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나리[학명: Oenanthe javanica]는 산형과의 여러해살이풀이다. 근채(芹菜) · 수근(水芹) · 수점(水蔪) · 수영(水英), Javan, Waterdropwort 라고도 한다. 물미나리는 수근(水芹), 밭미나리는 한근(旱芹)으로 나누기도하고, 재배하는 물미나리와 야생인 돌미나리로 구분하기도 한다. 돌미나리는 물미나리에 비하여 줄기가 짧고 잎사귀가 많다. 영양적으로 큰 차이는 없지만 향이 진하고, 줄기 속이 차 있어 씹는 질감도 좋다. 식용, 약용, 정수식물다. 꽃말은 '성의, 고결'이다.
미나리는 한국인의 강인한 근성을 잘 드러내주는 특별한 채소다. 연꽃처럼 더러운 물을 정화하면서도 사철 청정한 푸른빛과 향기를 유지한다. 악조건을 이기고 다시 일어나는 한국인의 악바리 근성을 똑 닮았다.
남도의 봄은 미나리와 함께 온다. 미나리를 된장에 찍어 구운 삼겹살과 함께 먹으면 입안 가득 봄의 향기가 퍼진다. 그 맛은 먹어본 사람만 안다. 한의학에서 봄의 색깔은 푸른색이다. 식물들은 겨우내 땅속에 움츠려 있다 자기보다 몇백 배 무거운 흙을 밀어 올리고 새싹을 틔운다. 예부터 조상들은 땅을 뚫고 올라오는 이 거대한 봄의 기운을 ‘청룡’이라 불렀다. 봄의 빛깔인 푸른색과 힘의 상징인 용이 합쳐진 이름이다.
조선시대 왕들은 우주의 마음인 음양오행을 토대로 한 12첩 반상과 오색(五色)과 오미(五味)를 밥상의 법도로 삼았다. 입에 맞는 맛있는 음식보다는 성리학적 군주론의 바탕인 도덕적 밥상을 선택했다. 이기심보다는 중용의 선정을 베풀겠다는 철학이 왕의 밥상에 담긴 것이다. 음식을 먹는 것 자체가 왕에겐 도덕적 수행이었다.
봄의 기운을 가득 담은 푸른색 미나리의 ‘미’는 물을 뜻한다. 미리내(은하수)의 ‘미’, 미더덕의 ‘미’도 같다. 은하수는 ‘별의 강’이고 미더덕은 물에서 난다. 한자로도 수근(水芹)이다. 봄철 나무는 물이 올라야 성장한다. 물은 봄을 생생하게 살아 오르게 하는 든든한 뒷배다. 미나리는 봄의 기운을 물을 통해 우리 몸에 전달한다. 간의 기능을 도와 춘곤증을 없애는 좋은 채소다. 단순한 식도락에도 봄을 준비하는 깊은 지혜가 숨겨져 있다. 미나리에 얽힌 고사도 있다. ‘미나리는 사철이요 장다리는 한철’이 바로 그것. 숙종 때 인현왕후와 장희빈의 권력투쟁 당시 대중은 인현왕후를 사철 푸른 미나리에 빗대 편을 들었다. 사실 숙종은 즉위 초기 현대의학에서 말하는 바이러스성 간염으로 황달을 앓으며 고생했다. 심지어 생을 마감할 때도 간경화 증상을 보였다. 미나리는 간 질환을 앓던 숙종에게 꼭 필요한 채소였던 점을 생각하면 이 고사의 의미는 더 크다.
영조는 채소와 보리밥으로 담백한 식사를 즐겼다. 재위 40년이 넘어가자 번열로 자주 쓰러졌고 입맛을 잃었다. 금주령을 내린 장본인이었지만 막상 자신의 몸에 이상이 발생하자 체력을 살려내기 위한 치료처방인 ‘통순산’에 술을 넣도록 허용했다. 그럼에도 쉽게 입맛이 돌아오지 않자 미나리를 약식으로 처방받아 결국 입맛을 되찾았다.
실록에 따르면 미나리는 종묘제사에 올라갈 만큼 중요한 음식이었다. 당나라의 의서 ‘식료본초’는 지금과 달리 “미나리를 술이나 장에 담그면 맛이 좋다”고 했다. 실제 미나리를 부추 순무와 더불어 근저라는 김치로 담가 제사상에 올렸다. 진상품으로는 남원의 미나리가 올려졌다. 줄기에 공동이 없고 향기가 뛰어났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당나라 의서 ‘천금요방’ 등에도 “미나리는 생것의 즙을 내 먹거나 꿀을 타서 먹으면 황달에 도움이 되며 근력을 키워준다”고 썼다. 그 외에도 장운동을 활성화시켜 변비를 없애고 식욕을 도우며 여린 줄기는 고혈압에도 도움을 준다.
조상들이 미나리를 많이 심는 이유는 상징성 때문이다. 사대부들에게 미나리는 충성과 정성의 표상이고 학문의 상징이었다. 조선시대에는 생원 진사 시험에 합격해 성균관에서 공부하는 것을 채근(采芹)이라고 했는데, ‘미나리를 뜯는다[采芹]’는 뜻의 이 말은 훌륭한 인재를 발굴해 키운다는 의미로 쓰였다. 그러니 사대부 집안에서는 자식이 열심히 공부해서 훌륭한 인재로 성장해주기를 바라는 뜻에서 집집마다 연못에 미나리를 심었다. 그런데 왜 미니라가 인재 양성의 상징이 됐을까? 바로《시경》에 나오는 구절 때문이다.《시경》에서 이르길, “반수(泮水)에서 미나리를 뜯는다”고 했는데 많은 사람 중에서 훌륭한 인재를 뽑아 학생으로 삼았다는 뜻으로 쓰였기 때문이다. 이후 ‘미나리를 뜯는다’는 말은 인재를 양성한다는 의미가 됐는데 동시에 생원, 진사 시험에 합격해 성균관에서 공부를 하게 됐다는 뜻으로도 쓰였다. ‘미나리 궁전[芹宮]’이라는 말도 있는데 궁궐 이름 같지만 사실은 미나리밭을 의미하는 단어다. 하지만 진짜 미나리를 키우는 밭이 아니라 미나리로 상징되는 인재를 키우는 곳을 뜻하니 학교라는 의미가 되는 것이고, 옛날로 치자면 태학 내지는 성균관을 가리키는 말이다. 《청구영언》에 나오는 옛 시조에서도 봄 미나리의 진가를 느낄 수 있는데 “겨울날 따스한 볕을 님 계신 곳에 비추고자/ 봄 미나리 살찐 맛을 임에게 드리고자/ 임이야 무엇이 없으랴마는 못다 드리어 안타까워하노라”라고 노래했다. 이야기가 얽혀 있는 구절이지만 어쨌든 시의 내용은 사랑하는 임에게 무엇이든지 가져다 드리고 싶지만 그중에서도 살찐 봄 미나리를 임에게 먹이고 싶다는 것이다. 미나리가 계절을 알리는 전령사이며 봄철 입맛을 살리는 별미였기 때문이다.
한국 원산으로 들이나 습지, 물가 근처의 습한 곳에서 흔히 야생하며 재배하기도 한다. 줄기는 높이 20~50cm 정도로 자라며 속이 비어있고 밑에서 가지가 많이 갈라져 옆으로 퍼진다. 어긋나게 달리는 잎은 1~2회 우상으로 갈라진 겹잎으로 긴 잎자루가 있으나 위쪽으로 갈수록 짧아진다. 작은잎은 난형으로 가장자리에 톱니가 있다.
꽃은 7~9월에 원줄기 끝에서 복산형화서로 흰색의 자잘하게 달린다. 소산경은 5~15개 정도가 갈라지고 꽃이 10~25개 정도가 촘촘히 달린다. 꽃잎과 수술은 5개이다. 꽃 모양이 마치 사상자(蛇牀子:뱀도랒)와 같다. 분과인 열매는 타원형이다.
본초명(本草銘)은 수근(水芹), 근화(芹花)이다. 주로 이비인후과, 피부과, 순환계 질환을 다스린다. 전초 수근(水芹)은 폭열번갈(暴熱煩渴), 황달, 수종(水腫), 임병(淋病), 대하(帶下), 나력, 유행성 이하선염(流行性耳下腺炎), 신경동통(神經疼痛)에 30-60g을 달여서 복용한다. 또는 생즙을 내어서 복용한다. 외용은 짓찧어서 도포(塗布)한다. 꽃 근화(芹花)는 얼굴이 붓고 모혈(毛穴)에서 출혈되는 병에 6-9g을 달여서 복용한다.《동의보감》에 따르면, 황달과 부인병, 음주 뒤의 두통과 구토(宿醉)에 효능이 있고, 해독 작용이 뛰어나 약재로 사용했다.
비타민B군, 비타민A와 C, 미네랄이 풍부하여 간의 기능을 개선과 혈압을 강하시키는 효과가 있다. 또 칼륨이 함유되어 있어 몸 속에서 나트륨 작용을 억제하여 수분과 노폐물을 배출하는 것을 도와주고 신장의 기능을 강화시켜주기도 한다.
김치를 담글 때 양념으로 쓰이고, 전골이나 생선 종류의 탕을 끓일 때 빠지지 않는 재료 가운데 하나이다. 또 나물로 무쳐서, 데쳐서 제육이나 편육에 감아 강회로 먹는다. 근래에는 샐러드와 녹즙을 만들어 먹기도 한다.
[참고자료: 원색한국식물도감(이영노.교학사), 한국의 자원식물(김태정.서울대학교출판부), 동아일보 2021년 3월 29일(이상곤 갑산한의원 원장), 네이버·다음 지식백과/ 글과 사진: 이영일 생명과학 사진작가] ▒ 이영일∙고앵자/ 채널A 정책사회부 스마트리포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