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진(秦)나라 왕(BC 247∼BC 221), 진제국(秦帝國)의 초대 황제(BC 221∼BC 210).
이름은 정(政). 신해혁명에 이르기까지 2000년 이상 존속된 황제지배체제의 창립자이다.
시황제는 시호이며, 생전의 정식 칭호는 <황제>이다.
아버지 자초(子楚;莊襄王)가 인질로서 조(趙)나라에 있던 무렵 그 나라의 수도 한단(邯鄲)에서 태어났다. 《사기(史記)》에는 자초의 후원자이며 대상인(大商人) 여불위(呂不韋)가 막대한 자금과 자신의 아이를 가진 여인을 자초에게 바쳤는데,
그때 그 여인의 몸에서 태어난 아이가 바로 시황제 정(政) 적혀 있다.
자초의 뒤를 이어 13세에 진나라 왕이 되었으며,
승상(丞相)이었던 여불위가 상국(相國;재상)으로서 집정했다.
진나라는 6대 전인 효공(孝公)시대에 도읍을 셴양[咸陽;陝西省 咸陽市의 동쪽 15㎞ 부근]에 두고
법가(法家)인 상앙을 채용하여 부국강병에 힘썼는데,
진왕 정은 이때의 성과를 이어받아 노애의 반란을 진압하고 이를 계기로
여불위를 추방, 친정(親政)을 시작했다.
이어 법가 이사(李斯)를 발탁하여 상앙이 시작한 내정개혁(變法)을 더욱 철저히 하였다.
셴양 북동부 평야에 거대한 용수로[鄭國渠]를 만들었으며,
4만여경(頃;약 1867만a)의 경지를 개간하고 민정을 안정시켰다.
이와 같은 개척사업을 바탕으로 국가에 충실한 많은 병사의 양성과, 군공을 세우면 서민에게도 귀족의 계급을 준다는 신상필벌정책(信賞必罰政策)의 실시 전통적 기마전술과
교묘한 외교정책(합종연횡) 등을 전개함으로써
한(韓)·조(趙)·위(魏)·초(楚)·연(燕)·제(齊)의 6국을 차례로 멸망시켰다.
BC 221년 통일국가를 완성하였고,
이 신생국가의 맹주에 어울리는 <황제> 칭호를 창립했다.
첫댓글 아버지가 자초라는것과 초위제한위연을 통합, 최초 황제칭호를 사용한 시[정] 횡제 ....좋은 공부, 하고 갑니다...