 직원 경시 풍조는 사우디 쥬베일 항만공사 당시의 상황을 다룬 서프논객 ´두 아들 아빠´님의 <´궁물´ 이명박의 흉물스러운 신화!>에서도 잘 나타나닜다. 직원들의 불만으로 초래된 소요사태에 대해 사우디 공권력을 동원하여 무력진압한 것이 바로 그 사건이다. 궁금한 분은 한번 읽어보시기를...
첫댓글 해외토픽 감이다.
대통령이 부실 공사 주범 이라니... 어휴 챙피 하다... 부실 공사 주점 되나.. 부패 원조.. 쥐박이..
박사모카페에서 이런 글이 박근혜님한테 도움이 될지...한번더 생각해보세요 건전한 비판은 상관없지만 쥐00등 용어는 너무 심한것 같네요 같은당인데 서로 대립각세워서 누구한테 도움이 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